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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트] 마음의 기도

기도자료 리처드 포스터............... 조회 수 2269 추천 수 0 2008.08.25 23: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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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리처드 포스터 / 송준인 역   두란노)

마음의 기도

                      "마음과 마음이 말한다"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

     마음의 기도는 친밀한 기도이다 그 기도는 어린아이가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랑의 기도요, 애정이 깃든 기도이다. 암탉이 병아리를 그 날개 아래 모으듯이, 우리는 마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에게로 모아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따뜻하게 돌봐 주시며 사랑해 주시도록 할 수가 있다(눅 13:34)

"내가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싶다"

     나는 누비이불이 깔린 침대에 누워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때 내린 결론은 설교 사역이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고 말씀을 잘 받아들였으며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온유하게 임재 하셨다. 내게는 한 가지 사역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어떤 지역 교회에 가서 주일 아침 설교를 하는 일이었다 그것만 끝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주님, 오늘 아침 이 회중들에게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내가 말씀해야 하거나 행할 특별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나는 설교를 늘 미리미리 준비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주 기도한다. 그것은 그 기도를 통해,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올바르게 초점을 맞추어 설교하도록 종종 지침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다. '그들에게 내가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싶다고 전해라."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라고? 그것이 무슨 말인가? 나는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나는 일어나서 내가 전하려고 했던 설교와 연결되는 몇 가지 생각을 간단히 적어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수년에 걸쳐 나는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미 체득했었다. 나는 예배 전에 성가대를 만나서 그들과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이런 생각을 나누었다 우리가 예배를 위해 기도했을 때 성가대원들 사이에는 거룩한 기대가 말없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배는 잘 진행되었다. 나는 설교를 끝내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기를 원하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간단히 나누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기다렸다. 그러자 만족할 만한 반응이 나타났다. 열두 명 정도가 일어나더니 하나님께서 각기 독특하게 그들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 주시고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때 나는, 더 헌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고자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어서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회중의 반정도가 일어섰다 나는 계속해서 헌신의 기도를 인도했으며 중간 중간 묵상 시간을 주어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시기를 기다렸다. 그 시간은 내내 훈훈한 열기로 가득했으며 모인 무리에게 용기를 주는 시간이었다. 그 과정은 예배로 계속 이어졌다. 나는 본래 장년 모임에서 좌담회를 갖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을 개개인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은 심장이 약하여 신체적으로 치료받기 원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 문제로 감정적으로 치료를 원하는 등 가지각색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점심 시간까지도 계속해서 마음의 상처들을 내어놓고 기도함으로써 은혜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오후에 나는 그 교회의 목사를 만났다. 그는 젊고 열정적이었으며 그가 속해 있는 교단에서 촉망받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방해받지 않을 조용한 곳에서 둘만의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함께 대화를 하는 동안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사실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전형적인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경험하고 있었다. 약 한 시간 동안 귀기울여 그의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경험하고 있는 일들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때가 거룩한순간임을 알았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마침내 나는 일어서서 그의 왼쪽 옆에 섰다. 한 손은 그의 등에 대고 다른 한 손은 그의 가슴에 대었다. 그는 내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깊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위해 15분 남짓 기도했다 대개는 묵상 기도로 하고 이따금씩 몇 마디 말을 섞어 가며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동안 그의 가슴에 댄 나의 손이 점차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끝났다고 느꼈을 때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내 손이 뜨거워진 것을 느꼈냐고 물어 보았다. "아, 맞아요, 목사님께서 손을 제 맨 살에 대고 아무리 문지르셨다고 해도 그렇게 뜨거울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가 말할 때 나는 다시 그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 손은 즉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거의 불덩이같이 다시 한번 뜨거워졌다. 나는 손을 댄 채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둘 다 그뜨거운 하나님의 역사에 놀랐다.
     나는 리차드 로울(Richard Rolle)의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The File of Divine Love )」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에서 로울은 마음이 뜨거워지는 이상한 체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그 마음의 뜨거움은 문자적으로 불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갑자기 나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그날 아침 내가 침상에 있을 때 받은 말씀이 서로 관련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순간까지 나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자한 것은 분명히 그 회중들을 위한 것이지만, 특별한 의미로는 이 좋은 목사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거기에 서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계셨다 그리고 피부로 와 닿는 뜨거움은, 곧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인자하심의 심오한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은혜의 표현이었다. 이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은 아주 오랫동안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롭게도 그에게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않겠노라"는 말씀을 실제로 확인시켜 주셨으며 사역 초기에 받은 깊은 상처를 치료하셨다. 내가 이 이야기를 당신과 함께 나누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마음으로 나누고 싶어하시는 갈망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 니꼴라 그로우(Jean-Nicholas Grou)는 이렇게 말했다. "기도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고,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는 것은 바로 마음의 소리이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도 마음이다."  우리도 아주 오래 전의 요한 웨슬리 처럼 우리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

