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16:24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본문: 마16: 24, 찬송가 461장 (통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1990년대 초반 미국 메이저리그 소속 프로 야구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는 놀런 라이언이라는 투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40대 중반의 나이였는데 놀랍게도 다른 20대 투수들보다 더 빠른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습니다. 그는 그 나이에 종종 완봉승을 거두었고 노히트 노련 게 임을 2년 연속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의 게 임을 중계하던 한 스포츠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저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음악 관련 책에서 베토벤이 그린 악보의 일부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악보는 보니 그는 한 소절을 5번 이상 고쳐 썼습니다. 그는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지 않고 정말 좋은 것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우리의 상태가 더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가만히 두면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될 것입니다. 신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적 · 감정적 · 관계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로 더 좋아지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고 그분을 더 닮아가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성령 충만을 구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주의 은혜 앞에 나아가는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능히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 26, 27)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 33)
마요네즈와피클 그리고 케첩 등으로 전 세계를 석권한 하인츠 식품 회사의 창시자 헨리 존 하인츠는 191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어머니인 애너 마거레타 하인츠를 위해 예배당을 건립하라는 유언을 자식들에게 남겼습니다. 이에 하인츠의 자녀들은 5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피츠버그 대학 캠퍼스 내에 자신들의 부친과 할머니를 위한 대예배당을 완공하고, 그 이름을 『하인츠 기념 예배당』(Heinz Memorial Chapel)이라고 붙였습니다. 그 이후,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예배당은 피츠버그의 상징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을 직접 찾아가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심지어는 교회 안내서에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 길은 없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목사가 있고 주일마다 예배가 드려지고 있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그 예배당은 이름 그대로 주님과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인츠의 예배당일 따름입니다. 하인츠 예배당은 오늘날의 교회가 주님의 교회이기보다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 중심의 사고에서 주님 중심으로, 세상을 압도하는 논리에서 영원의 논리로 사고의 축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속적 사고방식이나 자기 과신의 부인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의 좁은 문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속적 사고의 넓은 문을 포기했음을 뜻합니다. 바로 여기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순결과 거룩이 샘솟는 법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욱 더 힘든 일이 있다면 자존심이 상할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존심을 내려놔라』
우리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며 사신 모델이십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빰을 때리는 온갖 능욕과 멸시를 했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며 털깎는 자 앞에 있는 양과 같이 침묵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살 때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므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며 무소부재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복의 근원아신 하나님,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이며,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 사역의 원리입니다. 광야 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부인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무시가 아니며, 지나친 자기 비하도 아닙니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멸시도 아닙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분명한 『자아인식』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14:9)고 하시며 자신이 곧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는 주님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죽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불법 재판 앞에서는 어땠습니까? 『네가 그리스도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 앞에서 주님은 그들이 책잡으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긍정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때로 침묵과 긍정으로 『예수님 자신이 곧 그리스도요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부인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 주님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자기를 낮추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빌2:7-8). 여기에 『자기 부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자기를 부인하신 예수님, 그것만이 하나님의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었기에 죽기까지 자기를 쳐서 부인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해야 할 때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모세는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애굽 궁중의 40년 생활에서 모든 학술을 다 익혔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잘 훈련받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에 통달했고, 지도력을 습득하기까지 철저히 자기를 훈련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40세 되었을 때의 생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후에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그의 숨은 애국심을 알아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모세가 이미 40세에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사명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있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 사역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증오가 아닌 자기 부인을 함으로써 자기 성취나 자기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허물과 죗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남을 위한 자기희생입니다. 남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기가 수치를, 남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자기가 고난을,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어두운 밤하늘에 빛난 별과 같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보내는 곳에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롭게 하는 십자가의 원수인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길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 부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란 신자 안에 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는 죄에 대한 사랑과 거기에 기반을 둔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이 옷 입혀준 옛사람의 모든 가치와 기준, 습관과 형식에서 벗어나 본래 창조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자기부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나 부정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물든 거짓된 자아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의의 길을 갈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쫓아가는 길, 이것이 진리의 길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길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 우리의 오해받음, 우리의 배신, 우리의 눈물, 우리 죄악의 치욕과 부끄러움을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내 죄를 담당하시고 보배로운 피를 쏟아 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위로입니다.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찬송가 458장, <통> 513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고』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 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2.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3.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후렴>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찬송가 461장, <통> 519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내 자아와 고집, 욕심을 함께 못박아야 합니다.(갈5:24) 십자가는 곧 죽음입니다. 자기 자존심, 자기 만족, 자기 쾌락, 자기 욕심, 자기 이익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백 년 동안 아무리 부귀 영화를 다 누리면서 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에 비하면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일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막8:34, 눅9:23, 눅14:26,27, 33)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나를 위하여 저 참혹한 십자가를 묵묵히 지셨고 그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고, 사랑허지 못하고..
그럼에도 늘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씻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고, 맡은 본분을 다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버릴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십자가의 길, 의의 길, 좁은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대속』과 『대표』입니다. 대속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죗값을 지불하는 것이고, 대표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좇아 따르게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십자가 대속과 대표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십자가』를 지게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을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주의 십자가를 자신의 십자가로 받아들이는 사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기 마련입니다. 십자가를 택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소속을 옮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가치관을 소유하는 행위며, 하나님의 뜻을 인생 목적으로 삼는 결정입니다. 이는 반대로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고, 세상의 가치관을 저버리는 것이며, 세상의 뜻을 목적으로 삼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향하는 자는 세상의 원수요 적이 됩니다.
쓴잔, 고통, 아픔, 고난, 핍박 등으로 표현되는 십자가는 누구나 원하는 길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피하고 싶은 길입니다. 세상에 익숙한 나,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는 나, 세상의 안락함을 소원하는 나를 부인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십자가로 인한 고난은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고난입니다. 아프고 괴롭지만, 그것은 『환희』가 있는 고통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바울은 제자의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3-10)
우리 모두 주의 일을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으신 주님,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주님 믿는 성도로서 맡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귀한 믿음과 성령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온 교회가 회개하고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