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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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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작은 것에도 충성하라
본문: 눅16: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일본 군인들이 천황을 위해서 바치는 헌신도는 세계적인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만주 사변 당시 여순항을 포위하는 일본 군대가 철조망을 자르지 않으면 진군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약 300∼400명의 중대원을 데리고 있던 중대장이 『여러분 가운데 10여 명을 회생시켜야 되겠습니다. 달려만 가면 총에 맛아 죽지만 한 사람이 가면 둘째 사람이 가고 또 셋째 사람이 가고 한 10여 명이 가서 한 사람이 한 줄씩만 자르면 저 철조망을 모두 자를 수 있는데 누가 천황을 위해서 가겠습니까?』라고 말하자 그 중대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300명이 다 나섰습니다. 그래서 중대장이 열 사람을 골라서 희생시킨 후에 그 철조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 젊은이들이 주님을 위해 이렇게 충성과 결사를 각오한다면 우리 민족의 복음화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아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어제까지 우리가 주를 위해 죽겠다고, 이 일을 위해서 몸을 바치겠다고 서약을 했지만, 오늘 그 마음을 헌신짝처럼 바꿔 버릴 수 있는 것이 간사한 인간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우리가 일을 맡았으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충성이란 충(忠)은 가운데 중(中),마음 심(心)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서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誠)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이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말대로 사는 사람 즉, 신실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신약의 원어인 헬라어로는 피스타스입니다. 신실하다, 맡길 만하다, 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충성하려면 무엇보다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문직이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면 충성할 수 없습니다. 충성은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시켜서 하는 일,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으로는 충성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책임지고 주인이 되는 태도입니다. 억지로 일하는 노예 같은 마음으로는 결코 충성될 수 없습니다. 충성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란 일에 대한 욕심, 의욕, 에너지를 말합니다. 열심 있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직분을 맡겨주면 기뻐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충성을 다 합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들은 가능하면 직분을 맡지 않고 마치 선데이 크리스천처럼 조용히 교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다른 분들 중에는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서 너무나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것 맡고 저곳에서는 저 일을 맡아 종국에는 이 일도 저 일도 잘 감당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한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충성하라고 충성할 줄로 알고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한번 충성해 보도록 결심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기실 때에 우리의 응답은 단 한가지라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겸손의 뜻이 있습니다. 책임지는 뜻도 있고 스스로 하는 뜻도 있습니다. 어머니, 목사님 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다짐합시다. 불신의 때, 불충성의 때, 모두가 하기 싫다고 도망치고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일어나서 맡은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영국이 낳은 문호 칼라일이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가 하는 일이 미천하다고 낙심치 말라. 그대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집안을 정리하는 단순한 일일지라도 마음 먹고 그 일을 잘하라. 만일 그대의 책임의 범위가 넓고 관계되는 일이 많으면 더욱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그대에게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가 있으면 그들에 대한 그대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기억하고 그들로 하여금 실망케 말지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것은 곧 세상의 여러 가지 불행이 생기지 않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말입니다.
또한 영국의 시인 키플링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보이는 연장을 잡아 눈앞에 있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정 큰 인물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없이 자기의 일을 다하며 작은 생명 하나를 살리는 것을 생의 최대 목표로 여기며 지금도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를 위하여 애써 생명의 소식,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하늘의 큰 자요, 위대한 자입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3: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충성을 해야 할까요?
