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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트] 일상적인 기도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터............... 조회 수 2176 추천 수 0 2008.08.25 2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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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 / 송준인 역   두란노)

<<<<일상적인 기도 >>>>>>

   "인생의 가치와 흥미는 눈에 잘띄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의
    그 엄청난 가치를 인식하며 그것을 해나가는 것이다."
                            (떼이야르 그 샤르댕(Telihard de chardin)

     오늘날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일종의 내적 분리 속에서 살고 있다. 마음 한구석 작은 곳에 경건 활동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는 나머지 생활에서는 전혀 영적인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는 이런 생활 방식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 있는 모순을 보지 못한다. 지금 기독교의 문제는 영성이 5퍼센트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는 데 있다.
     이 현대적인 문제점은 일상적인 기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 일상적인 기도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들을 기도로 바꾸는 것이고, 둘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셋째는 생활의 일상적인 체험을 하면서 내내 기도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의 신성함

     나의 어머니 마리 템퍼런스 포스터 (Marie Temperance Foster)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내가 십대였을 때 어머니는 중년이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갑작스럽거나 극적이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는 단지 걷는 데 어려움을 느끼실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병명이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머니의 병은 천천히 악화되어 갔다. 때때로 어머니께서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루를 청소하시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조그만 카페트 조각을 닦느라고 애쓰다가 소파에 몸을 기대곤 하셨는데, 곧 지치셨다. 얼마간 쉬시다가 다시 일어나 다른 카페트를 계속해서 청소하셨다
     어머니의 상태가 더 악화되자 우리 삼 형제는 일상적인 가사를 떠맡았다. 사실 그 일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언제나 우리를 격려해 주셨으며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 불평이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누워만 있게 되셨을 때 우리는 거실에 병원 침대를 설치했다 이 무렵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드린 기도 중 하나가 어머니의 쾌유를 위한 기도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쾌유하지 못하셨다.
     얼마 안 있어 나는 천 마일이나 떨어진 대학에 다니느라 집에서 나와 따로 살았다. 어머니께서는 병원에 계셨고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의료진이 어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고 말하는 통에 나는 그 해에 세 번이나 집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매번 어머니는 조금씩 원기를 회복하셨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똑 같은 상황만이 그저 반복되곤 했다. 마침내 형과 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통보를 받기로 한 것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나는 집으로 갔다. 어머니께서 알기나 하셨을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개월 동안 어머니를 찾아뵐 때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꼼짝도 안하시고 말씀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내가 찾아뵈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께서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시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너무도 오랫동안 임종 직전의 순간에 계셨기 때문에 밤을 새워 간호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하나님의 천사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어머니 곁에 없었다. 어머니는 혼자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의 운명은 너무나 조용하고 평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삶 대부분이 평온하고 평범했다. 극적인 사건이나 커다란 뉴스 거리나 아슬아슬한 모험도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시다가 평범하게 돌아가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두 가지를 모두 잘하셨다. 즉 아버지를 몹시 사랑하셨으며 자녀인 우리도 몹시 사랑하셨다. 어머니는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시면서도 우아함과 온유함을 지니셨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어 가면서도 고결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셨다. 몸을 가누지 못하시면서도 인내와 용기로 사셨던 것처럼 죽음도 그렇게 받아들이셨다. 어머니는 일상적인 것의 신성함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일상생활 속에 계시는 하나님

     성경은 거침없이 이렇게 주장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1,31). 그 후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그의 궁극적인 계시로 말구유에 탄생하심으로 이 실재를 한층 더 강력하게 하셨고 강화시키셨다. 목자들이 메시아임을 알아볼 수 있는 두 가지 표시가 강보와 구유였으니 그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 얼마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일인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창조와 성육신을 통해 위대하신 만유의 하나님께서 영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을 섞어 짜셨고, 거룩한 것들과 세속적인 것들을 조화시키셨으며 ,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신성하게 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나님은 거창하거나 영웅적인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 속에서 발견된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디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경건한 교향악이 되어야한다. 일하는 것과 노는것. 가정 예배, 성, 수면까지도 영원한 것의 거룩한 처소가 되어야 한다. 토마스 머튼은 우리에게 "피조물들의 거룩함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경외심"을 가지라고 강권한다.

