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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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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
부활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고린도전서 15:1-8
13. 3. 31, 부활주일
부활절입니다. 부활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 신약시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점으로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884년 부활절에 인천항에 어더우드와 아펜셀러 선교사가 입국하여 한국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84년 부활절에 우리 세광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죽음을 이긴 그 자리에 교회가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긴 사건입니다. 부활은 폭력을 넘어선 사건입니다. 부활은 거짓을 물리친 사건입니다. 부활은 억울함을 푸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눈에서 눈물을 거두는 사건입니다.
구약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살린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아들을 살렸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아들을 다시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세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야이로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나사로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구제를 잘 하는 여인을 다시 살렸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늦게까지 강론할 때에 졸다가 창문가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란 청년을 다시 살려 주었습니다.
성경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아프고, 고통당하고, 상처받고,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람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사람들은 죽지만 언젠가는 다시 산다는 것을 미리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옛날 어느 철인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죽음은 없고, 우리가 죽은 이후에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그럴듯한 말이지만 궤변입니다.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당시에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실제로 돌아가시지 않았고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났다고 해서 “가사설”을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난 것처럼 거짓말을 유포하였다고 하여 “기만설”을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너무 기대한 나머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환각을 보았다는 “환각설”도 있습니다. 만일 환각 작용이라면 고린도전서 15장의 500명이 한꺼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은 500명이 한꺼번에 환각을 보았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현대 비평학자들은 부활의 사실보다는 부활의 의미만을 받아들이려는 합리적 해석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사실이 아닌 가공의 논리에 설립된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런 논쟁은 부활이 그만큼 신비롭고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활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가들의 글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입증되었습니다.
본문 읽고 잠시 해석하고 전합니다.
첫째, 부활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기초는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무리이며 성별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를 지칭하는 “에클레시아”란 말은 불러내었다는 뜻입니다. 흩어진 무리들을 다시 불러모은 것이 교회입니다. 마태복음 26:31에는 스가랴 13:7을 인용하여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부활 사건 때문에 다시 모입니다. 부활은 그들에게 다시 모일 수 있게 하였고 다시 힘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습니다. 다시 사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주성은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로마서 1:4에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그들이 본 그리스도의 인성이 아니라 신성입니다. 그런데 이 신성이 부활에서 명백히 증명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는 부활이 곧 교회의 생명력이고 교회의 기초입니다.
베드로의 가이샤라 빌립보 고백을 보세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한 고백은 교회의 중요한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백 위에 든든하게 서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의 기초가 되지 못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11에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시 사시고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인 것입니다.
둘째, 부활은 교회의 “케리그마(선포)”의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선포는 “회개하고 천국을 믿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선포의 내용에는 항상 회개와 천국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처음 교회의 선포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어디엘 가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곧 부활의 증인들이었습니다.
케리그마란 공포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치 광고나 선전에서 크게 외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고대 헬라에서는 케리그마란 말이 장사꾼이 “사세요” 하고 외치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한 가지는 물품을 명시하는 내용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 가지는 자기 상품에 대한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두 가지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있습니다. 디다케는 가르침으로 그 내용이 다양하지만 케리그마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의 선포도 단순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단순한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고 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 5:30)”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었고, 이 부활의 증인이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전편에 예수님의 부활이 강하게 나타나 있는 까닭도 부활이 교회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부활은 교회의 새 능력입니다.
어느 인도의 시인은 “나를 어두움 저 편으로 인도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을 어두움 속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을 어두움에서 밝은 곳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엠마오의 두 제자나 베드로와 요한이나 도마나 그 외의 모든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은 다시 밝은 빛을 본 듯 소리치며 외치며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소식은 그들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었습니다.
루터는 “부활은 성경에 뿐만 아니라 봄에 새싹이 날 때 나뭇잎마다 써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만은 아닙니다. 현재적으로 살아 있는 사건입니다. 부활은 현재적 사건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미래적 부활을 예시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현재적 새로운 능력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와도 부활할 수 있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에 설사 우리의 가정이 파괴되고 사업이 망했다고 할지라도 다시 일어서고 부활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과 권세와 힘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의 부활로 만드는 부활 신앙만이 어렵고 힘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부활신앙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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