첫째, 작은 것에도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성도는 큰 일,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윗은 어려서 목동이었습니다. 양을 칠 때 남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양을 세 부류로 나누었습니다. 건강한 양, 어린 양 그리고 병든 양으로 나누어 몰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풀을 발견하면 풀을 세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갓 돋아난 연한 풀, 보통 풀 그리고 억센 풀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을 몰고 다니다가 갓 돋아난 연한 풀이 있으면 병든 양에게만 먹였습니다. 보통 풀은 어린양에게 먹였습니다. 그리고 억센 풀은 건강한 양에게 먹였습니다. 이렇게 양을 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면서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가 네 육신의 아버지의 양을 그렇게 잘 돌보는 것을 보니 네 영의 아버지인 내 양 이스라엘 백성을 네게 맡겨야겠다. 그러면 그렇게 잘 돌볼 것이다. 너를 왕으로 삼을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영국 런던의 워커 미술관에는 콘트러라는 화가가 그린 유명한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글 그림은 폼페이라는 도시가 베스비우스 화산의 폭발로 인해 그 화산재에 묻혀 전멸당하는 비참한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화산재와 용암이 비와 눈처럼 폼페이 성에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화산재와 불을 피해 성 밖으로 몰려 나갔습니다. 이들로 인해 대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성문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그 성이 문지기였습니다. 뜨거운 화산재와 불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도 성문을 지켜야 하는 자신의 사명에 충성하고자 그는 서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바로 『충성』이었습니다. 충성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잃어버리지 않는, 다시 말해서 죽음을 이기는 사명감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일은 크기를 따지지 말고 충성해야 합니다. 오히려 작은 것일수록 더 충성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기초가 중요합니다. 1%짜리 경험이라도 100%로 반응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것을 배워야 작은 것에 민감해지고, 하나님의 세밀한 사인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충성도는 하나님의 측정기준입니다. 우리에게 작은 일만 맡겨진다고 불평하진 않나요.
작은 일이 우리에게 맡겨지는 것은 큰일을 우리에게 맡기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우리는 어느 새 큰일을 이룰 주님의 군사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여기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작은 것부터, 나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민12:7)
둘째, 명령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민12:7)
프랑스 군대의 최고의 명사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돈을 절약하여 조그마하고 아담한 집을 샀습니다. 그 집은 담쟁이 덩굴이 우거지고 각종 꽃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그가 은퇴하여 평화롭게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때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 무렵 보불 전쟁이 발발했고 독일군이 이 조그만 마을을 점령하여 그의 집을 병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명사수인 병사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대포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를 지휘하는 사령관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자네, 저기 저 시골집이 보이나?』 병사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작은 집을 사령관이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집에 독일 군이 들어가 있네. 잘 겨냥하여 일격에 날려버리기를 바라네.』 사령관이 말했습니다. 명령에 복종한 이 병사는 그의 있는 기량을 다하여 사령관이 지적한 집을 겨냥했습니다. 무서운 굉음이 터지면서 그 아름다운 집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잘했군』하며, 사령관이 병사를 돌아다보았을 때 장군은 그의 얼굴이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된 것을 보았습니다. 『자네 왜 그러나? 무슨 일이야?』 충성스러운 병사는 대답했습니다. 『사령관님! 저 집은 바로 저의 집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그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주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곧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가장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사령관인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8)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섬겨야 합니다.(대상11:18,19)
1337년 독일의 뮌헨에서 뒤츠 슈벤블라라고 하는 한 사나이가 반란죄로 잡히게 되어 4명의 부하와 함께 사형을 선고받고 참수형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슈벤블라는 자기의 부하들을 위해서 이렇게 애원을 했습니다. 『제 목이 절단되는 순간에 제가 떨어진 머리를 들고 부하들이 있는 앞에까지 달려가 볼 테니 제발 저 불쌍한 부하들을 살려 주십시오.』
재판관은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하며 코웃음을 쳤지만 그의 애원이 하도 간절했던지라 짐짓 그렇게 약속했습니다. 이윽고 망나니의 칼이 슈벤블라의 목을 쳐 내린 순간, 그는 자기 머리가 떨어진 것을 알고 두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쳐들고 부하들이 떨고 섰는 앞까지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서 부하 4명은 죽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필사의 경주라고 합니다. 모르긴 해도 그 4명의 부하들은 자기가 모시던 이 거룩한 사랑의 소유자에 대해 일생을 살아가며, 남에게 이야기하며 또 자손에게도 이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넷째, 계명에 기록된 대로 빠짐 없이 지켜 행해야 합니다.(대하31:1)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치무라 간조는 도쿄 제일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본 천황의 『교육 칭호』라는 명령을 거부해 교사직을 박탈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교육 칭호』를 읽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차렷 자세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치무라는 천황도 사람인데 그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우치무라는 젊어서 미국에 건너가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느냐』고 묻자 『나는 세상의 부귀와 명예에 관심이 없소.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실천하고 사랑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약속한 사람에게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중요한 것은 악한 영과 싸워 승리한 후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사람은 누구든지 즐거움에 참예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28:20)
다섯째, 그 마음이 항상 같아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대하31:21)
