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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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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류공석 목사 |
참고 :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
낳고에 담긴 진리
201년 11월 20일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마태복음 1:1-17
우리 교회는 교회 연수와 교인 수에 비해 성경을 많이 읽는 교회입니다. 이미 숫자로 치면 51번이 넘었고, 다음달 말이면 또 여러분이 일독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일독하다보면 참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구약의 경우 창세기, 출애굽기는 사건 중심이고 스토리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넘어갑니다. 그러다 레위기로 넘어가는데, 이 레위기에서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잘 이해도 안되는 제사법과 정결법, 절기와 각종 규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대로 그 의미를 알고 보면 레위기는 매우 은혜로운 책입니다. 허나 처음 읽는 경우 레위기는 참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가 민수기를 만나는데 민수기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남자의 수를 그들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하면서 지파별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름도 어렵고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민수기 후반과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등으로 가면서 활력을 찾습니다. 역시 사건과 스토리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만나는 장벽이 바로 역대기입니다. 처음부터 아예 작정하고 족보가 나옵니다. 1장부터 9장까지 무려 9장에 걸쳐 족보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많이들 질려합니다.
그래서 신약부터 읽겠다고 신약성경 첫 장을 폅니다. 보통 성경을 처음 읽는 분들에게는 신약부터 읽으라고 권합니다.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키가 신약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을 펴면 어떤가요? 그 첫 장에 해당하는 마태복음 1장 1절,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그러면서 누가 누구를 낳고가 반복이 됩니다. 무려 40회 반복됩니다. 그 이름도 잘 모르겠고 발음도 어렵고 성경을 마음잡고 읽어보겠다고 했다가 이내 질려버리고 맙니다.
이 족보는 유대인들이라면 모를까 비유대인들에게는 그리 재미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특히 초신자들이나 성경을 처음 읽는 분들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간디도 처음 성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의 낳고에 압도당해서 헤어나질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여류작가인 미후라 아야꼬도 그랬답니다. 미후라 아야꼬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빙점’, ‘길은 여기에’등을 썼는데,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성경을 읽기로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구약성경보다는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신약성경을 먼저 읽는 것이 낫겠다 싶어 신약성경 첫 장인 마태복음 1장을 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는 기대와 흥분을 가지고 첫 장을 넘겨보았더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낳고, 낳고, 낳고...’ 온통 낳고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내 실망했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펼쳐본 성경의 첫 장이 족보로 나열되어 있었고, 게다가 읽기도 힘들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들만 쭉 나열돼있으니까 말입니다. 초신자 중에 누가 이 족보를 읽고 재미있다거나 은혜를 받겠습니까? 기성신자들에게도 별 재미가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족보가 참 어렵고 재미없고 지루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는 단순한 낳고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노래였습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족보는 옛 음유시인이 모닥불 가에서 수금을 타가며 부르던 민요 같은 것이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이며, 그 조상들의 공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던 민요같은 것이 바로 족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그럽니다. 이 족보를 방에서 혼자 조용히 소리 내어 읊어보라고 말입니다. 그럼 훨씬 느낌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족보는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족보는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발달한 민족이 둘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와 유대인들입니다. 족보를 연구하는 학문을 계보학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족보가 발달한 나라가 우리나라이고 그래서 계보학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족보를 연구하기 위해 필름으로 담아 보관중인데, 그 중에서 세계 최초의 성씨 족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책으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성씨의 것일까요? 바로 문화 류씨의 족보입니다. 최초의 족보이고, 가장 잘 편찬된 족보로 이후 모든 족보의 원형이 된 족보입니다. 참고로 제가 바로 문화 류씨입니다.
