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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에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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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 참고 : | 2000년대 설교 |
전체 개괄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교회를 관할하고 치리하고 말씀으로 다스리는 장로들을 주셨다면 우리들 속에 나를 치리하고 통치하고 구원의 이치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장로들의 그 실력이 우리 속에도 있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산 것과 죽은 것을 명백하고 명확히 구별해서 매사에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도록 축복을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성령님의 감화역사가 우리 속에 충만케 해 주시길 바라며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8장에서 10장까지 하만이 죽는 당일에 왕은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고, 또 에스더는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와 어떤 관계라는 것을 왕께 고했다. 그리고 왕이 하만에게 거둔 반지를 모르드개에게 주었다.그리고 에스더가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하만의 조서의 효력이 아직 있음을 알고 왕께 구해 조서를 다시 써서 127도에 역졸을 통해 보냈다. 이래서 역졸들은 밤잠도 자지 않고 명령수행에 아주 바빴다.
원수들을 8장에서 갚고, 9장에서는 모르드개의 명성이 올라가고 하만의 열 아들들을 죽였다. 이래서 부림절을 9장에서 지켰다. 10장에서는 역대지략에 모르드개의 사적을 기록했다고 했다.에스더서를 1장에서부터 보면 모르드개와 하만의 싸움이 주로 나타난다. 이 싸움은 약속의 땅 가나안 혹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온 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을 역사적 성문적 겉으로 보면 모르드개와 하만의 존재적 싸움이 된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하 일부 녹음 끊김)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만이다. 기회만 있으면 하만이 지나가는데 모르드개는 하만이 지나가도 절을 안 했다.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섭리를 볼 수 있다. 모르드개 자기가 ‘내가 왕궁의 보초를 서겠습니다’ 해서 보초가 된 것이 아니다. 에스더로 인해서 됐는지, 어쨌는지 문지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는 자기와 모르드개가 어떤 관계인지를 왕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문지기로 세워둔 것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약을 올리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만은 하만대로 잔뜩 뽑낸다.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다른 사람 같으면 굽신굽신하면서, ‘예예’ 하면서 아양을 떨 것이다.(한 자리 얻어 보려고) 노회장 총회장에게 알랑거리는 사람들이 많듯이! 시골목사가 ‘어떻게 하면 노회장 총회장에게 잘 보여서 듬직한 배경을 가지고 사람 많고 건물 큰 교회로 가볼까’ 하는 것이 하만을 보고 절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모르드개에게 약을 올리는 것이다. 문지기니까 하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것이다. 한편 모르드개는 문지기로서 충성을 한다. 왕의 암살소식을 듣고 고발을 했다. 자기 직분에 충성을 다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는 문지기가 별 것이 아니지만 우리 신앙적 면에서 볼 때는 문지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들 속에도 문지기를 세워놔야 한다. 문지기가 있어야 하만을 분별하고 하만을 돋보지 않게 된다.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왕을 해치지 못하게 한다. 자기 직분에 충성이다. 문지기는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왜 모르드개를 문지기로 세워놨는가? 하만을 분별하고 하만이 하는 것을 가로막고.일반 평신도들에게는 담이 없다. 즉 사상적 기준이 없다. 신앙정조 관념이 없다. 그러니까 오만 잡된 것들이 들락거린다. 사람이 신앙사상이 그래선 안 된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포용적이고 사랑이 많다. 그러나 사단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밤이 어둑해지면 창녀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녀들은 사랑이 많다. 하도 사랑이 많다보니 이 남자 손도 만져보고 저 남자 손도 만져보고 돈이 있으면 데려가고. 참으로 사랑이 풍부하다.진짜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지키고 사람을 분별한다. 신앙 면에서도 신앙이 좋은 사람은 사상을 분별하고, 참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세상사랑을 가지지 않는다.
에스더의 신앙을 보자.
에스더는 사촌 오라비 집에서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며 식모처럼 궂은일을 다 했지만 사촌 오 빠에게 원망과 불평이 없다.세탁기가 안 나왔을 때도 여자들이 빨래하고 밥하고 애 키우면서도 원망불평이 잘 했는데 요새는 세탁기 짤순이가 있어서 집어넣으면 다 해 주는데도 원망불평이 많다. 그러나 에스더는 그게 없다. 오 빠로부터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에스더가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된 것은 그것을 돋보고 그 운동을 했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섭리로 된 것이다. 왕후가 되어 왕궁에 들어가서도 누릴 마음은 없었다. 우리가 앞뒤로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왕궁을 돋보는 일도 전혀 없다. 또 두 번이나 잔치를 연 것도 누릴 마음에서가 아니고 하만을 잡아내려고 연 것이다.
그런데 모르드개의 신앙에 있어서도(에스더의 신앙 역시) 자기 백성을 사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방인 백성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택한 선민 자기백성을 사랑했다.
사실 모르드개의 신앙은 개인적이면서 민족 전체가 갖는 신앙이다. 그 신앙 때문에 하만이 자기를 높이지 않는다고 들고 일어나서 모르드개와 그의 백성 유다인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날을 잡아서 전부 잡아 죽이려고 흉계를 꾸몄다. 이것을 안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결심을 하고 금식기도에 들어간 것이다. 자기 두 사람 죽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리고 에스더의 신앙을 거기서도 볼 수가 있는데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이 있다. ‘네가 왕궁에서 왕후가 된 것은 이 때를 위함인 줄 아느냐? 이런 기회에 백성을 살리라고 너에게 왕후를 준 것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왕궁의 왕후자리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모르드개의 그 말이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나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 ‘네가 왕후가 된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소리를 에스더가 듣고 왕의 앞에 나갈 때는 죽으면 죽으리라로 나가게 된다.에스더가 왕후가 되어 얻은 것은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행복을 만끽하고 영광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자기 백성을 살리는 데는 사랑과 행복과 영광과 목숨까지도 내어놓는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것은 최고의 귀한 것을 다 내어놓는 것이다.
