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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2: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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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내 맘이 낙심될 때
본문: 히12:3 - 10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3절)
태국에서 코끼리를 어떻게 잡는 가를 소개합니다. 정글 속에서 으르렁대며 뛰어 나오는 코끼리는 미리 만들어 놓은 우리 같은 큰 집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막아 버리는 큰문이 덜커덕하고 내려져 닫힙니다. 이제 코끼리 사냥꾼들은 갇혀버린 코끼리 발에 다 쇠사슬 줄을 매게 됩니다. 이 쇠사슬 줄의 한 끝은 벵갈 보리수라는 튼튼하고 큰 나무에 메어집니다. 이렇게 한 뒤에 우리를 치우고는 코끼리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 주면, 코끼리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끌으면서 그 나무를 뿌리 뽑으려고 힘을 씁니다. 그러나 결국 코끼리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 뽑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발에 묶인 쇠사슬이 팽팽하게만 되면 곧 포기해 버리고 힘을 안 씁니다. 이제부터는 쇠사슬의 한쪽 끝에 그저 작은 기둥 같은 아무거나 묶어 놓아도 좌우간 팽팽하게만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면 아무 곳에나 코끼리를 묶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서커스의 천막까지라도 끌고 가서 그 놈을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코끼리의 모습은, 『나는 이런 정도의 사람밖에 안돼!』라고 하며 과거의 실패와 연약함에 포로가 되어 항상 포기를 쉽게 하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벼룩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우선 여러 마리의 벼룩을 바닥에 놓고 사각형의 유리덮개로 벼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덮었습니다. 그랬더니 벼룩들은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펄쩍 펄쩍 뛰면서 안간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유리 덮개를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유리 덮개를 치워도 벼룩들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벼룩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번 시도해 보았다가 안되면 포기해 버리는 소망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크리스천들은 그런 패기 없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낙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낙심 좌절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히12: 5- 10)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1: 28- 30)
어느 날 마귀가 벼룩시장에 정욕, 기만, 증오, 교만, 시기 등과 같은 도구에 가격표를 붙여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을 '좌절'이라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좌절감은 목표와 욕구가 성취되지 않을 때나 혹은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할 때 생기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게 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믿음의 방패를 버리고 두려움과 불신앙과 자기연민이라는 마귀의 창의 공격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도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좌절이라는 도구를 쓴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문화수준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높은 자살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복잡한 문명사회에서 요구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할 때,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때, 걷잡을 수 없는 소외감으로 사람들은 쉽게 좌절감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여 자살한 가장이나, 성적을 비관해 약을 먹은 학생들, 장가를 못 간다고 목숨을 끊는 농촌 총각들의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가슴 아픈 사실입니다. 인생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입니다
사도로서의 삶을 살면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좌절감에 빠지기 쉬웠던 바울은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엡6:16) 라는 권면과 함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세와 권세와 이 어두운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눅18: 1- 7)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1)
아일랜드의 청년이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사랑하는 약혼녀가 익사하는 아픔을 당했습니다. 그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이 청년은 아픔의 장소를 피하여 캐나다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안주하기도 전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중병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죽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한꺼번에 자기를 향하여 토네이도처럼 몰려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청년은 힘없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세요.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와 평화가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이 때 떠오른 영감의 고백이 후에 『시험 걱정 모든 괴로움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라는 유명한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조지프 스크리븐입니다. 스크리븐이 울부짖으며 드린 기도는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처럼 기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다 들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십시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 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되는대로 힘들이지 않고 줄을 당기기 때문에 하늘에 종이 울리지 아니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단 한 번만 줄을 당겨 보고 맙니다. 그러나 응답을 받고야 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줄을 단단히 잡고 전력을 다해 계속하여 당긴다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3.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 18)
『엠마오 도상』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렘브란트라는 화가입니다. 이 사람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그림을 잘 그려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하루아침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버린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붓을 내던지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접 후 그린 것이 『야경』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이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전시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값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은 아내의 죽음을 통해 참 생명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면서 그린 그림이기 때문에 값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린 그림은 바로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려 18종류의 번역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대화하는 제자나 나무들의 모습 속에서 부활의 약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을 완성한 후 그는 『나는 위대한 생명의 비밀을 깨닫고 이 그림을 그렸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인생의 허무함과 좌절감의 길목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엠마오 도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좌절의 길목에서 만난 예수님, 그분은 우리를 새로운 희망과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4. 때가 되면 거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영국의 뛰어난 시인이자 소설가요 극작가인 골드 스미스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야,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하게만 앉아 있을 거니?』 그의 어머니는 늘 스미스에게 이렇게 잔소리를 해댔습니다. 똑똑하거나 남다른 부분이라고는 어디 한군데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저 스미스라는 아이 좀 봐요. 