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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아뢰라

빌립보서 최용우............... 조회 수 1521 추천 수 0 2014.07.21 16: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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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4:6-7 
설교자 : 정근두 목사 
참고 :  

감사함으로 아뢰라

빌립보서 4:6-7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끊임없는 염려 속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자주 기쁨을 빼앗기는 이유는 타인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달리 말하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횡포로 인해서 우리는 자주 염려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자주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는 초대교인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약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3, 4편을 보십시오. 이 주제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어떤 면에서 어떻게 누워 쉬며 잘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누워 자고"라고 고백합니다.


누구나 누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잘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원수들과 곤란과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에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아침에 건강한 몸으로 안전하게 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문제는 성경 많은 부분의 주제이며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이 문제만큼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신분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예수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읽고 찬송도 부를 수 있습니다. 보통 때는 "모든 것을 믿고 신뢰하며 산다"고 입버릇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리해지고 절망에 빠지게 하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며 찬송하는 삶을 사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론과 현실은 거리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시험이 닥쳤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여러분에게 연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때 여러분의 믿음이 어떤 가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직장에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아이가 시내에 배정을 못 받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례적인 검진결과, 다시 정밀 검사를 받으라는 통고를 받습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암이라는 판정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내몰릴 때 세상 사람들과 여러분이 다른 점이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평안과 위로를 받기 위해서만 아니라 전도의 기회를 위해서도 신앙인의 차이가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사영리"에 처음부터 썩 관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 표정과 마음 상태에 대해서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평안과 침착함과 마음의 평정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들을 바라보고 우리의 말을 기꺼이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 자신이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도 바울이 환경과 여건의 횡포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그 구조가 복잡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킬 때 어떤 약속이 있는지 각각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바울 사도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부정적인 명령을 먼저 하고 긍정적인 명령을 뒤에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염려하기를 중단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면 우선 "염려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걱정으로 사로잡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신경을 쓰며 속을 끓이며 안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조바심을 내지 말며 안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은 우리들에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사태평하게 지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생활을 위한 사전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거나 상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게으름을 격려하지는 않습니다. 동양문화에서와는 달리 성경적 서양문화에서는 게으름을 칠거지악의 목록에 올립니다.


데살로니가에 보낸 바울의 편지를 보십시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살후 3:10). 아주 단숨에 짧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 말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한다"는 말은 삶을 위해서 미리 지혜롭게 계획하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미래에 대해서 또 현재에 대해서 근심, 조바심과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피하라고 합니다.


왜 염려를 피하라고 했을까요? 세상적인 염려는 우리들의 영적인 힘을 약화시키고 세상적인 염려는 우리의 영적인 기쁨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려고 해도 염려로 인해서 주춤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염려 때문에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할 우리의 생각과 기도가 오히려 끌려 내려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자리에 앉아도 우리의 마음이 다른 데로 헷갈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염려는 좋은 씨가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중의 새가 집어먹는 것과 같습니다. 앉아서 듣는 것 같이 앉아 있는데도 염려하는 생각이 있으면 들리는 즉시 사라져 버립니다. 염려는 우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에,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염려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하며 하나님 안에서 축복을 발견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기쁨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서 염려를 몰아내어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그 때 세상 사람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경을 쓰고 속을 끓이는 근심의 상태에 빠져듭니까? 그 모든 것은 마음과 생각의 활동에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이 근심의 상태, 이 염려와 조바심을 초래하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삶 안팎의 많은 문제들을 다스릴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근심의 상태는 어떤 면에서 여러분 자신의 통제밖에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며 여러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근심 상태에 빠졌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근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를 회상해 보십시오. 잠만 잘 수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온 세상을 다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은 여러분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단순히 감정의 좌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마음은 인격의 핵심적인 자리입니다. "생각"은 사고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은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이 걸릴 때 우리의 이성은 곧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 사랑 그 자체가 근심의 근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아픈 사람에 대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심과 생각뿐 아니라 상상도 자주 근심을 일으키는 요인이 됩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히게 되더라도 그것뿐이면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기에 불길한 상상이 개입하면 이런 저런 생각에 시달립니다. 이런 저런 상상에 몇 시간씩 시달리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그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조치를 취해야 할꺼야"라고 우리의 생각은 정리합니다. 마음과 생각은 우리 속에 있으나 우리가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고 있습니다. 이 근심 상태에서 우리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소비합니다. 이런 상태에 빠질 때는 속수무책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습니다. 말하고 싶지도 않고요. 어떤 때는 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문제를 가지고 혼자 계속 생각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도할만한 힘이 나질 않습니다. 남에게 영향을 끼치기는커녕 우리 자신도 주님이 주신 기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 접어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근심을 처리하는 심리학적 방법과 기독교적 방법은 확실히 서로 다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리학적인 과정을 가지고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앙은 실제로 위기를 당할 때에 무너지고 맙니다.


