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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삼상29: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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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오석득 목사 |
참고 : | 2010.2.7 산돌장로교회 http://www.sandolpc.org/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할 때가 자주 일어납니다. 진퇴양난이란 한마디로 말한다면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가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을 진퇴양난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바로 이런 입장에 놓일 때가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무장한 바로의 군대가 그들을 죽이려고 따라옵니다. 앞을 보니 검푸른 홍해 바다가 넘실거리며 자기들을 금방이라도 삼킬듯 공포를 줍니다. 그들은 뒤로 갈수도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뒤로 돌아가자니 바로의 군대에 의해 죽게 됩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가자니 물에 빠져 상어 밥이 될 것 같아 앞으로도 못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홍해 바다를 갈라 주시므로 안전하게 바다를 건너 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니 다윗도 이와 비슷한 곤경에 빠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도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다윗은 looser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는 비참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다윗은 사울이 하도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 아예 그의 손에서 벗어나 아주 멀리 도망가고 싶은 생각에 집착하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기가 이스라엘 땅에 계속 남아 있는다면 분명 사울이 자기를 또 다시 죽이러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아예 사울이 찾지 못하는 땅으로 멀리 도망 가고픈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경멸하고 무시하며 믿지 않는 자들이 사는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그곳으로 도망을 간다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물어 보지도 않고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물론 다윗의 생각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가자 사울이 다윗을 찾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살았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 틈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며 살지 못합니다. 그곳에서 숨을 죽여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거짓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대로 다윗은 그곳에서 살아갈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블레셋 왕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이스라엘을 공격하자는 의견이 모아진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동안 블레셋 왕들 중에 하나인 아기스라는 왕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아기스가 준 시글락이라는 땅에서 자기의 군사들과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기스 왕이 다윗을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곧 블레셋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터이니 너도 우리와 함께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말을 들을 때 겉으로는 태연한척 했습니다. 그리고 대답은 당연히 싸우러 가야 한다고 큰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다윗은 이스라엘을 거스려 싸움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움을 한다면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사울을 반대하며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과 싸움을 한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과 싸움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 가는데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방해자가 된다는 것을 다윗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대적해서 전쟁을 할 수 있나요? 그러기에 다윗은 지금 진퇴양난의 입장에 놓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까지 신세를 져왔던 아기스 왕의 요구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입니다. 만약 다윗이 그의 명령을 거절한다면 그는 당장 살아갈 길이 막연해 집니다. 다윗이 이제껏 아기스 왕의 편에 서 있는 것 같이 행동 했기에 아기스 왕이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살 수 있는 땅도 준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아기스 왕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즉시로 어떤 보복이 올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당장 도망을 쳐야 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면 또 다시 가족들과 부하들을 이끌고 사울 왕을 피하여 산과 들과 굴로 도망 다니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일단 다윗은 이스라엘과 싸움에 나가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는 싸움에 나갈 수없는 형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윗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다윗 같은 믿음의 사람도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자신도 늘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자, 우리가 이러한 진퇴양난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가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으며 산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다급한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고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가서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진퇴양난에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이 피해 갈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진퇴양난에 빠져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 그가 특별한 일을 하므로 그 상황을 피해 가지 않았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으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다윗은 아기스 왕이 명령하면 전쟁에 나가야 할 입장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못나겠다고 다윗의 입으로 말할 수도 없는 신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다윗이 곤란한 상황을 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블레셋 나라는 다섯 나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서로 동맹을 맺고 있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함께 움직였습니다. 아기스 왕은 그들 중에 가장 우두머리 격의 왕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냥 두셨다면 아기스 왕이 명령하는 대로 다윗은 꼼짝없이 전쟁터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왕들이 반대를 하고 나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것도 보통 반대가 아닙니다. 다윗의 일행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일행을 자기들과 철저하게 분리시키는 말투 입니다. 또한 그들은 다윗이 사울왕의 신임을 받았던 시대의 일들을 끄집어내며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지만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기에 절대 다윗을 전쟁터로 끌고 나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윗을 전쟁터로 데리고 가면 분명 다윗은 자기들을 죽이고 사울과 화해를 하려고 할 것이기에 다윗을 전쟁터로 데려나가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만약 다른 왕들이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찬성했다면 다윗은 꼼짝 없이 매국노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가 될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왕이 반대하므로 전쟁터에 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다윗은 못이기는 척하며 자기를 전쟁터에 못나가게 하는 아기스 왕에게 오히려 큰 소리까지 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왜 나를 못나가게 하냐고 따질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일단 자기 자녀로 선택한 사람은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놓일 때 피해갈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어려운 시험에 빠질 때 헤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0장 13절에서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자녀들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비록 이방인의 땅에 가서 살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가 이 험악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며 사는 사람들 틈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신분을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늘 함께 하십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고”(벧전3:12)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또한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늘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므로 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다윗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구원 받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 받은 사람도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살기 위해서는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는 어릴 때부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 시절부터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을 훔쳐 갈 때 따라 가서 그들을 치고 양을 빼어왔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그들의 발톱에서 지켜 주셨기 때문이라고 시인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모든 일을 했습니다.