족보라는 것이 모르고 읽으면 참 재미없고 지루하지만 알고 읽으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 자체가 역사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족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인물과 그 인물과 연관된 사건들에 대해 알고 보면 참 재미있고 은혜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미후라 아야꼬도 처음 읽을 때는 족보가 너무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그녀의 신앙의 연륜이 깊어진 후에 고백하기를 마태복음 1장의 족보만큼 복음적이고 은혜가 되는 족보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족보에 담겨있는 진리를 제대로 알면 이만큼 복음적이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 없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바로 낳고에 담긴 진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17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로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누어집니다. 이것은 마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나눈 것으로 보는데, 이는 무엇인가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첫 번째 그룹인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열네 대를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족장들이 나오고 이어서 보통 사사시대라고 부르는 기간이 포함됩니다. 특별히 족장들의 경우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언약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이자 처음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인데, 그가 받은 약속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이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이 복을 받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을 제사장 나라로 만들어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복으로, 궁극적으로는 그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 메시아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얻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러한 언약의 성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는 내용이 이 첫 번째 그룹에 담겨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의 족장들에게 주신 그 언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첫 번째 그룹은 다윗으로 끝나고 다윗으로 시작해서 두 번째 그룹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언약을 받은 조상이라면, 다윗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 첫 번째로 이루어진 인물로 봅니다.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루었고 하나님 앞에서도 선한 왕으로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혈통으로 이어지는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는데, 이를 다윗언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메시아의 원형으로 봅니다. 더불어 다윗의 후손 중에 메시아가 태어나 다시금 다윗 왕가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유대인들이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중에서 나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사두개파의 경우는 레위 지파에서 메시아가 온다고 생각했지만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다윗이 속한 유다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1장 첫 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복과 메시아의 약속을 받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메시아의 원형으로 여기고 그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나온다는 믿음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열네 대씩 세 그룹으로 나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게마트리아라는 것이 있습니다. 알파벳 하나 하나가 숫자로 활용되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어떤 내용이나 의미를 전달하거나 강조하는 것으로 우리말로는 수비학이라고 합니다. 다윗, 정확한 발음으로는 ‘다위드’, 현대 히브리어로 하면 ‘다비드’인데, 세 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달렛, 바브(와우), 달렛입니다. 달렛은 알파벳 순서에서 네 번째이기 때문에 숫자로 바꾸면 4입니다. 바브(와우)는 여섯 번째 철자이기 때문에 숫자로는 6입니다. 그러면 다위드, 다비드의 이름을 숫자로 바꾸면 4, 6, 4입니다. 이 셋을 더하면 14입니다.
이제 마태가 왜 예수님의 족보를 열네 대씩 세 그룹으로 묶었는지가 이해가 되십니까? 열넷이란 숫자는 곧 다윗을 뜻하는 것으로, 그만큼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약속된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열넷씩 세 그룹으로 묶음으로서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 메시아이심을 세 번에 걸쳐 강조한 셈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게마트리아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구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게마트리아를 배웁니다. 이것이 낳고에 담겨 있는 두 번째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다윗에 이어 왕들이 이어집니다. 이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스라엘의 왕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메시아는 곧 왕으로 여겨졌는데, 즉 메시아 왕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는데, 황금은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바로 새로운 왕이 태어났을 때 드리는 선물입니다.
또한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단 명패가 바로 ‘유대인의 왕 예수’였는데, 그렇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메시아 자체가 왕이지만, 족보상으로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들의 후손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낳고에 담겨있는 세 번째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그룹이 이어지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스룹바벨 같은 몇을 제외하고는 성경에 기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즉 매우 평범한 인물들이라는 것이지요. 바벨론에 의해 다윗 왕가가 무너졌기도 했거니와 다윗 혈통이나 후손들이 퍼지면서 나중에는 일반 백성이 되었던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요셉의 경우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의 목수였습니다.
이것을 통해 마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지만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까지 품으시는 사랑의 구주로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평범한 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로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족보 중에 특징적인 것이 여자들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두 네 명의 여자입니다. 3절의 다말, 5절의 라합과 룻, 6절의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대개의 경우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게다가 이들 여자들은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라, 리브가, 레아, 라헬 같은 여자들이었다면 큰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경우는 경우가 다릅니다.
다말이 어떤 여자입니까? 야곱의 아들인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창세기 38장을 읽어보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말은 맏며느리였는데, 그만 아들을 낳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이 죽었습니다. 당시 관습에는 아들 없이 남편이 죽으면 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후손을 잇게끔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인데, 후손이 없는 여자의 경우는 생활력이 없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규정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동생이 다말을 취했으나 의도적으로 임신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죽고, 유다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둘은 죽고 셋째가 남았는데, 아직 어렸기 때문에 다말에게 아들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리게 합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이 장성했음에도 유다는 셋째 아들마저 죽을까봐 다말에게 주질 않습니다.
