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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나오는 은혜의 생명강수

에스겔 이상호 목사............... 조회 수 1118 추천 수 0 2014.07.11 22: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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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겔47:1-12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공주세광교회 http://sk8404.or.kr 

성전에서 나오는 은혜의 생명강수

에스겔47:1-12                                                            

13. 6. 2, 환경주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귀중한 것 중의 하나가 물입니다. 물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고기가 물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죽듯이 인간에게도 물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인체도 물이 80%이며 초목도 물 없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물은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이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막 지대인 팔레스틴에서 물은 생존에 있어서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읍은 샘이나 강곁에 세워지고 예루살렘의 성전 뜰의 지하는 석회석 암반에 저장통을 만들어 약 7,000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을 긷는 것은 여자의 일이었으며 운반과 휴대는 가죽 부대를 사용했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물과 관련된 말씀이 많습니다. 이사야 5:1절 말씀을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5절 말씀을 보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2:17절 말씀을 보면 경건치 못한 멸망 받을 자를 가리켜 '물 없는 샘'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6:24절에서는 음부의 부자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물 한 방울만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 주보 표지 : 물의 효능과 중요성 설명

 

오늘 세계는 물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물 위기의 심각성은 매년 3월 22일은 물의 날이고, 유엔이 2013년을 '세계 물 협력의 해’로 지정하는 데서도 분명해집니다. 한국교회는 '은총의 물, 모든 피조물과 함께'라는 주제로 오늘 환경주일을 지킵니다. 물 위기는 인간의 생명과 생존만 의 위기는 아닙니다. 물 위기에는 약자에 대한 배제라는 사회적 요인과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는 생태적 요인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위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가 체험한 은혜의 상징입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 나왔는데 그 물은 점점 흘러 넘쳐 강수가 되었고 그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소생하는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본문을 설명할 때 생명강수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깊은 의미를 살펴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큰 깨달음과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생명을 살리는 물은 성전 제단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은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1-2절) 에스겔 선지자가 이상 중에 천사의 인도함을 받아 성전 문에 이르러 보니 그 문지방에서 물이 나와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본문의 말씀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장차 천하만민에게 임하게 될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인데 그것도 구속의 큰 축복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써 구약 시대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곧 성전이라고 선포 하셨는데(요2:19-21) 그것은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7:37-39절에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친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구원이 예수를 믿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한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물 길으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중에 "어떻게 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얻을 수 있을까?"를 질문하게 되고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는 구원의 은혜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 복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대신하여 탄생시킨 거룩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의 생명수가 흐르고 모든 생명이 소생하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정상적으로 체험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교회를 통해서 경험될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교회의 중요성을 가리켜 교회를 어머니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없는 자식이 없듯이 교회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을 중히 여깁니다.


공주세광교회가 생명수가 흘러넘치는 제단이 되기를 위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는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은 점점 불어나 헤엄할 물이 되었습니다.(3-5절)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나는 물은 점점 많아져 그 깊이가 이제는 헤엄을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깊어졌습니다. 5절 말씀을 봅니다.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이 말씀은 참 의미가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우리 마을에서 학교에 가자면 시내를 건너야 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오랜 장마 끝에 시냇물이 불어 건너지 못할 범람하는 시냇물이 되었습니다.


학교는 가야 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건너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지를 벗어 책보에 둘둘 말아 싸서 머리에 얹어 들고 깊은 물에 들어섰습니다. 가장 얕은 곳을 찾아서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발목에 올랐습니다. 그때만 해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조금 깊이 들어가니 물은 금방 무릎위로 올랐습니다. 그때도 제 힘만 의지하고 물을 헤쳐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니 물은 점점 깊어 허리까지 올랐습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면서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어가니 허리에서 가슴으로 물이 올랐는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발도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고 생각대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큰일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가다가는 생명까지 위험하게 되니 헤엄을 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냇물을 헤엄칠 때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물살을 따라 내려가면서 헤엄을 쳐 무사히 강을 건넜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에스겔 47장을 읽을 때마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범람한 시냇물을 헤엄친 것이 생각나고 교회 생활과 관련지어 생각을 하면서 은혜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 발목까지 오르듯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아직 하나님보다는 자기 힘으로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릎까지 물이 오르듯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힘으로 물을 건너려는 것처럼 자기 경험 수단 방법을 앞세워 교회 생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허리까지 물이 오르듯 하나님의 은혜도 그만큼 경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직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물을 건너려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입니다.