서양 역사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는가? 그때 다른 군사들은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 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습니다. 그 짐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금덩이였습니다.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쟁에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왕은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고 그 병사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전부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금덩이가 담긴 짐이었습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광무제가 한(漢) 왕조를 재건하기 위해 전투를 하던 중 상황이 불리해지자 거의 모든 신하들이 그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충신 왕패만은 그를 버리지 않았는데 왕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영천에서 나를 따라온 사람들은 모두 내 곁을 떠났다. 그러나 너만 오직 홀로 남아서 분투하고 있구나. 이것은 강한 바람에 약한 풀은 쓰러지나 강한 풀의 강함을 비로소 알게 됨이로다.』
내가 환난을 당해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 변함 없이 찾아와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람이야말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스러운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며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 장담하는 신앙인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과는 달리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충성된 신앙인은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그 빛이 찬란하게 드러납니다. 시험과 환난이 다가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순종하는 사람이 충성스러운 성도입니다.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20:6)
여섯째,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섬겨야 합니다.(느7:2)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직원 아치볼드는 어느 호텔에 가서 숙박계를 쓸 때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하였습니다. 말할 기회만 있으면 그는 『한 통 4달러 스탠더드 석유』라고 먼저 앞세우곤 하여 별명이 『한 통 4달러』가 되었습니다. 석유왕인 사장 록펠러가 이 말을 듣고 평사원인 그를 불러 식사를 하면서 대화한 결과 회사에 대한 열심과 충성이 대단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 사람이 다름 아닌 아치볼드였습니다. 그는 가장 유능한 사장으로 회사에 크게 공헌을 하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청지기로서 주인의 집과 재산을 관리하며 일꾼을 감독하며 물건을 지급하고 분배하고 집 전체를 보살피는 일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아서 관리하는 복음의 일꾼이며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이 비밀을 맡겨 주셨으니 이 사명을 잘 감당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일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종들이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겨 주인에게 드림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받은 그대로 드림으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오직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판단에 너무 민감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주님의 판단과 평가를 바라면서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시101:6)
일곱째,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잠28:20)
스코틀란드에 에덴바라라고 하는 공원 묘지에는 개의 무덤이 있고 그 무덤 앞에는 충견비가 서 있었습니다. 그 개는 자기 주인이 죽어 장레를 지낸 후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그 무덤을 지키고 있음으로 하는 수 없이 개밥을 날라다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개는 14년 동안을 무덤을 지키다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개의 무덤 앞에 충견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 못하는 짐승도 충성을 다 하는데 인생은 그와 같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탄식하며 이르시기를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사1:3)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일을 등한히 여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사 죄악과 고통 중에 내버려두셨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는 자라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고(요이 1:9),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은 토하여 내치실 것입니다.(계3:16)
여덟째, 시종 여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일해야 합니다.
영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사냥을 갔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습니다. 그러다 왕자는 우연히 제임스라는 목동을 만나 길 안내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목동은 『안됩니다. 저는 주인집의 양을 치는 목자입니다. 주인의 양떼를 지키는 것이 내 임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많은 돈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동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왕자는 안내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목동은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죽을지언정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다만 말로 안내해 드리지요.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가면 도로가 나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자는 할 수 없이 시키는 대로했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제임스 목동을 불러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그 목동을 평생 잊지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일을 시키면 틀림없이 잘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자가 누구냐』(마24:45)
아홉 째, 매사에 주인의 일을 준비하고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딛2:10)
10년 전 마크는 중국 선교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당시에는 서구인이 혼자 여행자로 선교하러 중국에 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크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실제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중국어 회화 테이프를 빌려와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의 생활에 관한 책은 도서관에서 전부 읽었습니다. 마크는 중국 정부에 제 2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직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정부의 허락을 받아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마크는 지금도 중국에 있습니다. 그는 저녁 성경공부를 위해 자유로이 학생 기숙사에 드나들곤 합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많은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만약 마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성도 또 미리 나서서 준비를 하지도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날 중국에서 사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충성이란 마치 문짝의 돌쩌귀와도 같습니다. 돌쩌귀는 극히 미미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어떠한 거대한 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장래에 문을 활짝 여실 수 있도록 그 문의 돌쩌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높이 받드는 덕목입니다.
