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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7: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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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공평하고 편애하지 말라
본문: 창세기37: 5- 28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똑같이 햇볕과 비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숨 쉬도록 공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나 부자에게나 똑같이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자신은 아무 것도 잘 하는 게 없다고 불평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왜 우리는 이렇게 돈이 없는 거야?"
또 어떤 이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하나님이 있다면 누구는 나면서부터 부자이고, 누구는 나면서부터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았어야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경, 얼굴, 재능, 욕망, 능력, 생각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이건 너무 불공평해"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정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시간'입니다. 한 사람에게 하루에 무조건 24시간이 주어집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녀든 추녀든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누구에게나 '죽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 반드시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날 순간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떠날 때는 빈손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볼 것 없이 이 두 가지만 봐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도 ‘인생은 공평하다’는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보다는 불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말로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빈부의 격차가 왜 더 벌어지고 있는가. 분명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처음에는 불공평한 조건들로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결국은 평등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젊을 때는 나와 다른 것이 많은 것 같으나 나이가 들수록 비슷비슷해집니다.
결혼한 후 얼마동안은 수준이 어떻고 집안이 어떻다니 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는데 살면 살수록 그 기준들이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역할이 다를 뿐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40대는 남녀 간의 성((性) 차이가 별로 없게 되고
50대는 공부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지식이 평등해지고,
60대는 외모가 예쁜 사람이나 안 생긴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게 되고
70대는 건강이 비슷해지고
80대는 재물(돈)이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먹고 입는 것이 비슷해지고
90대는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생사가 평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만인은 평등합니다. 누구에게나 예측 없이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살아생전의 행위대로 아주 공평한 심판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송명희 시를 소개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송명희(1963년생) 시인은 태어날 때 의사의 실수로 뇌를 다쳐 중증 장애를 입게 됐지만 그 장애를 통해 가장 순수하게 예수를 증거해 왔습니다. 휠체어에 몸을 싣고 지금까지 1500회 이상의 국내외 집회에 나갔으며, 25권의 책을 냈고 100곡이 넘는 노래에 가사를 담았습니다. 온몸이 심하게 뒤틀리고 팔다리가 마비됐어도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한 글자를 쓰는 데 30분이 걸리든 1시간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어려움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움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그러진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를 통해 새 희망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통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선교사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과 함께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거듭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는데 어떤 사람은 부자집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고생만 하다가 삶을 마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 할짓 못할짓 다하며 사는데,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남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장애인인가? 어찌 이것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라고 말 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생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행복" 입니다. 행복하고 싶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지위도 얻고 지식을 쌓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 보면 "행복"은 돈이나 지위나 물질이나 지식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난하고 장애인으로 태어났어도 행복할 수 있고, 천하를 다 얻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을 돈이나 물질로만 얻을 수 있다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물질과는 상관없이 누구든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하셨으니 그것이 공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러분은 행복 하십니까?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위기 19:36)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기뻐하시고,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을 제사드리는 것보다 더욱 기쁘게 여기십니다.(잠11:1, 잠21:3)
그런데 공평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뇌물과 외모입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신16:19)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출23:6)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잠17:23)
편애(偏愛)란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쪽만을 유달리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초등학생이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우리 엄마아빠 편애 너무 심해요. 제가 첫째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모든 게 동생 중심이예요. 원래 제가 중심이었는데 성적 때문에 기대가 깨졌나봐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니까 화가나요. 엄마아빠한테 귀여움 받고 싶어요. 원래 동생이 내 신세였는데 아.... 이젠 내가 이런 신세가 되다니... 맨날 짜증나서 벽을 부숴버리고 싶어요’
우리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자식은 아무리 많아도 똑같이 사랑스럽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삭은 에서를 편애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야곱은 열두 아들 중 특별히 요셉을 편애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왜 에서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특별히 동생 야곱을 더 많이 사랑하였을까요.
