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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8: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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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수영 목사 |
참고 : |
하나님의 나라와 어린아이
눅18:15-17
오늘은 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종 어린이주일에 본문으로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말씀하셨고,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고 가르치셨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까?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마음이 열려져있음을 말합니다. 어른들처럼 어떤 편견이나 완악함 때문에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하지 않고 순진하게 잘 믿고 따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위선과 가식이 없고 잘난척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 독립적이지 않고 의존적임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라면 이런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진리를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로움이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 본문이 전하는 예수님의 언행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차적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어린아이에 관한 가르침이 없거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용납한다"는 것은 "고통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받아준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저희 집에도 매일 같이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특히 제 막내 아이는 학교공부 끝나면 혼자 집에 올 때가 거의 없습니다. 적게는 서너 명, 어떤 때는 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아예 가방들 멘 채로 학교에서 저희 집으로 곧바로 몰려옵니다. 연중 개근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왔다 돌아가고 나면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놀다가 목마르면 냉장고를 열고 뭐든지 꺼내 마시는 것은 좋습니다. 아이들 거실에 놓아준 두 대의 컴퓨터로 게임들을 하다가 서로 먼저 하고 더 하겠다고 하다가 싸우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 때문에 저희 집 컴퓨터는 성할 날이 없습니다. 제가 설교준비를 마치고 동시통역자들을 위해 원고를 교회에 이메일로 보내려고 하면 컴퓨터가 고장 나 있거나 인터넷이 되지 않아 디스켓을 급히 인편으로 보내거나 제가 직접 갖다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손자들이 있는 어른들 이야기 들어보면, 손자들이 온다 하면 처음에만 좋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이상 머물면 속으로는 이 웬수덩어리들 빨리 안 돌아가나 하는 생각뿐이고 손자들 돌아가고 나면 몸살 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귀찮은 존재이고 성가시고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정말 어른들의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른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잊고 지내던 어른들의 순수하지 못한 모습을 어린아이들 앞에서 문득문득 다시 깨닫곤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선교의 개척자 사비에르(Franci s Xavier)는 어느 날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매우 피곤해서 돌아와 집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좀 자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해서 쓰러지겠어. 누가 오더라도 절대로 깨우지 말게." 그런데 조금 후 그는 다시 문을 열고 핼쑥한 얼굴로 말하기를 "잠깐. 내가 말을 실수했네. 혹시 어린이가 찾아오거든 나를 깨워주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옥같은 서정시를 많이 남긴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의 집에는 항상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바글거렸다고 합니다. 어린이들만 집으로 초청해서 파티를 연 어느 날 하이네의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에게는 아이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저 아이들은 누군가? 그리고 저렇게 떠드는 어린이들 틈에서 어떻게 시를 쓰는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 그러자 하이네는 밝은 표정으로 말하기를 "우리 마을의 꼬마들일세. 나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가식 없는 얼굴을 봐야 시상이 떠오른다네. 그래서 어린이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네" 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주어야 하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것도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맑게 해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찌든 마음을 상쾌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굴절된 심사를 곧게 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들을 자신에게로 데려오는 것을 또한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여기서 "만져 주심"은 축복해주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주님께 데리고 오기를 좋아하고 아이들이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기뻐하는 것은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유아세례식을 거행하지만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허락하신 어린아이들을 어려서 하나님께 데리고 나와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 받기를 원하는 것은 얼마나 복 받을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부르시고 가까이하려고 하시는데 어른들이 그것을 금해서는 안 됩니다. 16절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신 사실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대학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고등학생 때는 자녀들을 주일날 교회도 가지 못하게 하는 교인은 형식적 교인일지는 몰라도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믿음 안에서 잘 기르라고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차차로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인 어린아이들이 그 순수성과 고유한 품성을 급속히 잃어버리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도록 말씀으로 잘 가르치는 것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런 아이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소홀하기 쉬운 것이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제일 끝으로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의 천국과도 같아야 합니다.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주눅 들어 지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무서운 교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되 아이들이 밝게 활짝 피어나도록 최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교회가 진행 중인 신교육관 건축에 온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도와 물질로 합력해야 합니다. 그 건물이 단순한 교육공간이 아니라 "믿음의 생활"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건물과 시설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고 헌신적인 교회학교교사들은 더욱 중요합니다. 교사로 봉사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교사가 가장 존경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을 철저히 훈련하고, 아이들을 규칙적이고 지속적이며 효과적으로 돌보는 것이 우리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책임입니다. 온 교우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회 만드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우리의 교육적 사명과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학교교육이 진정 우리 새문안교회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는 교육이 되게 하는 데에 다함께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눅18:15-17
