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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임과 기뻐함 사이에서

마태복음 류공석 목사............... 조회 수 1090 추천 수 0 2014.04.18 17: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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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1-12 
설교자 : 류공석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술렁임과 기뻐함 사이에서
2010년 12월 11일(토) 텔아비브 욥바교회
본문: 마태복음 2:1-12

  지난주에 예슈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곧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심을 보았는데, 오늘 본문은 예슈아께서 태어나신 때와 장소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슈아께서 태어나신 때를 기준으로 역사를 구분합니다. B.C.와 A.D.인데, 예슈아께서 태어나기 전을 Before Christ, 줄여서 B.C., 예슈아께서 태어나신 후를 라틴어로 Anno Domini,‘주님의 시대’라는 뜻인데, 이를 줄여서 A.D.라고 부릅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기원전, 기원후로 부르고, 교회에서는 이것을 주전, 주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분한 사람이 6세기에 살았던 수도승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라는 사람인데, 이후 역사 표기를 이 사람이 정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학자들이 연구해보니까 연대 계산을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오랫동안 사용을 하다 보니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는 언제인가 하는 것인데, 복음서에 그 단서들이 몇 있습니다. 그 첫째가 오늘 본문 1절입니다. 1절은 그 때를 ‘헤롯왕 때에’라고 하고 있는데, 헤롯왕이 죽은 것이 주전 4년입니다. 그렇다면 예슈아께서 태어나신 해는 최소한 주전 4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출간되는 역사책들을 보면 예슈아의 탄생 시기를 B.C. 4년으로 표기되어 있는 이유도 이 탓입니다.

  그런데 좀 더 연구를 해보면 주전 4년보다 좀 더 이전으로 여겨집니다. 마태복음 2:16에 보면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경에 있는 사내아이를 동방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 아래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고 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주전 6년경이 됩니다.

  학자들의 경우는 주전 8년에서 4년 사이에 태어나신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누가복음 2:1-2의 기록 때문입니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가이사 아구스도, 케사르(시이저)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황제를 말합니다. 그는 주전 27년에 황제가 되어 주후 14년까지 로마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문제는 2절에 나오는 구레뇨라는 사람입니다. 정확한 발음은 퀴리니우스인데, 이 사람이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호적, 즉 호구 조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얼마 전 도올 김영옥이란 사람이 방송에서 강의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구레뇨라는 사람은 수리아 총독이 아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실제로 역사 기록에는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을 한 것은 주후 6년이고 이 때 호구조사를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성경의 역사성을 공격한 것인데, 이 사람이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실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저런 잡다한 책을 읽고 그런 주장을 하는 김영옥 같은 사람의 말보다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결과입니다. 램지(W. M. Ramsay)라는 학자가 있는데, 로마 시대의 비명의 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된 것이 두 번이었다는 것입니다.

  램지는 주후 20년에 쓰여진 파피루스를 연구한 결과 로마의 정기적인 호구 조사가 14년마다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주후 6년에 호구 조사를 한 공식 기록이 있으며, 따라서 그보다 14년 전인 주전 8년경에도 호구 조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헤롯이 당시에 자기 아내와 두 아들마저 죽일 정도로 나라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에 호구조사가 조금 지연되다가 실시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구조사가 대개 1-2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이 호구 조사 기간은 주전 8년에서 주전 4년 사이에 행해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기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램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레뇨가 주후 6년 뿐 아니라 주전 10년-7년 사이에도 수리아 총독으로 있었다고 말합니다. 구레뇨가 이때에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로마 황제의 특별 사절로 활동하면서 실제적인 총독 직무를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학자들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구레뇨가 로마 황제의 특별 사절로 시리아 총독직을 대행하던 때에 호구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전 8년부터 4년 사이에 이 땅에서 호구조사가 실시되었다는 것입니다.

  램지 교수는 누가가 2:2에서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처음한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구레뇨가 실제적으로 두 번 총독으로 있었고, 두 번의 재임 기간에 각각 호구 조사를 했는데, 두 번째 호구 조사는 사도행전 5:37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첫 번째 조사가 있었다는 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처음한 것이라'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데오빌로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로마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호구 조사는 세금 등으로 인해 매우 중요한 국가 행사인데,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누가는 로마 고위직에 있던 데오빌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정확한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복음서를 쓴 것입니다.

