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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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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본보기 교육
본문: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어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그 근처에 사는 교인댁 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 댁을 심방하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목사님의 방문을 받으니 심방받는 집에서는 반갑게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목사님은 자리에 앉아 말했습니다.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어서 한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성경책을 좀 가져오십시오』 그때에 그 교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가정이 예수님을 얼마나 잘 믿고 있는지 목사님께 보여 드려야지.』 그래서 아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얘, 너 안방에 가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책을 가져다주겠니?』 목사님 들으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꼬마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들고 나오는 책은 성경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그 가정의 신앙정도는 그 가정의 어린아이 말과 행동에서 밝혀집니다. 자녀교육의 첫 번째 법칙은 가르치는 교훈이나 개념보다는 본보기에 훨씬 많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됨됨이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우세합니다. 자녀들은 아주 작은 것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정보원』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가르쳐야 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만일 바닷게가 자기는 옆으로 걸어 다니면서 새끼들에게 앞으로 걷는 훈련을 시킨다면 새끼 게들이 바로 걸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부모가 바른 본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을 망치기에 가장 적합한 교육방법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잔소리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등 뒤에서 부모의 삶을 보고 자랍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행의 일치와 불일치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무척 경건해 보였지만 속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친 교훈과 100% 일치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그분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죄악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당연히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동으로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자녀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원하시면 기도하는 모본을 보이고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싶으시면 부모가 먼저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부모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처럼 자녀에게 아름다운 가르침은 없습니다. 따라서 부모로서의 나의 모습이 자녀에게 과연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믿음의 모본을 보입시다. 자식은 부모의 행위를 그대로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신6:1-9)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슈바이처 박사에게 성공적인 자녀교육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처 박사는 『첫째도 본보기요, 둘째도 본보기요,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습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은 자녀 교육에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을 성공하는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하기 때문에 생활에서 보이는 모범이 결국 자녀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1, 2)
지난해 작고한 강영우 박사는 자신의 두 아들이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보면서 혹시라도 시각장애가 아닌 능력 장애로 볼까봐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심지 않기 위해 본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비록 운전이나 공놀이는 못하지만 캄캄한 밤, 불을 끄고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음을 일깨워 주면서 긍정적 사고를 심어 주었습니다. 장애는 모습이 다를 뿐이며 진정한 장애는 마음의 장애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의 두 아들은 현재 어느 자식보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미국에서 『떠오르는 별』이라는 안과계의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차남은 연방 상원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원내총무 수석 법률 보좌관으로 일할 정도로 훌륭한 인재로 길러 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진정한 교육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소망과 함께 고난도 임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 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말해주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또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하나요?』 『글쎄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 달 후에 또 갔습니다. 『애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 『예! 절대로 사탕을 안 먹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가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희생의 모범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교육이란 끝없이 지속되는 희생의 과정입니다. 교육의 절대적인 지침은 보고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보여 주는 것만큼 정확한 것도 없고, 보고 배우는 것만큼 쉽고 빠른 것도 없습니다. 왜 교회 중직자들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에 실패할까요? 그것은 부모의 이중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교회와 집에서의 모습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언행일치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으로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보이면 자녀도 감사와 순종의 삶을 따라갑니다. 하지만 늘 불평, 불순종, 반항의 삶을 보이면 자녀도 그대로 보고 배웁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 6:5-7).
이는 부모가 먼저 신앙의 삶을 살고 그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가 본이 되는 삶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어른들이 신앙생활의 본, 헌신과 순종의 본을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가 어떤 모습을 따라가게 될지 결정됩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부모와 함께 예배를 드렸던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80%가, 아버지와 함께 예배를 드렸던 아이들은 70%가 나중에 커서 예배자로 세워지게 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건 교회에서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이제 우리도 예수님 때문에 복 받고 사는 것만 좋아하지 말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고난을 당할지라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강한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온 가족이 주님을 영접하여 경건한 부모와 믿음의 자녀되기를 원합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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