저 애는 얹 봐도 멍청하게 보인다니까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스미스의 마음은 몹시 아팠습니다. 그는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스미스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지게 되었고 주위로부터 더 이상 모자라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앓고 있던 난치병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습니다.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는 어릴 적부터 독서를 많이 했고, 글을 쓰는 일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쓴 글은 여기저기 신문사나 잡지사에 보냈지만 매번 돌아왔습니다. 『그래, 내 글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때마다 스미스는 자신의 글을 다시 분석하고 고쳐 나갔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살을 깍는 듯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골드 스미스 씨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글을 책에 싣고자 이렇게 통보를 드리니 곧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적힌 어느 잡지사의 전보를 받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뒤 계속 글을 발표해 유명해진 그는 주위 사람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명성은 실패했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소.』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
5.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2:13)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 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처럼 곤경의 우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환경이 흙더미로 나를 덮어 오지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3:13)
6.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시121:5)
요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회의 높은 문턱 때문에 좌절하는 경우를 종종 듣습니다. 경제 규모가 커졌음에도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출발점에서 인생의 벽부터 경험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가벼이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거절이 반복되면서 절망이 편견처럼 쌓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아이들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까치발을 들며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주시던 속 타는 마음은 돌아보니 인생의 참고서였습니다. 『모야천지』(母也天只)란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열려 있는 하늘』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신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갈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격언까지 생겨난 모양입니다.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너희가 젖을 빠는 것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사 66:11) 하나님은 성도가 위험할 때에 보호하십니다.(왕하 6: 16)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7:4)
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히브리서 12장 5, 6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이 위험한 것을 무릎 쓰고 물에 빠진 아이를 건져 구해주었습니다. 소년은 그 사람에게 『선생님, 나를 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천만에! 다만 한 가지만 언제나 기억하고 살기를 바란다. 너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모험해 가면서도 구해낼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잊지 말고 살아 다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희생하시면서 까지 구해 주실만한 귀중한 사람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10:30)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파데르브스키는 첫 레슨을 받고 나서 선생으로부터 『네 손은 조막손이니 아예 그만두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불후의 테너가수 카루소도 처음 노래를 부르고 나서 『구멍 뚫린 문풍지에서 나는 목소리』 란 혹평을 들었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처음 만화원고를 들고 신문사를 찾았을 때 『수준 이하』라는 말을 들으며 거절당했습니다. 자동차왕 포드는 첫 자동차를 만든 후 『후진 기어』를 안 달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인생을 망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낙심과 좌절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촉망을 받는 18세의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장간에서 아버지 일을 돕다가 붉게 달아오른 쇳덩어리가 바이올린 줄을 잡는 왼손 위에 떨어지면서 네 손가락의 끝마디가 잘려 나갔습니다. 더 이상 바이올린 줄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막 피어나려던 그의 화려한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한동안 비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이 젊은이는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왼손으로 바이올린을 켜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거의 쓸 수 없게 된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줄을 잡는 연습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계속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뒤 그는 『아이와 시옥스 카운티』 심포니에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불운을 딛고 재기한 『프랭크 반데르 마아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아픔과 가시가 있는 것도 낙심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 도리어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나에게도 가정문제와 공동체 활성화의 일로 내 맘이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힘이 생깁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딤후4:17)
찬송가 300장 (통 406장) 『내 맘이 낙심되며』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맘이 낙심되며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 주시네
가는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하며 네짐을 지시네
2.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 때 주 내게 속삭이며 새희망 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 떨 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 들리네
3.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 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용기를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슬픔에 잠길 때 주님의 능력입어 원수를 이기네
<후렴>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족하네
이 괴론 세상 나 지날 때 그 은혜가 족하네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찰스 스펄전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 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쥐가 아닐까?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쥐야. 』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우리 인생이 피곤하지만 하나님이 그때마다 우리의 하늘을 열어 주신다면 일평생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103:2)
우리는 현재 내게 있는 고통과 어려움만 생각하고 낙심하지 말고,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았고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으니 도리어 감사함으로 영광과 찬미를 드려야 하겠습니다.(롬3:24, 엡1:6)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믿음의 형제 여러분! 영원한 곳에 소망을 둔 그리스도인답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모든 어려움과 좌절감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시42:5).
* 기도: 우리의 피난처되신 주님, 낙심 좌절하지 말고, 기도를 통해 승리하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어떤 난관 앞에서도 좌절하기 이전에 저희의 믿음 상태를 점검하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낙담함이 없이 계속해서 천성을 향해 전진하게 하소서.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신 주님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고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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