  조금 길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 보면 참 잡다한 책들과 주장들이 범람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올바르게 연구되고 증명된 내용들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성경의 기록은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난제와 차이가 있는 것이지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의 탄생연도는 성경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학자들의 연구를 토대로 우리가 알게 됩니다. 학자들의 연구 중에서 최근에 가장 설득력 있는 연구가 있는데, 그 연구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해는 주전 7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동방박사들이 보고 찾아왔다는 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동방에서부터 온 박사들은, 헬라어 원어로는 ‘마고이’입니다. 이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점성술사로 봅니다. 점성술하면 무슨 마술이나 미신 같은 것으로 보는데,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점성술사의 위치는 매우 컸습니다. 이들은 천체의 운행을 관찰하면서 여러 가지를 연구하고 인간 세상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는 특별한 통찰력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마술사라는 말보다는 현인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을 박사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이들은 현인, 박사로 존중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어떤 날 천체를 관측하다가 매우 특별한 현상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목성과 토성이 두 마리 물고기 자리에서 일 년 동안 세 번 근접하는 현상을 본 것입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행성의 근접은 매우 특별한 때로 여겼는데, 목성과 토성의 근접은 매 20년마다 생기고 이것이 한 해에 세 번 근접하는 경우는 139년에 한번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별자리 근처에서는 약 900년을 주기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고기 별자리는 새천년을 상징하는 별자리로 간주가 되었습니다. 새천년을 상징하는 물고기 자리에 목성과 토성이 세 번 근접하는 현상이 주전 7년에 일어났음이 학자들의 연구 결과 밝혀졌습니다. 5월 27일, 10월 6일, 12월 1일입니다. 그러한 기록이 나왔고, 과학적으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역시 주전 7년이라는 것입니다. 점성가들은 그해에 특별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동방 박사들은 이때에 태어날 위대한 인물을 유대 땅에서 찾았는가 하는 것인데, 동방은 보통 페르시아 지방을 말합니다. 지금의 이라크와 이란을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구약 성경으로 하면 갈대아 지방이고 남 유다가 멸망당할 때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 지역입니다.

  그리고 70년 후에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 땅, 페르시아 땅에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 땅에서 그들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유대인의 종교와 사상과 관습을 따랐습니다. 메시아사상은 이스라엘의 독특한 사상인데, 이러한 메시아사상과 메시아가 곧 온다는 열망, 즉 메시아 대망이 페르시아 땅에도 유대인들을 통해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박사들은 이미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 사상을 알고 있었고 이때에 태어날 특별한 인물을 바로 유대 땅에서 태어날 메시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최근의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주전 7년 12월 1일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유대 절기인 하누카에 해당합니다. 2주 전에 성탄절과 하누카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바로 하누카 기간에 해당됩니다. 물론 이것은 연구 결과에 따른 주장일 뿐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예수님께서 몇 년도 며칠에 태어나셨냐 하는 문제는 초대 교회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던 초대 교회의 주된 관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었고, 그분이 바로 메시아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우리가 어느 정도는 알아야겠지만 날짜를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는 안됩니다. 메시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몇 년 며칠이 성탄절이냐로 인해 그 감격과 기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전 7세기에 나타난 목성과 토성이 일년에 세 번 물고기 자리에서 근접한 이 현상에 대한 기록이 예수님 당시의 유대문헌에도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에세네파의 기록인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제목의 두루마리로 사해 사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매우 중요한 사실이 적혀 있습니다.