 

목에까지 물이 오르면 아무리 장사라 할지라도 물을 건너지 못하고 헤엄하여 물을 건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버리고 자신의 방법을 버리고 성령의 법을 따라 성령을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기 힘을 전혀 사용하지도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에 모든 것을 맡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헤엄을 한다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물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 마치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발목에서 무릎에서 허리에서 목에까지 올라 창일 하여 헤엄할 물이 되었더라'(5절)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게 체험하는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표현하면 발목정도까지의 은혜를 체험한 성도가 있는가 하면 무릎까지, 허리까지, 목에까지 강수가 오르듯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빈 깡통이 소리가 많습니다. 시끄럽습니다. 덜 익은 이삭들이 고개를 들게 됩니다. 성숙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을 보면 항상 그와 같습니다. 자기 힘을 앞세워 교회 생활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처럼 세광교회에서 흘러내리는 말씀과 사랑과 은혜의 생명강수에 헤엄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생명강수가 흘러 이르는 곳마다 생명이 소생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6-12절)

 

8절입니다.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여기의 아라바는 황폐한 땅이란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황폐한 땅과 같은 심령에 이르면 그 심령이 소성하게 된다는 축복의 메시지가 됩니다.

 

구 성경 '소성함을 얻을지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는 '고치다'(라파; )인데 생물이 살지 못하는 사해(死海)에도 이 물이 흘러 들어가면 물이 되살아나 생물이 사는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고 성령의 감동이 없는 죽은 심령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생명수 곧 말씀이 임하면 은혜로 충만하고 모든 것이 살아나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절망이 희망으로 변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감사로 변합니다. 슬픔도 기쁨으로 변합니다. 이기주의도 이타주의로 변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납니다.

 

9절입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라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10절입니다.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엔게디는 사해 서쪽의 끝이고 에네글라임은 엔게디 건너편 끝으로서 사해를 중심으로 한 동서 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말씀의 생명수가 우리 교회 성전 문지방으로 통해서 솟아오르면 공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그물 치는 곳으로 선교대상 지역을 삼아 어부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줄 믿습니다.

 

11절입니다. "진펄과 갯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이처럼 놀라운 은혜의 강수를 체험하지 못하여 구원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영멸속에 버려지는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바 여러분 가운데 이와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축복합니다.


12절입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여기서 몇 가지 축복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각종 실과나무가 자라듯 신앙도 깊어지고 성장하는 은총이 있습다.

둘째는 잎이 시들지 않음같이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셋째는 달마다 새 실과를 맺듯이 항상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는 잎사귀가 약재료로 사용되듯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해 치유 받고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강수가 흘러 들어가는 곳마다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황폐한 땅 아라바 같은 심령에 생명강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이르면 그 심령은 새롭게 소성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게 됩니다.


사해 같은 가정도, 심령도, 교회도, 지역사회도, 세계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충만함의 생명강수가 임하면 모든 것이 회복된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특히 오늘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물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구상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자원으로서 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인 물을 잘 관리하고 함께 공유할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 물은 이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 탐욕의 도구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자본으로 물을 독점하고 개발을 명목으로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과 사회의 약자들은 안전하게 물을 마실 수조차 없고, 동식물은 물의 오염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결국 자연공동체 전체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물이 갖고 있는 두 가지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혼돈의 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돈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창조를 행하셨는데, 그 혼돈의 근원에 물이 있었습니다(창1:2). 시 74편은“주님께서는 주님의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물에 있는 용들의 머리를 깨뜨려 부수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짓부수셔서 사막에 사는 짐승들에게 먹이로 주셨으며, 샘을 터뜨리셔서 개울을 만드시는가 하면 유유히 흐르는 강을 메마르게 하셨"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물은 혼돈을 나타냅니다. 제어해야 하는 위협, 죽음의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생명의 물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물에 대한 이미지는 성서에 가득합니다.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동산에서 발원하는 네 줄기의 강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 네 강을 설명할 때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싸밥’입니다. 이 말은 휘감아 돈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강물이 휘감아 도는 곳마다 윤택하고 비옥함이 넘쳐납니다. 에덴의 물은 생명과 풍요의 상징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물을 결코 훼손해서는 안 되며, 물의 생명력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탐욕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위반하는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물의 총량은 늘어날 수 없습니다. 물의 문제는 정해진 양을 어떻게 나누어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전에서 솟아나와 온 세상으로 흘러가야 할 하나님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탐욕이 얼마나 큰지 성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탐욕과 이기심은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죽음의 물이 성전에서 솟아난 생명을 살리는 풍성한 생명의 강물로 바꿔지기를 소원하십니다. 에스겔의 환상을 자신의 환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출현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인 물의 남용을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잘 보존하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물도 존엄한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인정하며, 물이 공공의 복지와 선을 위한 지속가능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고려한 수자원 보전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물의 보전을 위한 도덕적 기준을 마련하고 물이 공공선을 위한 생명의 자원으로 인식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겠습니다. 물은 곧 생명입니다.


우리는 물이야말로 지구상 모든 생명체가 공정하게 나눠야하며, 물은 경제적 효용가치에 의한 서로를 배려하여 선을 이루는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어야 합니다. 물을 살리고 공정하게 나누어서 모두가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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