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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파멸의 길로 가다

사무엘상 이정선 목사............... 조회 수 877 추천 수 0 2014.08.13 18: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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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28:3-19 
설교자 : 이정선 목사 
참고 : 타우랑가 한인교회(뉴질랜드) http://www.tauranga.org/ 

삼상28장 3-19
사울이 파멸의 길로 가다
이정선 목사 2012-06-17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뒷모습이란 요즘 말하는 뒷태가 아니고, 떠나는 모습, 퇴장할 때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앞모습, 즉 남에게 보이는 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보이지 않는 뒷모습은 추악하고 더러운 모양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겠군요. 어쨌든, 처음 등장할 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요란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마치 큰 성공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무대를 장악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무대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무대에서 내려와야 할 때 박수를 받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 떠나는 사람이 정말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어도 떠날 때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듯 초라하게 떠나야 하는 사람은 실패한 인생일 것입니다.

 

대체로 권력자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비참하게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중동의 독재자들이 그런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40년이 넘도록 절대권력을 누렸던 리비 아의 가다피는 반군에 쫓겨 숨어 있다가 붙잡혀서 비참하게 맞아 죽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국민들을 짓밟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살았던 대가였습니다. 힘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떠날 때 다른 사람들의 축복 속에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과 돈을 가지고 있을 때는 사람들이 곁에 있지만, 그것을 잃었을 때 사람들에게도 버림받고 쓸쓸하게 종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을 잃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훨씬 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선택되었던 사울이 마침내 종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버림받은 왕입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것도 비참한 일인데,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버림받은 사울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하게 몰락하는지 보십시오.

 

3절은 이 사건의 배경설명입니다. 사무엘이 죽은 것은 25장에 나옵니다. 그리고 사울이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낸 것은 아마도 그의 통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일 것입니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사울은 여호와를 위한 열정이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땅에 들어가면 거기 살던 사람들의 풍습 가운데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중에 무당이나 신접하여 초혼하는 자들, 길흉을 말하는 점쟁이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신 18:9-14).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사울은 사무엘의 지도를 받아 왕의 권위와 군사력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무당이나 초혼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울도 겸손하고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권력의 맛을 알아가면서 교만하게 변해갔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지자 사무엘과는 적대적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다음 왕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죽이는 데 나라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선택된 사람이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을 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다시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났는데,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마음이 크게 떨렸다고 했습니다(5절). 사울은 왕이 되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블레셋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했습니다. 백성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함으로써 그의 왕권도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떠나시고 나니까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적은 눈앞의 적군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두려움입니다. 전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두려워했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었는데, 이번 전쟁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승패가 결정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불안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더욱 알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점쟁이들이 큰 활약을 하게 됩니다. 입시철이 되면 점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 유명하다는 무속인들의 말이 타블로이드 지면을 장식합니다. 이러한 행태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체험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큰 두려움에 빠진 사울은 먼저 여호와께 여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며 살다가 급해지니까 여호와께 여쭙는다는 것은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사실 사울은 여호와께서 대답하실 여지를 다 없애버렸습니다.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계시하시는 방법의 단계적 순서입니다. 꿈은 가장 낮고 불확실한 방편이고, 선지자는 가장 명확하고 높은 단계의 계시 방편입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의 옷에 달린 보석인데,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에게는 그것이 없어요.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사울이 제사장 가문을 몰살해버렸습니다(삼상 22:18). 그때 아히멜렉의 아들 중 아비 아달이 도망을 쳐서 다윗에게 갔는데, 그때 그가 가져온 것이 바로 에봇, 대제사장의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의 뜻을 물었지 않습니까?(삼상 30:7-8).

 

사울은 제사장들을 학살하고 나서 아마 다른 대제사장을 임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봇도 다시 만들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짝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여호와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불순종한 사울에 대한 징계입니다. 짝퉁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리가 없습니다. 선지자들도 침묵했습니다. 사울은 왕이라는 지위와 권력이 생기니까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과 적대관계를 형성했습니다. 그러니 모든 선지자들이 사울과 적대관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급하니까 여호와께 여쭙고 있지만, 여호와께서는 침묵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선택된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도 폐인이 되는데,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가 왕이라는 사실, 그의 권력과 지위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한때는 그 권력으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았을지 모르지만, 재물이나 권력이 그를 몰락과 파멸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대답하지 않으시자 그 다음에 사울이 취한 행동은 그를 더욱 파멸로 몰아넣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신접한 여인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철저하게 금지하셨고, 사울 자신의 손으로 쫓아냈던 그 사람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사울은 성경에 기록된 아주 희한한 사건 하나를 만들어냅니다.

 

