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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합니까?

요나 궁극이............... 조회 수 1208 추천 수 0 2014.08.01 11:04:37
.........
성경본문 : 욘1:4-1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1장 4절-10절.

 

4절-10절: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사공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하나님 당신의 기준에 맞추어 살라고 하느냐? 꼭 당신 뜻대로만 하라고 하고, 당신 말씀대로만 살라고 하니 왜 그럴까? 그런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고집이 되게 센 것 같지요?

 

인간은 질적인 면에서 가치 평가성을 잘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가 말하는 그 의사와 뜻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왜 당신 고집대로 꼭 그렇게 하라고 하느냐?’ 그런 말을 많이 하게 돼요. 그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왜 인간이 꼭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되느냐? 왜 꼭 하나님 당신 뜻대로 하라고 그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 꼭 그렇게 느껴지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은 고차원이고, 우리 인간은 차원적으로 저차원이고, 질적으로 저질이고, 가치 평가적으로 저차원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 당신에게 좋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라는 거냐? 그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인간에게 건너와서 하나님 당신처럼 우리의 성품을 높여주기 위해서 당신의 뜻대로 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 말이에요.

 

인간이 이렇게 살던 저렇게 살던 자유입니다마는 그러나 자기의 자유대로 살아봐야 자기에게는 죽는 것뿐이고 손해나는 것뿐이고 고통스러운 것뿐이지 털끝만큼도 자기에게 이롭고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살라고 하는 거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임시적인 동행만이 아니고 영원적인 동행을 원하고 있습니다. 영원적인 이 동행을 위해서, 또 임시적인 동행을 위해서 당신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 물질계에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성이 수동적인 동행성이지만 신령계 천국에 들어가서는 영원하고 능동적인 동행성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은 임시적인 동행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의사적으로나 활동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영원한 동행을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가 하나님을 모르면 안 됩니다.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모르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냥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 정도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 말이요. 왜 안 되느냐? 그렇게 믿어나가면 그 속에는 하나님의 객관성이 없고 자기의 타락적인 주관성만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요나보고 니느웨로 가라고 그랬을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그 면을 요나에게 가르쳐 주려고. 성경에 보면 노아가 120년 동안을 방주를 지었는데 그 일의 시작과 끝이 있겠지요. 그러나 신앙 사상적으로 보면 12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이 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뭐지요?

 

노아 할아버지가 뭘 지었어요? 120년 동안을 방주를 지었어.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그 일만 했다고 생각을 말고 그 속에는 안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을 누구와 동행을 했지요? 하나님과 동행되어 120년 동안을 지내놓고 보니 무엇이 만들어져요? 무엇이 만들어졌다고요? 방주가 만들어졌어. 영적 신앙적으로 그렇게 보란 말이요. 그렇게 하나님과 120년 동안 동행을 하면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 방주다.

 

그래, 이 방주는 물에 가라앉았어요, 물 위에 떴어요? 떴다. 그래요. 하나님과 동행되어 살아왔을 때에 노아 할아버지에게 나쁜 게 있었습니까? 하나도 없지요. 그게 안 믿어집니까? 실감이 안 나요? 성경 속의 무슨 사역 이력 그 면만 단순히 보지 말고 그런 일을 하는 그 사람 속의 그 신앙심 정신 사상 그걸 보란 말이요. 그걸 봐야 그 결과가 나오는 거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 오늘날 기독자들은 결과만 보고 결과만 따먹으려고 그러지. 열매만 보고 열매만 따먹으려고 그러지 그 열매가 맺혀지고 길러지기까지의 무슨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그걸 안 하려고 그런단 말이요. 그걸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러니까 그거는 도둑놈의 심보지. 안 그래요?

 

노아가 그렇게 동행해서 만들어진 것이 방주로 만들어졌다. 신앙 사상적으로 그렇게 보면서, 그렇게 되니까 요나 할아버지의 먹고 마시고 사는 활동, 모든 이력은 물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물 위로 떴어요? 물 위로 떴단 말이요. 모든 것이 물 위로 떴어. 심판 아래로 들어간 게 아니고 심판 위에서 된 거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게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야. 옛날얘기처럼 들릴 테지. 그게 왜 안 믿어질까? 안 믿어지는 사람은 그게 믿어지는 사람을 보고 굉장히 어리석게 생각을 할 테지요?