열 번째, 주인, 혹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마8:9)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가 하루는 잠자리에 들면서 그의 가정부인 에밀리 글로리아 윌슨 부인에게 절대로 깨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얼마 후 백악관의 죤슨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통령 각하, 갈브레이스씨는 지금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깨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깨우시오. 지금 통화를 해야 하오』 『안 됩니다. 나는 각하의 일꾼이 아니라 갈브레이스 씨의 일꾼입니다』 그 후에 갈브레이씨와 통화를 한 대통령은 에밀리 부인에게 이런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나는 그 여자가 백악관에서 일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구의 일꾼인가?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잠13:17)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
열한 번째, 죽기까지 인내하며 변절하지 않아야 합니다.(계2:10, 계2:13)
추운 겨울 열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며칠 동안을 굶긴 후 얼음구멍 열 두 개를 뚫게 하였습니다. 한 구멍에 한 사람씩 발가벗겨서 두 팔을 벌리라고 했습니다. 그 옆에는 따뜻한 방을 준비해 놓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은 다음,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나아 오라. 그리하면 살 것이요, 저 따듯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누구하나 그리스도를 저 버릴 수 없다고 항거해 오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그만 물 위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지키던 군인이 하늘을 우러러 보니 열두 천사가 열 개의 면류관을 가지고 내려 오다가 한 천사가 도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군인은 재빨리 군복을 벗고 그 얼음 구덩이로 들어가며 『이 사람이 버린 예수를 내가 믿겠다』라고 하며 순교했습니다. 어디든지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이 하나씩은 끼어 있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성도들에 대한 박해가 교회 성장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났을 때 그 불꽃은 사방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찬송가 336장 (통 383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2.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 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3.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 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멘
역사가 필립 쉐프(P. Sohaff)는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최후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처형자들은 그를 채찍으로 몹시 때렸으며 마침내 불태웠습니다. 신체의 극히 내부에 있는 내장까지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처형자들은 미처 타지 못했던 신체를 창끝에 걸어 놓고 야수의 밥으로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화형에 처하기 직전에 『네가 만약 로마의 시저를 숭배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지금까지의 이 박해를 그만두고 특별히 대우하겠다』라는 제안 앞에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86년간 나를 해침이 없이 나에게 성실하셨던 나의 왕, 나의 주님, 그분을 지금 이 나에게 부인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나는 그를 사랑하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극심한 박해와 고난을 당한 서머나 교회를 향해 성령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2:10)
열두 번째,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기쁘게 하고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야 합니다.(마25:21)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한번은 싸움터에서 적들에게 포위되어 목숨에 위협을 받을 때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 뒤에는 강이요 앞에는 적들이 포위를 하고 들어왔는데 부하들은 나폴레옹을 피난시키기 위해 추운 강물에 인간다리를 만들어 그 위로 나폴레옹이 지나가게 해서 무사히 도피를 시켰습니다. 그 후 추운 강물에서 인간 다리를 만든 병사들에게 이제는 강에서 올라오라고 말했는데 움직이지 않아 보니 강물에서 얼어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는 그들의 충성에 나폴레옹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님도 그의 제자들에게 자기의 목숨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칠만한 가치를 발견했다면 나폴레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주님에 대한 우리의 충성은 어떠한 것일까요?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희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사랑입니까?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죽도록 충성을 다합시다.
* 기도: 가장 귀한 나의 하나님, 주께서 가라 시면 가고, 서라 시면 설 수 있는 내 역할을 수행할 자세를 갖추겠습니다. 크고 작은 일 상관없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크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권력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주님을 배반치 않게 하시고 순교하기까지 말씀에 충실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모두가 충성하기 싫어하는 때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하는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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