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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84: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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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시간은 금보다 귀하다
본문: 시편 84 장 10 절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려고 일하고 있소.』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짐을 나르고 있을 뿐이오.』 또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는 하나님과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한 시간을 낭비하면 그만큼의 생명도 낭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한 것입니다. 인간 생명의 신성과 존엄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바로 이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첩경이 아닐까요?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골4:5)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좋아서 하는 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로 각각 3분의 1씩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성별과 연령대, 가진 직업에 따라서 이 비율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인생 전체로 놓고 봤을 때 비율이 높게 달라지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일 중에서 자발적인 일을 할 때 가장 만족스러워하지만 의무감 때문에 하는 일도 불만족스러워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가는 남은 3분의 1이라는 시간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사용하느냐, 아니면 안 해도 그만인 일에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려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되는 일을 하는 경우에는 깊은 몰입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어떤 목표도 갖지 않고 마지못해 소일하는 경우에는 쉰다는 느낌 이외에 어떤 안도감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괴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간의 구성을 갖고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남는 시간은 주님이 주신 명령을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루의 시간의 쓰임을 살펴보고 주님의 일을 위한 시간을 미리 준비해놓으십시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미국의 뉴욕에 있는 싱싱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사형수 벨과 제이콥은 집행일을 며칠 앞두고 자신들의 방에 시계를 달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며칠이면 사형이 집행될 텐데 왜 시계가 필요하냐는 간수의 질문에 죄수들이 말했습니다.
『저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저흰 비록 사형수이지만 남아있는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임종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바칠 텐데!』
곧 죽을 사형수에게도, 모든 것을 가진 여왕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었으며,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한번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고 계십니까? 인생을 서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로 사랑하는데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삶이 담겨 있는 생명과 같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하루가 의미 있습니다. 그 작은 점들이 모여서 인생 곡선의 한 부분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전체 방향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땀을 아끼지 않고 하루의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지혜를 가집시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은행에서 걸려온 이상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원을 입금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입금을 하면서 당신에게 꼭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안에 반드시 이 돈을 써야 하는데 조건은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익하게 쓰라고 하더군요.』
이 사람은 어리둥절했지만 기분이 좋아 1,440만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 궁리하다가 그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입금된 돈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돈은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그 돈을 찾아서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기분 좋게 다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또 당신 앞으로 1,440만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또 쓰십시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반복되었는데 그 돈을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은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돈 1,440만원은 주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1,440분의 시간은 공평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은 이것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시간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해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청지기입니다.
하루 24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제공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20시간이 될 수도 있고, 30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두 청년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 청년은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고, 다른 한 청년은 군대에 입대하는 중이었다고 합시다.
전자에게는 열차를 타는 여섯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만, 후자에게는 매우 짧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마음가짐에 따라 짧은 시간일지라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많은 창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고 그냥 허송세월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시인도 죄악 가운데 천 날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루를 생활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악 가운데 모든 것을 소유한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에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식인종 아우카 부족 선교의 밑거름이 되었던 짐 엘리어트는 자신의 낡은 노트에 이런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게으르고 마른 막대기 같은 제 삶에 불을 붙이시고 당신을 위해 타오르게 해주십시오. 나는 긴 생명을 원치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같이 가득 채워진 삶을 살기 원합니다.』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도 없고, 시간은 저축할 수 없으며, 누구도 시간을 붙잡아 매 둘 수 없고, 남에게 빌려 주거나 빌려 쓸 수도 없습니다. 시간은 낭비될 수 있으나 그것은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현명한 자는 허송세월을 가장 슬퍼합니다.(잠6:10- 11)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많아야 80년입니다. 시간은 이 80년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은 생명입니다. 』 이토록 귀중한 시간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렵니까? 인생은 연습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을 알차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성공은 기회를 잃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금이다』 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이 기회를 놓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탄과 그의 졸개들이 성도들의 신앙생활 방해 공작을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습니다. 젊은 엘리트 출신의 마귀가 크리스천을 죽이고자 할 때에, 늙은 마귀가 순교는 교회의 씨가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또한 감옥에 가두자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두면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므로 손해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에 늙고 지혜로운 마귀가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속삭이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도 하고 사랑도 하자. 그라나 내일부터 하자.』
이 전략이 마귀의 최대 성공 전략이었다. 히말라야 산 속에 가면 『야맹조』 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낮이면 신나게 즐기다가 밤이 되면 잘 둥지가 없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 라고 구슬프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야맹조는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자기의 일생이 다 가도록 집을 짓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탄은 『다음에 하지, 내일 하지.』 하고 속삭이며 우리를 무기력해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 바로 오늘 지금 당장에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찬송가 552장 (통 358장) 『아침해가 돋을 때』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아침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2.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3.한번 가고 안 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4.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후렴]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아-멘
베드로 사도는 인생을 가리켜 나그네요, 행인, 거류민이라고 했습니다. 다 지나가는 일시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생이 가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시적 인간이 영원성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 이것이 복음이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제한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 』며 시간 사용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편 84편은 예루살렘을 향해 길 떠나는 순례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 』고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즉,시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한 날을 위해 다른 곳에서의 천 날을 희생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세상에서의 가치보다 천 배의 효용을 지니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으로의 순례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순례자는 낮의 뜨거운 해와, 밤 짐승들의 습격,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강도와 도적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음에도 그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시73:28)고 확고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인생의 효용성도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경쟁력도 다 포함됩니다. 영원성을 향하는 성도에게 이 세상의 일시성이 어찌 감히 경쟁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 인생을 사신 예수님을 보세요. 위대한 신앙의 거성들을 보십시오. 한결같이 주님과의 교제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던 이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계보를 이을 차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될 수도, 어리석은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 뜻에 따라 의에 거하며 지혜롭게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특히 우리의 인생은 유한하고 짧기에, 이 시대는 악한 세대이기에, 그리고 반드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결산이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월을 헛되게 소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전파를 위해 좀 더 주어지고 있는 귀한 시간을 아끼며 지혜롭고 바르게 활용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아 현명하게 사용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주신 시간을 어리석게 낭비하지 말고, 주님 위해 아껴 쓰고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주어진 시간을 잘 선용하게 하소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며 심은 땀방울이 아름다운 열매가 되게 하소서. 짧은 시간이라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위해 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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