우리가 성경에 보면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말씀을 하신 게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놓고는 누가 말을 하는가 하니 천사가 또 말을 이어나가는 것도 있고, 또 천사가 말을 실컷 해놓고는 ‘여호와의 말씀이다’ 또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하고. 그러면 이건 천사를 통해서 한 말이 되겠지요.

 

천사가 말을 해놓고는 ‘이 말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는 걸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닌 말도 있다고 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생각이 나게 하거든.

 

또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것도 있지요? 직접 말하는 게 있고, 천사를 통해서 말하는 게 있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도 있고. 이사야가 자기가 말을 죽 해놓고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런 경우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했지요.

 

또 때로는 짐승을 통해서 말씀을 하기도 했어요. 발람을 보면 나귀를 통해서 말을 했거든요. 나귀가 입을 벌려가지고 사람의 말을 했거든. 또 보니까 마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있고. 어디서 마귀를 통해서 말을 했지요? 마태복음 4장에 있지요?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마귀가 말을 했지요?

 

그러면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말한 그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러면 마귀와 상대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는 건 누구 말이야? 예수님이 마귀와 상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그 말은 누구의 말이요? 하나님이고. 그러면 예수님을 상대해서 마귀가 하는 말은 누구의 말이요? 몰라요?

 

그러면 마귀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그 말에 순종을 했어요? 안 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안 한 것이니 예수님도 믿음이 없지?

 

발람 선지자가 나귀를 타고 가다가 좁은 바위의 소로 길에서 나귀가 말을 했지요. 그러면 나귀가 한 그 말은 누구 말이요? 나귀 제 말이요, 하나님 말이요? 나귀 말이지? 안 그래요?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그래서 발람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까? 나귀의 말인데 거역을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러면 앞에서 말한 마귀가 한 그 말은 하나님 말씀이요, 마귀의 말이요? 마귀의 말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하나님의 말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요?

 

성경 구구절절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틀림이 없습니까? 성경 구구절절이 다 하나님 말씀이요, 아니요? 뭔가가 자꾸 뒤에서 잡아 당겨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확실하게 대답을 해요.

 

그렇다면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니 그 말씀을 구구절절이 다 순종을 해야 되지? 아니요? 그 참 이상하네. 어째 그럴까? 하나님의 말씀을 구구절절이 다 순종을 한다고 해도 인격적인 순종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성경 속에서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말씀을 찾아야 되겠지요.

 

이 성경이 그냥 독자적으로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러나 어떤 자가 이 성경을 가지고 설교로 전해줄 때는 누구의 말도 될 수 있다? 마귀의 말도 될 수 있는 거요.

 

여러분들이 직접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이렇게 될 거란 말이요. 그러나 일단 목사님이 성경을 보고 그 목사님의 입으로 통하여 나갈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딴 뜻으로 전하게 되면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안 되는 거지요. 그건 마귀의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계시성을 알아야 되겠는데 다윗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성령에 감동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진 말을 하는데 이놈의 마귀가 그 말을 자기 속에 집어 넣어가지고 성도들에게 향할 때는 하나님의 뜻은 없어져 버리고 자기 목적에다 맞춰서 성경구절을 이용했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그럴 때는 누구의 말이요? 마귀 제 말이다.

 

그러면 마귀 제 말이라고 하는 걸 여러분들이 어떻게 알지요? 하나님의 계시성을 아니까.

 

성경에서 여러 가지 계시를 말하는데, 첫째는 역사계시가 있고, 둘째는 형식계시가 있고, 셋째는 상징계시가 있고, 넷째는 영적 계시가 있고, 다섯 번째는 은밀계시가 있고, 여섯 번째는 의지계시가 있다.

 

마태복음 4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마귀가 주고받는 그 말은 다섯 번째인 은밀계시에서 그것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계시성을 모르면 인격적 결합이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목사가 자기의 목적달성을 이루기 위해서 성경구절을 들어서 말을 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갖다 붙이게 되면 목적달성이 빨리 완성이 된다 그 말이요. ‘목사 내 목적이다’ 그러면 누가 그 일에 열심을 내겠어요.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야 목적달성이 빨리 되지.