이에 다말이 쓴 계략이 바로 매춘부로 위장해서 유다와 동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와의 불륜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다말에게는 시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불륜의 죄악입니다.
라합은 어떤 여자였습니까?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첫 번째로 점령한 여리고성의 기생입니다. 우리말로는 점잖게 기생이라고 했지만 실은 매춘부입니다. 아예 점포를 차리고 손님을 받는 직업 매춘부였습니다. 비록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그로 인해 여리고 점령 시 구원받게 되지만 그의 출신은 이방인이요 매춘부였습니다.
룻은 앞의 두 여인처럼 불륜이나 매춘에 관련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의 출신은 모압으로 이방인이었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이 매우 증오하고 더럽게 여기는 이방족속입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두 딸과 동침해서 태어난 아들들의 후손, 즉 모압과 암몬으로 그 중 하나입니다. 종족의 근원 자체가 불륜이고 게다가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혔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을 매우 증오하고 더럽게 여겼습니다. 그런 모압 출신의 여인이 바로 룻입니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룻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는 그 이름이 밧세바입니다. 이 여인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윗과 간통한 여인이고, 다윗은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이를 숨기려다 결국에는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를 전쟁 최전선에 내몰아 죽게 합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이스라엘 사람인지 이방인인지 성경에 기록은 없으나 유대 전승에 따르면 다말과 밧세바는 비유대인, 이방인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메시아,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족보에 나오는 남자들이야 이스라엘의 혈통이고 유대인의 혈통이지만 이 여인들은 이방인들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한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었고, 그래서 이방인들은 멸망당해야 할 죄인들로만 생각했지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배타적인 경향은 초대교회에까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유대인, 최초의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전도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방인들에 대한 배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깨드린 사건이 바로 욥바에 있는 피장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가 본 환상입니다. 하늘로부터 보자기가 내려왔는데 그 안에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있는데,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먹으라는 겁니다. 음식법, 코셔를 지키는 유대인으로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었기에 베드로는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세 번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음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방인들에 대한 배타성과 편견을 깨뜨린 사건입니다. 이방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들 역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 베드로는 확신을 가지고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장교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고 그 때 고넬료에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이 사건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알리게 되고 사도들은 이 보고를 듣고 이방인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공식적으로 결의하면서 이방인선교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욥바는 이방인 선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유대인들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이방인들에게도 메시아, 구원자로 오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네 명의 여인들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위해 오신 메시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오신 메시아,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밝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낳고에 담긴 진리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성경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데,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세 번째 단락에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그의 형제들, 다윗과 솔로몬과 이후의 왕들, 이들 모두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대해 알게 되면 우리는 이내 실망하게 됩니다.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의 족보에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함량 미달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왕들을 보면 그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이었다고 할 만한 사람이 몇 안 됩니다. 기껏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 정도입니다. 다윗의 경우 윤리적으로 보면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자기의 충신의 아내와 간통을 저질렀고, 이를 숨기려 했고, 결국에는 자기의 충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후에 그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알게 되고 눈물로 회개를 했지만 이 일은 다윗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치명적인 과오입니다. 아마도 숨기고 싶은 일이었을 겁니다.
다른 왕가의 기록이나 족보 등에는 이런 일들은 숨기거나 축소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윗의 크나 큰 죄악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의 족보에도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했으면 좋을 법한데,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두 아들을 낳았고, 이방 매춘부 라합과 모압 여인 룻에 대한 기록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된 왕들은 몇을 제외하고는 우상숭배와 온갖 죄악을 일삼았던 이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역시 많은 실수를 범했고, 이삭과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한 사람들은 이 족보에 실린 인물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를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겠지요.