행동으로 하는 기도

     예수님은 소위 블루 칼라의 일을 하면서 지상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랍비로서의 사역중에 하나님의 실재를 말씀하시기보다 목수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실재를 계속해서 입증하셨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직업을 기도의 방해 요인으로 간주한다. "일로 인해 마음이 분산되지 않고 시간이 좀 있다면 기도할텐데." 이것이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기도는 이미 꽉 짜여진 계획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일이 아니다. 일상적인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직업은 방해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큰 자산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의 비결을 배우는 것이 바로 일을 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직업이 기도의 자산이 되는 전적인 이유는 아니다. 우리의 직업이 기도의 자산인 이유는 우리의 일이 바로 기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행동으로 하는 기도이다. 화가, 소설가, 외과 의사, 배관공, 비서 , 변호사, 주부, 농부, 교사 등 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림으로 기도한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 : 31)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고이다.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십대였을 때 알래스카의 코체부라고 하는 곳에서 에스키모인들과 함께 여름을 지낸 적이 있었다. 내가 거기서 만난 에스키모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전체성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고 있어서 기도와 일 사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내가 코체부에 간 것은 나름대로 북극권 한계선 위쪽에 처음으로 고등학교를 세우는 일을 돕는다는 모험심에서였다. 그러나 그 일 자체는 모험이 아니라 몹시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느 날 나는 하수도를 내기 위해서 도랑을 파려고 했다. 얼어붙은 툰드라의 세계에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그때, 수많은 겨울을 나서 얼굴과 손이 가죽같이 질겨
진 한 에스키모인이 다가오더니 한동안 내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 뒤 그는 간단하지만 의미 심장한 말을 했다. "너는 도랑을 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구나." 그는 나를 격려하기 위해서 그 말을 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의 말을 잊은 적이 없다. 그 에스키모 친구 외에는 어떤 사람도 내가 그 도랑을 잘 파는지 잘못 파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때가 지나면 그 도랑은 덮여져서 잊혀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의 말 때문에 나는 전력을 다해 팠다. 왜냐하면 땅을 한 삽씩 뜰 때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중세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하나님만이 그것을 보신다는 사실을 알고 예술 작품 뒷면을 조각했듯이 순진하고 소박하게 나는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안토니 블룸(Anthony Bloom)은 이렇게 말했다. "기도가 의미를 갖는 것은 삶이 동반될 때뿐이다 삶이 뒤따르지 않고 기도와 삶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면, 기도는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면서 때때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일종의 정중한 서정시가 되고 만다. " 우리의 손과 마음으로 하는 일은 곧 행동으로 나타나는 기도이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헌물이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에서 가장 멋진 대사 중 하나는 아마 올림픽 주자인 에릭 리들(Eric Liddell)이 그의 누이에게 했던 말일 게다.  "제니 , 나는 달릴 때 하나님의 기쁨을 느꼈어." 이것은 우리가 소설을 쓰고 있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건, 모든 직업 속에 스며들어야 할 실재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갖게 되는 때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이다. 미켈란젤로 같은 예술가나 엘리어트 같은 시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들의 일이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증나는 일이라든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 세속적인 일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런 것들이 어떻게 기도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질서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많이 발견하는 때는 바로 구정물통을 다루는 일과 같이 우리가 혐오하는 일을 할 때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좋은 느낌을 가져야 한다거나 뜨거운 열정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선한 일이 아버지께 기쁨을 드린다. 심지어 우리에게 무의미하고 마음이 가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질서 속에서는 매우 귀중하게 여겨진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볼트에 너트를 끼우는 일을 끊임없이 한다면, 그 일은 하나님의 보좌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올라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노동을 기뻐하신다
     당신은 내게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일을 좀 지나치게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도 알다시피 그것은 일에 대한 개신교적 가치관일 뿐이지 않은가?" 아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은 타락 전에 있었고 '이마에 땀이 흘러야' 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타락에 대한 저주였다. 즉 일의 결과와 거기에 드는 노동의 양이 똑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그 저주의 내용이다. 사실 우리에게 대한하나님의 은혜의 가장 분명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노동의 결과가 우리가 하는 일의 양에 비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 이유는 창조적인 노동 활동에 종사할 때 창조주와 가장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또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자리가 없거나, 실직이나 퇴직한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은 어떻게 일상적인 기도를 드리는가?" 우리는 취업 가능한 기술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모두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노동의 가치를 보수로 결정짓지 않는다 설사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나 기회가 단지 나무토막 치우는 일만을 허용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해야 한다.
또 당신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온전하고도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은 모른다 분명히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어떤 정해진 법칙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나는 노동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형상의 반영이라 보고 또 그렇게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천국 복들의 일부가 기쁘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일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

