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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14: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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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승호 목사 |
참고 : |
제목: 주님 때문에(롬14:1-12)
예배와 핸드북에 유럽의 한 나라에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 청년도 우리처럼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고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교회는 1년에 한 번 부활절에 세례를 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려면 자그마치 3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세례를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세례를 받을 준비도 하지 못하게 했다.
더 엄격하게 적용한 기준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평소에 어떤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가에 따라 세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 교회에서 적용한 기준에 따르면 여러 가지 직업 중에 윤락여성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소위 말하는 포주여서는 세례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윤락여성들도 그 직업을 버리기 전까지는 세례 받을 예비자가 되지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여성 편력이 심한 남자로 소문이 나도 예비자가 되지 못했다. 화폐 위조꾼들도 거부되었다. 우상 숭배자로 알려진 사람이나 마술사 별들로 점을 치는 사람이나 꿈 풀이를 하는 사람 부적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그 상태 그대로는 세례를 받지 못했다. 또한 예술가로서도 못 받는데 예술가들은 미신을 주제로 삼아 재능을 쏟아 붓기 때문이었다.. 이들 중에 예비 후보자로 선택된 자들은 3년간 교육을 받고 나서야 세례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청년도 열심히 교리교육에 참여했다 길고 힘든 3년의 기간이 끝나고 부활절이 다가올 때 드디어 이제 세례를 받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남은 과정이 있었다
먼저 3년동안 성실히 살았는지를 묻는데 있어서 증인을 세우는데 3년동안 자신을 책임지고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사랑으로 돌봐주었던 후견인을 증인으로 불러서 말하게 했다.
3년동안 삶을 책임지고 양육했던 이 후견인이 정말로 이 사람은 3년동안 신앙 안에서 잘 교육을 받고 온전한 주일은 지켰으며 성실히 믿음 생활을 했습니다. 라고 증언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성찬식 전에 선포되는 설교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례 받기전 일주일은 세례를 받는 사람이나 세례를 주는 이들 모두에게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일인데 특별히 부활절이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청년과 같이 예비자인 사람들은 수난일 전날 목요일에 목욕을 했다 금요일에는 금식을 했다. 요즘 많은 성도들이 고난주간 금요일에 금식하는 것처럼 이 청년도 세례를 준비하며 금요일에 금식을 했다
그리고 부활절 전날 토요일에는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철야기도를 했다. 첫닭이 우는 시간까지 밤을 새며 기도했다 이제 비로소 그 빛나는 부활절 아침을 맞을 때에 세례를 받는다 세례를 통해서 이전 사람은 죽고 새로운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사랑을 받기만 한 사람에서 사랑을 주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런 감격의 세례식을 받은 사람의 삶이 어떻겠는가? 쉽게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옛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쉽게 미신을 좇지 않는다. 고백하기 때문이다 세례 받는 그 순간 인생이 하나님 앞으로 향하게 되고 예수님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 합니다 그 마음이 오늘 본문의 말씀인 7절“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하신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해서 적어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인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일깨우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에게 들려지는 로마의 초대 교회 교인들이 음식 문제로 말미암아 분란이 일어났다는 소식 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믿음이 1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먹는 자나 먹지 않는 자 모두를 하나님이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4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먹는 자나 먹지 않는 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를 판단할 이는 주님이시니 그들이 먹는다 안먹는다 왈가 왈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므로 감사할 일입을 말씀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초대교인들은 살아도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자기를 위하여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나를 위하여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살고 난 다음에 나 외에 다른 사람 생각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기 가족도 자기 몸처럼 돌보기 쉽지 않은데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자기 몸의 주인으로 여기면서 살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저 자기 가족이나 자기 몸처럼 잘 돌봐도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인간이다.
그냥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이 가끔 생각이 나서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살아도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살고 있다. 이렇게 주님을 위해 살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음식을 먹는 것으로 논쟁을 일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습관에 따라서 교회에 출석할 바에야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어떤 날이 다른 날보다 더 신령하다고 주장하며 싸우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래도 더 낫다고 칭찬받는 길인지도 모른다
찬란한 부활절 아침에 3년간의 훈련 기간을 마치고 세례를 받은 그 청년을 통하여 왜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하는지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초대교회의 열심, 초대교회의 뜨거운 신앙. 순교를 각오한 마음 그 모든 것들은 교회의 교인이 되는 3년간의 훈련을 통해서 이뤄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고백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가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까?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주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이 외침은 우리 주님을 바로 믿는 일이라는 확신 때문에 그렇게 간절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우리 하나님 뒤에 감추어 놓는 헌신의 높은 단계에 이르자 이제 내 인생마저 자기 자신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우리 중에 그 누가 지금 이 바울의 말씀 속에 나타난 초대교회 교인처럼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함이 이니요 내 가족을 위함도 아니요 오직 주님만을 위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는마음도 버려야 하고 내 욕망만을 따라가는 것도 버려야 하고 내 고집도 버려야 한다 나 자신까지 버려야 한다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인 것을 사도 바울이 편지를 통해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믿는 사람들이 자기 생명마저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본문의 말씀을 통해 말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하심이라(9절) 본문에는 원래 앞에 왜냐하면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그래서 왜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느냐 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본문의 말씀은 주님 때문에 .... 내가 살게 되었고 주님 때문에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값을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무엇을 공짜로 얻었다고 해도 그것을 곰곰이 되집어보면 다 계산을 한 것이다 흔히들 복음은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내가 값을 치르지 않았으니 값없이 얻은 선물이다 그러나 복음은 계산하지 않고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주님 때문에 우리가 얻은 것이다
이런 주님의 희생을 깊이 체험한 초대교회 교인들은 세례 한 번 받고자 3년을 훈련했어도 감사했다 공예배에 참석해서 교인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듣고 성찬에 참여하려고 몇 차례의 심사를 거쳤어도 그 자체만으로 감사했다
지금은 3년 동안 준비하고 세례 받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다 결단코 내게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할 사람은 없다 이천 년 전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우리를 찾아오셨다 하루하루를 지낼 때마다 주님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주님 때문에 죽기도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를 버리게 된다면 주님을 주인으로 세우심으로 “내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내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고백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때문에 나를 버리고 오직 주를 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정장복 설교핸드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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