  “그는 [...]라고 불릴 것이며 그분의(하나님)의 이름으로 준비될 것입니다.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며 그들은 그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들이 본 별처럼 그의 왕국은 확실할 것이며 그는 이 땅에서 여러 해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 (중략) 그의 왕국은 영원한 왕국이며 그의 모든 길은 정의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그들이 본 별처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페르시아 동방 박사들이 본 그 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일치하는 내용이 바로 당시 유대교 문헌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들이 별을 보았을 때 태어난 이를 뭐라고 부른다고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며 그들은 그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메시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겁니다. ‘지극히 높이신 이의 아들’은 누가복음 1:35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하면서 했던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경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이러한 천체 현상을 목격했고 바로 그때에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지극히 높이신 이의 아들로 불리게 될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유대교, 바리새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랍비 유대교는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문헌에는 분명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좀 더 설명을 하겠지만 이사야 9:6에 예언된 메시아는 하나님 자신으로 나옵니다.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 사람일뿐이라는 유대교의 주장은 유대교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위해 만든 주장으로,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구약성경과 유대문헌들을 무시하고 왜곡하는 오류라는 것입니다. 사람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이 바로 예슈아 우리 주님이십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예슈아 그분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로 부르며,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모든 인류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별을 보고 유대 땅으로 온 박사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이는 당시 동쪽에서 유대 땅으로 오는 도로가 여리고 쪽에서 예루살렘으로 연결되기에 그렇고, 메시아 왕이 태어날 곳은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이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이때는 아직 헤롯이 왕으로 있을 때인데, 동방에서부터 메시아 왕의 별을 보고 왔다는 박사들의 말을 들은 헤롯 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나는지에 대해 묻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닌 이두매, 즉 에돔 출신의 이방인이기 때문에 메시아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태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의 경우라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구약 미가서 5:2에 보면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태복음은 미가서 5:2을 인용하고 있는데, 칠십인 역 헬라어 성경을 따르고 있고 성경의 다른 예언과 연결시켜서 미가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미가서는 선지자 미가가 기록한 것인데, 주전 8세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베들레헴은 매우 작은 고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큰 도시가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 했는데, 이는 목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메시아는 목자로 표현이 됩니다. 마치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노래한 다윗의 시편 23편처럼 메시아 역시 목자로서 이스라엘과 모든 믿는 사람들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메시아에 대한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유대교 랍비들은 하나님이 창조 이전에 메시아의 이름을 만드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מקדם מימי עולם인데, 영어로 하면 from old, from everlasting의 의미입니다. 특히 두 번째로 나오는 ימי עולם이라는 말은 영원을 의미하는데, 존재에 있어 영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영원부터 존재하고 영원까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뿐입니다. 그래서 영원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미가서에 예언된 메시아는 누구를 말합니까?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본체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오늘날 유대교의 메시아에 대한 주장과 반대되는 내용입니다. 메시아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주장과 반대되는 성경의 내용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근본, 그의 origin은 태초 이전일 뿐만 아니라 영원이라는 것입니다. 즉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슈아, 우리 주님이십니다. 이것을 복음서와 신약성경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성경의 분명한 예언이고 랍비 문헌에도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에 대한 유대교 랍비의 미드라쉬, 성서해석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유대인이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어느 아랍인이 와서 당신이 누구냐 묻습니다. 나는 유대인이라고 하니까 아랍인이 말하기를 이제 당신의 소의 쟁기를 풀어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기를 이제 다시 쟁기를 묶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구원자, 즉 메시아가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위로자다. 메시아의 별칭 가운데 하나가 위로자입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자 히스기야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유대 문헌에서 메시아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곧 메시아가 태어났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러자 유대인이 묻기를 그 메시아가 어디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아랍사람이 답하기를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후의 것인데 유대교 랍비 문헌에서도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지금의 유대교는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고, 몇몇 유대교 종파 중에는 자신들의 지도자였거나 지도자인 사람을 메시아로 믿고 추종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유대교에서 기다리는 메시아는 어디서 태어나야 할까요? 지금 자신들의 지도자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유대교 종파들의 경우 그 지도자들이 어디 태생이어야 할까요? 성경의 예언과 랍비들의 성경해석에 따르면 베들레헴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베들레헴은 누구의 땅입니까? 이스라엘이 점령은 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아랍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유대인은 한 명도 살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베들레헴은 아랍 사람들의 도시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에서 기다리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유대인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니 이것이 가능할까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성경과 랍비들의 미드라쉬에는 분명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인데 지금 유대교에서 기다리는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확률이 너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메시아로 믿고 추앙되는 인물은 예슈아, 우리 주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에서는 예슈아께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영적인 장막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앞서 몇 가지 예를 말씀드렸고 지난주에도 예슈아께서 메시아이심을 증거했는데, 이러한 명백하고도 성경의 예언과 유대문헌과도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유대교는 그 눈이 가려져 있어 예슈아께서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눈이 흐려 보지 못하고 우둔하여져서 듣고 읽어도 깨닫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유대인들도 이 사실을 깨달을 줄로 믿습니다. 예슈아께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시며, 하나님의 본체로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 유대인의 왕으로 깨닫고 믿어 예슈아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그분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하고 이 사실을 유대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 주중에 귀국하신 조은숙 집사님이 교회 홈페이지에 실린 지난 주 설교에 댓글을 단 것을 보셨는지요? 조집사님이 프랑스계 유태인 할아버지랑 얘기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크리스천이고 JESUS를 구원자로 믿는다고 말하니깐, 할아버지 왈 '히브리어로는 예슈'라고 하시기에, 주일에 들은 설교 말씀이 생각나서 "예슈아"가 정확한 이름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예슈'라고 우기더라는 것지요. 그래서 조집사님이 다시 사실은 "예슈아"가 정확한 그의 이름이라고 하니깐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래? 예슈아..." 그러시더럽니다.

