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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시편 빛의 사자............... 조회 수 2090 추천 수 0 2014.08.09 08:31:05
.........
성경본문 : 시37:1-4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본문: 시편 37:1- 40

미국 보스톤에 가면 ‘켄모어 스퀘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켄모어’라는 재봉틀 공장에서 따온 것입니다. 외판 사원들 가운데 남들보다 두 세배씩 실적이 좋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원은 삼년간 일등을 했습니다. 사장은 많은 실적을 올리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사장에게 대답했습니다.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상품을 팔기위해 남의 집 문 앞에 서면, 제가 처음 결혼했을 때의 그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기쁜 얼굴로 그 집 초인종을 누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쁜 얼굴을 하면 보는 사람도 즐거워집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쁨이 넘쳐흐르는 사람의 상품을 사기 마련입니다. 말씀에 ‘항상 기뻐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기뻐하며 순종할 때 주님은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 22, 23)

본문의 시편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며 살아온 것이 다윗의 삶입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있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목동이었습니다. 양과 같은 동물하고 사는데 어떻게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어요? 또 청소년 때 다윗은 전쟁터에서 살았던 장군입니다. 청년 때는 사울 왕의 추적을 받았어요. 이 절대 군주가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그걸 피신 해 가지고 십 몇 년을 그렇게 유리방황하며 살았으니 그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번에 후세인은 8개월 숨어있는데도 저렇게 막 형편없는데 다윗은 그보다 열 몇 배를 숨어 가지고 지나는데도 늘 기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통일왕국의 기틀, 최고의 영토 확장, 시편 대부분 저술, 솔로몬 성전의 기초 마련 등 실로 다윗이 이룬 삶의 열매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평생 자신의 업적을 하나님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참된 위대함은 파란만장했던 일생에서 하나님으로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 안에서 쉬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그의 삶에 있는 것입니다. 왕이 되어 가지고도 기뻐할 수 있는 일이 있었겠습니까?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죠. 아들들이 사건을 저질러 가지고 남매간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형제간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온갖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누가 주는 기쁨입니까? 세상이 주는 기쁨입니까? 잘살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기쁨인 줄로 믿습니다. 그는 왕이 되어서도 이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왕이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습니까? 기쁨조도 몇 천 명이 있고요 금은 보물도 너무너무 많고요 예쁜 여자들도 한도 없이 많고요 대체로 임금이 되면 그런 데서 권력을 가지고 힘이 있고 부자는 그런 데서 기쁨을 세상 사람들은 많이 얻습니다. 다윗은 그런 데서 기쁨을 얻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부자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왕입니다. 얼마나 세계적인 지도자를 많이 만나서 날마다 잔치하고 즐길 수 있지마는 그는 먹고 마시고 즐기고 노는 그런 데서 기쁨을 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경외하는 데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생은 항상 기뻐하고 그의 일생은 항상 복되고 평화롭고 나라가 번영하고 발전하고 그의 성품은 늘 온유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의 마음은 늘 평화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원수도 친구로 만들고 적도 동지로 만들지, 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그렇게 늘 여유가 있고 평화가 있고 사랑이 늘 넘치는 것입니다. 온유한 왕이었습니다.

 여러분, 잘 되기를 원하시면 여러분들도 마음이 넓고 온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을 만들고 동지도 적으로 만들고 대적하고 살기 등등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적은 자든 큰 자든 절대로 그 사회에 가정에 평화가 없습니다. 다윗은 얼마나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만 배의 복을 받고 형통한 자가 되고 평화로운 국가가 된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4장 7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하였습니다.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두신 기쁨이 얼마나 풍성하고 온전한 것인지를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 보다 더욱 풍성하다고 고백합니다. 새 포도주는 다윗 시대 사람들의 기쁨과 재산 증식의 수단이며 삶의 즐거움의 원천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돈과 명예, 육체적 즐거움 등으로 대변되는 세상 모든 즐거움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한 즐거움을 능가하는 기쁨을 성도들의 마음에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곡식이나 새 포도주'로 결코 만족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참 만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쁨과 만족이야말로 농부가 곡식과 풍성한 과일을 수확하는 것보다, 어부가 만선의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 더한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주께서 내게 두신 기쁨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되는 것입니다.