대개의 족보는 이렇지 않습니다. 조상들 중에는 훌륭한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기 마련인데, 대개의 족보에는 훌륭한 선조들에 대한 기록은 매우 강조되어 있거나 과장되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는 짧게 기록되거나 아예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괜찮았던 인물로 거짓으로 꾸미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족보의 경우에도 보면 이러한 과장과 첨삭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가문에는 훌륭한 조상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이 아주 훌륭한 조상의 후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훌륭하고 명망있던 누구의 몇 대손, 누구의 손자,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함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족보에 있는 선조들에 대한 기록이 과장되거나 삭제되고 생략되거나 거짓 기록이 첨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는 다릅니다. 조금의 개작이나 과장이나 거짓이 없습니다. 매우 부끄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왤까요?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성경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야웨 하나님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이고, 예수님 역시 사람들이 꾸며낸 메시아라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웨 하나님과 그분이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인데, 사람들이 지어낸 신이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이렇게 기록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무 흠 없이 멋지게 만들어야죠.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실수를 숨겨야죠. 그들이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메시아의 원형으로 추앙하는 다윗의 그 부끄러운 잘못을 숨겨야죠. 최소한 축소는 해야지요. 만일 예수님이 사람들이 꾸며낸 거짓 메시아라면 예수님의 족보에 이런 부끄러운 이름들을 넣지 말아야죠. 지금의 거짓 메시아들을 보세요. 이단의 수괴들을 보십시오. 자신들을 얼마나 꾸밉니까?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정권을 보세요. 얼마나 과장하고 조작하고 속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조금의 과장도 없고 조작도 없고 숨기거나 삭제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왤까요? 성경, 거룩할 성, 경전 경, Holy Bible인데 왜 이렇게 거룩하지 못한 holy하지 못한 일들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고, 이 거룩한 경전에 어울리지 않는 추접하고 더럽고 부끄러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의 이야기, 사람들이 꾸며낸 메시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스로 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기록이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안에는 거짓이 없고 과장이 없고 숨김이나 조작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다른 겁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 하나님께 반역하고 죄악과 불순종을 일삼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죄악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조금이라도 과장이나 꾸밈이나 숨김이나 조작이나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거룩한 책인 것은 반역과 죄악과 불순종으로 불든 인간의 역사 가운데 찾아오셔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경륜과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다는 말처럼 죄악으로 물든 인간의 역사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기록된 책이 바로 성경이기에 성경은 거룩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이 족보는 그러한 성경의 내용과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는 그 자체가 복음이고 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족보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족보는 보면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브라함 때부터 15절까지는 계속 누가 누구를 낳고가 반복되다가 16절에서는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전까지는 남자가 누구를 낳고라는 능동형 동사로 반복되다가 돌연 여자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시니라는 수동형 동사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는데,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지만 실제로는 그 혈통을 이어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생부가 아닌 법적인 아버지일 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유대인 남자의 혈통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됨을 통해서, 즉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류를 그 죄악에서 구원하실 메시아는 죄인의 혈통에서 오신 분이 아니라 죄 없으신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죄인을 대속하실 수 있으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장 1절의 ‘계보’라는 이 말, 개역한글 성경에는 ‘세계’(世系)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세상, world가 아니라 generation, 세대, 계보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그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게네시스’(γενεσις, genesis)입니다.
이 게네시스라는 단어는 계보, 탄생의 뜻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origin입니다. 창세기를 영어로 뭐라고 부릅니까? Genesis입니다. 바로 헬라어 게네시스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게네시스, origin, 세상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바로 창세기이기 때문에 창세기를 기원의 책, Genesis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단어를 예수님의 족보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를 섞어 말하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게네시스, origin’이라는 것이지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창세기의 게네시스, origin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일과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 사건은 동일한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온 우주가 창조된 이후 최대의 사건은 바로 성육신 사건,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창세기와 똑같은 게네시스, origin, genesis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에서 선포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죄용서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한 이것이 게네시스, origin, genesis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 자체가 genesis이고 복음서 자체가 genesis입니다. 영화로 하면 ‘Genesis 2, 창세기 2’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에 담겨있는 중요한 진리들을 보았습니다. 낳고에 담긴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족장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이며,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의 계보를 잇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친구요 구주가 되시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구주시며, 죄인의 구주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해 반역과 죄악과 불순종으로 일관한 인류의 역사 가운데 친히 찾아오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족보, 낳고에 담긴 진리입니다. 더불어 예수님은 죄인의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이시며, 이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창조, 즉 인류 구원의 역사가 열렸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장차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분을 경배하며 찬양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함께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이 땅 위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과 이방인의 메시아, 온 인류의 구원자,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그 이름에 합당한 경배와 찬양과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거짓 하나님과 구원에 속고 있는 모슬렘들에게, 그리고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참 구원자,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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