염려에 빠져들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까? 단지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이나 심리학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충고대로 자기 감정을 억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충고는 보통 사람에게는 별로 유익하지 않습니다.


누가 걱정을 하고 싶어합니까? 사람들은 걱정을 그칠 수 없으니까 계속합니다. 걱정하지 않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가 않는 것이 우리 문제 아닙니까? 그것은 마치 술을 끊을 가망성이 없는 주정뱅이에게 술을 끊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술을 끊을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이 없습니다. 무력하게도 욕망과 습관의 사슬에 굳게 메여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왜 근심하십니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자주 듣는 충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네, 하지만 염려는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문제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근심하지 말라고 염려하는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만 말하는 것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말합니다.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걱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걱정해 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상식에 맞는 옳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걱정한다고 정력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근심한다 해서 상황이 달라질 수 없습니다"라고 충고합니다. 역시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다만 염려를 멈추게 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과 달리 바울은 무엇을 말합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권면에 이어서 이제 긍정적인 처방을 합니다.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해결책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염려 문제를 다루는 법을 정확하게 그리고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염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탄식하면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노력해 보았습니다. 기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그 평안은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한 명령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도록 특별한 권고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로 바울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기도와 간구를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기도란 어떤 것입니까? 기도란 포괄적인 용어로서 예배와 경배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문제들을 가지고 곧바로 간구 하려고 달려들지 마십시오. 특히 여러분이 근심으로 침울해 지기 쉬운 유형이라면 말입니다. 바른 순서가 아닙니다. 소원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예배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먼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크신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먼저 크신 하나님께 경배하십시오.


크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십시오. 당분간 여러분 자신의 문제는 잊어버리십시오. 그 문제와 더불어 시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음을 깨달으십시오. "기도"라는 말에는 대면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임재를 깨닫고 그 임재를 묵상하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기 전에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음을 깨닫고 그분의 임재 가운데 그분께 경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거기가 바른 시작점입니다. 기도 드린 다음 간구로 나아가십시오. 크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이제 여러분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 바른 차례입니다. 그때 그때 우리의 상황에 따른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자리로 점점 더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십시오. 한 가지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왜 우리의 기도에 감사가 꼭 필요할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고 무릎을 꿇고 있다면 차라리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원망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평을 가지고 간구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조금의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의문이나 의심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적극적인 이유들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께 나왔지만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염려가 있어서 기도의 자리에 나아오는 순간에도 여러분은 감사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곤경에 처해 있지만 구원의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새 삶을 주신 주님께 감사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어렵다 하더라도 과거에 받은 많은 축복들로 인해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이유를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무서운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카락을 다 셀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비록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기도로 부르짖을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로 감사합시다. 울부짖을 대상을 가진 우리는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결코 갈데 올데 없는 불쌍한 자들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텅 빈 상태로 머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이 세상 일과 이 세상에 대한 염려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염려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목이 마르다고 백성들이 아우성칠 때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포위를 당했습니다. 적군은 예루살렘을 멸절시키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내왔습니다. 왕은 이 통첩을 하나님 앞에 펼쳐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적과 같이 하룻밤을 자고나니까 그 수많은 군대는 다 물러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왕께 절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왕 외에 누구든지, 아무 신이든지 구하면 처벌하기로 법령이 선포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 다니엘은 늘 하던 대로 창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비록 사자굴에 던져지기는 했지만 거기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은 그 날의 최고 통치자를 통해서 칭송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이 <복 있는 사람>을 따라 요즈음 에스더서를 읽고 계십니다.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녀가 택한 길은 염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강구하되 온 민족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놀라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처방을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약속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염려케 하는 모든 일에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말끔히 제거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든 말든 우리는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평안을 허락받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환경을 초월한 평안을 약속받은 사람입니다. 환경과 상관없는 승리를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여러분들을 잠 못 이루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지키시리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평강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평안한 느낌을 가지게 해 준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결코 자기 암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기도하라. 왜냐하면 기도하는 동안에는 문제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일시적인 안정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운다면 그 생각이 모든 염려를 몰아 내어줄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도하라.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은 기도는 환경을 변화시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기도하고 우리의 구할 것을 아뢰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합니다. 평안을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기도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표현을 생각해 봅시다. 이 단어는 수비하다, 경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삶의 성벽과 망대 주위를 돌아가면서 지켜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파수병이 성을 지키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불안과 근심을 만들어 내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완전한 평강을 누립니다.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도 아니고 우리의 기도도 아니며 어떤 심리적인 작용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한 평강 가운데 지켜주십니다.