또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시9:2)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라."(시33:1)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시35:9)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시104: 34)

하박국 선지자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8)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내가 여호와를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61:10)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명한 신앙 문답서에도 이런 질문과 대답이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희락의 종교입니다. 우리 앞서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들이 기록해 놓은 글에 보면 불교는 상갓집과 같다고 했습니다. 인생무상을 말하고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죽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죽음의 종교는 상갓집 종교입니다. 정말 나무아미타불입니다. (공 드려 해놓은 일이 허사가 됨을 의미) 유교는 무엇과 같은고 하니 제삿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밤낮 효도한다고 하면서 제사 지냅니다. 유교대로 살면 일년 내내 제사만 지내다가 세월 다 갑니다. 정말 유교는 제삿집과 같은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비교입니다. 기독교는 확실히 기쁨의 종교요, 희락의 종교입니다. 복음은 바로 행복과 기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과 접촉하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희락의 사람이 됩니다.

시편 1편 2절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12편 1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복이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잘 믿어 즐거움을 누리며 그리고 내 이웃을 위하여 좋은 일 하다가 선한 일 하다가 이 땅을 떠나서는 더 기쁨이 충만한 천국 가서 영원히 주와 함께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말씀은 여호와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의미는 여호와 그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만족이요 하나님 안에서 얻는 행복입니다. 히브리 언어의 축복이란 개념 속에는 "즐거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통해 얻는 만족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우주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이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 것입니다.

"엄마는 어린아이의 목자이니 아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어린아이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 그 엄마 안에 모든 아이의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말합니다. 아이가 목마른 것도, 배고픈 것도, 아픈 것도, 추운 것도 "엄마"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에게는 엄마 있는 것이 복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세상에 좋은 것을 다 주어도 엄마 없이는 기쁨이 안됩니다. 엄마 있을 때 장난감도 장난감이 되는 것이고 엄마 있을 때 초콜릿도 초콜릿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아는 불쌍한 것입니다. 고아의 얼굴에는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불쌍한 인생이 누구입니까?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왜 행복합니까? 우리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문제라도 가지고 가서 "주여"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은 아직도 신앙에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는 다니지만 여전히 고아의 상태에 있는 사람입니다. 기쁠 때 건강합니다. 기쁠 때 아름답습니다. 기쁠 때 행복합니다. 기쁠 때 능률이 오릅니다. 고전 음악의 대가들은 거의 다 신앙의 대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 하이든이 제일입니다. 그의 곡은 거의 다 기쁨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작곡 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의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나의 마음도 춤추며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기쁘기 때문에 기쁜 음악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 잘 들으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 기뻐하면 성공하고 하나님 기뻐하면 형통하고 하나님 기뻐하면 소원 성취한다 이것입니다. 자 여러분, 한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기뻐하면 아무렇게나 옷 입고 아무렇게나 행동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기뻐하면 예배 시간에 졸거나 흩으러 지는 몸가짐 있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고전음악을 하신 대가들은 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란츠 요셉 하이든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좋은 간증을 들려줍니다. 이 사람은 백곡 이상의 심포니를, 80곡 이상의 소나타를, 또 거대한 두 개의 오라토리오를 남겼는데 하이든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작곡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에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다시 말하면 곡이 좋아서 내가 기쁜 게 아니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지니까 좋은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이 기쁨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기쁨을 가지니까 악보가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는 이 하이든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기뻐하면 예배에서 성공자가 됩니다. 주일 성공자가 됩니다. 찬송 성공자가 됩니다. 전도 성공자, 감사 성공자가 됩니다. 헌신과 봉사 성공자, 그러면 그 인생의 성공자가 됩니다. 축복의 성공자가 됩니다.

2.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하였습니다.

1500년초 독일의 아이스레벤 성당에서 성가대가 성가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소년의 노래 소리가 문밖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지휘자가 잠시 연습을 중단하고 문을 열어 보았더니 거기에는 열 두 살쯤 된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너 거기서 뭐하고 있니?" "성가대원이 되고 싶어서 노래를 불러 보았어요."

"우리 성가대는 모두 어른들뿐인데 네가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소년은 이 질문을 받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습니다.

"네,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든지,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써 주실 거예요."

