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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다가가신 예수님

마태복음 이상호 목사............... 조회 수 666 추천 수 0 2014.07.11 22: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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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4:23-25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장애인에게 다가가신 예수님

마태복음 4:23-25                                          

13. 4. 28, 오전(장애인주일)

 

얼마 전 신문에서 참 놀라운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생각만으로 휠체어 움직이게 하다”. 일본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 최규완 박사팀이 개발한 ‘뇌-기계 인터페이스’라는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팔다리가 마비된 장애인도 생각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른손을 생각하면 휠체어의 방향이 오른쪽으로 꺾이고, 왼손을 생각하면 왼쪽으로 꺾인다고 합니다. 두 발로 걷는 생각을 하면 휠체어는 앞으로 전진합니다. 인간이 생각을 할 때 뇌파가 발생하고 그 뇌파를 컴퓨터로 분석한 후에 휠체어에 명령하는 원리라고 합니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오늘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장애인을 둔 가정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식구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밝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가엾다고 동정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식구 중에 장애인이 있다는 것을 밝히기 꺼려합니다. 동정 받는 것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 동정이라는 것은 하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운 것이 동정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이 있어도 그냥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 장애인 사역이 핵심 사역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비장애인 사역을 하시고 나서 시간이 남고 돈이 남으면 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장애인 사역이 핵심 사역이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체적으로 교회를 볼 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거의 다 비장애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 여유 있으면, 시간되고, 돈이 되면 장애인들에게 신경을 쓰는 그런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셨던 방법은 아닙니다. 오늘 말씀 보니까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구별하지 않고 장애인 사역을 당신의 핵심 사역으로 생각하시면서 병고치고 장애인들을 치유하는 이 사역이 처음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어요.


23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동정이라는 것은 사실 거꾸로 말하면 차별입니다. 대등한 관계에서는 동정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가 장애인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감정이 동정이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장애인을 대하는데 매우 서툴고 미숙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 받는 사람도 동정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부담스러워요. 그러니까 주는 사람도 부담스럽고 받는 사람도 부담스러우니까 서로 아예 피해버립니다. 그래서 결국은 장애인 사역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이 나와서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고, 말씀 들을 수 있는 교회를 원합니다. 예수님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셨어요. 그뿐 아니라 처음부터 일부러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장애인들을 찾아가셨어요.

 

