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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아십니까?

요나 궁극이............... 조회 수 1444 추천 수 0 2014.07.18 10: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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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욘1:1-1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장 1절-10절.

 

1절-10절: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목적이 뭡니까? 만물이 그냥 우연히 생겼습니까? 내가 믿는 여러분들에게 이 말을 묻는 것이 어리석기도 합니다마는 세상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은, 또 학교에서 배우기도 그래요. 세상이 우연히 생겼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우연히 생겼다’ 하며 이치에도 안 맞는 말을 줄곧 가르쳐 주고 있단 말이에요.

 

학교에서 뭐라고 그러지?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제일 처음에 뭐가 하나 있었다고 그러지? 미생물. 그러면 미생물은 누가 만들었어? 그 이치에도 안 맞는 말.

 

그러니까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이라는 거 있지요? 진화론이란 뭔가 하니 지구 땅덩어리가 생기기 전에 제일 처음에 균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는 거지요. 아메바 균이라고 그러던가? 균이 있었는데, 그 균이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게 벌레가 됐다는 거지. 예를 들어서 말하면 벌레가 올챙이가 되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는 더 커져서 너구리가 되고, 너구리가 더 커져서 호랑이가 되고. 이게 말이 돼요? 어린애들 앞에 놓고 얘기해주는 동화도 아니고 뭐요?

 

우리나라 건국신화가 또 그렇지. 단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랑이하고 곰하고 마늘을 어떻게 먹는다고? 100일 동안? 거기서 참는 자는 사람이 돼 나오고, 못 참으면 짐승 그대로 있고. 이게 말이 돼요?

 

이 세상은 우연히 생긴 게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우연히 생깁니까? 뱃속의 어린아이가 우연히 생겨요? 말도 아니지.

 

성경은 정확한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겁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정확한 이치를 못 찾습니다.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요. 알겠어요? 물질의 이치도 정확한 건데, 무엇과 무엇을 보태면 비료가 되고, 뭣과 뭣을 보태면 뭐가 되고 하는 그런 거는 하나님께서 물질계에 이미 넣어놓은 것을 인간들이 과학적으로 뽑아내가지고 이치와 이치를 탁 결합을 시키니까 뭐가 되고 딴 것이 되고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숨어있는 이치를 물질적으로 써먹는 거지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이치보다도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참 신비스럽지요? 참 기이하고 신비스러워요.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더 신비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조그마한 라디오 속에서 사람소리가 난다는 게 신비롭잖아요?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신 목적이 뭐요? 만물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이 당신 혼자 있으려니 심심해서 손장난을 하고 싶어서 만물을 만들었다? 만들다 보니 ‘아, 이 세상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필요하구나’ 해서 그 관리자로 인간을 만들었다? 또 인간을 만들 때에도 처음 남자를 만들었는데 남자 하나만 있으니 심심할 것 같아서 여자까지 만들었다?

 

그러니까 만물을 하나님이 심심해서 만들었다고 하는 거기에는 목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내가 무슨 목적을 갖고 뭘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하는 이거는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내 능력은 뭐든지 할 수 있는데 가만있자니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 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는 여기에는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여기에는 세상을 만든 목적이 없어요. 만들고자 하는 그 의도성, 분명한 뜻이 있고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단 말이요.

‘내가 이 세상만물을 만드는 것은 물론 사람은 나중에 만들었는데 만들고자 하는 그 목적이 사람을 만들어서 이 세상을 통과케 하고 하늘나라를 주어서 하나님과 같이 살게 하려고 이 세상을 만들었다’ 하는 이 말에는 목적이 있어요, 없어요? 있지요. 분명히 있습니다.

 

우선 ‘있다’ 그 정도만 알아놓고, 그 다음에 세상만물 속에는 사건이 돌아가고 있지요. 이런 일 저런 일이 막 터지지요. 그러면 비도 많이 오고 눈도 많이 오고, 때로는 사람이 죽고 교통사고도 나고 하늘에서 별똥이 떨어지고 하는 그런 거, 삼라만상 사시사철이 돌아가는 거, 이 모두를 일으키는 목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냥 제 마음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만드신 동기가 뭘까? 세상을 만들기 전에 만들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어디서 나왔을까 그 말이요.