시금석

     마음의 기도는 "아바" 기도이다.  위대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 6)고 했다. 마음의 기도의 시금석은 예수님의 '아바' 체험이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 현저하게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께서 체험하셨고 가르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깊고 개인적이고 친밀한 우리와의 관계이다. 물론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 13). 호세아서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로 묘사한다. 자식을 품에 안은 아버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 로 자식들을 이끄시는 아버지 , 그리고 허리를 굽혀 자녀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아버지로 묘사되어 있다(호 11:1-4).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모습으로만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머니라는 말도 사용하신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사66: 13).
     우리가 복음서를 읽을 때 깜짝 놀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모 같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전혀 새로운 개인적이고 친밀한 방법으로 부르라는 권유이다. 제자들은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그들의 요청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반응에 말문이 막혔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저 이렇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눅 11 : 2).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했던 충실한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같이 친근하게 하나님을 부른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
     아바( abba )와 이마( imma ) -아빠와 엄마- 는 유대의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다. 그리고 아바는 너무나 개인적이고 친근한 용어이기 때문에 온 우주의 위대하신 하나님을 지칭할 때 그 누구도 그 말을 감히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하신 것이다.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유대
문학을 다 찾아보아도 하나님을 아바로 부른 예는 단 한번도 없었다. "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님의 놀라운 친밀함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열두살 때 이미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의 육신의 부모님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눅2 : 49)라고 말씀하셨다. 18년 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고 올라오시는데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눅 3 : 22). 다시 변화산 위의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막 9 :7)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변화 산에서의 놀라운 변화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친밀감을 체험하셨을 뿐만 아니라 겟세마네의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체험하셨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 : 36)
     이것들은 물론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 실제로 예수님과 하나님의 깊고 친밀한 관계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사역 속에 깃들어 있다. 존 달림플(John Dalrymple)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계속적인 아바 체험이었다. "
     존재론적으로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절대적으로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계시는 동안 아셨던 아버지 하나님과의 그 친밀한 관계를 우리도 똑같이 누리도록 초청 받는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무릎에 앉아 그의 사랑과 위로와 치유와 힘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웃을 수도 있고 마음대로 공공연하게 울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 품에 안길 수도, 위로를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경배할 수도 있다.
     유명한대학원에서 일련의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 주내내 훌릉한 신학적인 토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한 여학생에게 주셨던 음악적인 재능을 일깨워서 그녀에게 '아바의 자장가' 라는 노래를 주셨다. 그 여학생은 그것을 악보로 만들어 나에게 주었다. 가사를 읽었을 때 내 마음은 감동되었다 나는 즉시 그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것이 단지 노래 한 곡이 아니라 전대학원 학생들에게 주시는 아주 특별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여학생에게 그 노래를 다음날 예배 시간에 불러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 다음날은 강의 마지막날이었다. 그녀는 고맙게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금요일, 의례적인 도입부가 끝나고,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말씀을 주실텐데 내가 아니라 바로 그들 중 한사람을 통해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그들에게 나누었다. 나는  그 노래가 바로 전날 지어졌는데 노래라기보다 기도이며 그것도 거꾸로 된 기도라고 설명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불러 주시는 노래였으며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만 되어 있으면 도움이 되고도 남았다.
     그 여학생이 마이크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는 수정같이 맑았다 우리 모두는 마음이 녹아 하나님께 경배 드렸다. 그녀가 부른 노래 가사는 매우 단순하였다. 그래서 닳고닳아 순진성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귀여운 아가야, 사랑스런 아가야,
내가 널 사랑하는 줄 너는 알고 있겠지.
귀여운 아가야, 사랑스런 아가야,
내가 네게 있음을 너는 알고 있겠지 .
귀여운 아가야, 사랑스런 아가야,
내 말이 진실임을 너는 알고 있겠지 .
귀여운 아가야, 사랑스런 아가야,
내가 널 사랑한단다

