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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고린도전 빛의 사자............... 조회 수 1119 추천 수 0 2014.10.05 21:39:38
.........
성경본문 : 고전6:19-2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주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본문: 고린도전서 6:19, 20,

 

찬송: 67장 (통 31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할리엣드 비이쳐 스토우 여사가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출판했을 때 미국에서 1년에 30만 권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20여개의 외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팔마스톤 경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소설만은 이야기로서도 훌륭한 책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추밀원 고문관인 콕빈 경은 이 책이 다른 어느 소설보다도 인간을 위한 공헌이 크다고 언명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책을 인간 정신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의 하나로 여겼습니다. 분명히 이 책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노예 해방을 위해 공헌한 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할리엣드 비이쳐 스토우 여사는 이 책의 작자로서의 영예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의 작자가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저절로 쓰여진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리어진 비천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것이 차례차례 환상으로 보여졌고, 나는 단지 그것을 글로 옮겨 놓은 것뿐입니다. 영광은 주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요 11:4)

 

88년 서울올림픽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끈 여자육상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라고 불리는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그녀가 금메달을 따내자 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 가운데 미 NBC 방송의 한 기자가 『달리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생각하며 달립니다. 최선을 다함으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때만큼 인생의 보람을 느껴본 적은 없었습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과 본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하였습니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을 사람의 제1 목적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몸은 이 세상에 존재할 동안 사람의 영혼을 담습니다. 몸으로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이 세상에서 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시라는 일을 함으로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요?

 

첫째, 선행을 통하여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착한 행실이란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행위를 말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행위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것은 크고도 장한 일일 수 있으며 작고도 미미해 보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착한 행실이란 최선을 다할 때 생기는 일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진실과 진정』이 있을 때 생기는 일입니다. 착한 행실이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마지막까지 헌신할 때 생기는 일입니다. 그것은 어떤 정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애였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순간이 왔을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와 싸우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평생 신을 신지 않고 맨발로 생활했습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캘커타의 빈민촌 사람들이 신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살기 때문에 그녀도 똑같이 맨발로 산 것입니다. 맨발로 호텔도 가고 비행기도 타고 유엔본부에서 연설도 하고 백악관에서 영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맨발의 그녀가 더럽다고 멸시하거나 출입을 거절한 적은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녀는 환영받고, 사랑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어려운 이들을 구제하고,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낼 때 복음은 자연스럽게 믿지 않는 자들의 가슴에 흘러들게 됩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핏소리가 이 땅에 가득차게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소문이 넘쳐나게 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여러분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작은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행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즘 착하다는 게 흠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남녀가 맞선을 보고도 상대가 너무 순하게 생겼으며 퇴짜를 놓는 세상입니다. 순하고 착해 가지고는 험한 세상에서 경쟁하여 승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주문하십니다. 손해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바보인 줄 알다가도 결국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선하게 사는 것은 처음에는 손해보고, 바보 취급을 받을지 모르지만 결국 하나님께 모두가 영광 돌리게 만드는 일입니다.

 

둘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배』의 사전적 의미는 초월적 존재 앞에 경배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찬양하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사람 앞에는 엎드리면 굴욕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엎드리면 기쁨이 넘칩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입니다. 왜 엎드리는데도 기쁠까요? 그분의 선행적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루이스는 『그를 찬양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시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즐기라고 초대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즐기는 게 바로 예배입니다. 늘 하나님을 즐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배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의식적인 예배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 이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헌금을 드리는 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겨야 합니다.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 따르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몸이 없으면 드릴 수 없는 게 예배입니다. 예배는 사랑 때문에 헌신하고, 사랑 때문에 시간을 드리고, 사랑 때문에 물질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자처합니다. 예배는 이런 사랑의 심정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모든 삶이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분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셋째, 이웃을 사랑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가장 큰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한 게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는 이웃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한 자매입니다. 가족보다 더 질긴 사랑의 울타리는 없습니다. 가족이기에 용납되고 가족이기에 덮을 수 있습니다. 바로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가족입니다. 좀 못 마땅해도 덮고 사랑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15:7)

하나님이 우릴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용납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 죄를 따져 물었다면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받아주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 35) 하나님 사랑은 예배로, 이웃 사랑은 상대를 용납함으로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넷째, 이웃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신앙인의 모범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물론 사람이 예수님의 신적 모습을 다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 모습은 얼마든지 닮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을 말하라면, 그것은 희생하며 남을 섬긴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섬김은 예수님이 오신 목적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11)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 재산, 은사, 기술을 가지고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혼자 먹고살라고 여러 가지 재능과 은사와 물질을 주신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우리를 도우라고 그런 것을 주셨습니다. 서로 돕고, 서로 섬겨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4:10,11)

서로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여러분 자신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오.

 

다섯째, 복음과 말씀을 전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을 주신 이유를 무엇입니까? 입은 말함으로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욕하고 불평하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말하라고 하십니다. 진리를 안다면 당연히 전해야 합니다.『우리의 이러한 고난은 모두 여러분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리스도에게 인도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분의 크신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도 더해져서 주께서 더욱더 큰 영광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고후4:15)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전도로 예수님께 나오는 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은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먼저 진리를 깨달은 자는 전해야 합니다.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들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행21:20)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설교하는 목사의 직임이 귀한 것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갈1:23, 24) 예수님을 박해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여섯째,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 열 명을 고쳐주셨을 때, 예수님께 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 감사하는 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게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후4: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심은 감사로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입고도 감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9:13)

그러나 인색하여 억지로 드리는 헌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섭섭하게 만듭니다.


