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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고난주간이 되면 각 교회에서 특별기도회를 하거나 어쨌든 그 한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한끼 금식이라도 하며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간은 갈릴리마을에 벚꽃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벚꽃 핀 나무 아래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오붓하게 고기를 구워먹자고 했더니 어느 분이 '고난주간'인데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 병, 두려움 또는 슬픔을 자신이 짊어지기 위한 기도는 '대리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자칫하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신하려고 노력하기 쉽습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작게나마 그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금식하고 절제하는 행위가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나를 위한 일일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세주, 구속자는 오직 예수님뿐이고 그분의 일인데,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일은 그분의 일이고 그분의 기쁨이었는데, 아니 오늘 우리가 그 예수님의 고통스러움을 재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고통에 동참해야 되는 사람이 아니고 그분이 당하신 고통으로 인하여 얻은 새생명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고통을 재연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완성하신 일을 쓸데없이 반복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완성된 고난주간을 우리는 또다시 재연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얻은 구원의 감격을 더욱 기뻐하고 환영하며 신나게 고난주간을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누군가의 고통, 병, 두려움 또는 슬픔을 자신이 짊어지기 위한 기도는 '대리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자칫하면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대신하려고 노력하기 쉽습니다. 즉,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작게나마 그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금식하고 절제하는 행위가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은 지극히 나를 위한 일일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세주, 구속자는 오직 예수님뿐이고 그분의 일인데,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일은 그분의 일이고 그분의 기쁨이었는데, 아니 오늘 우리가 그 예수님의 고통스러움을 재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고통에 동참해야 되는 사람이 아니고 그분이 당하신 고통으로 인하여 얻은 새생명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분의 고통을 재연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완성하신 일을 쓸데없이 반복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완성된 고난주간을 우리는 또다시 재연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는 그로 인하여 얻은 구원의 감격을 더욱 기뻐하고 환영하며 신나게 고난주간을 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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