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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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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3.21 편지 http://www.john316.or.kr |
요한계시록(8) 아름다운 퇴장이 중요합니다
(계1:12-13)
< 아름다운 퇴장이 중요합니다 >
사람들은 퇴장을 두려워합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요새 아내들이 제일 하기 힘든 것은 ‘퇴직한 남편 존경하기’라고 합니다. 퇴직한 남편도 존경이 안 되는데 누가 퇴장하고 싶겠습니까? 그래도 아름답게 퇴장하면 그가 머물렀던 자리도 아름답게 됩니다. 반면에 때가 되었는데도 퇴장하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면 결국은 강제퇴장을 당합니다. 인생은 처음도 중요하지만 나중은 더 중요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입장 때보다 퇴장 때 그 진가가 나타납니다.
왜 한국교회에 아름다운 퇴장의 전통이 적습니까? 교회 자리를 낮아지는 섬김의 자리가 아닌 과시하는 권력의 자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성육신의 삶을 실천하는 최대의 현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기를 잘 버리고 깎아내는 선교중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퇴장은 교회를 살리고 새롭게 하는 제일 요소입니다.
일전에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이 필리핀에서 철수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수십 년 간의 필리핀 선교로 필리핀의 제일 교단이 되자 필리핀에 있는 선교사들을 철수시키고 다른 미전도 지역으로 재배치하게 되었는데 그때 수천 만 불에 달하는 재산권을 필리핀 교회에 넘겨주면서 상징적인 의미로 딱 1불을 받고 넘겨주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퇴장입니까?
자기를 깎아내야 진짜 선교는 가능합니다. 저희 선교연맹은 남에게 퍼주고 선교하느라고 역사에 비해서 미국 내에 큰 교회가 적습니다. 미국 내 2200교회 중에서 제일 큰 교회가 성인 2천 명 정도입니다. 분립과 선교에 힘쓰면 외형은 커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결국 분립과 선교는 내적인 영향력을 키우는 가장 멋지고 복된 일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면 한국교회는 다시 새롭게 일어설 것입니다.
<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자기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의 실체를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 그는 ‘일곱 금 촛대’와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었는데 그 인자 같은 이는 바로 ‘주님’이고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상징합니다(계 1:20).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본 일곱 금 촛대는 성막 안의 금 촛대처럼 ‘하나의 중심대에서 일곱 개의 작은 촛대로 나눠진 촛대’일 것입니다. 일곱 금 촛대의 기초를 이루는 대가 하나이듯이 모든 교회는 주님의 한 뿌리에서 시작된 주님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친 개 교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같은 교회끼리 너무 경쟁이 심해서 서로 상처를 입히는 모습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란 이름을 빌린 인간의 교회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아닌 인간의 교회가 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란 작품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세빌레에 오셔서 전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밤에 세빌레의 유명한 러시아 정교회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면회하고 꾸짖었습니다. “예수님! 왜 또 오셨습니까? 당신은 이미 당신의 일을 교회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잘 건축하고 교회법과 프로그램을 세워 잘하고 있는데 왜 또 오셨습니까?”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있습니다. 온갖 전도계획, 성장 방법론, 각종 세미나와 프로그램은 있지만 정작 주님의 정신은 그 중심에 없습니다. 요새 왜 교회가 많은 비판을 받습니까? 교회가 육신적이고 외형적이고 상업적인 모습에 물든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 비판의 핵심내용은 ‘교회 이기주의’입니다. 그처럼 개 교회 중심주의를 통해 다른 연약한 주님의 교회에 상처를 주는 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 요한의 환상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다는 말은 주님이 교회를 붙들고 보호하는 분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중심적인 삶처럼 복된 삶은 없습니다. 축복을 원하면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특별히 어려워진 한국교회를 위해서 한국교회가 욕심과 외형주의를 버리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요새 한국 교회의 앞날에 대해서 비관하는 분들도 많지만 교인 숫자가 좀 줄면 어떻습니까? 외형주의를 벗어던진 진짜 교인이 많아지면 됩니다.
영웅의 자발적인 퇴장은 신선한 감동을 남기지만 영웅의 강제적인 퇴장은 마음을 씁쓸하게 만듭니다. 요새 한국 교계에서 나타나는 영웅의 비참한 퇴장은 외형주의와 힘 중심적인 삶에 대한 경고이자 교회 분립과 선교를 향한 도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사랑하고 선교하며 살아야 합니다. 과시적인 선교가 아닌 소리 없이 녹아지는 성육신의 선교는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듭니다. 성도는 세상에서도 멋지게 성공하고 그 성공을 가지고 소리 없이 녹아져 이웃을 섬김으로 성공을 진짜 성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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