 

이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만들었지요. 그러니까 이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 있었던 그 목적 하에서 나왔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만들었느냐? 그 이유는 어디 있었느냐 그 말이요. 동기가 어디 있었느냐?

 

성경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세상이 불바다가 돼서 없어져 버리지요. 그렇게 되면 이제 믿는 사람은 전부 다 어디 가서 살지요? 천국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천국에서 살게 되지요.

그렇다면 인간을 만들어 놓은 목적이 뭐지요? 그 동기가 어디서 나왔어요? 조금 전에 내가 말한 것을 거꾸로 돌리면 될 거 아니요. 사람이 이 세상을 지나서 천국에 간다. 그렇다면 이 세상을 왜 만들었느냐? 뭐가 있기 때문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들었다 그 말이요. 이해가 갑니까? 이걸 아주 벽에 목을 박듯이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그것을 근거를 하고 나오는 거니까요.

 

그러면 이 세상은 조목조목 종류도 많고 참 다양합니다.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어. 남과 여가 사람이라는 면에서는 같을 런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지, 생각이 다 다르지, 키가 다르지, 다 달라요. 짐승도 다르고. 그러면 왜 이처럼 삼라만상을 다양하게 만들어 놨을까?

 

이 세상에 만물이 있고 이 만물 속에서 사건들이 돌아가는데, 이 사건들이 돌아갈 적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이 있고, 크고 작은 고통도 있고, 크고 작은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고, 행복도 있고, 또 느낌성도 다양합니다. 할머니를 보는 시감성이 다르고, 어린아이를 보는 시감성이 다르고, 남녀를 보는 시감성이 다 다르고, 음악을 듣는 청감성이 다 다르고, 푸성귀라든지 고기라든지 음식의 이런 저런 맛을 보는 미감성이 다 다르고, 전부 다 달라요. 거기에서 우리 인간이 여러 가지 맛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면 왜 이 세상을 이렇게 다양성적으로 만들어 놨을까? 세상을 다양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천국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 아니면 천국을 누리고 느끼는 맛이 한 가지 뿐일까? 천국에는 한 가지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든 동기는 하나님이 계시는 그 천국이 너무나도 좋고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쾌락하고 향락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걸 주고 싶어서 우리를 지었다. 우리를 예수 믿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 당신처럼 천국을 누리며 그렇게 기쁘고 행복스럽고 즐겁게 살게 해 주려고 우리를 지었다. 물론 그곳에는 고통은 없어요.

 

그럼 천국이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 당장 지금이라도 데리고 가지? 그건 왜 안 되지요? 인간의 세계는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은 현재의 평안을 고마운 줄을 모르지. 그러니까 인간이 이 세상을 거처 천국을 가게 해서 그 천국을 보다 더 쾌락과 만족으로 누리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을 지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이 세상을 만든 동기가 그렇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일 부려먹고, 이용해 먹으려고 한 게 아니라 그 말이요.

 

이처럼 이 인간을 지은 동기가 있는가 하면 인간을 지은 원인이 있어요. 인간을 지은 원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거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었더라면 우리를 내지 않았다 그 말이요. 쉬운 예로 어머니 아버지가 사랑을 하면 뭐가 나오지요? 뭐가 나와요? 아들만 나오나? 딸도 나오지. 이치란 말이요. 결혼을 하라는 게 괜히 자기들끼리만 재미있게 살라는 그게 아니에요. 이치를 알아라.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었더라면 우리를 내지 아니 했다.

 

그리고 인간을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뭐냐? 목적은 하나님 당신의 성품을 입혀주기 위해서. 그러면 왜 입히려고 그러느냐? 그것은 하나님 당신처럼 천국을 누리게 하려고.

 

하늘나라는 하나님이라야 들어갈 수가 있고, 하나님이라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천국은 인간이 이 인간성 그대로를 가지고는 들어가고 싶다고 해도 안 돼요. 아닌 말로 들어갔다고 그러면 인간은 녹아버릴 거야. 죄인이 하나님을 보고 살지를 못해요. 보자마자 죽어버려요.