  정말 잘 하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님의 정확한 이름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정확한 이름이 예슈가 아니라 예슈아라는 것만 알려줘도 큰 전도입니다. 저도 유대인들이나 아랍인들과 대화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말이 나오면 꼭 예슈아가 맞는 이름이라고 말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저의 종교를 물으면 'משיחי'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을 노쯔리(נוצרי)라고 하는데, 이는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을 영어로 Christian이라고 하는데, 이를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메쉭히'(משיחי), 복수로는 메쉭힘(משיחים), Messsianic people입니다. 메시아를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시지요. 크리스천이 그런 뜻 아닙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코레아니 메쉭히(קוריאני משיחי), Messianic Korean이지요. 우리 교회 유대인 지체인 이스라엘 형제에게 그랬어요.

"나는 '코레아니 메쉭히(קוריאני משיחי), Messianic Korean'이고, 당신은 '예후디 메쉭히(יהודי משיחי), Messianic Jewish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앞으로 그러세요. 나는 משיחי, Messianic이다. 노쯔리라고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유대인이든 한국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던 예슈아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으면 그 사람은 바로 Messianic people, משיחים입니다.

  조은숙 집사님이 마지막에 쓴 글처럼 "예슈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이 땅 가득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3절에 보면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 곧 메시아 왕으로 태어나신 아이가 어디 있느냐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듣고 소동했다, 이 말은 듣고 당황했다, 듣고 술렁거렸다는 뜻입니다. 혹은 듣고 걱정거리가 생겼다, 듣고 분열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헤롯의 경우는 이 말을 듣고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당황했겠지요. 큰 염려에 빠졌을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요? 그의 왕위가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이방인 이두매, 에돔 출신으로 로마의 후원으로 유대인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가 왕권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는 역사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의심하여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에게서 메시아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들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으며 어찌 당황하지 않으며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때는 헤롯이 자기의 아들들에게 이미 자신의 영토를 나누어주려고 마음먹었던 때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온 예루살렘이 소동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왜 예루살렘 사람들까지도 술렁거렸을까요? 가진 자들, 기득권자들, 헤롯과 로마에 기대어 권력을 누렸던 자들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제사장들 그룹인 사두개파가 있고, 또한 같은 산헤드린 공회 멤버인 바리새파도 있습니다. 이들 역시 기득권자들입니다. 기득권자들에게 가장 염려되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위협하는 세력입니다. 메시아는 구원을 가지고 오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하는 분입니다.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인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외의 일반 백성들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수도이고 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은 신하들, 귀족들, 제사장 무리들과 같은 기득권층과 중류 이상의 백성들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예루살렘 인구는 5만이었습니다. 그 대다수는 중류 이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득권층과 마찬가지로 중류 이상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입니다. 급격한 변화나 그로 인한 혼란을 원치 않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기에 메시아가 가져올 구원과 통치가 반갑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혼란과 자신의 것을 잃을 것 같은 상실에 대한 염려가 그들에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술렁거릴 수밖에요. 술렁거렸다, 트러블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술렁거림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까지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21:10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온 성이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똑같은 술렁거림입니다. 이것은 메시아에 대한 환영도 아니고 기쁨도 아닙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삶의 안정을 잃을까 염려하는 술렁거림이고 그래서 메시아가 오심을 기뻐하기 보다는 거북스러워하고 심지어 거부하려는 술렁거림입니다.

  기가 막한 노릇 아닙니까? 메시아에 대한 예언도 갖고 있고 메시아사상도 있고 메시아를 기다려왔다는 이들이 정작 메시아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보인 반응이 고작 술렁거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연히 보여야 할 반응은 환영이어야 했고 기뻐함과 경배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고작 베들레헴 인근의 목자들과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메시아를 환영하고 기뻐하며 그에 합당한 경배를 드렸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반면에 보십시오.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행성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별이 그들을 베들레헴 주님 나신 곳으로 인도했을 때 그들은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냥 기뻐한 것이 아니라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과 감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말입니다.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찌합니까?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이는 왕에게 합당한 예물입니다.

