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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사도행전 빛의 사자............... 조회 수 1402 추천 수 0 2014.11.01 23:32:19
.........
성경본문 : 행16:16-34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본문: 사도행전 16장 16∼34절

 

기독교 잡지 『선데이』에 「당신은 예수님을 어디에 모시고 있는가?」 라는 글이 실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예수님을 스페어타이어로 여겨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둡니다. 그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돼서 살아갑니다. 다만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가 나거나 큰 사고가 생길 때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트렁크를 열고 『예수님, 제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한 뒤에 다시 문을 닫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문제가 생겼을 때 좋은 해결책이 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보조석에 앉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에 두며 때때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건 여전히 본인이며 모든 문제의 최후 결정권을 스스로가 쥐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을 운전석에 앉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삶의 최종 결정권을 예수님께 넘겨 드리며 자신이 바라는 결정보다는 예수님이 바라는 대로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인생의 어느 자리에 모시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비상시기에 필요한 분이 아니며 우리를 돕기 위한 비서로 자리 잡고 계시는 분은 더더욱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에게 인생의 주권을 맡기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게 하세요. 반드시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눅17:21)

 

흑인 가수 『마리안 앤더슨』은 백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노래를 잘하여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아이젠하워, 캐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유엔 대표로 지명 받았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자유상패』를 받았습니다. 그가 40년간의 성악 활동을 끝마칠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보잘것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요즘은 입사 시험을 볼 때 학력, 경력, 실력도 보지만 회사에 들어와서 얼마나 충성되게 일할 것인가를 제일 중요시 한다고 합니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최우선으로 충성심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우선으로 채용된다고 합니다.

독일의 앨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누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냐는 질문에 『섬기는 법을 배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지, 다른 사람한테 섬김을 받겠다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대접만 받겠다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 아내와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 누구든지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섬김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8~9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의 종』이라 부르며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종이라고 해서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종의 운명도 달라집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실제 주인으로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죄악의 종, 탐욕의 종, 술의 종, 도박의 종, 돈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어차피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죄악의 종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복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부모뿐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번창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26:24). 그 사람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느 1:11). 그 사람의 인생에는 즐거움이 넘쳐납니다(시109:28).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사41:9~10). 그 사람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잘됩니다(사52:13). 하나님께서 위험을 당할 때마다 지키고 보호하십니다(단3:26). 그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받고 천국까지 안내를 받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성령의 능력과 충만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행2:18)

 

주인이 명령하면 무슨 일이나 열심히 일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하루 일과로 정해준 일과에 따라 밭에서 감자를 캐고 있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 밭 가운데는 감자가 산같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노예에게 커다란 구덩이 두 곳을 파고 감자를 저장하는데 한 구덩이에는 큰 감자를 넣고 또 다른 구덩이에는 작은 감자를 넣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쉽게 일을 마쳤을 것으로 생각한 주인은 밭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노예는 감자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머리만 갸우뚱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쉬운 일을 시켰는데도 아직 시작도 아니한 노예에게 버럭 화를 내었는데 노예가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주인님, 어떤 일이라도 시키시면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발 큰 감자와 작은 감자를 고르는 일만은 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감자를 손에 들 때마다 이것을 왼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오른쪽 구덩이에 던져야 할지 결정지어야 하는 괴로움이 너무 커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에게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땀흘려 흙구덩이를 파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었지.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무의식 속에 욕망이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욕망 속에 노예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자유로워지면서도 한편으로 노예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분에게 자기 자신을 다 맡겨버립니다. 생각도, 지혜도, 판단도, 운명도 다 맡 겨버리고 그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렇게 살고 싶어합니다. 노예 되어 살고 싶어합니다. 사랑의 노예가 되어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하나님 앞에 완전히 자유의 노예가 될 때 내 자유를 다 반납해 버리고 자유의 노예가 되는 순간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노예와 자유인은 공존하지 않는다.』 링컨이 남긴 말입니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치를 때입니다.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장관들이 링컨을 협박했습니다. 『당신이 노예해방 운동을 계속한다면 우리 내각은 총사퇴 할 것입니다.』 링컨은 하루의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용기도실에 들어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십시오. 바른 길이 어디에 있는지, 의로운 길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이튿날 아침, 각료들에게 말했습니다.

『자유와 노예가 공존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 31)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게도냐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그것을 순종했던 사도 바울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과 실라가 어떻게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붙들려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세상에는 예수의 영에 붙들려 사는 사람만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예수의 영이 아닌, 다른 그 무엇에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인생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과연 그들은 무엇에 붙들려 종노릇하며 살고 있습니까?

 

첫째, 마귀의 영에 붙들려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 지대에 사는 한 사람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습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 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 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었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나는 쓸모 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 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길 바랐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의 흙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진흙과 같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신 토기장이십니다.

 

본문 16절에 바울과 실라는 점치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은 오늘날로 말하면 무당과 같은 존재입니다. 즉,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지금도 마귀의 영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유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내 영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나오는 여종의 주인이 그런 사람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에 붙들려 있는 여종을 고쳐주었으나 오히려 감사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를 고소하여 감옥에 잡아넣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인에게서 귀신이 떠나니까 점을 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를 고소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물질 때문에 신앙도 팔아먹고 예수님도 팔아먹는 사람입니다.

