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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과 예수 부활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624 추천 수 0 2014.04.22 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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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751531 

jys.jpg 빈 무덤과 예수 부활

요20:1-18, 부활 주일, 2014년 4월30일


  오늘 부활주일 설교 준비가 저에게 힘들었고, 지금 설교하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이 너무 절망스럽기 때문입니다. 설교자의 짐을 포기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활 주일을 맞을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매년 반복되는 절기라서 이렇다 할 감동 없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부활주일을 맞는 분들도 계시고, 또는 부활 신앙이 감동을 맛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세상살이와 교회생활 자체에 바빠서 부활에 대해 생각할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는지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입장은 신자들 개인에 따라서 다 다를 겁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은 부활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부활의 리얼리티에 가까이 가려는 생각 없이 무조건 믿거나, 또는 무조건 외면합니다. 이건 기독교인들에게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 또는 부활 경험에 가까이 가려면 우선 예수 부활에 대한 첫 번 증인들의 이야기를 선입견 없이 들어야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오늘 부활주일의 제3독서인 요 20:1-18절에 나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요 20:1절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예수님은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 오전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고, 안식일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원래 로마법에 따르면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의 시체는 짐승들이 뜯어먹도록 십자가에 매달아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로마 정부로서도 나 몰라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아리마대 요셉이 손을 썼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곧 시작된 탓에 매장은 졸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시신을 깨끗이 씻기지도 못하고 기름을 바르지도 못했습니다. 이를 눈여겨보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지난 첫날,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전에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무덤으로 갔습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몇 명의 여자들이 동행한 것으로 나오지만 요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 한 여자만 언급합니다. 요한복음 공동체는 막달라 마리아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매장된 요셉의 무덤은 가족 묘지로서 동굴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가까이 와보니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다른 데 옮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자신들의 태만으로 인해 분실됐을지 모른다는 자책감이 컸겠지요. 무덤에 도착해서 보니 마리아가 말한 그대로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었고, 시체를 쌌던 수의만 남아 있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또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해보십시오. 빈 무덤을 보고 즉시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습니다. 공생애 중에 예수님이 자신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예고하셨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나, 그걸 들었을 때 제자들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9절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그렇습니다. 빈 무덤과 부활은 직결되는 게 아닙니다. 빈 무덤으로만 예수 부활의 확실성을 주장하면 시체 도난설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숨겨 놓고 부활했다고 거짓말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가 무덤에 왔을 때 돌문이 열려 있었다는 사실도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면 돌문과 상관없이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요 20:19절에 따르면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문을 닫아걸고 모여 앉았던 제자들 앞에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빈 무덤과 예수님의 부활이 직접 상관되는 게 아니라면 복음서 기자들은 왜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걸까요? 실제로 빈 무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 전승에서 중요합니다. 다만 전후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로부터 부활 신앙이 일어난 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부터 빈 무덤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이런 설명이 약간 까다롭게, 또는 불필요하게 들릴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무조건 믿으면 되지, 전후관계 등을 따질 필요가 있느냐 하고 말입니다. 이런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제자들의 부활 경험과 부활 신앙을 오해하지 말라는 데에 있습니다. 부활의 첫 증인들이 무엇을 경험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만 우리도 그런 부활 신앙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실질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의 죽음은 아주 명백한 사건이었습니다. 숨이 끊기고 심장이 멈추고 뇌 활동이 정지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람과 똑같이 죽을 수 있냐,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었다면 예수님은 신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가 아니라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교부들에 의해서 이단으로 판정받았습니다. 정통 기독교는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와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말할 때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매장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이야기합니다. 사도신경도 그렇고, 복음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사에 빠진 게 아니라 실제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홀로 매장된 예수님의 시체는 그 후로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이 죽으면 피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세포가 죽기 시작합니다. 죽음과 더불어 부패가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복음서 기자들은 말이 없지만 예수님의 시체도 당연히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겁니다. 기독교의 정통 신앙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합니다. 부패 중이었던 예수님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일까요? 심장이 다시 뛰고, 숨을 다시 쉬고, 뇌파 활동이 일어난 순간은 언제일까요? 시체의 몇 퍼센트가 부패한 다음부터인가요? 제가 이렇게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처럼 따지듯이 질문하는 이유는 앞에서 짚었듯이 예수님의 부활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열린 문과 빈 무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는 것일 수는 있으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증명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 부활의 확실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는 의학이나 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사람이기에 앞의 질문보다는 다음의 질문을 하는 게 옳습니다. 예수 부활의 첫 증인들은 도대체 무엇을 경험한 것일까요?


 오늘 설교 본문의 후반부는 다시 마리아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전반부에서 마리아는 빈 무덤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전하고 일단 뒤로 빠졌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뒤에 마리아만 혼자 무덤 앞에 남았습니다. 그는 울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상하지 못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흰 옷 입은 두 천사를 보았습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고 하소연합니다. 당시 마리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겁니다. 시체가 없어진 일로 충격을 받았고,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별 도움도 받지 못한 가운데 천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와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눈 천사들은 사라지고, 대신 부활의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천사들은 무덤 안에 있었으나 예수님은 무덤 밖 마리아 뒤편에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그가 예수님이 아니라 동산을 지키는 사람일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들과 똑같은 질문을 마리아에게 합니다. 마리아는 다시 예수님의 시체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옮겼으면 그 장소를 알려 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자기 이름을 듣는 순간에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선생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랍오니’ 하고 부르면서 반가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부활의 주님이 마리아에게 하신 이 말씀은 특이합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곧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올라가지 않았으나 곧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천을 가리킵니다. 승천 이야기는 막 16:19-20에, 그리고 눅 24:50-53과 행 1:6-11에도 나옵니다. 사도신경도 승천을 말합니다. 기독교 전통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함께 언급하는 이유는 부활과 승천이 같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야기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예수님이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습니다. 우주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초보적인 이해만 있어도 예수님이 우주 공간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 승천에 대한 성서 이야기가 우주 물리학에 대한 오해에서 벌어진 오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약성서의 역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생명이 은폐되어 있는 곳을 하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부활의 예수님이 은폐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 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하나님께 올라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제2 독서인 골 3:1-4절은 바로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위의 것은 하늘입니다. 거기에 참된 생명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3절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숨어 있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드러나 있는 방식으로 이해하는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드러나 있는 것은 때가 되면 다 사라집니다. 우리도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으로 살다가 곧 죽습니다. 이게 삶의 모든 거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그냥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은폐되어 있는, 그래서 여전히 드러나야 할 하늘의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은폐된 생명이 현실(reality)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 생명이 곧 영생이며 부활입니다. 바로 이 사실에서만 우리는 사탄처럼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수요일) 오전에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고 비통한 사고를 접했습니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항해하던 여객선이 진도 해역에서 침몰해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 이백 몇 십 명과 일반 승객 수십 명이 사망했거나 지금까지 실종 상태입니다. 국가적 대재난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은 늘 일어납니다. 그건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는 이번 참사의 결과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압축적으로 나타난 사고이기에 분노와 절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곳곳에 잠복해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가 침몰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그 순간에 승객들을 객실에 남아 있으라 한 세월호의 선장이나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교회에만 붙어있게 만들려는 교회 지도자들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참담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와 죽음의 악한 영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시시때때로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승리자는 창조와 부활의 영이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014년 부활절을 맞는 우리는 아직 십자가의 참혹한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러나 곧 부활의 영광스런 시간이 옵니다. 아니 그 십자가와 무덤 안에 이미 부활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을 보고 힘을 내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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