예, 주님, 제게 요람을 주세요.
제가 누울 크고 튼튼한 요람을 주세요.
예, 주님, 제게 요람을 주세요.
제가 누울 요람은 하나님의 손. 음, 음.

예수님 , 절 가만히 흔들어 주세요
밤새도록 가만히 흔들어 주세요.
절 가만히 흔들어 주세요. 음, 음.
주님의 손안에서 전 튼튼해질 거예요

     이 선남 선녀들, 바르트(Earth)와 니버 (Niebuhr)와 판넨베르크(Pan-nenberg)와틸리히 (Tillich)의 이론들과 오랫동안 열심히 씨름하던 사람들은 마치 마른 스폰지처럼 이 간단한 사랑과 애정의 말들을 빨아들였다. 일순간 거룩한 침묵이 강당 전체에 흘렀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가까워졌음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잠시 동안 그 가사의 내용을 음미했다. 확신컨대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내 모든 강의는 완전히 잊혀져도 이 단순한 노래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내주하여 기도하시는 성령

     마음의 기도란 과연 무엇인가? 아주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여 기도하시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기도의 세 단계를 말하였다. 입술의 기도, 지성의 기도, 마음의 기도가 그것이다. 이러한 범주화를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기도에 도달하게 되면 성령이 기도의 주도자가 되시는 수준에 이미 들어간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음의 기도를 만드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고, 그것을 계속하게 하시는 분도 바로 성령이시다.
     마음의 기도에 들어서면 우리는 우리 능력의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해도 말문이 막히고 만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고 애는 쓰지만 그 표현이 실재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달을 뿐이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개입하시는 곳이 바로 여기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양자의 영을 받아 그 영을 통해   '아바 아버지' 라 부른다(롬 8 : 17-26).
     조지 버트릭 (George Bunrick)의 말대로 우리는 마음의 기도를 통해 '존중하는 친구 관계'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과 가장 깊고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되면 "마치 태양 빛을 완전히 반사할 수 있는 고요한 연못의 물같이" 된다