     장 니꼴라그로우가 소위 '행동의 기도라고 부른 것을 실행할 때에도 우리는 일상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행하는 모든 행동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이며, 그러할 때의 기도는 말로 할 수 있는 기도보다 훨씬 더 나은 기도이다. "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힘껏 일하는 일상 생활의 모든 활동이 곧 행동의 기도이다 자녀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기 위해 절약하고 저축하는 것, 비 오는 날 아침에 다른 사람들을 차에 태워 제시간에 출근시키려고 일찍 출발하는 것, 친구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는 것, 몹시 피곤할 때 밤늦게 걸려 온 마지막 전화에 응답하는 것, 이러한 것들과 이와 유사한 많은 것들이 바로 삶으로 하는 기도이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는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모든 것이 기도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일상 생활의 평범한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일상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크레용으로 벽에다 그린 낙서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그 낙서들은 혹시나 마음의 벽에 글씨를 쓰시는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닌가?
     기다리는 것도 일상적인 시간에 속한다. 우리는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한다. 수속을 끝내고 나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고,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졸업을 기다릴 수도 있고, 승진을 기다릴 수도 있다 퇴임을 기다릴 수도 있고, 죽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우리의 기다림을 하나님께 드릴 때, 기다림 자체도 기도가 된다.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고요함과 행동, 들음과 결심 따위의 삶의 리듬과 접촉하기 시작한다. 그 리듬은 하나님의 리듬이다. 우리가 인내와 수용과 만족을 배우는 것은 바로 일상 생활과 평범한 일 속에서이다 성 베네딕트가 수도원을 찾아온 사람에게 그 수도원에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하는 기준은  '과연 그가 있는 그대로의 생활에 만족하는지, 지나친 요구 사항은 없는지, 그리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에 만족하는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나는 이처럼 '과도한 요구 없이 만족하는 삶" 에 매력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협박을 통한승리' 가 시대의 질서인 세계에서, 독단의 폭정에서 자유한 사람들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관리하거나 어떤 일을 하도록 시킬 필요도 없이 사람들을 그저 있는 그 위치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마음이 끌린다. 나는 그들 주위에 있는 것이 좋다. 그들이야말로 아무런 조종 없이 내 속에 있는 최선의 것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생활 중에 겪는 일상적인 체험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다. 신문을 집어 들고 엄청나게 큰 결심을 해야 할 세계의 지도자들을 위해 그들을 잘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신속하게 드릴 수 있다. 학교 복도나 쇼핑 센터에서 친구들을 만나 잡담을 나누다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상황이 허락하는 대로 소리를 내든 내지 않든 그들을 위하여 신속히 기도할 수 있다. 동네에서 조깅을 하다가도 이웃에 사는 가족들을 축복해 줄 수 있다. 때로는 태양과 비와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정원을 가꾸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일상적인 체험을 통한 일상적인 기도의 재료이다.

