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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왕하4:1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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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본문: 열왕기하4: 17- 37
인디안 부락에서 선교하는 한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인디안 추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얼마 후 이 추장은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기 위해서 예물을 가져왔습니다.
"선교사님, 주님께서 저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 사슴 가죽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선교사는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대답해 주었습니다.
"미안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슴 가죽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
인디안 추장은 이 말을 듣고 실망하여 돌아가더니 얼마 후에 한 마리의 백마를 가지고 와서 또 자기의 소원을 이야기했습니다.
"선교사님, 이것은 이 부락에서 나와 아주 중요한 사람들만 타고 다니는 말인데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선교사는 이번에도 그 말을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추장은 뼈로 만든 머리장식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추장의 상징입니다. 나 추장의 권위와 명예까지도 다 주님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그것마저 거절당하자 추장은 심히 낙심하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바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다 바쳤습니다. 이제 제 생명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추장의 이 고백을 듣고 선교사는 "하나님은 바로 당신의 그 생명을 원하십니다!"라고 말하면서 성경을 펼쳐서 인디안 추장에게 이렇게 읽어 주었습니다.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롬14:8)
오늘도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연구하고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들어내지 못한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사람의 생명입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기이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는 있지만 생명의 창조는 인간의 한계 밖의 일이므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 영역입니다. 그분이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기에 인류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에 도전할지라도 소득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생명을 존재하게 하지도 원하는 만큼 연장시키지도 못합니다. 이 생명에 관한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나,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인간의 생사가 주의 손에 달렸음을 알게 해줍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려서 살아날 소망이 없었으나 그가 눈물로 주께 기도하매 15년간 수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이사야38: 5)
가스관을 잠그면 렌지에 불이 켜지지 않는 것처럼 주께서 생명의 공급을 중단하시면 아무리 유능하고 건장한 사람이라도 더 이상 활동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유념하고 우리의 생사를 임의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나의 하루가 있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공급 탱크의 관을 열고 닫을 권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도 이 일에 관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생명의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께 당신의 인생을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에 기록된 자기만 생각하는 어리석은 부자는 욕심에 이끌리는 삶을 살다가 예기치 못했던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내세를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과 함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 수중에 있는 것이라 하여 모두 내 임의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필요를 제외하고서는 내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의 몫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 어리석은 부자처럼 오늘도 자기만 위해서 사용하는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축재라든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는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탐욕은 인생을 병들게 하고 신앙을 파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나 지금이나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그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하고 그분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죄를 범합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소중히 여겨야 함은 물론이며,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에 임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수넴 여인의 아름다운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엘리사 선지자는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16절) 그녀는 과연 예언대로 아들을 낳게 됩니다.(17절) 그런데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얻게 된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됩니다. 수넴 여인은 즉시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갈멜 산으로 달려가 자신의 비통한 신정을 털어놓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자기 지팡이를 사환 게하시에게 주어 아이의 얼굴에 얹어 놓으라고 지시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엘리사 선지자 자신이 수넴 여인의 짐으로 가서, 죽은 아이 위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그를 소생시키는 이적을 행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주시는 생명이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까?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보내야할 것입니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롬12:1-2)
우리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는 망합니다.(호4: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둘째는 하나님은 정직과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잠15:8)
셋째는 의와 공평을 기뻐하십니다.(잠11:1, 잠21:3)
넷째는 선행과 구제를 기뻐하십니다.(시112:9, 잠14:31, 잠19:17)
다섯째는 하나님은 찬송을 기뻐하십니다.(시69:30- 31, 시150:6, 시33:1, 시146:2)
이밖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말씀에 순종(삼상15:22) 하는 것과 온전한 산제사(예배), 회개 등을 기뻐하십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거듭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심판주로서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감찰하시고 살펴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눅15:7)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을 무서워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두려워하라, 경외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람으로 죄에 빠뜨리고 시험하는 사탄의 역사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큰 힘을 지녔다고 하지만, 영혼과 육신을 살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본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잠9:10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면서 예배하는 사람만이 창조의 질서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약하여 쉽게 타락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없다보니 자기 밖에는 모릅니다. 자기의 의, 자신의 이익, 자신이 신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사탄이나 악하고 무자비한 사람들은 우리의 육신을 멸하거나 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함께 살리고 멸하실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다”는 말은 ‘포베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놀라다, 존경하다, 경외하다, 무서워하다는 말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외하는데, 예배한다는 말로도 쓰여 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인생을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서야하는 존재입니다. 