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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살전5: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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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 16- 18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런던의 에그리컬쳐홀에서는 어느 날 15,000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자 유명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님께 설교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 목사님은 여러 가지로 시간이 바쁘다며 사양을 하자 이 사람들은 말하기를 "15,000명이나 모입니다. 이 많은 군중이 모이는데 설교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라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에 스펄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15,000명이 모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 순복하겠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달면 받아들이고 쓰면 뱉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간에, 설혹 손해가 나고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절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헌신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취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뜻을 내려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곧 내 자신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자기 뜻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내 뜻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착각합니다. 십자군 전쟁 때 모슬렘 교도를 죽이는 것이 교황의 명령... 그저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습니다. 거기서 'Jesus Chri st' 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슬렘 사람을 찔러 죽이면서 "for Chri st" 라 외치며 찔러 죽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내 뜻이 주의 뜻인 양 확신하고 이루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대학 입시... 저는 사범대학교에 가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종종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내 뜻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좌절시키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뜻을 버리고 포기하고 주의 뜻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철저하게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배워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분문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명이나 체념, 정당화가 아닙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강력한 분부요, 명령이요, 권고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마음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고상한 척하는 삶이 될 뿐입니다. 수련회를 다녀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자기 삶이 변하지 않으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문제입니까? 요즘 설교를 어떻게 듣는 줄 아십니까? 감상합니다. 설교가 잘 짜여진 한 폭의 그림인 양 감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그 뜻이 내 마음 속에 선명해지고 확정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수련회에서 울고불고 하는데 돌아올 때 내 마음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 기독교는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상한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에 나오기를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했을 때 주께서 밝히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아버지를 좇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이요, 참 종교인입니다. 여러분,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 삶이 진정한 제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셨을 때, 그분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온전히 아버지 뜻대로 사셨습니다. 항상 아버지 뜻에 전적으로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내 결심, 내 뜻이 아닌 날 향한 아버지의 뜻이 뭔가 알려고 노력하고, 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뜻은 향한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이 변하고 흥망성쇠가 교차하지만 우리 아버지의 뜻은 영원합니다. 그 뜻을 행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세 가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인 '항상 기뻐하라'를 생각해 봅시다.. 그 개념이 무엇인가 막상 생각하자면 내 삶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열매 없는 나무일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나무, 고상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여기서의 기쁨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기쁨은 어느 조건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기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것, 그것이 항상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 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이 내린 기쁨의 정의는? 기쁨의 정의는 여러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기쁨이 채워져야만 비로소 그 기쁨은 강화됩니다. 그때에야 그 어느 것도 당신을 실망시키거나 망 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느헤미야도 이것을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강한 믿음은 주를 기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기쁨의 정의는 - 예수가 첫째, 타인이 둘째, 그 다음이 당신 자신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기쁨의 정의이다. 개인적인 행복의 열쇠는 이타심입니다. joy라는 영어의 첫째는 제일 먼저 jesus, 둘째, other, 셋째는 yourself의 약자라고 이야기 하는 분도 있습니다. 동물은 웃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도서3:12-13)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지칭합니다. 원래 기도라는 것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기 생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내 힘의 능력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을, 사람을,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진정 의지해야 하는 한 분, 언제든지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언제든지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나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나와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 주님께 내 모든 것을 아뢰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기도속에 기쁨이 있고, 기도할 때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기도와 간구를 하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엡6:18)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질병과 잘못된 길에서 바로 잡아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부요한 자와의 만남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이 부요해지고 생활이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며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야말로 모든 것을 함께하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를 빼앗아갑니다. 새뮤얼 차드위크는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악마는 기도없는 성경공부,기도없는 봉사, 기도없는 종교의식에 안심한다. 악마는 우리의 수고를 비웃고 우리의 지혜를 조소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떤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슬픈 일, 아픈 일을 당해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서 보면 감사의 조건이 보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피 터지고 감옥에 갇혔을 때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보았을 때, 감사할 조건을 발견하여 감옥 안에서도 찬양했습니다. 주님이 감동하셔서 문 열어 주셨습니다.
범사’란 의미는 모든 환경, 모든 상황이란 말입니다.성공 할 때뿐 아니라 실패할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기쁠 때뿐 아니라 눈물날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뿐 아니라 고난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하고 형통하며 기쁠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는 믿음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배고파 합니다.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을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를 하십니다.
