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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로마서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181 추천 수 0 2014.04.22 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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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8:5-1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748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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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5-11, 사순절 다섯째 주일,

2014년 4월6일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지난 3월27일은 목요일이었습니다. 목요일마다 저는 주보를 작성합니다. ‘오늘의 기도’를 정리하고 있는데, 핸드폰에 문자 신호음이 울렸습니다. 대구성서아카데미를 통해서 알고 있던 박 아무개 목사님의 전화번호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문자를 열어보았습니다. 전화번호의 주인인 박 목사님이 소천 했다는 소식과 간단한 장례절차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습니다.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한 달 여 전만 하더라도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에 글을 남기셨습니다. 문자를 보낸 따님을 통해서 알아보니 제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일 년 이상 투병 사실을 일절 숨기고 있다가 세상을 뜬 뒤에 가까운 지인들에게 알린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일주일 전에는 대구샘터교회 교우 중에서도 상을 당하신 분이 계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육체는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하나님 품에 안겨 영원히 산다고 말입니다. 이런 대답에 따르면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입니다. 이는 육체로부터 분리되어야만 영혼이 구원받는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이걸 영육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영육이원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플라톤 사상에 가깝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 따르면 인간 영, 또는 영혼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영원한 본질인 이데아로부터 유출되어서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살다가 죽으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이데아로 다시 돌아갑니다. 인간의 영적인 요소와 육체적인 요소를 완전히 구별해서 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육체 없이 혼령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은 마지막 대목에서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우리는 혼령이 아니라 몸을 지닌 존재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을 영육이원론에 근거해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나오긴 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전체적으로 육신과 영을 대립적인 구도로 설명합니다. 육신은 죄에 속하고, 영은 생명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본문 앞 대목인 롬 8:1-5절에서 이미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영을 따르는 사람을 분리해서 설명했습니다. 본문 6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여기서 육체적인 것은 무엇이고, 영적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육체적인 것은 일단 나쁜 생각과 행동, 부도덕한 것, 성적인 욕망 같은 것쯤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반해 영적인 것은 좋은 생각과 행동, 도덕적인 것, 금욕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을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이해하면 기독교 신앙을 도덕주의로 떨어뜨리는 겁니다. 성서는 더 근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서 전체에서 무엇을 피력하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율법주의와의 신학적인 논쟁이 핵심입니다. 율법주의가 바로 도덕주의입니다.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게 바울의 주장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철저하게 율법에 따라서 살았던 바울은 율법이 자신을 살리는 게 아니라 죽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을 완전하게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게 그가 처한 영적인 딜레마였습니다.

 

자기 훈련이 철저했던 바울이 율법의 요구 앞에서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깨달음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와 악이었습니다. 그는 롬 7:2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각각의 수준에 따라서 선에 가깝게 살아가기도 하고, 또는 악에 가깝게 살아가기도 합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궁극적인 차원에서 보면 사람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우리가 성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기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착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구원에 더 가까운 건 아닙니다. 오히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자신에게 나타나는 작은 악에 대해서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고 외쳤습니다. 그의 이런 외침은 율법주의를 향한 폭탄선언과 같습니다.

 

바울이 정신적으로 과민해서, 그리고 비관적이어서 저렇게 극단적인 말을 하는 거지 실제로 삶은 그런대로 살만하다고, 조금만 노력하면 존경도 받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생각입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교회생활이나 잘 하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아도 됩니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대개 이런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구나.’하는 바울의 탄식이 없으면 복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굳이 기독교 신앙생활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충 어울려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종교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 되려고 예수를 믿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의 영적 실존에 대한 절망을 경험하지 못하면 신앙은 불가능합니다. 복음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티브이 시청을 많이 합니다. 현대를 살다보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좋은 프로그램도 있으니 가끔 보는 것도 좋습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삼각관계라는 구도가 무한 반복되는 통속 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는 ‘개그콘서트’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개그우먼의 ‘앙 돼요, 돼요’라는 유행어가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명작을 읽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정치 현안에 너무 깊이 빠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그렇게 되면 인문서적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찬가지로 신학 책을 읽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 영혼을 기울일 수 있는 절대적인 대상은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앞의 것들이 시시해져야 죽음과 생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실제로 마음이 갑니다.