마음 기도의 다양한 표현

     마음의 기도를 표현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마음만큼이나 무한하고 다양하다. 그러므로 성령의 이러한 역사를 너무 세심하게 분류하거나 구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성령께서 마음의 기도를 통해 자기 백성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보다 일반적인 몇 가지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성령께서 각 개인에게 주시는 특별 계시의 느낌과 말씀을 통해서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종종 '레마'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저 '말' 이라는 뜻을가진 헬라어에 불과하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실 때, 바로 레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마4 : 4). 마찬가지로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할 때, 역시 레마라는 단어를 사용했다(엡 6:17).
     성경을 읽을 때 사람들은 흔히 '말씀 속에 있는 특별한 말씀'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말씀 속에 있는 어떤 특별한 구절이 개인의 상황에 새롭게 적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때때로 나는 그런 경험을 할 때 과연 하나님께서 두뇌의 창조적인 요소를 통해 여러 가지 사상과 통찰력을 훌륭하고 새롭게 결합하여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시는지 궁금하다. 어쨌든
'하나님 말씀의 생동력' 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계셔서 우리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특별한 레마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 적용된다. 이런 경험을 자주 하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점점 더 하나님의 마음속에 깊이 이끌리게 된다
     글로쏠라리아(Glossolalia) , 즉 방언은 마음 기도의 다른 표현이다. 이 경험은 매우 흔한 것이며 20세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세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세대, 거의 모든 모임이 어느 정도는 성령의 이 은사를 경험해 왔다.
     글로쏠라리아를 사용해야 할 이유와 용도는 많이 있다. 그 중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 놓임을 받기 위함이다. 그것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영이 영을 감동시킨다. 우리가 우리의 이성적인 능력을 손상시키지 않아야 이성적인 것을 초월한다. 우리는 천상의 언어를 통하여 천상의 것들에 참여한다. 그러나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우리의 연악하고 더듬거리는 언어를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방언을 '기도 언어'라고 했다. 그 기도 언어에 대해서 내가 앞에서 한 설명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리다. 여러 해 전 어느 수양관의 '경건의 장소' 라 하는 소박한 기도실에 있었을 때였다. 나는 어떤 믿음의 친구와 함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마음의 기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그가 가르쳐 준 방법은 주로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라고 설명했다. 이윽고 나는 내 친구의 입에서 부드럽게 경배와 찬양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우리의 지각으로는 알 수가 없었으나 영적으로는 완벽한 의미가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경외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다. 그 친구는 내게 그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어떤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지금 나는 그 일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염병처럼 만연된 조작된 방언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아무 말도 소리내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오후 무언가가 내 영혼 속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그 후 며칠이 안되어 계속되는 기도생활의 일상적인 부분으로 글로쏠라리아의 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마음의 기도의 또 다른 표현은 때때로 '입신' 이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에 붙잡히는 체험으로서 잠시 동안 의식을 잃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무아경에 들어가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바닥이나 마루에 조용히 눕기도 한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체험이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거짓된 것이 많다) 언제나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체험의 결과로 영적 교제가 깊어지고 거룩한 사랑이 증가된다고 보고한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내적 치유를 체험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은사를 받아 보지 못했지만 이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 중에는 내가 기도해 주고 있을 때 바닥에 넘어지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매번 그들은 아주 평안하고 매우 안정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평화가 그들에게 임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영혼의 기도는 그 시간 계속해서 진행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영이 영과 통하는 기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거룩한 웃음' 도 마음의 기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성령의 기쁨은 높고 거룩한 환희의 웃음이 퍼져 나을 때까지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저 샘솟듯 솟아나는 것 같다. 때때로 이 기쁨은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중에 체험하기도 하지만, 모인 회중에게 임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웃음이란 것은 결국 공동체적인 체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웃는 사람들이 술 취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들은 취한 것이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한 것이다 이 체험은 중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중단되기를 원하겠는가? 그것은 성령께서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마음을 치유해 주시는 것이다. 종종 어떤 사람을 오랫동안 짓눌러 왔던 슬픔과 애통함이 은혜를 받고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거룩한 웃음은 좋은 의미의 전통적인 가가대소와 종류가 다르다. 하지만 먼 사촌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진정한 웃음, 진정한 기쁨은 다른 것들을 희생함으로써 생기는 값싼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늘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것은 우리를 치유하고 온전케 하며 우리의 기쁨을 위해 주어진다. 절대로 두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웃음의 심리와 현상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거룩한 차원은 단지 그 실재를 강화시키고 심화시킬 뿐이다. 그것은 기쁨과 감사로 받는 은혜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마음의 기도에 대한 예로 레마, 글로쏠라리아(방언), 입신, 거룩한 웃음 따위를 든 것에 대해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이 진정 기도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어떤 것, 즉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는 어떤 일이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거의 하는 일 없이 받기만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좋은 질문이다. 이제 최선을 다해 그 대답을 하고자 한다. 우선, 받는다는 것이 결코 나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전능하시며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될 때 분명히 우리의 참여는 보다 수동적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우리가 온전히 참여할 수 있는 때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입신한 경우에도 내적으로는 깊은 영적 교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여느 때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유한한 인간의 영이 완전히 민감하게 깨어서 무한한 우주의 영, 하나님의 영과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진실 되게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기도가 오직 무아경의 상태에서만 일어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종 하나님의 일들에 대하여 영적으로 뜨거워지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 사모하게 되며, 하나님의 길을 더 배우고 싶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 그날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더욱더 준비를 잘 갖추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거나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기대하거나 자녀나 배우자와의 시간을 몹시 기다리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의 기도의 일상적인 재료들이다