‘축사’라는 말을 사람들은 축복기도를 드린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축사’란 말은 빌 축(祝)자에 사례 혹은 감사할 사(謝)자입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은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불평과 원망을 하는 상황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까짓 것 가지고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겠습니까?라고 원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신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나사로가 죽어 몸이 썩고 있을 때, 모든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낙담하고 있을 때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감사해야 될지를 주님께서는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로빈슨이란 트레일러 운전사의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그는 교통사고 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40일간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때 그의 눈이 치료되고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입니다. 소망의 행동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마귀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골 3:15).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명이 미대륙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은 모래를 날리고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첫째 180 톤밖에 안되는 작은 배지만 평균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했음을 감사했고, 둘째 항해 중 2명이 죽었으나 한 아기가 태어났음을 감사하였으며, 셋째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감사하였고, 넷째 큰 파도에 밀려 여자 들이 바다에 빠진 사건이 두 번 있었으나 모두 구출됐음을 감사하였으며, 다섯째 신대륙 접근 뒤 일부 인디언의 방해로 상륙 못하다 한달 만에 플리머스에 안착하게 됨을 감사하였고, 여섯째 3개월 항해 중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하였습니다.
개척민의 초대 지사가 된 브래드포드는 새 땅에 정착한지 3년만에 이렇게 선포했습니다.“높으신 하나님께서 금년에 넘치는 수확을 주셨다.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채소를 가꾸고 사냥을 하며 생선과 조개를 넉넉히 얻도록 축복해 주셨다. 야만인의 습격에서 지켜 주시며 질병에서 건져 주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양심을 따라 자유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나는 모든 순례자에게 선포한다. 주후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어른과 아이들은 전원이 모여 이 모든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라” 이들 미 건국의 조상들은 풍요한 수확과 행복한 환경에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무덤을 팔 수밖에 없었던 첫 겨울, 하루에 옥수수 5개씩으로 연명할 수밖에 없던 추운 겨울을 지내고도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1863년 남북전쟁이 극렬한 때 링컨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국경일로 선포하며 말했습니다.“모든 미국인은 이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라". 그 후 역대 대통령은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발표하는 관례가 생겼습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감사절 메시지에서 “오늘날 미국의 문제는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했고 윌슨 대통령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덕에 대해 미국인은 감사를 드리자”고 외쳤습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 가을날 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정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미국인의 위대한 전통”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과거보다 여건이 좋은데도 불평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100년 전의 미국인들은 꼭 바라는 것으로 16개를 꼽았는데 지금은 92개나 된다는 것입니다. 바네트 깁슨의 저서 ‘행복한 하루’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행운의 손바닥에 얼마나 많이 쥐게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의 행복과 관계가 없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것이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우라.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그대는 비로소 행복을 찾을 것이다”
주님이 우리 삶의 주관자임을 바라볼 때, 우리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이 바로 서길 원합니다. 잎사귀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말고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열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수고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우리 등대교회 중고등부가 잎사귀만 무성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성경, 신앙,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능한,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우리의 영적 거품을 빼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견고하게,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이 세워져 있는 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결정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구별해서 어린 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공동체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며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시고 계시건만,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므로 해서 성령을 근심케 하고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드린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그 크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항상 언제든지 어떤 경우에든지 기뻐함으로써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귀한 역사가 있어지게 하옵소서. 너무나 이기적인 우리 삶을 고백합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등대교회 중고등부 예배(2001.9.2)
한 태 완 목사 설교 요약
* 묵상 및 토의
0 나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따라 내 몸을 바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가?
0 나는 어떤 일에도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0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주의 뜻을 따르는가?
0 나는 어려울 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하는가?
0 나는 내 몸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려 힘쓰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가?
0 나는 불순종의 결과가 주는 교훈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가?
0 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겨 재앙 당한 일은 없는가?
0 나는 주의 뜻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뜻에 순종하는가?
0 나는 주님의 뜻에 역행하고 있지는 않는가?
0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안의 부정한 것을 어떻게 몰아낼 수 있습니까?
0 나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경우에도 나는 담대히 행할 수 있습니까?
* 찬송: 377장 예수 따라가며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 하나님의 뜻으로 상황을 판단하라
너무 쉽다고 생각될 때, 이것쯤은 내 경험과 상식으로도 너끈히 해결할 수 있다고 방심할 때 우리는 덫에 걸리고 만다. 당신의 지식이 아무리 풍부해도, 당신의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당신의 처세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당신은 유한한 인간에 불과하다. 파일럿들 가운데서도 가장 숙달된 파일럿들이 뜻밖에 평이한 비행 중 사고로 죽는 비율이 높은 원인을 아는가? 너무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계기판을 보지 않으므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일럿들을 훈련시킬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계기판을 철저히 바라보고, 자신의 감을 믿지 말고 계기판을 믿으라고 가르친다. 당신은 영리하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그 영리함이 오히려 당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 당신의 인생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경솔하게 결정해 버린 일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라고 여겨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신속하게 처리해 버린 일들이 뜻하지 않게 당신의 덜미를 잡는 치명적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상황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지 말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을 판단하시게 하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이 자꾸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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