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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예수

출애굽기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629 추천 수 0 2014.10.03 09:54:17
.........
성경본문 : 출1:8-2:10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4년 8월24일 http://dabia.net/xe/77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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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예수

출1:8-2:10, 성령강림후 제11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2: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구약인물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모세입니다.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 또는 이슬람교도들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세계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세를 다 압니다. 모세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로 <십계>가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 <이집트의 왕자>도 있습니다. 그의 일대기는 이런 영화의 소재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입니다. 이스라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어 살다가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미디안 광야로 달아납니다.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해 살다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듣고 이집트로 돌아와 이집트 파라오와의 대결을 승리로 이끈 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횡단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죽어 모압 어느 골짜기에 묻혔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출 1:8-2:10절에는 모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비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에서 살게 된 연유는 창세기 후반부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야곱 시대에 극심한 흉년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 덕분으로 이집트의 곡창 지대 중의 하나인 고센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른 뒤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권좌를 차지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걸 두려워했습니다. 전쟁 시에 이스라엘이 적과 내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산율을 낮추기 위해서 노동 강도를 높였습니다. 출 1:11절과 14절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당시 이집트의 건축 토목 사업은 이집트를 지탱하는 근본이었습니다. 피라미드, 스핑크스, 오벨리스크, 왕궁 등이 즐비했습니다.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합니다. 고대의 토목과 건축은 거의 사람의 손을 빌려야만 했습니다. 노예들을 통해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소수민족들을 강제 노역에 차출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런 경우에 해당되었을 겁니다. 강제노역이 출산율 저하 정책에 기인한 것이라는 출애굽기 기자의 시각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출산율까지 지켜주신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봐야합니다.

 

