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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에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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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4장
一. 모르드개의 통곡.
1절-3절: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3장 마지막 장면을 보면 하만의 악한 계교를 보고 수산성은 어지러운데 하만은 왕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으면서 매우 흡족하고 즐거웠을 것이다.
하만은 자기의 계획대로 모르드개와 유다인의 전멸이라는 일이 대 성공적으로 되는 것을 눈앞에 확신 있게 그리면서 술잔을 들고 있지만 왕은 그 하만의 속셈을 모르고 같이 술잔을 나누고 있다.
다른 민족의 백성들은 다 조용한데 유독 유다백성들만 어른으로부터 어린아이까지 전멸시키라는 악한 하만의 명령에 모두 떨고 원통하고 분하여 통곡하고 있었다.
불신자들은 이 한 사건을 어떻게 볼까? 이 사건을 신앙 없이 단순하게 외부적으로만 보면 모르드개 때문에 모두 죽게 생겼다고 보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된 내막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모르드개가 절을 하지 않은 것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한 것이고 그 이전에 옛날서부터 모르드개의 조상들과 하만의 조상들은 신앙과 불신앙이라는 두 노선의 명목 하에 철저히 원수로 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하만이 국무총리로서 그런 역사를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하만이 가진 소원 목적성과 모르드개의 소원 목적성, 그리고 신앙의 대상이 근본적으로 질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혹 믿음 없는 유다인들은 ‘모르드개 너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고 원망할 자들도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 모르드개는 하나님 앞이나 자기 동족 앞이나 자기 개인 스스로에게나 아무 잘못도 없다.
① 하나님의 계명을 놓고 볼 때.
높임을 받고 공경하고 존경할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전 인류에게 해당이 된다.
이 위에 더욱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유다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특수민족이니 오직 하나님만이 몸과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서 섬길 분이시고 예배의 대상이고 높임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도 모르는 이방인인 하만이, 우상을 섬기는 하만이 자기가 높임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아무리 왕의 명령이라지만) 더군다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모르드개의 신앙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모르드개 자기는 포로로 되어 있고, 또 이 하만을 왕이 키우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지기를 하고 있는 것만 해도 못 죽는 것이 한스럽고 분통이 터질 일인데 이 자가 자기에게 엎드려 절을 안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택한 특수한 민족을 일제히 말살시킨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모르드개 속에는 의분이 일어난다. 모르드개에게 잘못은 없다.
② 유다민족적인 신앙관점에서 볼 때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계명에 맞는 신앙을 가졌고, 역시 유다민족 전체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민족이다.
고로 유다 전 민족이 모르드개로 인해 죽게 생겼더라도 모르드개를 원망할 일이 아니고 도리어 그 신앙을 칭찬할 일이요, 전 유다인이 모두 하나 같이 모르드개와 힘을 합쳐 하만을 대적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도 모르드개가 잘한 짓이고, 유다 전 민족이 볼 때도 모르드개가 잘한 짓이다.
그런데 모르드개와 그 동족들이 왜 통곡을 하느냐?
① 자신 때문에 동족들이 죽게 생겨서?
② 하만이 미워서?
③ 죽는 것이 억울해서?
④ 하나님의 택한 특별한 백성이 악한 자에게 멸절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가 막히고 억울해서?
여기서 자기가 유다백성이라면 다 통곡을 할까? 여호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다 통곡을 할까? 안 하는 자도 있을까? 있다. 에스더는 아직 않고 있다.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아무리 유다백성이라도 그 사실을 모르는 자는 통곡을 못하고, 왕궁에서 누림성으로 사는 자는 통곡을 못한다. 하지만 전멸이라는 죽음이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유다인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만이라고 하는 자는 세상의 명예 영광 권세 권력 부요 존귀성 등등을 다 가지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선민에게 사상과 정신적으로 집중적으로 공격해 올 때 하나님의 택한 성도가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이 이 물질적 사상에 죽는 것을 보고 통곡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오히려 하만의 것을 안 준다고 통곡을 하고, 하만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소원하여 통곡을 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二.에스더의 결심.
4절: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모르드개의 통곡성의 이유를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전달하여 가르쳐준 것이다.
모르드개는 옷 갈아입는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속에 들어 있는 백성을 살려내고 하만을 죽여야 한다. 이것을 풀어야 한다. 모르드개의 통곡성과 우리들의 통곡성을 대조할 것.
그런데 에스더의 사정인즉 왕이 한 달 동안 부르지 않아서 왕에게 못 들어갔다. 마음대로 함부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유야 어떻던.
① 너도 유다사람이다. 너 홀로 죽음을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② 네가 아니라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것이다.
③ 그러나 너와 네 집은 멸망을 당하리라.
④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에스더의 삶의 환경은 왕후요, 그래서 의식주에 걱정이 없다. 종과 하녀와 시녀를 부리며 호의호식의 삶이다. 에스더의 마음은 안 그렇다 하더라도 그 환경이 그렇다. 왕의 사랑을 받는다. 세상사람 모두 다 부러워하는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자리 그 환경을 왜 주었느냐?
① 누리라고 주었다?
② 자타의 구원을 이루라고 주었다?
어느 대답이 성경적이고 신앙적이고 하나님 앞에 합당한 대답이겠느냐?
만약 여기서 에스더의 대답이 ‘나는 왕후요 내가 잘났기 때문에 왕후가 되었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죽지 않는다’ 라고 불신적인 대답을 하며 자기를 신앙적으로 키운 모르드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모르드개가 말한 ‘너와 네 아비 집이 멸망을 당하리라’고 한 이 말이 겁주려고 그냥 한 말인가, 아니면 실지로 그렇게 임하는 말인가? 성경에는 농담이 없다.
그래서 에스더는 여기서 결심을 해야 되는가?
① 왕후의 자리를 지키고 그 행복을 보존하겠느냐?
② 아니면 모르드개로부터 그 소문을 들었을 때 자원적 능동적 애정적으로 이 한 육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내 동족을 살리느냐?
나의 동족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 때문에 죽게 생겼다.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 수 있느냐?
내가 에스더와 같은 환경이 아니라도 나의 이 삶의 환경을 누가 주었느냐? 나의 이 젊음의 부요성, 나의 이생의 남은 시간, 나의 이 물질의 부요, 나의 이 시간의 여유 등등 모두 누가 주었느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이치의 말씀, 복음의 본질이 흐려지고 혼탁하고 거짓이 많아질 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만의 사상과 정신에 감염되고 죽어나갈 때 너 홀로 누림성에서 홀로 살아남을 줄 아느냐?
어떻게 살 것이냐?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투자하며 살겠느냐? 에스더는 그 행복 그 영광 그 사랑 그 존귀 다 버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로 나온 것이다.
모르드개의 통곡성을 듣는 자는 에스더의 결단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안 나오는 것은 와스디요, 모르드개의 통곡성을 듣고도 무시하는 것은 하만이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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