 

그런데 이런 인간을 하나님이 누리시는 그 천국을 하나님처럼 누리게 하려니까 예수님을 보내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어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자다’ 하셨지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늘나라로부터 온 분이니까 예수님으로 통해서 예수님으로 바꾸어지고(존재가 아닌 성분적인 면으로), 그러면 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걸 갖다가 또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도 구원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통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만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그 천국을 하나님처럼 누리고 만족하고 행복하고 한 그것도 구원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모든 걸 성경에 큰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해 갑니까? 그러니까 들어가는 것도 구원, 또 들어간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만들어지는 것. 즉 마음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닮은 그것도 구원이다 그 말이요. 그리고 천국을 누리는 것도 구원이다. 성경은 그것도 구원이라고 그러고 있다 그 말이요.

 

자, 그래서 인간을 지은 동기 원인 목적 하에서 하나님의 독자적인 1차적인 구원사역이 있는데, 그냥 여러분들은 들어만 두시고 우리 젊은이들은 학적인 거니까 잘 들어두세요. 하나님의 1차적인 독자적인 사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 세상을 창조한 동기 원인 목적, 인간을 만드신 동기 원인 목적이 인간을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누리게 하기 위해서. 이 전체 과정을 하나님의 대국적인 큰 구원이라고 하는 건데, 하나님의 이 구원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인간 나를 위해서 1차적으로 하신 일이 있다 그 말이요. 여러분들 각자 개개인 하나하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하신 일이 있다 그 말이요.

 

아기를 낳기 전에 엄마가 미리 준비를 하지요? 그런 것처럼 인간을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당신처럼 행복하게 누리게 하려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자적인 사역을 그렇게 짰다 그 말이요. 그 하늘나라를 하나님처럼 지배하고 통치하고 다스리려면 하나님께서 천국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것과 같은 실력이 있어야 된다 그 말이요. 즉 하늘나라를 다스리려면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도덕성, 하나님의 능력성이 있어야 된다.

 

천국을 좋으면 좋은 대로 느낄 줄 알아야 되고, 나쁘면 나쁜 대로 느낄 줄 알아야지요. 물론 나쁜 것은 없지만요.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입지 못하면 둔탁해진다. 둔감하다 그 말이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들어가지만 그 천국을 누림에 있어서 그 느낌성이 둔감하다.

 

그러니까 천국도 이 세상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늘나라의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느낄 수가 없으니까 그 천국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유치원 교과서 식으로 우리에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줘서 천국의 그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 말이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각(覺)이 있지요. 시각성. 시각성은 뭐지요? 눈으로 보는 것. 그럼 이 시각은 사람에게만 있나? 개나 돼지나 짐승에게도 있고, 새에게도 있고. 그러나 짐승은 시각성은 있어도 시감(視感)성은 없지요. ‘아, 꽃이 노랗고 빨갛고 예쁘다’ 그런 게 없단 말이요. 소도 보기는 보지요? 그런데 이 소가 꽃을 보고 ‘야, 예쁘다’ 그럽니까? 보면 뜯어먹어 버리지.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는 각만이 아니고 짐승에게는 없는 신비스러운 감성이 있다. 시각의 시감성.

 

눈으로 보기는 보는데 색깔을 구별을 못하는 눈도 있습니까? 있지요. 색맹이 있잖아요. 딴 것은 보는데 무슨 색깔은 못 보는 그게 있단 말이요. 이해 가지요? 눈을 뜨기는 떴는데 전혀 못 보는 눈도 있습니까? 그걸 경상도 말로 당달봉사라고 그러지. 눈은 떴는데 전혀 못 본다면 이건 시각도 없고 시감도 없지요. 그렇지요? 그러면 이런 걸 왜 보여주느냐? 그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또 청각이 있고 청감성이 있습니다.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니고 귀로 듣고 ‘아, 저거는 우리 남편소리로구나. 아, 저거는 도둑놈 발자국 소리로구나’ 하고 느끼는 그 느낌성. 노랫소리를 들을 때도 느낌이 다르지요? 그렇지요? 할머니들은 육자배기 같은 걸 좋아하는데 젊은이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를 않지. 그 느낌이 다 있어요. 짐승에게는 그런 게 없지요.