  보십시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있었고 메시아를 기다렸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태어나자 환영하고 기뻐하고 경배하기 보다는 기득권과 삶의 안정에 대한 염려로 인해 술렁거리는 모습을 보였고 급기야 헤롯은 메시아를 죽이려 했고 후에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유대교 지도자들 역시 메시아를 거부하다가 결국 죽이려 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들인 동방 박사들은 메시아를 매우 크게 기뻐했고 그분을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 67억 인구 중에서 23억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기뻐하며 경배하고 있는데, 정작 메시아가 태어나시고 사역하셨던 이 땅에는 너무나도 소수의 유대인들과 아랍 크리스천들과 우리 같은 외국 크리스천들만이 메시아를 기뻐하며 경배하고 있습니다. 속히 유대인들이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기뻐하며 경배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거짓 하나님 신앙에 속고 있는 아랍 모슬렘들도 예슈아 우리 주님을 통해 참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대한 반응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렁거림과 기뻐함, 이 두 가지 반응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8월 이후 혈당과 싸우고 있는데, 낮은 수치지만 혈당이 발견되면서 이를 초기에 잡기 위해서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을 병행하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검사를 했더니 혈당이 정상수치로 내려갔고 이제 좀 더 노력해서 확실하게 잡으려고 합니다. 혈당관리를 하면서 당뇨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아내 역시 저를 돕기 위해 이리 저리 공부를 많이 했나 봅니다. 아내가 당뇨 관련 자료를 찾다가 제게 한 말인데, 어느 당뇨에 걸려서 치열하게 관리를 해 온 사람의 말인데, 이 분 눈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 부류에 해당한답니다. 당뇨에 걸리지 않은 사람, 당뇨에 걸릴 위험이 많은 사람, 당뇨에 걸린 사람, 이 세 부류밖에 없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 주님으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당뇨 환자가 분류하는 것처럼 상대적인 분류가 아니라 절대적인 분류이고 구원과 직결된 분류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술렁거립니다. 어찌 돈 벌까? 어찌 놀까? 이러한 술렁거림입니다. 예수님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Christmas는 그저 기독교의 holyday일뿐입니다. 마시고 놀고 즐기는 날일뿐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성탄은 이 땅에 오신 구제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그분을 경배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술렁임과 기뻐함, 이 둘은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이 두 가지 반응에서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분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술렁임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 믿지 아니는 하는 이들의 성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예전에는 성탄절은 일 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었습니다. 성탄절 연극과 찬양을 준비하고, 성탄 트리와 장식을 하고, 성탄절 교회학교 발표회도 하고 성탄절 칸타타도 하고, 성탄 전날에는 모여서 새벽송을 다니면서 한 아름 선물을 받아다가 그것을 고아원이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달도 하고, 새벽송이 끝나면 교회 친구들끼리 모여서 올라이트 하면서 발음도 틀리는 말을 하면서 밤새 게임을 하고 그리고 다시 교회에 가서 성탄예배를 드리면서 보냈습니다. 참 기쁘고 즐겁고 감사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마다 성탄절 행사를 하고 칸타타도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예전과 다릅니다. 성탄은 가족과 함께! 말은 그렇게 하는데 정작 성탄의 기쁨과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실제는 뭡니까? 귀찮다는 겁니다. 피곤하다는 겁니다. 관심 없다는 겁니다. 편하고 싶다는 것이지요. 그냥 성탄 예배 한번 드리고 쉬고 싶다는 겁니다. 혹은 교회에서 그런 것 하기 보다는 대신 어디 분위기 좋은데 가서 친구들하고 한잔 하면서 신나게 놀고 싶다는 것이지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쉽게 발견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교인들조차도 성탄의 기뻐함 보다는 술렁거림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술렁거림과 기뻐함 사이에서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한 기뻐함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분을 기뻐하며 그에 합당한 경배를 드리고자 하는 마음들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성탄이 되면 술집과 쇼핑몰의 술렁거림을 쫓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메시아의 오심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분을 경배하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더불어 가난하고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따뜻한 손길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성지 이스라엘, 메시아께서 태어나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방박사들처럼 메시아이신 예슈아, 우리 주님으로 인한 벅찬 감격과 기쁨이 넘쳐나고, 그 기쁨이 경배가 되고, 그 기쁨이 메시아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 땅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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