어떤 랍비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외출한 사이에 두 아이가 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그는 두 아들의 시체를 방안으로 옮겼습니다. 한참 후 랍비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귀중한 보석 두 개를 맡기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그가 찾아와서는 그것들을 돌려 달라는데 이럴 때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랍비는 별 생각 없이 쉽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주인이 달라고 하면 당연히 돌려주어야지』 그제서야 아내는 랍비를 데리고 두 아들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던 귀중한 보석들을 찾아가셨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잠시 맡아서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도로 가져가시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셋째, 권력과 명예욕에 종노릇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22∼23절에 나오는 부패한 관원과 같은 사람입니다. 관원이 제대로 조사하였더라면 바울과 실라는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권력에 붙들려 살아가기에, 뇌물에 의지하며 살아가기에 편파 판정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면 권력과 명예욕의 결박에서 풀려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권력과 명예욕을 충족시키지 못해 갈등하고 있는 것은 자신을 언제나 앞자리와 높은 자리에 두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종의 자리로 내려가신 것처럼 우리도 섬기는 자리로 내려앉아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의 『기독교인의 자유』라는 논문에서 가장 낮은 형제를 섬기는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특권으로 굴욕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려는 의지를 가질 때 권력과 명예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넷째, 죽음과 질병의 공포로 인해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보심을 깨닫고 믿을 때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병이 들거나 사고로 상처가 생겼을 때 신음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반영인 것입니다. 시체나 무덤을 꽃으로 장식하고 음식을 차려놓는 것도 애써 공포심을 덜어보려는 심리적 작용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임종에 이르러서도 찬송하고 장례식에서도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이야말로 죽음은 멸망이 아니고 영생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야말로 성도들에게는 죽음이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성취되는 기회라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가슴 설렘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자기 자신과 죄악에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8:34)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이 신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섬겼고, 스스로를 경배해 왔으며, 여러분 자신의 목표와 흥미를 만족시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지만 옛날의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자아는 당신의 마음의 보좌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쫓아내기가 어려운 전세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의 주님이신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나의 금전 출납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어느 곳에 사용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는가? 시간 사용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오락을 즐기고 있는가? 나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즐기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거나 나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죄에 대하여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과, 그를 따르며, 순종하며, 신뢰하며,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

 

찬송가 268장 (총 202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시험을 이기는 승리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2.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정결한 마음을 얻게 하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3. 눈보다 더 희게 맑히는 것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부정한 모든 것 맑히시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4. 구주의 복음을 전할 제목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날마다 나에게 찬송 주니 참 놀라운 능력이로다

 

[후렴]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여섯째, 자기 가족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이 내 집에 오셨지만 문 앞에서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네 마음에는 아들, 딸이 가득 차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우리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일곱째, 율법의 종노릇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은 가장 자유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루터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의 자유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허락해 주셨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책임이 뒤따르는 자유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율법에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킵니다. 그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또 구약 성경에서 금지하는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서울 시내 모 교회의 청년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중 87%의 청소년들은 술과 담배 그 자체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이 안 되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으니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단 설문에 응한 그 교회의 청년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다른 교회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거의 마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교회를 떠난 친구들도 많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 술과 담배가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의 잘문에 있어서 93%의 83%가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무언가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를 기독교인이 즐겨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로 인해 절대 구원을 받지 못할 거라고 하는 그 확신 속에는 율법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의 선한 행동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 알수록 세상에 대해서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리가 나를 억누르고 매 순간을 압박해 온다면 그 진리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쇠사슬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갈4:5-9)

 

여덟째, 정욕의 노예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명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만약 신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만 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일이 없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사람들이 악한 일을 하면서도 그나마 어느 정도 자신을 절제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이러다 혼나지』라는 신에 대한 어떤 의식이 그들의 양심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확신하게 되면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이렇게 바꿔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자기가 신이라고 느낀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신이 없다고 확신한다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마음대로 해도 누가 상관하겠습니까? 그때부터 사람들은 용감하게 타락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용감한 타락이 나타나는 가시적인 첫 번째 삶의 현장이 있다면 곧 성적 현장입니다. 사람들은 죄 속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성적 타락으로 빠져듭니다. 왜 성적 타락이 가장 먼저 나타나는가에 대한 답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장 추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 주체가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아홉째, 일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일밖에 모르던 남자가 모처럼 시간을 내어서 아내와 함께 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고급식당을 찾아갔는데 식사 도중 은은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와 아내를 즐겁게 했습니다. 아내가 분위기에 들떠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지금 이 곡이 무슨 곡이예요?』

고기만 열심히 뜯고 있던 남편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부인에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고기긴 암소 등심이겠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일에 중독되고 빨리 먹고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습니다. 거기 어디에 분위기를 느끼고 감상하고 생각하며 살아갈 여백인들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열 번째, 습관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따라 행동한다고 합니다. 그 행동이 지속될 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그 행동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지요.

