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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5: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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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389)2014년 6월 16일 |
아브라함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시105:1-15)
종말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계정복 음모론을 부풀리기를 좋아합니다. 음산한 두려움을 심으면 종말론이 잘 먹혀들고 영적인 노예사냥이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 음모론의 중심 대상은 대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정복 음모를 은밀하게 꾸민다는 것입니다. 그런 음모론은 상당히 과장된 측면이 많습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녀도 유대인이 됩니다. 그러나 유대교로 개종하면 누구나 유대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인종과 국적이 다양한 것입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종교 개념이 아닌 인종 개념으로 여기고 인종 청소를 했지만 사실상 지금 유대인은 혈통적인 개념보다는 종교적인 개념의 유대인입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핍박받은 역사가 있기에 살 길을 은밀하게 미리 준비할 때가 많은데 그것을 종말론주의자와 인종주의자와 극우주의자들이 세계 정복 음모론으로 부풀리는 것입니다.
전 세계 유대인은 약 1500만 명 정도 있는데 그 중 3분의 1은 미국에 살고, 3분의 1은 이스라엘에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삽니다. 그처럼 전 세계 인구의 약 2%인 유대인 중에 노벨상 수상자만 지금까지 150명 넘게 나왔습니다. 미국 100대 부자 중에 유대인이 30% 정도 됩니다. 1948년에는 중동 한복판에 기적적으로 유대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처럼 숫자에 비해 영향력이 크니까 항상 음모론의 대상이 되어 그들이 세계정복 음모를 꾸미고 세계 질서를 뒤에서 조종한다고 합니다.
그런 세계 정복 음모론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비밀경찰이 작성한 <시온의정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온의정서는 유대인들의 세력과 음모를 과장해 사람들의 불안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도 그 음모론을 과장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히틀러는 유대인을 ‘타인의 몸에 사는 기생충’이라고 주장하며 유대인에 대한 반감을 확산시켰습니다. 그 음모론이 다른 음모를 가진 자들에 의해 주기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유대인 음모론이 나올 때마다 자주 거론되는 가문이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로스차일드 가문 중심의 유대인들이 돈으로 정말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까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250년간 지속된 가문인데 그들 자본이 세계를 지배할 정도라면 왜 2차 세계대전 중에 그처럼 비참한 유대인 대학살을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981년에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할 때 자신들의 은행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겼겠습니까? 결국 유대인이 숫자에 비해 영향력이 크지만 그들이 미국이나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물론 유대계 자본의 영향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과장도 심합니다. 특히 로스차이들 가문의 재산이 수천조 달러에 이르고 그들이 스위스에 보관한 금만도 4700조 달러에 이른다고 음모론자들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1년 총 생산이 100조 달러도 안 되는데 한 가문이 그 몇 십 배의 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재화란 가용 자원과 가용 노동력으로 치환되어야 진짜 재화인데 전 세계 가용자원과 노동력의 몇 십 배 되는 돈을 한 가문이 가졌다는 말이 진짜라면 그들은 휴지조각을 가진 셈입니다.
마치 달이 1경 달러의 땅값을 가졌는데 그 달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하듯이 가용 자원과 노동력으로 치환되지 않는 돈은 실제 돈이 아닙니다. 또한 강대국일수록 정부 힘도 강한데 그런 나라에서 상속세도 전혀 안 내고 부를 반영구적으로 대물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로스차일드가가 전 세계를 지배할 재력을 은밀히 소유했다는 말은 종말론의 두려움을 심으려는 종말론자들과 인종편견을 통해 자기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인종주의자 및 극우주의자에 의해 과장 증폭된 음모론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2차 대전 후 그 영향력이 크게 쇠퇴했습니다. 2011년에는 유럽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유럽을 떠나 록펠러 가문과 손잡고 미국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음모론자들은 그것도 없는 척 하는 음모로 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이 록펠러 가문과 손잡고 미국에 진출한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로 가문의 생존을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최근 로스차일드 가문의 부는 크게 줄어 각지에서 소규모 투자은행을 운영하는 정도입니다.