 

또 미각의 미감성. 맛을 보는 것도 단 맛을 본 못 본다든지 그런 것도 있는 모양이지요? 미각성에 있어서 감을 못 느끼면 음식을 먹고 그 맛에 대한 즐거움은 그만큼 삭감이 돼버려요. 이해 갑니까? 사람의 감성이 그만큼 없으면 기쁨과 즐거움은 그만큼 삭감이라. 없단 말이요.

 

그러면  왜 그런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느냐?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반 계시성을 알아야 돼요. 괜히 그런 거다? 그게 아닙니다. 이치를 알아야 된다 그 말이지요.

 

또 후각의 후감성. 식당에 들어가서 지지고 볶고 하는 불고기 냄새가 나면 한 번 더 들이마시지? 그렇지 않아요? 엿 고는 옆으로 가면 달착지근한 냄새가 나지요. 냄새에 따라서 코로 느껴지는 감이 다르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 코보다 더 발달된 게 개코인가? 어린아이가 똥싸놓으면 뭐가 빨리 와서 핥아 먹지? 파리가 냄새를 잘 맡는 모양이야. 산꼭대기에 똥싸놓으면 어느새 똥파리가 날아와. 그 보면 파리는 냄새를 맡는 기관이 그렇게 빠르다. 그것도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거지요.

 

또 촉각의 촉감성. 피부로 닿는 게 촉각이지요.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또 지각도 있어. 깨닫는 거.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지 못하면 영적인 면에 대해서 둔감해집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면 오각의 오감성이 다 발달이 잘 됐는데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면에서는 둔한 사람이 있단 말이요.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입느니만큼 깨닫느니만큼 자기는 그만큼 민첩해지고 민활해지고 민감해지고 예민해지고 지혜로워지고 총명해집니다.

 

신의 성품을 입는 과정이 1차적으로 예수님의 구속을 입고 죽었던 영이 살아났습니다. 현재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 하는 그 마음을 가진 이상 죽었던 영이 살아났다 그 말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은 영이 살아났는데, 예수님께서는 못박혀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에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삶을 우리 대신 사심으로 해서 우리가 비록 죄인이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의인이라고 인쳐준단 말이요.

 

이렇게 2차적인 예수님의 사역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됐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만족치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한 2차적인 사역이 또 있습니다.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이제 다시 말씀드린다면 먼저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이 있었지요? 이거는 하나님 자체적 내면적인 거. 즉 계획하고 뭘 만들어야 되겠다고 하는 그 내면적인 거. 이게 1차적인 하나님의 독자적인 사역이고, 2차적인 사역은 그 면을 위한 창조입니다. 이 창조는 눈에 보이는 거지요. 1차적인 계획을 진행을 하려니까 속에 든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는 거지요.

 

그 다음에 3차적인 사역은 구속입니다. 성도의 영을 중생시킨 것. 그 다음에 4차적인 사역은 중생시킨 성도를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나가게 해 주시는 것. 그 다음에 5차 사역은 하나님의 단독적인 사역인데 우리를 신령체로 부활시키는 것. 그 다음에 6차적인 사역은 하나님과 구원 입은 성도들이 함께 천국을 영원히 누리고 느끼는 것.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지식적으로 이렇게 알고 있는데, 문제는 인간의 자유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에 우리를 인격자로 지었습니다. 이 인격자는 책임성이 있고 자유성이 있고 도덕성이 있고, 그 뒤에는 반드시 그 자유성에 따른 심판이 있습니다. 인간 자기라고 하는 자기는 원하던 원치 않던 반드시 심판이 따라온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도망을 간다고 해서 심판이 못 따라오는 게 아니고 어디를 가도 그 심판은 따라다녀요. 왜 심판이 따라다니지요? 인간은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인격자요 자유성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인간은 하나님의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는 인간입니다. 그렇게 되어졌다 그 말이요.