또한 다윗이 장수 골리앗과 싸울 때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인지 그의 말투나 그의 행동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갑옷이나 투구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칼이나 창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양을 모는 막대기, 그리고 고무줄과 돌 다섯개만 가지고 거인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는 정신병자입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싸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풋내기 군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골리앗에게 달려 나가면서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외치며 달려나가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죽이고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사실이 온 이스라엘에 소문이 났습니다. 아니 블레셋 나라까지 다윗에 대한 소문이 퍼진 것입니다. 다윗의 이름이 퍼졌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도 위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의 신앙의 열매인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도록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한 열매가 있기에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전쟁터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어떤 일을 그들에게 할지 모르기 대문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다윗에게 있었기에 그들은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못하게 막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진퇴양난의 입장에 있었지만 그의 믿음의 열매로 인해 싸움터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평상시에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급할 때 그 열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저 자기만 위해 살다 보면 이런 위급할 때 피할 길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히스기아왕을 보세요. 하나님은 그에게 죽을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곧 죽어야 하니 빨리 재산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쓰라는 말입니다. 이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심과 전심으로 살았던 일들을 기억해 주세요.” 그는 자기의 삶에서 하나님을 위해 열매를 맺었던 때를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나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사람도 드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아하스 왕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온갖 우상을 섬기던 모든 것을 뒤엎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번제단도 이방 나라의 것을 본따서 만들 정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완전히 종교개혁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회복 시켜 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에 대해 이렇게 증거를 합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였는데 유다의 모든 왕들 중에서 그와 같은 왕이 없었더라. 그는 모든 일에 여호와를 따르며 순종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켰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 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인도함을 받는 일에는 얼마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매 맺는 삶을 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인정해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것들로 인해 어려운 곤경에서도 헤어 나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 우리가 이런 진퇴양난의 입장에 자주 놓이게 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우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택하며 살고자 할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고자 해야 하는데 쉬운 방법을 찾다 보면 이런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 방법을 쫒아가자니 신앙의 양심에 걸려 못하게 되고, 그렇다고 하나님의 방법을 쫒아 살려니 불편합니다. 그러다 보면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신입니다. 잠언서에서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2:6) 라고 증거를 합니다. 또한 지혜의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어떤 사람이 진퇴양난에 잘 빠지나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한쪽을 확실히 선택해야 하는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양쪽 다 얻으려고 할 때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하나님께 바싹 붙든지 아니면 아예 마귀 쪽에 바싹 붙든지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힘들고 어려워도 죽었습니다 하며 하나님께 바싹 붙으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으며 천국에 가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 쪽에 바싹 붙으면 좋은 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지 않고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되니 모든 시간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다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헌금 드리지 않아도 되니 자기가 가진 돈 모두를 자기를 위해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꺼리낌 없이 육체의 쾌락대로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어차피 지옥갈 인생이기에 이 세상의 것은 마냥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육체를 위해 마음껏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치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세상으로 나간 것도 아닌 어중띠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보면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것을 누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님 안에서 누리며 살지도 못합니다. 둘다 놓치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상태에 놓일까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쪽도 저쪽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통하여 확실하게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에스더 왕비와 같이 진퇴양난에 놓일 때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확실하게 하나님을 선택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페르시아라는 나라에 에스더라는 왕비가 있었습니다. 에스더 왕비는 사실 유대 여자 였는데 자기가 유대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왕비의 후보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에스더는 많은 후보를 제치고 페르시아 왕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페르시아의 국무총리였던 하만이라는 사람이 모르드게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든 유대 민족을 몰살 시키려는 음모를 짜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게가 왕궁에 살고 있는 조카 에스더 왕비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 왕비는 지금 자기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사실 에스더 왕비는 진퇴양난의 입장에 처한 것입니다. 페르시아 법은 왕이 허락하지 않으면 왕비라도 왕에게 가지 못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만약 허락 없이 왕에게 나아가면 죽음까지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왕비는 왕에게 나갈 수 없는 입장이기에 삼촌 모르드게에게 그 사실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삼촌은 에스더에게 청천벽락 같은 말을 보낸 것입니다. “네가 왕비가 된 것이 바로 이때를 위해서 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유다 민족을 왕비가 되어 모른다고 하며 가만히 있는다고 너 혼자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 민족을 구해 줄것이지만 너는 안전하다고 하는 그곳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에스더 왕비는 또한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때 에스더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금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삼촌에게 모두 금식하며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께 의탁하며 왕에게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죽임을 당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왕의 마음을 돌려 하만을 죽이고 유다 백성을 구하든지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에스더는 한쪽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선택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왕의 마음을 변하여 에스더가 더 예뻐 보이도록 해 주셨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믿음의 결단을 내리자 하나님이 밀어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의 결단을 내릴 때 쉽고 편리한 쪽만 선택하려고 하지 마세요. 다윗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므로 많은 댓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중요한 것을 결정하려고 할 때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는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그런 선택을 하면 신앙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편리한 쪽을 선택합니다.
그러다 보면 진퇴양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옆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도 갈 수 없는 것이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면 옆으로 가야 합니다. 그 옆길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길입니다. 그래서 모두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게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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