 
바울은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율법 너머의 길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 만족해하는 자기의(義) 너머에 있는 길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은총의 길이며, 복음의 길입니다. 이제 바울에게 주어진 일은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바울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문장에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동시에 언급됩니다. 이것은 똑같이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만 우리는 육체가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10절에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셔야 우리의 영이 산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새로운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영만이 생명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런 말을 이해하려면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을 얻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실질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숨을 쉬고 무엇을 먹고 배설하고, 생각하고 말을 합니다. 심장이 뛰고, 뇌가 활동합니다. 그러나 곧 죽는다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우리들 중에 백년 후까지 살아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시간에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시간에 예속되어 있는 생물학적인 현상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만이 생명을 주기도 하고 거두어들이기도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전권에 놓여 있습니다. 성서는(렘 18장, 롬 9장) 그런 관계를 토기장이와 토기로 비유합니다. 토기는 토기장이를 향해서 불평할 수 없습니다. 전권이 토기장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맡깁니다. 이것은 패배주의나 숙명주의가 아닙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젖먹이 아이에게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생명의 실체를 알게 될 것이고, 결국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생명을 사람이 다룰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건 큰 착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현상의 원리만 조금씩 해명할 수 있을 뿐인 과학 지식으로 생명의 궁극적인 실체를 인식한다는 건 토기가 토기장이의 뜻에 시시비비하는 것처럼 언어도단입니다. ‘존재와 무’의 궁극적인 이유에 대해서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완전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생명을 얻는다는 바울의 말은 이런 것들을 바탕에 두고 나온 겁니다.

 

하나님의 영,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바울은 10b절에서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것’이라고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율법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율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근본적으로 의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의를 이루어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했다는 말은 생명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준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능력에 의해서 성취된 생명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의 부활입니다. 부활은 율법의 완성, 즉 의의 완성, 생명의 성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1절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기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 표현이 위 문장에서 반복되었습니다. 바울이 그걸 강조하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생명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예수님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막연한 전능자, 창조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만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얻게 될 부활생명은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모든 것은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 죽음에 이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서 살리십니다. 즉 부활입니다.

 

이 문장에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이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이신 하나님이 당신의 영으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린다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도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는다고 했는데, 11절에서는 그 몸도 살림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상충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0절이 말하는 것은 아무도 죽음 자체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고, 11절이 말하는 것은 그 이후 부활 시에 몸도 다시 산다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이 말하는 몸의 부활이 바로 이것입니다.

 

몸의 부활은 다시 썩을 수밖에 없는 살덩어리로서의 육체(사르크스)로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신 몸(소마)은 그 사람만의 정체성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형성된 인격이 죽은 뒤에도 비밀한 방식으로 유지된다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믿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게 죽음 이후의 운명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성서가 말하는 생명이 심층적이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셨을 겁니다. 그런 생명의 심층을 성서는 영적인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런 일을 행하신, 앞으로 행하실, 그리고 지금도 비밀한 방식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설교의 마지막 질문은 하나님의 영이, 즉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실까요? 각각 생각이 다를 겁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게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만 좀더 실질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요즘 수요일마다 바르트의 <복음주의신학 입문>을 강독하기 시작하면서, 바르트가 가장 좋아했던 음악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그 곡들이 저의 영혼 안으로 들어왔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최선의 길은 곡을 반복해서 듣는 것은 물론이고, 여러 자료를 통해서 그 곡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따르고 싶은 어떤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면 우리가 그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잘 이해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그와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믿고, 거기에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바울의 증언을 진지하게 들으십시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온다고 했습니다. 밤새 살 길을 찾느라 머리를 썼는데 결국 죽을 머리를 썼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인생살이의 모든 수고와 노력이 죽음의 길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너무 많은 것에 정신이 흐려져서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만이 우리를, 우리의 몸까지 살린다는 바울의 이 증언을 우리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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