거룩함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가정에서 생겨나는 기도가 아마 '일상적인 기도' 의 가장 보편적인 표현일 것이다. 에드워드 헤이즈(Edward Hays)는 그의 저서 「가정 교회를 위한 기도집 (Prayers for the
Domestic Church )」에서 크건 작건 모든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기도의 모범들을 제시하고 있다. 거기에는 자동차를 위한 축복의 기도와 폭풍우나 위험의 시기에 보호를 구하는 기도 및 편부나 편모의 기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가정 환경에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거룩함이 가정에서 이루어짐을 배우게 된다. 가장초기 형태의 제단은 화로여서 그 불꽃이 집안 중앙에서 활활 불타올랐다. 오늘날도 가정의 식탁이 의미 있는 제단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음식이 차려지고 가족들 개개인의 크고 작은 생활의 경험들을 모두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제사장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또 한 가정에 기도처를  만들 수도 있다. 기도처는 묵상과 칩거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집이다. 옛 러시아에는 마을마다 '푸스티니아(poustinia)'라고 하는 은신처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마을에 그런 종교적인 성소가 없다. 그래서 가정마다 그러한 곳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더욱더 절실한 것이다. 동굴이든, 서재든, 다락이든 상관없다. 가정 내에서 좀 조용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능하다. 그곳이 기도처로 사용될 때는 나머지 가족들에게 출입 금지 구역으로 알려져 있으면 된다.
     부모 중 어느 한쪽만 있는 가정은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종종 색다른 공동체  구조를 필요로 한다. 여러 가족이 정기적으로 만나 애찬을 나누고 함께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독신 가정이나, 편부 편모가정, 자녀가 없는 가정과 핵가족 등이 서로 함께 함으로써 모두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어떤 가정들은 '가정 제단,' 즉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경험함으로써 도움과 힘을 얻어 왔다 또 어떤 가정들은 그런 모임을 갖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실시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그런 모임을 갖지 못하는 데 상당한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대체로 가정의 신앙심 결여보다 문화적 양상의 변화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농경 사회와 대가족 제도가 뚜렷하고 식사를 위한 모임과 야간 활동이 흔했을 때, 이런 종류의 가정 제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 있어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우리는 지금 도시 환경에 살고 있고 소가족 제도 아래 살고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의 대부분을 간이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거나 동일한 저녁 시간에 각기 발레 교습을 받고 축구 연습을 하며 사친회로 모이는 데 만족하며 보낸다. "어떻게 해야만 할까?"라는 질문에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하라"는 대답 밖에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갈 때 축복 기도를 하고, 돌아올 때 감사 기도를 하라. 십대 이전에는 밤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특히 필요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과 잠든 후에 두 번 기도해 줄 수 있다. 그 날 받았던 정신적 충격의 치유를 위해 기도할 수도 있고, 긴 밤과 그 다음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할 수도 있다.
     초대 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관습 하나는 자녀들이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버지께 복을 빌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 관습에 가부장적 성격이 보여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부모와 조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복을 빌 수는 있다. 자녀들을 무릎에 앉혀서 책을 읽어 주고 한사람 한사람씩, 그리고 모두를 위해서 심사숙고하여 복을 빌어 주라. 때때로 자녀를 흔들어 재울 때 자장가를 부르며 복을 빌 수도 있다.
     십대는 적응이 필요하다. 십대들은 대개 자기 방에 누가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의 몸에 손이 닿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가족간의 기도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애정이 넘치는 기도의 본질이 종종 변화되어야 한다해도 당신은 그들을 위해서 늘 마음속으로 기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바뀌는 것을 직접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은 점점 더 자녀를 독립시키는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편에서 감정적인 탯줄을 끊어 버리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종종 이때는 긴장의 시기다. 왜냐하면 십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의 믿음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재확인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그것을 거부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우리집 두 사내아이는 모두 십대 시절에 우리와 다른 교회에 다녔다. 그 이유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앙 경험을 체득하기 위한 정서적 공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당신에게 십대 자녀가 있다면 한마디 격려해 주고 싶다. 나는 그 시기가 종종 혼란한 시기임을 안다. 그것은 마치 일련의 급류를 지나가는 고무보트와 흡사하다. 그리고 나는 마치 급류가 곧장 무서운 폭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대개 그 강에는 폭포가 없다. 그리고 그 반대편은 물살이 느리고 조용하다. 여하튼 우리는 자녀들이 급류를 통과할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급류가 끝난 후에도 그 다음에 나타날 것에 대해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일상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삶의 공통된 모험