강제 노역으로도 출산율이 떨어지지 않은 탓인지 이집트 왕은 새로운 정책을 실행합니다. 이스라엘 산파 두 사람, 즉 십브라와 부아에게 이스라엘 여자의 해산을 돕다가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 아기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산파들은 왕에게 자신들이 산모에게 가면 이미 해산이 끝났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습니다. 이들 산파가 왕의 명령을 그대로 지키지 않은 걸 보면 강제 명령이었다기보다는 회유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정책이 실패하자 이집트 왕은 더 노골적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면 살려두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이 이스라엘 백성에만 해당되는지 이집트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 출생 시에 헤롯이 베들레헴과 인근에 사는 사람들의 아이들 중에서 두 살 아래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이야기와(마 2:16) 비슷합니다. 마태복음이 출애굽기보다 1천5백년 후의 이야기라는 걸 전제하면 예수 출생 설화가 모세 출생 설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 와중에 레위 지파에 속한 한 부부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석 달 동안 아들을 숨겨서 키웠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나일강가에서 자라는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아기를 넣고 갈대가 자라는 나일 강가에 띄었습니다. 이건 남자 아기를 나일 강에 던지라는 왕의 명령을 형식적으로나마 따른 겁니다. 아기의 누이는 멀리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딸이 시녀들과 함께 물놀이를 하러왔다가 갈대숲에서 그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 든 남자아기가 히브리 사람의 아기라는 걸 알았지만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침 아기의 누이가 모른 척하고 나타나 유모를 구해줄 수 있다고 말하자 이집트 공주는 속사정을 모른 채 여자 아이의 말에 따라서 상자 속의 남자 아기를 유모에게 맡겼습니다. 물론 유모는 이 아기의 친모입니다. 그 아기는 친모의 손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에 파라오의 딸이 있는 왕궁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상황을 출 2:10절은 이렇게 간단하게 전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여기까지가 오늘 설교 본문이 말하는 모세의 출생에 얽힌 에피소드입니다. 모세라는 이름은 ‘건져 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지은 이름이니 물론 이집트 식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적인 자부심이 컸기 때문에 이집트 이름을 숨기고 싶어할만한데도 모세라는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유는 모세의 역할과 운명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절대적이었다는 데에 있을 겁니다. 모세는 두 가지 점에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이집트로부터의 민족 해방을 이끌어낸 정치지도자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완성한 종교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을 비롯해서(민 12장) 그에게 도전장을 냈던 사람들은 모두 나가떨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신적인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그를 통해서 일어난 엄청난 일들은 일일이 셀 수도 없습니다. 출 34:29-35절에 따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올 때 얼굴에 광채가 나서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신약성서 기자들도 모세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마 17:1-13절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이 어느 산에 올라가셨을 때 용모가 변화되고 옷에 광채가 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두 역사적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히브리서 3장은 모세와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온전히 충성한 분들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일했으며, 예수님은 아들로 일했다는 겁니다. 종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종의 역할에 머물러야만 합니다. 집안의 재산을 처리할 권한이 그에게는 없습니다. 집안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도 직접 참여할 수 없습니다. 아들은 대를 잇는 사람이기 때문에 늘 아버지와 대면하면서 중요한 일에 직접 참여합니다. 모세를 깎아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세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종과 아들이라는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발언을 통해 모세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더 정확하게 해명합니다. 그것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입니다. 마 5: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율법은 모세율법을 가리킵니다. 율법의 기원은 출애굽에 있습니다. 모세는 파라오와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집트를 빠져나온 뒤에 두 가지 과업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는 광야를 무사히 횡단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가나안에 잘 정착하는 겁니다. 이 두 과업 모두 만만치 않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안정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법전을 만드는 게 우선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빌론의 하무라비 법전처럼 말입니다. 광야생활의 초반에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모세가 받아쓴 것처럼 보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를 통해서 완성된 법전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만 모세의 영적 권위에 기대서 이것을 모세율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어쨌든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적인 차원이나 사회적인 차원에서나 모든 기준을 율법에 두었습니다. 구약의 모세오경만이 아니라 불문법이나 여러 랍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시행규칙들도 크게 봐서 다 율법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은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율법과 대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장애인을 고친 일들이 그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노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을 지필 수도 없고, 대략 1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서도 안 됩니다. 모든 노동이 멈춰야 합니다. 환자를 고쳐서도 안 됩니다. 당장 죽을병이 아니면 다음날까지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만 보면 안식일이 무지몽매한 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안식일 법은 인간의 안식을 기본으로 하는 겁니다. 특히 노동에 숙명적으로 묶여 있던 계층의 사람들을 향한 노동해방 선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에는 주인만이 아니라 종들도 쉬어야 하고, 나그네도 쉬어야 하고, 짐승들도 쉬어야 합니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노동해방을 외친 마르크스는 이 안식일 법에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노동에 중독된 한국사회에서는 안식일 법이 더 강제적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입시 노동에 노예처럼 시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안식일 법이 정말 필요합니다.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만은 모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문제는 예수님 당시에 율법의 근본정신을 놓치고 율법 조문에 매달려서 결국 인간 해방이 아니라 인간 속박으로 작동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 11:28절이 전하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겁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구절을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져야 할 짐을 예수님이 다 대신 져주신다는 말씀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짐은 당시 율법이라는 종교적 짐입니다. 원래는 선한 데서 출발한 율법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절대화되어 삶을 파괴한다는 게 율법의 문제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유대교의 율법은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복음공동체라는 이유로 율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집단들도 있었습니다. 주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서 그런 주장이 많았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이들은 계 2:6,15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입니다. 이들은 영지주의의 한 분파로서 영혼의 구원만 주장하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 바울도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강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토라와 할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완전히 배척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율법을 폐기처분 했다고 보면 안 됩니다. 그는 철저하게 율법의 근본을 지켜나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태복음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복음은 율법을 폐기하는 게 아니라 완성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마 5:21절 이하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동일한 문장 형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전통으로 어떠어떠한 말씀을 들었지만(그것은 모세 율법인데)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는 형식입니다. 그걸 반명제(反命題), 즉 anti-these라고 합니다. 마 5:21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마 5:27절 이하에서는 간음에 대해서, 33절 이하에서는 맹세에 대해서, 38절 이하에서는 ‘눈은 눈으로’에 대해서, 43절 이하에서는 이웃 사랑과 원수 증오에 대해서 같은 형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모세의 율법과 대립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율법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마 5:21절이 말하는 살인에 대한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는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화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만 본다면 예수님이 더 철저한 율법과 강령을 내리신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과 규범과 윤리적 지침은 사실 지키라고 해서 지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나요? 화를 낼 때마다 예수님을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고 자책해야할까요?

 

복음이 율법을 폐기하는 것도 아니고, 또는 좀더 고상한 율법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종잡기 힘들다,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실제 신앙생활에서 혼란을 많이 느끼실 겁니다. 그래서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헌금과 교회출석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미 복음으로 자유로워졌으니 헌금과 교회출석이라는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더 철저히 매달립니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대충 어중간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할 겁니다.

 

복음 안에서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씀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모세의 율법을 무조건 폐기하는 게 능사는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절대화하는 것도 바른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 5장에서 모세의 율법에 대한 반명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헤겔 철학 개념으로 설명하면 율법의 지양(止揚, Aufhebung)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율법이 새로운 차원으로 지양, 즉 끌어올림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부정되지만 동시에 복음 안에서 새로운 빛을 얻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의 빛을 경험하셨는지요. 그 빛으로 세상과 인생을 새롭게 보게 된 경험이 있으신지요. 초기 기독교인들과 지난 2천년 역사에서 바른 신앙의 길을 갔던 사람들이 경험한 바로 그 진리의 빛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그를 위해서 하는 일들이 힘든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쁨과 자유로 경험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복음의 빛은 우리로 하여금 모세의 율법에서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차원에서 더 책임감 있게, 더 성실하게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 복음의 빛으로 여러분의 삶이 환해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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