요즘에는 장애인을 ‘핸디캡(handicap)’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핸디캡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장애인들을 ‘챌렌지(challenge)’라고 부릅니다. 핸디캡이라는 것은 불구라는 말이죠. 그런데 이제는 불구라는 용어를 쓰지 않아요. 챌렌지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뭐예요. 도전적이다 그말이죠. 장애우들은 도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불구가 아니고 조금 더 우리 보다는 도전적인 삶을 살아야 되는 사람들. 조금 더 삶의 도전이 많은 사람들일 뿐이지 전혀 우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핸디캡이란 말을 쓰지않고 챌렌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개념을 적극적인 개념으로 바꾼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특별한 대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등한 기회를 원할 뿐입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들이 장애인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하니까 이것이 동정심에서 나오는 거예요. 대등한 관계에서 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대등한 기회를 우리가 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뭔가 부족하고 모자란 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동정을 베풀어야 한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니까 결국 장애인들이 이런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사실 정상인이란 말은 틀린 말입니다. 누가 정말 핸디캡이고 누가 정상인 입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우리가 아담의 원죄 때문에 영적으로는 다 장애인이예요. 예수님의 흠없고 의로운 보혈로 덮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온전하게 될 수 없는 사람들이예요. 그게 복음이고 그게 기독교인데 사실 우리가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다 장애인들입니다. 그런 용어를 쓴다는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비장애인들이 교회 들어올 때 계단이 필요한 것처럼 장애인들에게는 교회 들어올 때 경사로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계단을 만드는 것은 전혀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경사로를 만드는 것은 아주 특별하게 대우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비장애인들이 계단을 쓰는 것과 장애인들이 경사로를 통해서 올라오는 것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가지는 정상으로 생각하고 다른 것은 특별한 대우를 해준다고 생각을 하면서부터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하고 부담감이 생기면서부터 서로 피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그거야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의 숫자가 더 많으니까 그렇죠. 아무래도 숫자 많은 쪽으로 우리가 더 물질과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예요. 그러나 우리가 사람의 존엄성을 숫자로 따진다면 그것은 복음의 원리하고 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의 메시지하고는 맞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장애인들은 동정보다는 대등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국 골프선수 중에 다리를 저는 장애인 선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선수가 자기도 골프 시합에 나가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시합을 하고 싶은데 다리를 절기 때문에 자기는 꼭 카트를 타야만 시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프로 골프 협회에다 카트를 타고 시합을 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거절당했어요. 프로 골프 협회에 회칙을 보면 선수들은 카트를 타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걸어야 되요. 그래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대법원에다가 고소를 했어요. 왜 장애인도 정상인들과 같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느냐? 그럼 장애인들은 영원히 골프시합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냐? 이래가지고 고소해서 겼어요. 참 이상한 나라예요. 왜 이겼냐? 미국 헌법에 보면 모든 인간에게는 차별없이 3가지 권리가 주워진다. 생존권, 자유권, 그 다음에 행복 추구권이예요. 모든 인간은 생존할 권리가 있다. 생명을 보호 받을 권리예요. 그 다음에 자유권리가 있어요. 자유를 보호 받을 권리. 그 다음에 세번째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행복추구권에 의해서 비장애인들만 행복 추구할 권리가 있냐? 그래가지고 헌법이 프로골프 협회의 회칙보다 더 위 아닙니까? 그래서 프로골프 협회 회칙이 내규가 위법이라 그 사람에게 카트를 타고 시합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번도 못 이겼어요. 이기고 지는 것은 자기 실력이예요. 그러나 기회는 줘야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 장애인들이 교회 나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은혜 받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본인의 문제예요. 그러나 장애우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 들을 수 있는 기회,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는 동등하게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이런 어떤 차원에서 생각을 해야지 동정한다는 그런 차원에서 생각을 하면 풀리지 않습니다. 동정 받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동정 받고 싶어합니까?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로 동정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등한 기회는 달라는 거죠.


저는 그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어요. 그래 교회도 장애인들을 위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하고 화장실 등 적어도 장애인들이 교회에 와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믿음생활, 은혜생활, 말씀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은 우리가 만들어줘야 하겠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베드로에게 이제는 네가 물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내가 만들어 주리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을 데리고 어디를 갔냐면 장애인들에게 가셨습니다. 뭐를 말하는 겁니까? 네가 이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기 위해서는 과거에는 네가 어부로써 물고기를 잡으면 병든 물고기는 다 버렸지만 네가 이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병든 사람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맨 처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장 맨 처음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그 순간부터 예수님께서 병든 물고기는 버려도 병든 사람은 절대로 버리지 말라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주입시키기 위해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직후에 바로 비장애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볼 때 소위 가장 차별대우 받는 가장 불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찾아 가셨다는거죠. 이게 제자의 제일 첫번째 자격이예요. 제일 첫번째 되는 조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들을 보라는 거죠.

 

우리 교회는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교회입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반로 후속조치와 사랑이 따라야 되고 행동이 따라야죠.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장애인이 한사람도 앉아있지 않은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가릴 것 없이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 때문에 우리가 장애우들을 사랑해야 됩니다. 동정, 불쌍해서가 아니라 사랑스러워서 예수님의 보혈로 그 사람들도 예수님의 보혈로 자녀 삼아 주신 장애우들을 위해서도 똑 같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장애우들을 위해서도 그 흠없는 피가 나에게 흘려진 것처럼 똑같이 흘려졌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계속 인간적으로 동정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인간적으로 동정하는 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죄로 다 장애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다 불쌍한 사람들 입니다. 우리 공주세광교회는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안고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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