     우리 모두는 엘튼 트루블러드(D. Elton Trueblood)가 '삶의 공통된 모험' 이라고 부르는 출생, 결혼, 일, 죽음 따위를 공유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이러한 일상 생활의 평범한 체험들에 성례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다. 예수님의 탄생에서는 일반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이 영원히 연합되었다. 예수님은 갈릴리의 한 혼인 잔치에 기꺼이 참여하셔서 그 성스런 축제에 포도주를 더해 주셨다. 예수님은 어부들과 세리들, 그리고 다른 기업가적인 형태의 사람들과 사귀셨다. 또한 주저없이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래서 우리도 소망을 갖고 우리 자신의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견고한 기초로 인해 우리는 모든 일이 성스러운 일이며 모든 장소가 성스러운 장소임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즐겁게 노래한다. "이곳은 거룩한 땅이요, 우리는 거룩한 땅에 서 있다. 주께서 여기 계시며 주님이 계신 곳은 거룩하다. 이것은 거룩한 손이요, 주께서 우리에게 거룩한 손을 주셨다. 이 손을 통해 주께서 일하신다. 그러므로 이 손은 거룩하다. "

기도

     전능하시고 지극히 거룩하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보잘것없는 것들을 눈여겨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소중히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들에 관심을 나타내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돌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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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 기도해요 직장인의 기도문 file 양애숙 2009-02-07 3024
774 기도요청 <나팔소리>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기도 부탁합니다. 나비 2009-02-02 1590
773 각종기도문 [존 웨슬리의 기도] 오 주님! 최용우 2009-02-01 2597
772 세기의기도 [로욜라의 이나치오의 기도] 저를 당신께 바칩니다. 풍경소리 2009-01-30 2102
771 각종기도문 [김영봉] 겨울의 기도 [1] 최용우 2009-01-09 2056
770 기도요청 우리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 [1] 사랑님^^ 2008-11-24 2018
769 각종기도문 [성 어거스틴의 기도] 시간을 넘어, 시간안에서 file 최용우 2008-11-22 3303
768 기도자료 쉬지 않는 기도(단숨의 기도 = 예수 기도) 리챠드포스트 2008-10-26 2811
767 기도자료 마음의 기도 리챠드포스트 2008-10-26 2406
766 기도자료 묵상기도(반추기도. 거룩한 독서) 리챠드포스트 2008-10-26 2065
765 각종기도문 [마틴 루터] 자비를 구하는 기도 [2] 리챠드포스트 2008-10-26 2311
764 세기의기도 [포이티에의 힐라리의 기도] 제 언어가 비록 모자라고 최용우 2008-09-21 2169
763 각종기도문 [윌리엄 바클레이의 기도문] 감사의 기도 외 2 최용우 2008-09-07 5054
762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트] 무언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 2008-08-25 2920
761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트] 단순한 기도 리처드 포스터 2008-08-25 2061
760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트] 마음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 2008-08-25 2269
759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트] 묵상기도 리처드 포스터 2008-08-25 1840
»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트] 일상적인 기도 리처드 포스터 2008-08-25 2176
757 기도해요 하나님!그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정로즈메리 2008-08-23 1832
756 바울기도 영, 혼, 육에 깊이 뿌리 박힌 죄(원죄)를 없애는 회개 기도문 [1] 이명환 2008-07-26 3762
755 바울기도 기도모범 <찬양-경배-감사-회개> 다람지 2008-07-26 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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