그러면 왜 이 평강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할까요? 여러분이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는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할 수도 없는 평강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러분이 이해할 수도 없는 평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 평강을 체험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울은 하나님의 평강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그분에 대해서 기억하게 하심으로써 역사하는 평안입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원수되어 죽었을 때도 하나님이 그처럼 사랑했다면은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 아니하시겠느뇨"(롬 8:28, 32).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어떤 주장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한 최상의 일을 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버리실 리가 없으시다는 것, 말하자면 우리를 중도에 내버릴 수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모든 지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지각을 초월한, 우리 생각으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얻을 수 있는 평강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구세군 대장을 지냈던 존 카펜트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딸이 동양선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는데 장티푸스에 걸려서 쓰러졌습니다. 부부가 기도를 하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하나님 고쳐 주십시오"라고 나오지 않고 "주께서 원하시면 주님의 뜻대로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기도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은 마침내 딸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존 카펜트가 자기 아내에게 말합니다. "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니까 아내가 답하기를 "나에게도 꼭 같은 평안함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것이 다 잘 되기 때문에, 대박이 터지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에 우리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안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서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스파포드라고 하는 분이 지은 것입니다. 대서양을 행단하는 아주 거대한 배가 첫 항해를 하기 시작했을 때 아내가 두 딸을 데리고 그 배를 탔습니다. 그처럼 자랑하던 배였지만은 어처구니없이 빙산에 부딪혀서 난파되고 두 딸들은 죽고 아내가 유럽에서 전보를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 다른 배를 타고 이제 그 사고지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 지점을 통과하면서 그에게 왔던 하나님의 평안을 시로 썼던 것이 오늘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470장 입니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평안해"라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끝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필 것은 이 약속의 포괄성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여러분을 염려하게 만드는 대상이 어떤 것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넘어뜨리고 불안의 희생제물을 삼아서 신앙생활과 복음전도를 가로막고 파괴시키는 그 병적인 염려를 모두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렇게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에 일어나는 커다란 혼란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편기자처럼 눕기도 하고 자기도 하며 이 완전한 평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은 택일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염려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일에 감사로 간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만사를 염려하게 될 것이며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의 문제를 초월하여 근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 감사함으로 여러분 모두 이 놀라운 평강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지각을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으로 한 해를 마감하며 새해를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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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 에스라 진정한 만족 스1:1-11  최장환 목사  2014-07-23 857
11019 느헤미야 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느2:1-20  최장환 목사  2014-07-23 1253
11018 잠언 정직한 자가 받는 축복 잠15:8-9  한태완 목사  2014-07-23 1575
11017 빌립보서 하나님의 평강 [1] 빌4:6-7  최종혁 목사  2014-07-21 1502
11016 빌립보서 생각 빌4:6-7  이훈 목사  2014-07-21 1260
11015 빌립보서 주안에서 누리는 기쁨 빌4:4-7  김곤주 목사  2014-07-21 2205
11014 빌립보서 그리스도 안의 참 평안 빌4:6-7  김곤주 목사  2014-07-21 1217
11013 빌립보서 기도와 간구, 그리고 감사함으로 빌4:6-7  김학진 목사  2014-07-21 2160
» 빌립보서 감사함으로 아뢰라 빌4:6-7  정근두 목사  2014-07-21 1521
11011 요한복음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 요15:1-8  한태완 목사  2014-07-21 2574
11010 마태복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나니 마5:6  한태완 목사  2014-07-20 1408
11009 요한계시 천국에 들어가려면 계21:1-4  한태완 목사  2014-07-20 1496
11008 로마서 믿음은 고백에 앞선다 롬10:9-10  강종수 목사  2014-07-20 1030
11007 히브리서 영원히 온전케 되신 우리의 대제사장 히7:26-28  민병석 목사  2014-07-19 862
11006 히브리서 생명의 보증이 되신 예수 히7:20-25  민병석 목사  2014-07-19 899
11005 히브리서 율법 외 별다른 제사장 히7:1-19  민병석 목사  2014-07-19 796
11004 히브리서 멜기세댁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히7:1-10  민병석 목사  2014-07-19 1326
11003 히브리서 멜기세댁과 그리스도 히7:1-10  민병석 목사  2014-07-19 1185
11002 히브리서 견고한 영혼의 닻 히6:17-20  민병석 목사  2014-07-19 1027
11001 히브리서 누가 약속을 받을 자인가? 히6:17-20  민병석 목사  2014-07-19 807
11000 히브리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히6:13-16  민병석 목사  2014-07-19 919
10999 히브리서 하나님이 기억해 두시는 것 히6:9-12  민병석 목사  2014-07-19 992
10998 히브리서 믿음에서 떨어지는 죄 히6:4-8  민병석 목사  2014-07-19 1170
10997 히브리서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 히6:1-3  민병석 목사  2014-07-19 1014
10996 히브리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 히61-3  민병석 목사  2014-07-19 633
10995 히브리서 죽은 행실에 대한 회개 히6:1-3  민병석 목사  2014-07-19 1020
10994 히브리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가 되라 히5:11-14  민병석 목사  2014-07-19 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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