다 내어놓기 전에 모르드개의 ‘이 때를 위함인 줄 아느냐’ 하는 말에 에스더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선민 백성을 살리는 일에 있어서 그거 다 내놔라’ 하는 사촌 오라비의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 행복 다 내놔라, 영광과 사랑을 다 내놔라’ 이다. 모르드개가 ‘이유 없이 내놔라’ 하니 에스더는 내놓기 싫지만 말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내놓는 것이 아니고 자기 백성을 살리는 일에 있어서 자기의 목숨이 달아나는 수가 있더라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만을 나무에 달라고 하는 고발은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한 것이 아니고 옆에서 한 것이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이 되었을 때도 ‘내가 총리대신이 되고 싶다’는 것은 없었다. 전부는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섭리가 보인다.에스더서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대표적 인물로 나타나는데 이방 땅이라고 하는 장소에서 하만과 싸움을 한다.
나그네 모르드개와 총리대신 하만과의 싸움인데 모르드개는 아무런 소유도 없으나 하만은 명예 영광 부귀가 다 있다. 그러니 우리의 생각으로는 모르드개는 하만의 싸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르드개를 하만과 붙여놓은 것이다.싸움의 무기는 하만은 부귀 영광 명예, 가능하면 군대도 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오직 신앙뿐. 그러니 인간 편에서 볼 때는 비교도 안 된다.
신앙결과로 보면 모르드개가 존귀하게 되었는데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냐? 하만! 하만이 들러리를 선 것이다. 싸워서 이겼으니까! 또한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도 와스디가 들러리를 선 것이다.
하만이 등장한 것은 모르드개를 존귀케 해 주고 모르드개의 들러리가 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보통 보면 하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최고의 어려운 사건을 이기면 그만큼 자기가 올라간다. 실력적으로도! 그런데 보통 ‘하만을 없애 달라, 없었으면 좋겠다, 없는 환경을 달라’는 신앙을 많이 볼 수 있다.우리가 에스더서를 볼 때 선택된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나와서 자기 백성을 구하나? 두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두 사람만을 잡고 쓰신 것이다.
두 사람을 잡고 쓰시기까지 무슨 명예나 배경이 없다. 쓰기 전에 평소에 두 사람의 일반생활이 돈독하게 나갔다.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으로 올라가기까지 유다인들도 몰랐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니 쳐다보여지지 평소엔 몰랐을 것이다. 오늘날도 많은 기독자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모르드개나 에스더들이 훌훌 단신으로 아무 배경도 없이 진리신앙을 지키며 나가는 자가 있을까?
이들에게는 인간적인 배경이나 사회적인 배경도 없고, 거기다 이방 땅에 포로로 잡혀온 신세이다. 볼 것이 있다면 신앙밖에 없다. 인간들은 이것을 알아주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알아주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127도를 동원시키는가? 정말 놀랍다.
유다인들이 모르드개와 에스더밖에 없나? 수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바로 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실 리가 없다. ‘이런 자들을 내가 최고의 자리로 올려야겠다’ 모든 걸 다 주고 싶다.
그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 그렇게 역사하신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역사하신다. 그 때 그 두 사람을 올려주고 사랑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똑같이 역사를 하신다. 불신세상이 볼 때, 종교적 세상이 볼 때 아무 것도 볼품이 없어도 현재적으로 하나님 앞에 옳게 바르게 진리적으로 자라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올려주고 싶어 하신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절대로 그런 성도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는다.
유다인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그 명령에 움직였다. 원수들을(사람) 죽여도 재산을 탈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대로 했다. 다시 말해 재산이 욕심이 나서 사람을 죽인 게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방열방들이 택한 선민의 예루살렘을 다 쳐부쉈지만 가만 보면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왕의 도장(어인) 하나밖에 없는데 이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왕의 마음을 좌우지하고 있다. 이방 땅에서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 왕이라고 하는 자리야 아하수에로가 앉아 있지만 활용 면에 있어서, 다스리는 면에 있어서, 치리하는 면에 있어서 두 사람이 다 해 버린다. 오 빠 집에서 빨래나 해 주던 에스더가 왕궁에 들어가서 자기 백성을 살리고 원수를 다 갚아버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면 부림절을 만들어 잔치를 했다. 이 잔치는 왕이 하는 누림의 잔치가 아니다. 이것은 원수를 갚았다는 승리의 잔치요 생명의 잔치이다. 잔치의 성격이 다르다.
세상사람들은 누림의 잔치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지만 선민의 잔치는 원수들을 죽인 승리의 잔치, 생명의 잔치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 성격이 다르다. 이런 잔치는 택한 선민 유다인 말고 다른 어떤 민족이 맛본 적이 없다.또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 자기가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가니 이방 왕까지 전부 다 원수 갚는 일에 호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선민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가 1장에서부터 전체적으로 사상적으로 보았다. 모르드개와 하만 에스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존재적 싸움 속에서 하만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모르드개와 에스더 속에 보이지 않게 있었다.
평소에 세상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하나님 앞에 갈고 닦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그 신앙실력을 보시고 찾아 쓰시고, 그들을 높여주고 싶고, 그런 자를 사랑하고, 우리에게도 그런 신앙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높여준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나를 총리대신으로 올려주시겠지’ 하는 것은 없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으로 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를 하신 것이다.
저 밑바닥에서의 싸움을 이기고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을 생각해 보면 처음이나 나중이나 신앙밖에 없다. 모르드개도 사람, 에스더도 사람, 우리도 사람이니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질 수 있다.
[에스더서 끝]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요약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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