오늘은 교회가 어린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종 어린이주일에 본문으로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말씀하셨고,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고 가르치셨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까?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마음이 열려져있음을 말합니다. 어른들처럼 어떤 편견이나 완악함 때문에 마음의 문을 꽉 닫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하지 않고 순진하게 잘 믿고 따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위선과 가식이 없고 잘난척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또 독립적이지 않고 의존적임을 뜻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린아이들의 특징이라면 이런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진리를 주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의심하지 않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를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로움이나 공로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 본문이 전하는 예수님의 언행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차적 관심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어린아이에 관한 가르침이 없거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용납한다"는 것은 "고통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을 받아준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저희 집에도 매일 같이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특히 제 막내 아이는 학교공부 끝나면 혼자 집에 올 때가 거의 없습니다. 적게는 서너 명, 어떤 때는 열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아예 가방들 멘 채로 학교에서 저희 집으로 곧바로 몰려옵니다. 연중 개근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왔다 돌아가고 나면 집안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놀다가 목마르면 냉장고를 열고 뭐든지 꺼내 마시는 것은 좋습니다. 아이들 거실에 놓아준 두 대의 컴퓨터로 게임들을 하다가 서로 먼저 하고 더 하겠다고 하다가 싸우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 때문에 저희 집 컴퓨터는 성할 날이 없습니다. 제가 설교준비를 마치고 동시통역자들을 위해 원고를 교회에 이메일로 보내려고 하면 컴퓨터가 고장 나 있거나 인터넷이 되지 않아 디스켓을 급히 인편으로 보내거나 제가 직접 갖다 주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손자들이 있는 어른들 이야기 들어보면, 손자들이 온다 하면 처음에만 좋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이상 머물면 속으로는 이 웬수덩어리들 빨리 안 돌아가나 하는 생각뿐이고 손자들 돌아가고 나면 몸살 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에게 귀찮은 존재이고 성가시고 피곤하게 만드는 존재일 수 있지만 그 고통을 감내하라는 것이 "어린 아이들이 오는 것을 용납하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정말 어른들의 거울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른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잊고 지내던 어른들의 순수하지 못한 모습을 어린아이들 앞에서 문득문득 다시 깨닫곤 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지만 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우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시아선교의 개척자 사비에르(Franci s Xavier)는 어느 날 너무 일을 많이 하고 매우 피곤해서 돌아와 집사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좀 자야겠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해서 쓰러지겠어. 누가 오더라도 절대로 깨우지 말게." 그런데 조금 후 그는 다시 문을 열고 핼쑥한 얼굴로 말하기를 "잠깐. 내가 말을 실수했네. 혹시 어린이가 찾아오거든 나를 깨워주게" 했다는 것입니다.
주옥같은 서정시를 많이 남긴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의 집에는 항상 수십 명의 어린이들이 바글거렸다고 합니다. 어린이들만 집으로 초청해서 파티를 연 어느 날 하이네의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에게는 아이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저 아이들은 누군가? 그리고 저렇게 떠드는 어린이들 틈에서 어떻게 시를 쓰는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군." 그러자 하이네는 밝은 표정으로 말하기를 "우리 마을의 꼬마들일세. 나는 어린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가식 없는 얼굴을 봐야 시상이 떠오른다네. 그래서 어린이들을 초청해 파티를 연다네" 했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주어야 하지만 그들로부터 얻는 것도 많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맑게 해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찌든 마음을 상쾌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굴절된 심사를 곧게 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들을 자신에게로 데려오는 것을 또한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다"고 했는데 여기서 "만져 주심"은 축복해주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을 주님께 데리고 오기를 좋아하고 아이들이 주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를 기뻐하는 것은 귀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유아세례식을 거행하지만 하나님께서 각 가정에 허락하신 어린아이들을 어려서 하나님께 데리고 나와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 받기를 원하는 것은 얼마나 복 받을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부르시고 가까이하려고 하시는데 어른들이 그것을 금해서는 안 됩니다. 16절에서 보듯이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신 사실을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대학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니까 고등학생 때는 자녀들을 주일날 교회도 가지 못하게 하는 교인은 형식적 교인일지는 몰라도 주님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믿음 안에서 잘 기르라고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성을 차차로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인 어린아이들이 그 순수성과 고유한 품성을 급속히 잃어버리지 않고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도록 말씀으로 잘 가르치는 것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런 아이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소홀하기 쉬운 것이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제일 끝으로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어린아이들의 천국과도 같아야 합니다.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주눅 들어 지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무서운 교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치되 아이들이 밝게 활짝 피어나도록 최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 교회가 진행 중인 신교육관 건축에 온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도와 물질로 합력해야 합니다. 그 건물이 단순한 교육공간이 아니라 "믿음의 생활"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건물과 시설도 중요하지만 수준 높고 헌신적인 교회학교교사들은 더욱 중요합니다. 교사로 봉사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교사가 가장 존경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사들을 철저히 훈련하고, 아이들을 규칙적이고 지속적이며 효과적으로 돌보는 것이 우리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책임입니다. 온 교우들의 사랑과 돌봄 속에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교회 만드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우리의 교육적 사명과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회학교교육이 진정 우리 새문안교회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는 교육이 되게 하는 데에 다함께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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