 

우리 인간에게 인격이 없다면, 자유가 없다면, 책임성이 없다면 뭣도 없다? 심판도 없어요. 개나 돼지나 소나 특히 사자 같은 건 사나워요. 이 짐승들이 사람을 잡아먹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을 합니까? 소가 뒷걸음치다가 어린아이를 밟아 죽였습니다. 순경이 와서 ‘이놈의 소야, 네가 왜 아기를 밟아 죽였느냐’ 하고 쇠고랑을 채워서 감옥 속에 가둡니까? 못합니다. 뭐가 없어서요? 인격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여러분들은 사회적인 어떤 도덕성의 죄를 지으면 인간의 양심이 부끄럽고, 국법이 와서 채워가 버리지요. 그렇지 않아요? 어린아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그렇게 심판을 받는 겁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인격을 가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은 고깃덩어리입니까, 인격입니까? 인격이에요. 사람 속에 들어있는 인격, 고상한 성품.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언제든지 지적인 근원을 진리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진리 즉, 하나님에게 두고 살라고 우리 인간의 머리를 위에다 달아놓았다 그 말이요.

 

그러면 헤드라이트(두 눈)를 자동차처럼 왜 절벽(이마 아래 쪽)에다 박아놨습니까? 정확하게 보라고. 그렇지요? 두 눈을 초점을 맞춰서 보면 정확하게 보지요.

 

두 눈을 가지고 있어도 초점을 못 맞추는 눈도 있지요? 내가 눈이 좋지 못하니까 젊은 아이들은 저 멀리 있는 것을 보고 ‘누가 걸어간다’ 하고 잘 보는데 나는 쳐다봐도 ‘저게 누구냐?’ 하고 뚜렷하게 보이지를 않고 윤곽만 덩어리로 보여요. 뭐가 나빠서 그렇지요? 시력. 이걸 왜 그렇게 깨닫게 해 주지요? 시력이 나쁘니까 보는 게 둔감하고 분별력이 둔감하지요. 시력이 더 나쁘면 자기 코앞도 못 보지. 그렇지요? 이게 다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러니 깨닫는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우리가 지적인 근원을 하나님께 의존하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을 왜 만들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자기 엄마 아버지한테 물어야 돼요? ‘날 왜 만들었습니까’ 하고 물으면  자기 엄마 아버지가 뭐라고 얘기할까요? ‘몰라. 너희 엄마하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네가 나왔지’ 이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날 만들었고, 가정이라고 하는 제도를 통해서 인간을 만드는 방편을 쓸 때에 부모로 통해서 자녀가 나오는 것도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아는 겁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고 아버지도 되고 그래야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오늘날 보면 고아들이 많습니까? 미혼모가 많다며? 그 왜 그럴까요? 왜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까? 목적이 있는 행동을 한 겁니까, 목적이 없는 행동을 한 겁니까? 목적이 없는 행동이지요. 따지고 올라가 보면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런 짓이 나오는 거지요. 하나님을 모르면 짐승이 돼버려요. 사람이 지혜로 올라가면 최고로 고상한 인간이 되는데 인격자가 되지 못하고 그래놓으면 사람이 흉물스러워도 그렇게 흉물스러울 수가 없어요. 괴물이 돼요. 사람이 괴물이 돼버려요. 사자보다 더 무서워요.

 

우리는 이성이 절대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녀 이성이 아니고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고 하는 그 이성이 절대 자유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반대할 자유도 있고, 거부할 자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뭐가 따라온다? 심판이 따라온다.

 

가정적으로 본다면 자식이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할 자유도 있다. 권리도 있다.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뭐가 따라와요? 부모의 징계가 따라오지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공부할 자유도 있고, 안 할 자유도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게 돼 있어요. 인간은 그런 게 있다 그 말이요. 이거는 아주 못을 박아두면서 알아두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이렇게 인격자요 자유자요 도덕성을 가진 자요, 또 심판이 뒤따라오는데, 인간을 이렇게 하도록 두지 않고 하나님께서 당신은 만능의 능력자니까 인간의 마음을 강제로 하면 어떻습니까? 마치 인간이 나뭇가지를 탁 부러뜨리듯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의지성을 자유성을 탁 부러뜨려서 하나님 앞에 굴복을 하도록 왜 못할까요? 왜 그걸 안 할까요? 능력이 없어서? 뭐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하지요? 자유성이 보장이 됐기 때문에.