 

그러면 우리교회도 일을 빨리 크게 마무리 시키려면 뭘 하면 되겠어요? 성경구절을 이용하면 되지요. 그러면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거니’ 하고 열심히 하게 되지.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 물질이 있어야 되겠다’ 하는 건 사회의 무슨 회사를 운영하는 소리 같지? 예배당을 지을 목적으로 ‘성경에 성전을 지어라’ 그런 구절이 있거든요. 그런 성결구절을 들고 나와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라고 했으니 우리도 성전을 지읍시다’ 라고 한다면 이거는 누구에게 등용된 겁니까? 누구에게 등용이 된 거요? 하나님에게 등용이 된 겁니까, 마귀에게 등용이 된 겁니까? 마귀. 하나님의 목적대로 된 의사가 아니면 바로 자기 의사요.

 

교역자가 성도에게 구원목적으로 일을 시키는 건지, 아니면 어떤 종교적인 사건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일을 시키는 건지?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의사에 맞는 거지요? 구원목적으로 하면 사건은 자동적으로 되는 건데, 사건을 이루기 위해 일을 시키는 건 목적을 어디다 놓고 하는 거지요? 사건.

 

사건을 이루어 놓은 그 공력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믿음이 있던 없던 사건 이루어 놓은 그 공력을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가요. 그 공력 자체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요.

 

하나 물어봅시다. 자기의 힘을 50%를 기울여서 10층 집을 지은 사람이 있고, 자기의 힘을 100% 기울여서 5층 집을 지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느 사람의 공력이 더 크지요? 어느 공력이 더 커요? 힘을 50% 기울여서 10층 집을 지은 사람이 있고, 힘을 100% 기울여서 5층 집을 지은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공력을 본다면 어느 공력이 크냔 말이요. 처음이요, 나중이요?

 

그러면 물어봅시다. 공력이 뭐지요? 뭘 보고 공력이라고 그러지요?

 

어느 사람이 공력이 더 큰지 몰라도 돼. 그러면 공력이 큽니까, 하나님의 성품이 입어진 게 큽니까? 이에 대한 답은 쉽게 할 수 있겠지?

 

자, 그러면 ‘집을 몇 층까지 지었다’ 하는 것은 일단 뒤로 두고, 공력을 50% 기울인 사람하고, 100% 공력을 기울인 사람하고 어느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입은 거요? 50%요, 100%요? 첫째요, 둘째요?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입은 사람이 첫째요, 둘째요? 둘째. 그렇다면 공력은 누가 크지요? 공력은 첫째 사람이 더 크고,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입은 사람은? 둘째 사람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느 쪽으로 따질까요? 공력을 많이 이룬 것을 알아줄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입은 것을 알아줄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입은 거. 그러니까 두 번째 사람.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어느 쪽을 알아줘요? 공력. 그러니까 첫 번째 사람. 그러면 하나님은? 둘째 사람. 그렇지요?

 

공력이 크고 작고가 아니라 ‘무엇이 입혀졌느냐’ 하는 이게 문제란 말이요. 그런데 우리는 뭔가가 눈에 자꾸 쑥쑥 올라가고 어떻게 돼야 만이 그걸 자꾸 신앙으로 여기지요? 그런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자기는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머리로만 계산하고 있으면 안 되겠지요. 우리는 일을 하되 목적과 의사를 잘 심사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짐승이 한 말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으니 성경 전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을 갖고 있어요.

 

자, 그러면 발람 선지자 입장에서 볼 때에 나귀가 한 말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이 들어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러면 우리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이 들어있는 거지요.

 

그러면 왜 나귀의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성이냐? 그 이유는 그 말속에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귀의 그 말에서 뭘 붙들어야지요? 성경말씀 속에서 뭘 붙들어요? 하나님의 인격성을 붙들어야지요. 그 말씀에서 계시된 그 속의 하나님의 인격을 붙들고 순종을 하면 여기에는 구원(성화)이 입혀진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속에 생명적인 것이 들어오면 내 속에 있던 사망적인 것은 나가게 됩니다. 거룩한 것이 내 속에 들어오면 내 속의 거짓 것은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 올립시다.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는 거룩한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을 사랑해 주셔서 세상 끝 날까지 저희들에게 여러 가지 간섭을 통해서, 저희들은 또 하나님의 뜻을 의사를 바로 깨달아서 잠깐 동안의 나그네 생활을 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옳은 성품을, 구원을 잘 입고 갈 수 있는 복스러운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에는 너무나도 거짓 것도 많고, 악한 것도 많고, 비진리적인 것도 많고, 이질적인 것도 너무나도 많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방에 유혹물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명철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총명한 자요 슬기로운 자요 성품과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참 실속 있는 귀한 당신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궁하고 극진한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충만하심이 당신의 백성들 머리 위에 영원히 같이 할지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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