너무 음모론에 빠지지 마십시오. 대개 보면 음모론이 음모인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가올 경제전쟁을 냉철하게 준비하며 인물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돈의 힘은 막강합니다. 돈은 엄청난 무기를 사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인류를 공멸시킬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전쟁에는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버는 은밀한 손이 있습니다. 그들의 장기놀이에 무수한 인명들이 죽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런 악인에게 돈을 빼앗기지 않고 악인의 돈을 박탈하는 것이 성도의 중요한 경제적인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요새 돈에는 조국이 없습니다. 애국이나 고상한 가치를 따지지 않고 이윤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소로스 같은 돈 약탈자가 지구촌 도처에 많습니다. 소로스는 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자본을 빼서 두려움을 증폭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고 산업 구조조정 여론을 조장합니다. 그때 통화 공급량을 축소하게 해서 수술 환자에게 수혈을 막는 상황을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기업을 도산시킨 후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회 불안이 극대화되면 채무와 주식을 전환하는 수법으로 국가의 핵심 자산을 쉽게 사들이며 돈을 약탈해갑니다.
많은 나라들이 그 수법에 말려 경기침체를 겪고 재화를 털렸습니다.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처럼 반항할 힘이 없는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강한 군사력을 가진 한국이나 러시아나 동유럽 나라들조차 그런 국가적인 약탈을 당했습니다. 그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가 자산을 약탈하는 소로스의 수법에 당하면 안 됩니다. 모든 음모는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으려는 사전 작업니다. 그런 음모에 쉽게 넘어가 두려움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소로스 같은 인물을 이겨낼 인물을 길러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 >
성도는 의로운 부자의 꿈도 꾸어야 합니다. 그처럼 물질정복에 나설 때는 ‘의로운’이란 개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최선의 지혜와 아이디어와 인맥을 구해야 합니다. 코흘리개의 호주머니를 털면서 물질을 정복하기보다 악하게 돈을 버는 사람들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물질을 회수하는 사명감을 가진 의로운 부자를 꿈꿔야 합니다.
성도 중에 거룩한 재테크 능력을 갖춘 사람도 나와야 합니다. 재테크란 쉽게 말하면 ‘돈놀이’입니다. 돈놀이가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은행도 돈놀이 회사입니다. 돈을 빌려주고 적절한 이자를 받는 것은 감사를 훈련시키고 남의 돈을 쓰면서 함부로 잘못 쓰지 않도록 책임의식을 고취하고 땀과 창조성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합니다.
무책임하고 낭비적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영혼과 정신이 더 망가집니다. 그러므로 신 용과 책임감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되 서민의 고혈을 짜서 일의 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이자를 너무 많이 받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 재테크 기관을 만들어서 돈을 빌려줄 때는 년 이자가 5%를 넘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50% 이자를 매기는 악한 대부업체는 점차 힘을 잃습니다. 그처럼 서민들의 고혈을 짜내는 악한 금융사의 힘을 빼려고 좋은 금융사를 육성하는 비전도 가져야 합니다.
대신에 수익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지혜와 인맥을 통해 악인의 돈을 회수해오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면서 창출해내야 합니다. 그처럼 악한 돈의 제국을 무너뜨릴 사명감을 가진 아브라함과 같은 의로운 부자가 되고 그런 인물을 키워내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임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복된 인물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만민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하라고 도전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높입니까?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하신 기이한 일들을 열심히 증거해야 합니다(2절).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이 하신 가장 기이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이 됩니다.
살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구원의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만은 퇴색되지 않게 하십시오. 그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고 또한 신세를 지고 은혜의 빚을 진 사람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 은혜를 꼭 갚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능력과 여건도 신비하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살면 능력의 문과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인물 성도의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만 자랑하십시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찬양은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의 핵심 의미는 자기 자랑을 멈추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사람을 공허하게 만들지만 하나님 자랑은 사람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자랑할 때 사람은 가장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게 되고 그때 축복의 문도 활짝 열립니다.