평생을 바다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를 하러 찾아온 친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명구조원을 하면서 이때까지 자네가 목숨을 구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지?』 『단 두 명뿐이라네.』 친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삼십 년을 넘게 일한 자네가 단 두 명밖에 못 구했다고? 농담하지 말게나.』 이 말을 들은 인명구조원은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물론 구해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지. 하지만 그 후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날 찾아온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네. 난 그 두 사람만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네.』 그렇습니다. 인명구조원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을 돌리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어떤 일에 대한 성취감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인간 스스로 한 것은 사실상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지혜와 능력, 또 환경도 모두 그 분께로부터 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 냈다면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도움을 준 주위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 쓰임 받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찬양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은 신앙인의 본분입니다. 요리문답 제 1조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즐거워함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이름을 찬양함입니다. 찬양은 목소리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속에 있는 것으로 찬양하라』(시103:1)고 하였습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속에 있는 지식, 내 속에 있는 감정, 내 속에 있는 의지, 이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모두 찬양하라』(시150:6)고 하였습니다. 즉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살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은혜란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사는 때가 많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독일 출신의 위대한 작곡가 헨델은 초기에 왕을 위한 곡을 썼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수상곡』이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최고의 영감을 준 곡은 이 세상을 초월한 가장 위대한 왕, 『메시아』였습니다. 불후의 명곡 메시아 중 할렐루야는 그에게 있어 영감의 극치였습니다. 그는 할렐루야를 작곡했던 당시의 감격스러운 상황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앞에 펼쳐있는 하늘나라와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본 듯한 감격 속에서 이 곡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부터 헨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늘 힘썼습니다. 또 위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던 조셉 하이든은 훌륭한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하이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 놀라운 음악을 작곡하는 영감을 어디에서 얻습니까?』 하이든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셔서 내가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작곡한 것이며 이 음악을 주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작곡한 곡 가운데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창조』입니다. 성경의 창세기와 존 밀턴의 『실락원』에 근거해서 그는 이 위대한 『천지창조』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이 비엔나에서 공연하게 되던 날입니다. 그때 하이든은 몸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서 이 위대한 곡이 공연될 때 그는 환자로서 뒤에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 날 지휘를 하던 지휘자는 정말 놀랍게 이 음악을 하나님 앞에서 지휘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지휘자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때 지휘자는 청중들의 박수를 중단시키면서 뒷자석 발코니에 앉아 있는 하이든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입니다. 저분이 이 놀랍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 하이든을 바라보며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든이 갑자기 청중들을 중단시키면서 말합니다. 『아니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면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분이 모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이든 이렇듯 늘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훌륭한 곡들을 작곡할 수 있음과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115:1)

주의 위대하심을 다 찬양하여야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라

 

여덟째, 믿음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도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4:20)

믿음이 없으면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믿음이 있으면 영광을 돌립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좋은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도 좋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하십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을 했을 때 이는 인간이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의 고백에는 이미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단순한 고백처럼 여기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고백 속에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갖는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아멘』이라고 말하는 순간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말씀에 『아멘』함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아홉째, 고난을 당함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인지 모르지만 성도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5,16)

오늘날은 대부분 잘못 믿음으로 고난을 당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실입니다. 옛날처럼 잘 믿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시대가 아니고 잘못 믿는 이들이 고난 당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은 잘못 믿음으로 일어나는 고난이 아니라 잘 믿는다는 이유로 당하는 고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고난은 감수하라고 합니다. 고난이 차라리 축복이라고까지 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신앙인에게 축복이라면 당연히 하나님께는 영광입니다. 주님 위한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음으로 영광 돌리십시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이론이나 어떤 법칙이 아닙니다. 행동입니다. 믿음의 행동입니다. 환상도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지금 몸을 입고 있을 때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교부 이레니우스는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온전히 살아가는 그 자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가 흑암을 일으키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렘13:16).

우리는 아무도 내일 일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음성가 『완전하신 나의』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완전하신 나의 주   의의 길로 날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일 주님의 영광  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만 날 다스리소서.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 홀로 높임 받으소서.?

완전하신 나의 주?  의의길로 날 인도하소서.
행하신 모든 일 주님의 영광  다경배합니다.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만 날 다스리소서.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 홀로 높임받으소서.


한국 초대교회의 유명한 선교사 마펫트(Moffat) 박사가 한국의 모든 선교를 마치고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그를 위해 비석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념의 차원에서 비를 세우자고 동의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최 권능목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펫트 박사님은 한국 교회의 은인이며 나의 신앙의 선배이십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분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들이 마포삼열 박사의 동상을 세우면 나는 도끼로 때려 부술 것입니다. 당신들은 세우십시오. 나는 부술 것입니다.』결국 이와 같은 최 권능 목사의 충정을 이해하신 마펫트 박사의 간절한 만류로 기념관만을 세우는 것으로 낙착이 되었던 교회사의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조성하시고 구속하신 후 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꿈과 소망이 되시고,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나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오직 주님 홀로 높임받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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