 

하지만 또한 인간에게는 그 자유성에 따른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리와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고 성령을 보내서 존재를 보내서 사건을 동원을 해서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우주만물 모든 삼라만상을 가만히 깨닫고 보면 모든 우주만물이 우리의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그랬으니까 우리 인간 편에서 깨닫고 보면 우리의 무엇을 위해서 모든 만물이 있는 겁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하나님의 성품 닮는 것을 위해서 모든 만물이 대기를 하고 있어요. 인간 볼 때는 자기들끼리 이리저리 막 돌아가고 하는 거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한 번 떨어지면 나의 구원을 위해서 다 동원이 돼버려요.

 

우리가 이 성경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심청전 그런 것처럼, 흥부 놀부 그런 것처럼 얘기 식으로 돼 있어가지고 참 재미가 있어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서 도망을 갑니다. 도망을 갈 때 하나님이 그걸 모릅니까? 알지요. 요나의 마음도 아는 거고.

 

그래, 이 요나를 집어 삼키라고 하나님께서 누구한테 명령을 했지요? 큰 고기에게 명령을 한 거지. 큰 고기는 대부분 어디서 놀지요? 어느 바다? 태평양 바다. 그런데 요나는 지금 지중해에 있어요. 대서양이 아니고 지중해 그리로 도망을 가는 거지요. 이 지중해는 작아요. 태평양은 수십 배 수백 배로 크고. 지중해 옆에는 대서양이 있고.

 

그래, 큰 고기가 보나마나 북극이 아니면 남극이 아니면 태평양에 있었을 텐데, 거기에 있는 큰 고기에게 하나님께서 ‘너 빨리 가서 요나를 집어 삼켜라’ 했단 말이요. 어부들이 볼 때 어느 고기가 크지요? 고래가 큰 모양인데, 그게 고래라고 볼 때에 그 고래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요나를 집어 삼키러 가는데 그 때 당시에 고기 잡는 뱃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 고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간다고 그러겠어요, ‘저 고기가 저기서 논다’ 그러겠어요? 논다고. 그렇지요. 모르는 뱃사람들은 ‘아, 저기 고래가 가고 있다’ 하는데 고래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가는 거지요.

 

고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쏜살같이 달려가는데, 고래가 뭘 좋아하냐? 새우. 고래는 새우를 좋아하는데 이 새우가 무더기로 있는데 그 새우를 먹을 새가 없어요. ‘새우야 비켜라’ 하고 하나님 특명을 위해 달려가는 겁니다. 이 고래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명을 받았단 말이요. 그러니까 고래입장에서는 사적인 일을 볼 새가 없어요. 새우젓 그거 먹을 새가 없어요. 어린애들 동화얘기 해주는 것 같아요?

 

‘새우야 비켜라’ 하면서 쏜살같이 지중해로 가는데 시속 몇 킬로미터로 갔을까요? 아마 제트기보다 더 빨리 갔을 것 같아. 태평양에서 지중해로 가려면 대서양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한두 시간 갖고 되겠어요? 비행기로 가도 몇 날 며칠을 가는 건데. 이게 다 우리에게 계시를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그 때야 고래지만 현재적으로 여러분들이 깨달을 때는 하나님이 지시하는 사건 환경이 여러분들의 몸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이 고래가 여러분들 주변에서 멀리 있었던 가까이 있었던 하나님의 특명을 받았으면 여러분들에게 순간적으로 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 ‘아이, 좀 봐주십시오’ 그럴 사이가 없어요.