어느 날, 성 크리소스톰이 법으로 금한 복음 전파 문제로 감옥에 가게 되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죄수들을 복음화하라고 여기로 저를 파송해 주셨군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변함없이 높이게 하소서!” 그리고 감옥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는 잠시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질이 더 나쁘다고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형장으로 가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도의 가장 복된 죽음이 순교인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자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잠시 후 사형장에서 교수형을 집행하려고 할 때 갑자기 사형 중지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때 크리소스톰이 눈물로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더 남았습니까?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저를 써주소서.” 그처럼 손해와 고난이 예상되어도 생명을 주시고 자신의 존재를 가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힘써 자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울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을 원하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4절). 가장 능력 있는 기도로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시는 손을 바라보기 전에 하나님의 자비하신 얼굴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사태가 역전되고 신기하게 필요한 인맥도 얻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인맥과 문제해결을 노리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필요한 것을 구하되 무엇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가 먼저 베이스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제일 기본자세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선교연맹(C&MA) 교단이 배출한 20세기의 최대 저술가 토저(Tozer) 목사님은 하나님을 깊이 추구하는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사상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처지가 정말 난처합니다. 주님 앞에서는 침묵만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지만 제 마음속에 솟구치는 불타는 사랑이 주님에 대해 말하기를 강요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합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추구하면 자유와 기쁨을 포기하며 늘 엄숙하고 재미없게 살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면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즐겁고 매력적인 일임을 깨닫게 되고 그와 더불어 하나님이 그 마음의 소원과 기도제목도 신기하게 들어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라고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5-6절). 이 구절에서 ‘그의 입의 판단’은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이 시편 기자는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에서 애굽 병사들을 수장시킨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그런 심판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노래합니다.
첫째, 그는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7절). 그렇다고 우리의 잘못을 무조건 감싸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면서 은혜를 덧입혀 주십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노래합니다(8절).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천 대까지 언약을 지켜주십니다(신 7:9). 그래서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는 한 하나님 편에서 언약의 자녀를 먼저 외면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언약은 어떻게 형성되었습니까?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음으로 형성되었습니다(9절). 그 언약이 이삭과 야곱에게도 계승되어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영원한 언약이 되었습니다(9-10절). 그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은 가나안 땅을 주는 것이지만 야곱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적어서 이방 땅에서 나그네처럼 떠도는 신세였습니다(11-13절). 그처럼 잠시 이방 왕들 밑에서 훈련하게 하셨다가 마침내 이방 왕들을 꾸짖고 가나안 땅을 주심으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멋지게 이루셨다고 노래합니다(14-15절).
< 아브라함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의 대 가문인 우상을 섬기던 데라 가문의 장손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난 후 믿음의 길을 새롭게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부를 하나님의 뜻대로 멋지게 썼기에 믿음의 조상과 언약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되고 그런 인물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사역의 제일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파 신도 십만 명과 대기업 직원 십만 명을 비교해보십시오. 구원파 신도 십만 명은 교주로부터 미래의 약속만 받고 친히 많은 것을 바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주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의 일부는 몸까지 바쳐서 교주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어떤 이단 단체에서는 악한 교주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나서고 악한 교주가 같이 죽자고 독극물을 마시라고 해도 같이 마시고 죽습니다.
반면에 대기업 직원 십만 명은 기업으로부터 많은 월급을 받는 실질적인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래도 그 기업의 기업주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를 보호하거나 그를 위해 대신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이 거의 대부분 자기 살 궁리만 합니다. 그때 기업주는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겠습니까? 그런 현실이기에 인생의 승부수를 띄울 때는 ‘돈을 많이 가지는 것’보다 ‘인물을 많이 기르는 것’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특히 나눌 줄 아는 인물을 길러내야 합니다. 나누는 길이 지키는 길입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무리 재물을 지키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죽음이란 신비한 인생 제동장치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돈은 한 사람이나 한 가문에 계속 쌓여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토록 돈에 집착한 것은 돈을 생존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갖은 설움과 핍박을 받은 유대인으로서 돈만이 힘든 현실을 벗어나는 강력한 무기였기에 가족 간의 강한 연대를 통해 사업을 확장했고 사업 주체에서 여자나 사위는 물론 외부인의 참여를 배제하고 심지어 외부인과의 결혼조차 배타하며 부의 영속성을 꾀했습니다. 그처럼 최선을 다해 부를 지키려고 했지만 그것이 사람 뜻대로 됩니까?