이 소년이 바로 평생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종교개혁을 이룩했던 마틴 루터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고 계십니까? 소년 루터와 같이 하나님을 위한 일에 마음의 소원을 가득 담고 있습니까? 진정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3. 우리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한 청년이 결핵에 걸려서, 상태가 자꾸 악화되었습니다. 의사는 공기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정리하라는 일종의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청년은 시골로 내려가 원두막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며 안정을 취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고 나면 쑥쑥 자라나는 수박 줄기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래서 하룻밤에 몇 센티미터나 자라는지 재보기로 하고는 수박 줄기 끝 부분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자란 수박 줄기의 길이를 재보니 무려 40Cm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청년의 마음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수박줄기를 하룻밤에 40Cm나 키우시는 부지런한 하나님이 수박보다 훨씬 귀한 자기를 죽게 내버려두실 리가 없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그 청년의 가슴속에는 기쁨이 넘쳤고 의사도 놀랄 정도로 병은 빠르게 치료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언제나 활력 있게 움직이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그 섭리를 기대하면서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잠 16:3절에도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너의 길"이란 말이 나오고 "너의 행사"란 말이 나오는데 길이나 행사는 인생의 모든 염려되는 일들과 알 수 없는 미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맡기라"는 말은 "굴리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 굴리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라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을 잘 들으십시오. 무거운 돌을 들고 가거나 지고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굴려 갈 수는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염려와 알 수 없는 미래를 내가 지고 가려 하면 그 인생은 말 할 수 없이 피곤합니다. 그러니 내 짐을 지시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위에 내려오신 예수님께 의뢰하면 쉽고 유쾌합니다. 이것이 신앙으로 얻어지는 안식입니다.

본문 5절 하반 절 말씀을 한번 따라 합시다.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여기 '저가 이루시고'란 말의 원 뜻은 '...에게로 돌린다'란 의미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나의 모든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나에게 돌려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얻는 은혜요 행복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염려거리를 하나님께 돌려보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신다는 말씀을 생각해보세요. 흥분됩니다. 정말 설레 입니다. 내 속에서는 근심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는 염려가 있습니다. 내 생각 속에서는 불안과 의심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돌려보냈더니 근심과 염려가 불안과 의심이 큰 축복이 되어 나에게로 되돌아 왔습니다.

본문 23-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 구절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해도 넘어질 때가 있지만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그처럼 교회를 잘 다니고 열심히 봉사해도 실패와 어려움은 생기지만 그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축복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40절)

찬송가 411장(구473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아 내 맘속에 참된 평화 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2. 이 귀한 평화 내가 받고 보니 모든 슬픔 사라지고 맘에 기쁨 넘쳐 주를 찬양하네 아 평화의 임금 예수

3. 주 날개 아래 내가 사는 동안 이 보배를 빛내리라 기쁜 그날이 와 주를 만나뵐 때 아 그 평화 영원하리

[후렴]

주가 항상 계셔 내 맘속에 주가 항상 계셔 아 기쁘다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찬송가의 가사대로 내 마음속에 있는 참된 이 평화는 어느 누구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에 구주가 되시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나는 살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나의 소망이시고 환난 때에 나를 구하십니다. 주님 없는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바위를 산꼭대기로 옮기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산꼭대기에서 밑으로 굴리기는 쉽고 유쾌합니다. 우리의 바위 같은 인생의 짐을 높으신 예수님 있는 곳에서 세상 속으로 굴려 보내면 그 인생은 재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본 시편 25절에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내가 여호와를 기뻐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선을 행함이 따라야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계속 누려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말뜻 속에는 선을 행하라, 기뻐하라, 맡기라 이것이 묶어져서 은혜의 사실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그에게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필요를 아뢰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모세가 백성의 문제를 가지고 회막에 나가기도 할 때, 출 33장에 보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며 말씀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하는 사이, 즐거워하는 사이는 함께 있는 것이요, 대화하는 것입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는 자꾸 만나려 하고 자꾸 대화하려 합니다. 애인 사이가 그렇고 친구사이가 그렇고 엄마와 딸 사이가 그렇습니다. 저들은 이야기를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다윗도 사무엘도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몇 시간이고 기도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좋아하면 그렇게 됩니다. 성도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여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로 이루고 어떤 것이든지 기도로 얻어야 합니다. 성도가 할 일 중에 제일 귀한 일은 기도입니다.

기쁨이란 무엇일까. 당신이 내린 기쁨의 정의는?