사랑의 반응

     마음의 기도는 사실상 우리의 마음에 대한 성령의 선행적 사역에 대해 우리가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 우리의 민감한 반응 또한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의 기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나누면서 나는 방법이나 기술을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은밀한 역사를 더 발전시키고,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더 증진시키자는 것이다.  귀용 부인은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마음의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기도하는 어떤 고상한 방법을 가르쳐 주지 마세요. 인간이 꾸며 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기도를 가르쳐 주세요."
     마음의 기도에 들어가는 첫 번째 방법은 단순한 사랑에 의한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하심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들어와 꾸밈없이 정직하게 하나님께 말하라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너무나 두렵고 너무나 사랑으로 충만한 나머지 말이 안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브레넌 매닝 (Brennan Manning)이 말한 대로 '수용된 사랑의 지혜' 를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사랑의 명칭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을 필요한 만큼 자주 계속해서 조용히 부름으로써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 속으로 다시금 불러들인다. 그런 사랑의 이름은 단순히 '아바, 아버지' 일 수도 있고, 스펄전이 하나님을 부를 때 즐겨 사용했던 표현으로 아가서에 나오는 '나의 사랑하는 자' 일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의 생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지면 당신이 불렀던 하나님의 그 특별한 이름을 단순히 부르기만 하라. 그러면 혼란했던 생각들이 없어질 것이다. 당신이 한 시간에 50회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를 50회나 한 셈이다.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과 애정의 말을 하라. 처음께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가되면 사랑의 언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도하다가 잠이 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마음 바로 옆에 있다는데, 잠자기에는 너무나 좋고 안전한 장소가 아닌가! 「미지의 구름( The cloud of Unknowing ) 」을 쓴 익명의 저자는 "만일 기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했다.
     "아바, 저는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는 기도는 완전한 신체 리듬의 기도이다. 이 기도는불과 네 어절로 되어 있어서 단숨에 쉽게 기도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비슷한 기도로 인도함을 받게 된다.
     우리는 물론 마음과 혼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차가워지고 굳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흘에도 감동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도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먼저 당신이 하나님을 초청하여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의 불을 붙여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을 드러내어 달라고 요청하라. 그러면 당신이 잠깐만이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될 때 그 고통은 다시 시작될 것이며, 당신을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 앞으로 다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당신에게 충분한 처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다. 당신에게 존단(John Donne)의 기도를 소개하고 싶다. 그 기도는 "삼위 하나님이시여, 제 마음을 두들겨 주옵소서"라는 기도다. 이것은 그가 쓴 소네트의 첫 행이다. 존단은 이 시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으로도 자기를 회개시킬 수 없었다는 점을 안타까이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자신을 사로잡아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주님,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깨뜨리고, 때리고, 태워서 새롭게 하여 주소서." 분명히 이것은 강력한 기도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도이다.

사랑의 장마비

     지금까지 마음의 기도를 설명하긴 했지만 나는 그 표면밖에 다루지 못했다. 아직도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이 많고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당신에게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므로 그래도 안심이 된다. 그분이 당신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예상치 못했을 때 갑자기 쏟아 붓는 장마비와 같아서 당신을 경이로움과 찬양으로 몰아가고 놀라움으로 입을 다물게 한다. 이런 일이 생기면 우산을 펴서 당신 자신을 가리지 말라. 오히려 아버지 하나님이 내리시는 사랑의 장마비를 흠뻑 맞도록 하라.

기도

     아바, 사랑하는 아바, 사랑이라는 말이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음을 아시지요? 용기라든가 믿음이라든가, 다른 많은 것들은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사랑이라는 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는 것이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듯합니다
오 내 마음의 포도주여 , 나를 주님의 사랑으로 취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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