히9:27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고후5:9-10에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보내야 할 이전 것들을 붙잡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앞을 향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씀합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벧전4:2- 3) 라고 하셨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말씀하고, 지나간 때를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때를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죄송할 뿐입니다. 이제는 지나간 때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남은 때만 바라보고 달려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잘라 말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세계 위인이라고 하는 영국의 정치가 글래드 스톤(1809-1898) 경이 있었습니다. 그는 총리를 네 번이나 연임하신 분입니다. “내가 정사에 바빠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몰라, 때로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별조차 못한 적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주일에 드리는 예배 시간을 잊어버려 주일예배에 빠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나라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힘은 주일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공급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3.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10:29, 눅12: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이 자기 몸을 전혀 돌아보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참새 두 마리가 1앗사리온에 팔리고 2앗사리온을 가져가면 한 마리 더 주어 다섯 마리를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머리칼이 20만개 정도 된다고 하고, 하루에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50여 개씩 빠지고 새롭게 나고 있는데, 그런 모든 것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헤아리고 계십니다. 사람이 염려한다고 하여 그 키를 한 자라도 키울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2006년에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었습니다. 사람의 몸은 약60조가 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포의 핵 속에는 44개의 상염색체와 2개의 성염색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염기쌍들이 약30억 개가 있어 유전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루하루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의도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생명을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생명이라고 하니 다 같은 생명이 아닙니다. 허송세월하는 생명은 무가치합니다. 죄에 매여 살아가는 죄의 노예는 무가치합니다. 사람으로 살아가야 사람입니다. 동물로 살아가면 동물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실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겉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를 거창한 존재로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작은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입니다. 죽으면 그만이 아닙니다. 죽으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야만 복된 생명이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사람입니다.
가끔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꼭 죽어야 했는데, 살아나왔다고 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사선을 넘어서 살아난 사람들은 딴눈 팔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이었는데, 우리 주님이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으니, 교회도 오지요, 죽었으면 어디를 다닐 것입니까? 인간의 값어치는 참새보다 귀합니다. 이 말은 참새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당신의 피로 값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지금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직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의사요 선교사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의 많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였고, 간호사인 나이팅게일 역시 같습니다. 불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소방수, 그리고 농부(목축)도 동식물을 키우고 보살피는 일 역시 가치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사랑 그리고 생명을 살리기에 힘쓰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혀 사는 사람, 신들린 사람, 신명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4.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10: 32- 33)했습니다.
국회의장이 간증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러시아에서 구 소련이 왜 망했는지에 대하여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 군사전문가, 경제인 정치인, 교육가, 사상가 등 여러 분야에서 권위 있는 100명이 모여서 연구를 했는데, 소련은 지하자원도 많고, 우수한 두뇌도 많고, 철저한 공산주의자들도 많았는데, 철저하게 망한 이유는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3년 동안 연구하고 발표하였는데 첫째 원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망했다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니, 인생에 대하여 회의에 빠지고, 의욕이 없어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고 사람들이 피동적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살의와 시기가 가득하게 되고, 다툼과 강퍅한 마음이 생겨서 남을 해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여 망했다고 결론을 내었습니다.
이 민족이 잘 사는 길은 오직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오지만, 우리가 전파하지 않으면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믿음이 생길 것입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전파할 때에 들을 수 있습니다. “함께 예수 믿자”는 한 마디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믿기로 작정된 영혼들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주님을 시인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알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나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막8:3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사랑의 은혜를 보담하는 신실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24:11)
생명은 이와 같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수넴 여인의 아들도 다시 살아났으나 결국은 죽었습니다. 나사로나 다비다(도르가)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나 역시 죽었습니다.(요11:5- 44, 행9: 36- 39)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생사가 결정됩니다. 이 세상의 생명은 잠간입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생명(목숨)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죽은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곧 생명의 떡이요 과실입니다.(요6:48)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14:6)
성도 여러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복음전파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생명을 주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가 갖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제가 사랑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볼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과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사는 우리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사모하여 영생의 복을 소유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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