신접한 여인을 찾아내서 변장을 하고 밤에 찾아간 우여곡절 끝에 사울은 신접한 여인에게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나타나서 사울을 꾸짖으면서 그의 운명을 이야기해 줍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패배하고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런 이야기를 듣자고 그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듣고 그는 더욱 낙심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음으로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정말로 사무엘이 나타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울의 요청으로 신접한 여인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낼 수 있을까요? 이것이 초혼이라고 행해지는 것인데,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양에서도 영매를 통해서 죽은 사람의 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 만한 현상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점을 쳐서 길흉을 미리 알려준다거나 죽은 사람을 불러와서 대화하게 하는 것은 인간이 놀랄 수밖에 없는 신비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의 대부분은 속임수입니다. 인간 심리의 연약한 부분을 매우 정교하게 속여서 진짜인 것처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여인들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큰 심리적 부담을 안고 살았습니다. 아들을 낳을 수 있는 확률은 50%입니다. 그러나 각 개인에게는 그것이 산술적으로 50%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낳는 대로 아들만 낳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딸만 줄기차게 낳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50%가 될 뿐입니다. 어쩌다가 딸만 줄기차게 낳은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용하기로 소문난 점쟁이는 찾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기쁘고 감사해서 복채를 많이 내놓고 돌아가겠지요. 그리고 확률에 따라 50%의 사람들은 아들을 낳고 역시나 용한 점쟁이 덕분에 아들을 낳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50%의 사람들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가지고 쫓아오겠지요? 이제 점쟁이가 거짓말로 사람들을 농락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괜히 용한 점쟁이겠습니까? 사정 이야기를 들은 점쟁이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점을 보러 왔던 날이 언제였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장부를 꺼내서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찾아온 사람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고 점괘의 결과는 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점쟁이가 이렇게 말하지요. ‘점괘를 보니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히 아들을 염원하시는 분께 감히 딸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나마 위안을 드리기 위해 거짓을 고한 것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역시 용한 점쟁이라고 감탄을 하면서 돌아갑니다. 아들을 낳은 사람이 그때 점괘를 어떻게 써 놓았는지 보여 달라고 찾아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대항해서 동학군이 죽창을 들고 용감히 싸울 수 있었던 이유 한 가지는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농민들에게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라는 주문을 외우면 총알이 빗겨간다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전투에 나갔습니다. 전투가 끝나면 총에 맞아 죽은 사망자도 있고, 살아남은 사람도 있겠지요. 산 사람들은 당연히 주문을 열심히 외웠기 때문에 총알이 빗겨간 것이고, 죽은 사람들은 주문 외우는 것을 멈췄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주문 외우고 있었는데도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복술이나 초혼 행위가 이런 속임수만은 아닙니다. 정말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죽은 사람의 혼이 왔다고 하면서 영매가 죽은 사람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속임수로 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의 혼이 정말로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귀신의 장난입니다.

 

점을 쳐서 길흉을 말하거나 초혼을 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엄격하게 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금하신 이유는 그것이 귀신들의 놀이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가증히 여기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가증한 행위를 통해서 위대한 선지자의 혼이 불려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신접한 이 여인에게 무슨 큰 능력이나 있는 것처럼, 이 여자가 부른다고 해서 사무엘이 끌려나오듯이 나오겠냐는 것입니다. 설정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의 혼이 돌아온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경에는 이 정신 나간 사울 외에 어느 누구도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올리려는 시도를 한 것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허락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죽은 사람의 혼이 구천을 떠돈다거나 심지어는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거나 하는 것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귀신은 천사가 타락해서 된 것이지, 사람이 죽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은 죽어도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서 여러분을 찾아올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나타난 사무엘이 진짜 사무엘처럼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지요. 물론 여기서 사무엘이 나타나서 사울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접한 여인이 사무엘의 목소리로 사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은 사무엘의 혼이 온 것이라고 믿을 만하겠지요. 그 사무엘은 사울을 꾸짖고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만약에 그 사무엘이 엉뚱한 소리나 했더라면 역시 귀신의 장난이라고 손쉽게 결론을 내리고 말 것인데, 진짜 사무엘처럼 말했기 때문에 혼란을 겪습니다. 이것은 귀신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것입니다(고후 11:14). 사실 이 귀신이 진짜 사무엘처럼 말한 것도 아닙니다. 이 귀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사울의 두려움과 절망을 극대화시키고, 그래서 스스로 파멸에 이르도록 부추기고 있을 뿐입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아서 그냥 먹지 않습니다. 쥐가 최대로 두려움을 느끼도록 가지고 놉니다. 이 귀신도 사울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사무엘로 가장한 사탄은 어떻게 전쟁의 결과와 사울의 죽음을 알았을까요? 사탄도 모르는 것이 없는 걸까요? 사탄의 능력 레벨은 천사의 레벨과 같습니다. 천사들 중에서도 레벨의 차이가 있겠지요. 그러나 천사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그 속을 꿰뚫어보시는 능력은 하나님에게만 돌려집니다. 천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어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실 때 그런 능력을 들려서 보내실 수는 있지만, 그것은 천사 자신의 능력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당연히 마귀에게도 그럴 능력이 없는 거지요. 괜히 우리가 마귀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주눅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마귀는 우리보다 뛰어난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귀는 절대로 하나님처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거나 미래를 꿰뚫어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배하리라는 것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인간이 전쟁하는 것을 사탄이 한두 번 봤겠습니까? 사실 사탄도 전쟁 전문가인데요. 그리고 전쟁이 그렇게 끝나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을 가능성도 많겠지요. 그래서 그것을 미리 말했다고 해서 마귀가 우리의 미래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두려워하면 마귀에게 시달립니다. 오히려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어요. 그러면 마귀가 도망칠 것입니다(약 4:7).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사무엘을 불러올렸다는 이 사건은 파멸에 처하게 된 사울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용하여 귀신이 장난을 친 해프닝입니다. 이 사건이 성경 어디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 적도 없고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난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에서도 죽어서 지옥에 간 부자가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주기를 간청하지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눅 16:27-29). 이 사건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린 사울이 어떻게 몰락하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울이 취했던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 하나의 사건일 뿐입니다. 다윗을 잡아 죽이겠다고 군대를 이끌고 산천을 쫓아다니던 기세등등한 사울이 이렇게 초라하고 비참하게 몰락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하나님 없이 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발버둥을 치게 되는지 사울의 추하고 비참한 뒷모습이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여러분의 생애 마지막 날까지 늘 믿음으로 순종하고 승리하며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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