여기 도적질이 습관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별다른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도적질해서 수익을 올리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그 생각이 도적질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겠지요. 이것은 바로 그 사람을 부추기는 사단의 공격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같은 과정이 사단의 공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베소서 4장 28절에서 『도적질 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해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결심하고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사단의 공격에 성공적으로 대적할 수 없다. 따라서 도적질하던 바로 그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익을 가지고 가난한 자를 도울 때 비로소 도적질하던 고질적 습관을 고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입만 열면 더러운 말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에만 머물지 말고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면서 은혜를 끼치는 말의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노력은 나쁜 습관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가려는 사단과의 영적 싸움입니다.

지금까지 남편을 항상 험담하고 비판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면 이제부터는 남편을 칭찬하고 격려해보세요. 당신이 혹시 지금까지 아내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해왔다면 새해에는 아내에게 친절히 대하고 귀중히 여겨보세요. 분명히 잘못된 습관을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마세요. 그 작은 격려를 받고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에 당신 자신도 놀라게 되었다는 고백을 분명히 하게 될 테니까요.

이처럼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이 사단의 공격임을 깨닫고 즉시 말씀으로 대적해서 승리하는 자는 참으로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의 노예, 인간의 노예, 조직의 노예 등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자유케 하려 주님은 오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61:1, 2)

본문 25∼27절을 보면 빌립보 감옥에는 많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자기 죄 값을 지불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귀신과 돈, 권력과 죄악에 붙들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영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명한 설교가인 웨슬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표시가 붙은 인간이다. 주님의 표시를 붙인 인간이다. 그러나 의(義)의 노예이지 죄의 노예는 아니다. 또 순결의 노예이지 부도덕한 노예는 아니다. 나는 자유의 노예이지 방종의 노예는 아니다. 주님 나라의 노예이지 군중의 노예는 아니다. 그리고 특별히 주님의 노예이지 부의 노예는 아니다. 이처럼 나는 주님의 쇠사슬에 묶인 노예이므로 주님 사업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본문 28∼34절에 보면 예수님의 영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울과 실라요 간수장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쇠사슬의 착고가 채워지고 어두운 곳에서 매를 맞아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또한 간수장의 모습을 보면 그 당시 로마법에 죄수가 도망가면 당직 간수가 책임지고 사형을 당하는 엄한 국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수장은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사람을 만나니 자기도 구원받고 가족도 구원을 받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고자하는 사람은 자기도 구원받고 가족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구원을 받는 역사를 일으키게 됩니다. 오늘 돌처럼 딱딱한 문제가 있습니까? 쇠처럼 단단한 문제가 있습니까? 더 나아가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 모두 오직 예수님의 영에 붙들리기만 하면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될 줄로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와 물질과 권력과 죄와 죽음에 노예된 사람들을 해방시키고자 오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로 인해 자유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자신의 의지를 통해 쟁취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통해 맛보려고 합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어 물질에 매인 삶을 삽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고 죄에 대한 감각까지 무감각해져서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의 자유, 영혼의 자유를 상실하고 삽니다. 자유는 쾌락과 소유를 통해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돈의 노예, 음욕의 노예, 원망의 노예, 미움의 노예로 삽니다. 자유란 인간을 얽매고 있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결단코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삯을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믿음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완벽한 운전자인 하나님께서 불안한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고 계신 것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자유 속에 사랑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나』 라고 하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고는 결코 영원한 자유는 보장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자유함을 얻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과연 무엇에 종노릇하며 살고 계십니까? 이제부터 예수님의 영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되어 소망이 있고 기쁨이 넘치는 축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성경 말씀 함께 봉독합시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2:16)

 

세상은 우리에게 돈, 명예, 권력을 따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따르는 인생의 끝은 허무요, 절망이요, 죽음뿐입니다. 아무리 돈, 명예, 권력이 많더라도 곧 없어지고 썩어질 것들이요, 죽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인생은 그 순간부터 영원히 구원과 기쁨!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과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를 따르세요.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채색 옷을 입고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인신매매를 당하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해야만 했던 요셉을 보십시오. 그의 삶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비참하고 보잘것없는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노예는 자유가 없습니다. 노예는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노예는 자기 마음대로 좋은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노예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죽도록 일만하면서 삽니다. 노예는 어떤 경우라도 결코 『No』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노예에게는 절대로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삶속에서도 요셉에겐 자유와 미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은 요셉이 꿈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천은 가장 자유하다. 세상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다. 세상 누구에게나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의 말처럼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의 자유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유를 허락해 주셨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책임이 뒤따르는 자유인 것입니다. 오늘도 자유를 굳게 지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귀신들린 여종을 모든 저주에서 풀어주시고 건져 주신 것처럼 오늘 이 모든 성도들이 여러 가지 슬픔과 죄악과 질병과 저주와 온갖 가난과 불행에 매여 있는 성도들, 온갖 죄악과 사탄에게 매여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건져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건져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을 건져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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