기쁨의 정의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기쁨이 채워져야만 비로소 그 기쁨은 강화됩니다. 그래서 선지자 느헤미야도 이것을 이해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느8:10).

강한 믿음은 주를 기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이 미국이 잘 사는 이유에 대하여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면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뉴욕주립대학 교수가 이 말을 했는데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면성은 해석을 하면 청교도 신앙정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정과 자손과 미래를 다 맡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앞에 보여주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청교도 근면성이라는 것은 바로 오늘 이 말씀에 나타나는 여호와를 기뻐하고,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맡기는 이게 바로 청교도정신의 근간입니다. 그들이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한국의 예수 믿는 성도들이 부지런하게 살고, 주님을 위해서 부지런하게 섬기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안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걸음걸이가 느립니다. 좀 빨라야 됩니다. 긴장이 있어야 되고 열정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몰두하는 면이 있어야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 말씀에 반드시 먼저 들어야 될 말씀은 불평하지 말라, 투기하지 말라,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두어야 여호와를 기뻐하는 믿음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잡초를 제거해야 곡식이 크듯이 우리 신앙생활에 잡초를 다스리고 관리할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방치하고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그 주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 열매를 맺어서 영광을 드러낼 것인데 잡초 때문에 못하고 있다 하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새로운 표어로 붙잡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면 여호와를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사실을 내가 알고 나 역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을 사랑할 때 기쁨이 됩니다. 사랑은 우리를 기쁘게 행복하게 합니다. 행복과 기쁨의 범위는 사랑의 범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마땅히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찬양해야 합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찬양하되 즐거움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보다는 못합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만 즐거워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이기에 힘들지 않으며 아무리 헌신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속에서는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다른 복은 필요 없습니다. 그분과 함께 하는 것만이 유일한 복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되 모든 수단과 기구를 이용하여 찬양하여야 합니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시33:2)

예수 믿는 것은 기쁨이요 사랑입니다. 기쁨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의 기쁨으로 인해 저절로 감사하면서 노래(찬양)하고 싶어집니다. 즐거움으로 예배드리고 입에서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느12: 43, 46)

6.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7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자는 참고 믿고 바라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 4- 7)

2차 대전 때, 나치의 수용소 벽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태양이 빛나지 않아도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외로워도 사랑이 존재함을 믿고, 당신이 침묵해도 당신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소리 없이 가장 멋진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결국 엄청난 절망을 엄청난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십시오.

어느 날,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왕후 이세벨의 보복에 관한 얘기를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의 한 동굴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왕상19:18). “엘리아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놓았다!” 그때 그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새롭게 일어섰습니다.

살다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영적 네비게이션입니다. 네비게이션은 다른 길로 가면 즉시 경로를 재탐색해서 새로운 길을 일러줍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그 상태에서 가장 선한 길로 새롭게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그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십시오. 그러면 영혼의 심지에는 새로운 불이 붙고 꿈과 비전의 성취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7. 베풀고 주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기뻐하며, 불우한 이웃에게 베풀기를 즐거워합니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 구절에서 ‘내가’는 다윗을 말합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목격했습니다. 그 사실은 의인은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고 그 자손이 먹을 것을 구걸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 믿으면 구걸하는 자가 되지 않고 주는 자가 될 수 있고, 주는 자가 되면 하나님이 더욱 축복을 주십니다.

초대교회 때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행 4:37). 그의 행위는 동료 교인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나 기쁘게 보셨겠습니까? 그처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쓰인 돈은 내 수중을 떠나지만 결코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오히려 큰 의미에서는 저축되는 돈입니다. 오히려 혼자만을 위해 꼭꼭 숨겨둔 돈이 바로 잃어버린 돈입니다. 주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확증하고, 이웃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결국 자신과 자손이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후하게 주는 삶을 꿈꾸십시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3:27-2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딤전6:18)

성도 여러분!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기뻐하고 온전히 의지하세요. 죄 사함을 받으세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기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사십시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기쁨이 없으면 비극입니다. 이 세상을 얼마나 살겠기에 한숨과 걱정 가운데서 살겠습니까? 슬픔 많은 세상에서 넘치는 기쁨을 얻어 여호와를 항상 기뻐하며 천국 생활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 평생을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행복 속에 살았던 다윗처럼 저희에게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풍성한 삶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루속히 내가 의지하는 예수님을 온 열방이 그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게 하소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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