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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8: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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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2.04.22 http://www.yullin.org(안양 열린교회) |
연약한 것을 담당하심
장애인주일설교(단편) Apr. 22. 2012 주일오전예배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으로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8:16-17)
Ⅰ. 본문해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병자를 고치시는 많은 사건들 속의 한 구절이다. 7장에서 끝난 산상수훈이 8장에서 마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수많은 병자들이 병 고침을 받는 장면들이 이어지고 있다.
Ⅱ. 병든 자를 고치신 예수님
복음서에 나오는 병 고침에 관한 많은 기사들은 그것 자체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다. 보다 더 큰 신학적인 틀에 이 병 고침의 기사들을 담아 보아야만 그 의미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Α.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림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에 꿈꾸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였으나 그 나라의 전범은 다윗왕국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고자 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세상 나라가 아니라 각 사람의 마음속에 복음을 통하여 오는 나라, 각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와 성령으로 역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굴복하는 사랑의 나라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이 보여 주고자한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이 워낙 상반되는 것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도입된 하나님의 나라의 현재성을 탁월한 방식으로 백성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것은 바로 강력한 하나님의 통치, 즉 예전에는 운명적으로 굴복하며 살던 모든 무지와 질병 그리고 고통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해결 받는 놀라운 사건들의 실현을 통하여 그 나라의 도래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애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 되고 또 하나님의 긍휼이 새롭게 임하는 새로운 시대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였다라고 하는 사실을 알리는 훌륭한 소재이다.
Β.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심
신약 성경에는 병자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이 병자가 항상 병든 사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대개 두 가지 카테고리로 사용된다. 하나는 현재적으로 육체의 질병에 있는 상태를 말하고(예, 혈루증을 앓는 여인,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등) 두 번째는 육체의 장애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적용해서 장애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중풍:마9, 손마른 사람:막3, 저는 자:마18)
장애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표준적인 해석은 장애를 언제나 죄와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데 이것의 대표적인 경우가 요한복음 9장의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한 해석이다. 자신이나 조상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 아이가 소경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눅13:13 꼬부라진 여자, 막2:12 중풍병자)
장애인들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기회를 가진 사람들로 대해주셨다. 이처럼 장애의 상태에 있는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장애를 죄와 불행, 앞으로 다가올 더 큰 불행의 전조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비성경적이고 미신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을 장애인들에게 실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장애인의 문제는 인류학적인 문제로 공통의 관심사로 다루어야한다.
Ⅲ. 장애인 문제의 신학적 기초
A. 창조와 인류사회
하나님은 흙으로 한 사람을 만드신 다음 두 번째 사람 하와를 만드실 때에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셨다. 이는 두 사람이나 그들이 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그 남녀의 생식을 통해서 어날 것이고 이것은 역시 몸에서 몸으로 태어날 것이다.
아담은 그 하와를 보며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다. 이것은 최고의 사랑 고백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표현이 부부관계에서만 사용되는 것이라고 여기나 이는 타락이후의 잘못된 인간의 감정으로 창세기 2장을 해석하는 결과이다.
사실 하나님의 인류사회를 향한 계획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류가 서로가 서로에게 이 고백으로 묶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랑의 질서들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혈육의 친소 관계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받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들 모두가 하나의 아름다운 연결을 이루어 일치된 사랑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사회가 하나님이 꿈꾸신 사회이다.
B. 타락과 인류사회
이런 창조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깨뜨려지게 된다. 창세기 4장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이 발생한다. 아벨이 가인에게 무슨 나쁜 일을 하였는가? 아니다. 둘이 하나님께 각기 제사를 드렸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그 사실 하나 밖에 없다. 시기심이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시기심은 이기심에서 온 것이다. 이기심이 없는 사람은 시기심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시기심의 발로 이기심에서 온다. 이런 인간을 향한 시기심과 이기심은 하나님을 향한 적의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인간을 미워하는 감정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사랑하며 함께 고이며 살아가야할 인류는 산산이 찢어지게 된다.
C. 구속과 인류사회
하나님은 이런 인류를 차마 보실 수 없어서 타락하면서부터 구원을 계획하신다. 그 구원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구속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데 이 구속과 인류사회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교회와 이 세상은 내포와 외연 혹은 핵과 외피의 관계이다. 이 세상 속에서 실현될 궁극적인 목적들을 교회 속에서 먼저 실현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나라 자체가 아니라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썩어 없어져야할 한 알의 밀알이다. 교회의 완전한 완성이 곧 교회가 한 알의 밀알로 썩는 것의 완성이며 그 썩는 것이 완성되는 시점이 세상이 완성되는 시점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교회의 완성은 세계의 완성이다. 이러한 완성을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기 전까지는 맛 볼 수가 없는데 교회에서는 이 완성될 하늘나라의 영적 특성들을 앞당겨서 맛볼 수 있도록 특권을 주신다. 그것은 마지막 완성의 날에 누리게 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진리의 찬란한 통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특권이다.
빌립보가 로마를 생각나게 한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생각나게 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장애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해야하는지는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Ⅳ. 연약한 것을 짊어지신 예수님
‘우리의 연약한 것으로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것은 이사야 53장에서 인용한 것으로 이 예언의 핵심은 대속사상이다.
Α.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서신서 특히 바울의 서신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은 세 가지 범주로 나타나는데 첫 째는 모든 만물, 즉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포괄하여 그 모든 것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시다.(엡1:23) 두 번째는 모든 인류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존재하게 될 것으로 인류의 머리되심이다.(엡4:10) 세 번째는 신약 성경 안에서 우리가 가장 친숙한 범주인 교회의 불신자들이 여전히 있는 가운데 믿는 신자들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골1:18)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는 자체가 공동체적인 사건이다. 자신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께 영적으로 접붙여지고 그 접붙여진 가운데 세 개의 차원, 즉 유기체적인 생명, 통치, 봉사의 교통을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의 머리되신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분여되는 것을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또 우리에게 있는 것들이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시는 것이 된다는 영적인 유기체적인 하나의 연합을 가리키는 것이다.
Β. 그리스도와 함께 담당함(17절)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고유한 것은 죄 밖에 없다. 좋은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온 것이다. 죄는 우리 스스로 생산해 낸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이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담당하시고 짊어지셨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장애와 질병,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당신이 불러일으키신 것은 아니지만 당신이 지고 감당해야할 것으로 여기시고 인류가 지은 끔찍한 죄들을 짊어지신 것이다.
한 인간의 장애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모든 인류의 문제이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문제는 아니나 그분이 우리와 영적으로 한 몸이 되셨고 머리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이 불행과 장애의 문제들을 예수께서 떠맡으시고 함께 고통에 참여하며 그들을 치료하고 섬기신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이다.
동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려고 하는 하나의 몸으로서 세상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며 살라고 이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선지자, 종교지도자, 랍비라고 사람들에게 인식되셨던 분이다. 그런 분이 장애인, 세리, 창녀와 같은 사람과 어울렸다는 자체가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는 계기로 삼으셨다.
Ⅴ. 결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시고 받지 못한 사랑을 받게 하신 것은 바로 우리로 이렇게 우리의 이웃에게 흘러가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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