 

생각을 해봐요. 고래가 지중에로 가는 동안에 요나가 바다에 떨어져서 물을 먹고 배가 터지고 눈알이 팅팅 불어서 죽으면 그것도 고래의 책임이 아니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요나가 죽기 전에 고래가 빨리 가서 요나를 집어 삼켜야 돼. 요나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집어 삼켜야 돼. 그래서 신속히 달려가서 요나를 씹지도 않고 날름 집어 삼켰어. 사실 요나가 고래의 한 입에 들어갈 만도 할 거야. 고래를 보니까 사람보다 몇 배 큰 것도 집어 삼키겠대.

 

세상에는 기적도 있고 희한한 일도 많은 거요. 엄마 뱃속에서 배가 붙고 머리가 붙어서 나오는 애도 있고. 이 세상에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일들이 많아요.

 

성경에 보니까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며칠을 기도했다고 그랬지? 3일 동안 기도했다고 그랬어요. 일반 이치적으로 따지면 이건 거짓말이지. 이게 무슨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의 옛날얘기 같으나 그 속에는 우리에게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게 있다.

 

3일 동안 기도할 때 그냥 얌전하게 기도했겠어요? 상상을 해봐요. 고기 뱃속이 얼마나 끈적끈적 하고 미끈미끈 하겠어? 한편 3일 후 요나를 토해낼 때까지 그 고래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을까?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갈 때 손톱이나 깎고 들어갔다면 모르지만 손톱이 길어서 들어갔다면 기도하면서 고기 뱃속을 다 할퀴어놨지 뭐. 산에 기도하러 가서 나무뿌리 뽑는다고 하는 식으로. 그러니 고래가 얼마나 고통을 당했겠느냐?

 

생각을 해봐요. 속이 좁아터지고 게을러터지고 무디고 지혜롭지 못하고 제 고집만 부리는 못된 나를 보면 안 믿는 사람도 밉단다고 천리만리 도망을 가는 판인데 이런 나를 그대로 하늘나라에 데리고 올라갔다가는 그곳이 천국이 되겠어요, 지옥이 되겠어요? 지옥밖에 더 되겠느냐?

 

그래,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사람 바로 만들어 주려고, 그것도 최고의 고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고 늘 간섭하시고 사건 환경을 주고 그러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구 사랑을 느낀다면 죽을 때까지 감사한 건 말로 다할 수가 없지요.

 

어느 부모가 나에게 그런 신경을 쓰겠느냐? 부모들은 고작 해봐야 ‘가서 돈이나 벌어와라’ 하고, 부모 눈에 보기 싫으면 상소리나 하고 그럴 테지. 그렇지 않겠어요?

 

도둑부모는 자식보고 뭐라고 그러겠어? 도둑질 해 오라고 그러지. 노래 잘하는 부모는 자식보고 뭐라고 그러겠어? 노래 잘 부르라고 그러고. 그러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들을 보고 뭘 잘하고 오라고 그러겠어? ‘내가 있는 이곳을 너에게 주마. 그러니 너는 어찌하든지 지혜지식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부지런히 날 닮고 오너라’ 그렇게 되어있단 말이요.

 

우리는 기본구원 얻은 것으로만 만족치 말고 어떤 일을 만나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계속적으로 구원을 입고 나가야 된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너희들은 눕든지 일어나든지 자든지 깨든지 어떻게 살아라? 주를 위해서 살아라.

 

이 말이 듣기가 고통스럽습니까? 이 말이 고통으로 들립니까? 아니지요. 모르고 믿는 것이 고통스럽고, 모르고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거지 알고 깨닫고 살면 살수록 예수 믿기가 그럴 수 없이 편하고, 마음이 그렇게 행복하고 한 겁니다. 우리를 그렇게 해 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기도 올립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우리가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어떤 면은 좋은 점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대부분 보면 좋은 점은 별로 없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저희들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에 비춰서 자신을 생각해 볼 때에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사랑으로 저희들을 불러주시고 나를 당신처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셔서 움직인다고 하셨으니 이제 저희들이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그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마음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고, 저희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대로 지음을 받은 자이오니 어찌하든지 그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희들을 계속 권고해 주시고 간섭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극진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하나님의 성품을 입고자 하는 당신의 백성들 머리 위에 영원히 같이 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http://909.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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