사람들은 대개 야곱을 매우 간교하고 약삭빠르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팥죽 한 그릇에 형으로부터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늙은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아야 할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야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야곱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야곱은 형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죽겠다는 형에게 팥죽을 주었습니다. 그 값으로 장자의 명분을 얻었으니 잘못은 장자권을 소홀히 생각한 형에게 있습니다. 형제끼리라 좀 그렇긴 하지만 원하던 것을 절호의 기회에 얻은 야곱은 정말 거래의 귀재이고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니 현명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형 대신 아버지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둘째아들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한 어머니의 치밀한 계획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그 날 큰 아들에게 축복을 할 것이라는 것도 어머니가 야곱에게 알려주었으며 별미를 만든 것,염소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둘러준 것, 또 에서의 옷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힌 것 모두가 어머니의 계획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말씀에 순종을 한 착한 아들이었을 뿐입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어머니는 저주는 자기에게 돌리라고까지 하면서 주도면밀하게 작은아들의 축복을 준비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리브가의 마음을 아주 잘 이해할 것 같습니다. 팥죽을 끓였다는 것을 보면 야곱은 어머니의 곁에서 집안일을 잘 돕는 착한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후일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하여 7년을 하루같이 그것도 두 번씩이나 기다렸고, 품삯을 주지 않는 외삼촌에게도 화를 내기보다는 지혜로 더 많은 품삯을 받아내는 아들의 인내와 명철을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경솔한 에서보다는 성실하고 지혜로운 야곱에게서 인류의 복이 꽃피게 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지만 아이들의 행동과 태도에 따라서 부모의 기대와 축복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야곱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총애하고 사랑했던 요셉은 그가 사랑했던 여자 라헬이 첫 번째 낳은 아들입니다. 그 엄마를 그렇게 총애했듯이 그가 낳아준 아들도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각별히 사랑했습니다. 창세기 37:3-4를 보면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했습니다.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상당히 불만거리가 되고 그 불만이 크면 클수록 요셉은 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요셉은 본문 창세기 37:5-11에서 자신이 꾼 꿈들을 그의 형들에게 말함으로 더욱 큰 미움을 샀습니다. 그런 요셉이 열일곱 살 때까지는 아버지 슬하에서 각별한 총애 속에 행복한 나날을 지냈습니다. 어느 날 그 형들이 세겜이라는 곳으로 가서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 형들에게 먹을 음식도 전달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요셉을 심부름 보냅니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창37:14)
요셉은 형들에게 줄 음식을 가지고 세겜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지 못하고 도단으로 떠난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형들을 만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다가옴을 모고 그를 해치고자 모의를 합니다. 오늘 그를 죽여 그의 채색옷에 그의 피를 묻혀 짐승에게 해를 당했다고 아버지한테 보고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의 맏형 루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합니다. 이것은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다고 창세기 37:2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없는 사이에 그곳을 지나던 장사꾼을 보고 유다가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은 이십 개를 받고 요셉을 넘겨줍니다. 요셉은 애굽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신임을 얻고 그 집의 모든 경영을 맡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요셉을 통하여 그 꿈을 이루어 가시기 위해 요셉에게 지혜와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편애하면서 가정을 갈등의 도가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은 부모의 이기심에서 생겨난 비뚤어진 자식 사랑법이지요.
어떤 부모는 재산을 가지고 자녀를 조정합니다. 소위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하는 정도에 따라 재산을 차별해서 나누어 주는데 이 같은 잘못된 자녀 조정법은 부모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거짓 사랑, 그리고 형제 사이의 반목과 갈등만을 낳게 되겠지요.
또한 사랑 받는다는 자식은 우월감을 갖게 되고 학대 받는 자녀는 열등감의 노예로 전락된 채 비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처럼 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고아 아닌 고아의 신세가 되어버린 자녀는 자연히 그의 형제를 원수로 여기면서 질시와 반목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합니다. 이것은 한 가정을 망치게 하는 사단의 전략이지요.
우리는 에서와 야곱, 쌍둥이 형제 중 유독 야곱만을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의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을 자기 가정에 맡겨진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필요하겠지요. 그때 비로써 자녀들의 귀한 신분을 존중히 여기면서 그들을 차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으로 양육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려면 절대로 뇌물을 받지 말고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한 자식만을 편애하지 마십시오. 자식 편애는 온 가족을 망치는 사단의 무서운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것같이 모든 사람과 자녀에게 공평하게 대하고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 기도: 공평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것처럼 우리도 공평하여 편애하지 않게 하소서. 이웃이 잘 됨을 시기하지 않고 축하하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비교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복을 따라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편애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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