돈을 벌기만 하려고 하면 영속적인 부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부 자손들은 자선활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재산을 지키려는 또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의료시설, 공공주택, 고아원 등 소외 계층을 위한 자선사업을 꾸준히 하면서 자신들이 좋은 유대인임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사실상 그것이 그들의 부를 꽤 오래 지속시킨 원동력 중의 하나였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부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힘듭니다. 그 부를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나눔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특히 자녀의 행복을 원하면 나눔 교육을 잘해야 합니다. 나눔 교육이 없이 막대한 부를 물려주면 자녀의 영혼과 정신을 망칩니다.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유달리 자식 복이 없었습니다. 후대를 위해 뭐든지 다 해줄 수 있었지만 어렸을 때 병사한 자손이 유달리 많았고 청소년기에 자살하거나 정신병원 신세를 진 자손도 많았습니다. 특히 가문의 부를 지키려고 유전적으로 얼마나 나쁜지도 모르고 유럽 각지에 흩어진 사촌들끼리 근친결혼을 시켰는데 그것이 무서운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 여성들도 평생을 유리관 속의 장미처럼 살다 간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한 여성은 파리의 정원을 거닐다가 처음 보는 수북한 낙엽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는 낙엽이 떨어지면 집사가 바로 낙엽을 치웠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현실과 유리된 자기 세상에 갇혀 살았기에 왕족처럼 생활했지만 환경의 작은 변화만 있어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심한 감정적 격변을 보이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최고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 고급 미용사가 손질한 머리, 그리고 태생적인 우아함 등의 겉모습 뒤에는 현실과 거리가 먼 삶으로 인한 불안과 애정 결핍이 심했고 무엇이든 맘대로 하고 자란 여성의 오만과 히스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어디론가 외딴 별장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현실 도피 성향이 강해지고 방랑벽까지 겹쳐 정신이상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왜 그들은 어디론가 외딴 곳으로 떠나고 싶어 했을까요? 공식적으로 치를 의식도 없고 타인의 눈도 없는 곳인 화려한 개인 신전에서 개인적인 기쁨을 추구하며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곳에서 휴양을 즐겨도 그 삶은 주인공도 자신 한 명뿐이고 관람객도 자신 한 명뿐인 쓸쓸한 연극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화려한 공허를 즐기는 귀족들이 많았습니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전혀 없고 집안일이나 육아에 매일 필요도 없는 대 가문의 여성들이 왜 그렇게 공허하게 되었을까요? 무엇인가 땀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희로애락도 잘 맛보지 못하고 나눔의 기쁨도 잘 모르는 절름발이 인생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외면한 상태에서 장기간 화려하게 살면 나중에는 기나긴 인생에 대한 공허한 회한과 지나간 영화에 대한 그리움만 남습니다. 그렇게 말년에 쓸쓸하게 죽은 로스차이들 가문 후손들이 많았습니다.
돈이 많은 것보다 돈을 최대한 잘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것을 많이 나누며 살다가 역사책과 천국 생명책에 그 이름이 찬란하게 기록되고 그렇게 나눌 줄 아는 믿음의 후손과 제자와 인물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최고로 복된 일입니다. 대 가문의 후손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후 과거의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믿음과 나눔의 길을 출발했기에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을 꿈꾸며 힘써 나눔의 길을 선도하고 더 나아가 나눌 줄 아는 인물을 많이 기르며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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