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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롬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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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희생적인 참사랑
본문: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어떤 사람이 우연히 까치 새끼 두 마리를 보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집에 가져다가 닭장에 넣어 길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은 다음날 아침부터 그 어미 까치가 위험을 무릅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먹이를 주면서 이 두 마리 새끼를 계속 기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달 지나니까 새끼가 살이 찌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하루는 이 주인이 어미를 잡아 가지고 닭장에 집어넣고 새끼 두 마리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새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오지 않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귀한 사실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먼저 부모는 위험이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자식을 사랑하면 잊지 못하고 이렇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아는 자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한 가지는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먹을 것, 입을 것을 늘 가져다가 길러주시는 분입니다. 영영 죽을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친히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고귀한 사랑과 희생적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생각할 때 그 은혜에 감사하비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닭장 문이 열려 개 한 마리가 닭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닭들은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암탉 한 마리가 꿈쩍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암탉은 처참하게 개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피를 흘리고 죽은 암탉을 꺼내다 보니 그 품속에 막 깨어난 병아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품고 있는 새끼들을 지키려고 개가 와서 자기 목을 물어뜯는데도 움직이지 않은 것입니다. 끔찍했을 상황이 연상됐습니다. 무참히 개에게 물려 죽어간 암탉을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미 닭은 무섭지 않았을까. 죽음의 공포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어린 병아리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어미 품속에서 자다 깨어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 마치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자녀가 된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이사야 31:5).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보면 천지분간 못하고 돌아다니는 어린 병아리들과 같습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이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인 셈입니다.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지금 이곳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품안에 따뜻하게 품고 계십니다.(눅13: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마23:37)
조류 중 모성애가 가장 강한 것은 펠리컨입니다.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입니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 자신의 핏줄을 터뜨려 그 피를 입에 넣어줍니다. 어미 펠리컨은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인간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대신 피흘린 펠리컨같은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2천년전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모두 책임지셨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간의 탐욕, 교만, 불신, 증오 거짓을 모두 혼자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피흘리신 분입니다. 12월 25일 성탄절. 사람들은 이날 크리스마스 캐럴과 산타클로스와 멋진 파티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아기예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전쟁 중 우리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습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 군인은 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습니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습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습니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어린 소녀들의 감동적이고도 안타까운 사연이 혹한의 추위와 함께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400km 떨어진 외곽지역, 헝거르쫄(6세)과 나랑쫄(8세)은 명절을 맞아 이웃마을에 만두를 만들러 간 부모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린 자매는 눈 덮인 곳을 헤매다 영하 40도의 살인적인 추위에 길을 잃었습니다. 헝거르쫄의 언니인 나랑쫄은 속옷만 남긴 채 자신의 옷을 모두 동생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몸으로 동생을 감싸 안았습니다. 구조대가 자매를 발견한 다음 날 아침, 언니는 숨이 멎어 있었고, 동생은 살아있었습니다. 언니의 따뜻한 체온이, 한없는 사랑이 죽어가던 동생을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은 손과 발에 심한 동상을 입은 상태!
도착한 구조대는 밤새 수색하여 구조를 했지만 200km나 떨어진 곳에 병원이 있어 동생의 손과 발은 모두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네 주술사는 나랑쫄의 자매에게 일어난 사고로 인해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3년 동안 마을에서 떠날 것을 명령했습니다. 나랑쫄의 가족은 할 수 없이 정든 고향을 떠나 몽골의 울란바토르산 중턱의 허름한 『게르』 한 채에 의지하게 됩니다.
사고로 언니를 잃게 된 헝거르쫄은 사고 이후 말수가 부쩍 줄었다고 합니다. 『언니랑... 놀고 싶어요.』
헝거르쫄은 손과 발이 절단된 상태에서 올해 9월부터 학교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의 방문 하루 전에 처음 학교를 다녀왔다고 하는데 손가락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아 피와 고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헝거르쫄은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유목민인 헝거르쫄 가족에게 항공료와 수술비, 그리고 입원비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큰 부담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찬송가 311장, (통) 185장 『내 너를 위하여』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 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 죄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4. 한없는 용서와 참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날 무엇 주느냐
구소련에 속해 있던 아르메니아에서 무려 5만5000명이 참사를 당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9층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스잔나라는 엄마와 네 살 난 딸 가이아니가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 속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갇혀 있었는데 가이아니는 엄마 옆에 누워서 “엄마, 목말라”라는 한 마디 말을 계속 토해냈습니다. 움직일 수도 없었던 엄마는 딸의 목을 축일 방법을 고민하다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을 때 피를 나눠 마시던 TV 장면을 기억해냈습니다. 어둠 속에서 엄마는 손을 더듬어 깨어진 유리조각을 하나 찾았고, 지체 없이 손가락을 찢어 흐르는 피를 딸의 입술에 축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두 주일이 지났고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2천년 전 진노와 사망을 피할 수 없던 인류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살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 흘림, 이는 바로 우리의 새로운 삶을 여는 출발점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사랑이며, 큰 은혜입니까?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죽도록 충성을 다합시다.
* 기도: 사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며 우리 모두가 주의 사명을 희생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사랑과 희생과 복음의 씨를 뿌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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