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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을 서지 마십시오

잠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622 추천 수 0 2014.12.08 00: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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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잠6:1-1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38) 

보증을 서지 마십시오 (잠언 6장 1-11절)

 

< 입에서 나오는 말의 중요성 >

 기독교는 입의 종교입니다. 구원은 고행이나 수양이 아닌 입의 시인을 통해 얻습니다(롬 10:9-10). 인생전환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대개 입입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문제가 많은 사람의 다른 어떤 공로보다 입의 고백을 듣고 은혜와 축복을 주실 때가 많습니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살듯이 사람도 대개 입에서 나온 말로 인생의 집을 건축하며 살아갑니다.

 입은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제일 요소입니다. 입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좋은 분위기나 행복한 삶도 말 한 마디로 깨질 때가 많습니다. 말 한번 잘못해서 추락하는 유명인들도 많습니다. 입을 잘 사용하면 다른 많은 축복이 따라오지만 입을 잘못 사용하면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입은 운명을 바꾸는 최상의 도구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학력도 높고 아는 것도 많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입이 거칩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그분의 입에서 비롯됩니다. 그분은 불평불만도 많았고 비판도 많아서 집회나 세미나나 신학교에서는 인기강사였지만 목회는 늘 못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그분의 말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네 번 교회를 개척하면서 말 때문에 항상 교회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수를 줄이니까 점차 회복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입은 축복의 기초입니다. 입에서 나온 말이 운명의 집을 건축하고 앞날의 길을 좌우합니다.

 어느 날, 천사가 제사장 사가랴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네 기도가 상달되어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사가랴가 말했습니다. “나와 아내가 다 늙었는데 이제 무슨 아들을 낳습니까?” 그 부정적인 말 때문에 세례 요한을 낳을 때까지 하나님이 그 입을 닫으셨습니다. 입을 잘못 사용하자 입을 닫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것도 부정적인 입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입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입이 가나안으로 먼저 가면 축복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인격의 표시이고 의사를 전달하는 통로이며 축복을 예고하는 최고 도구입니다.

 가정과 공동체가 잘 되는 것도 거의 입에 의해 좌우됩니다. 진짜 실력자는 학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말을 지혜롭게 잘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은혜는 입이 잘 쓰임 받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음과 감사와 사랑의 말이 되게 하십시오. 자세히 보면 상당한 치유의 능력이 자신의 말에 의해 나타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보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나음을 얻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입으로 시인할 때 증폭되어 나타납니다. 혀만 잘 조절하면 인생 조절이 상당한 정도까지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감사와 행복과 건강과 치유의 말을 많이 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막지만 믿음의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증폭시킵니다.

 말은 권세와 능력의 통로입니다. 대개 자기가 말한 대로 인생과 미래가 빚어집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을 써도 아름답고 교양 있게 하십시오. ‘아름다운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는 ‘선한 말’입니다.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이 필요합니다! 고맙습니다. 잘했습니다.”란 선한 말 한 마디가 설움과 상처를 단번에 날려버립니다. 더 나아가 ‘아름다운 말’이나 ‘선한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은 ‘바른 말’입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하나냐는 고난 중에 사는 백성을 위해 “우리는 곧 바벨론의 압제에서 벗어날 것이다!”고 ‘선한 말’을 해주었지만 그 말은 거짓말이었기에 그는 거짓 선지자가 되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습니다. 그처럼 선한 말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거짓말이 아닌 바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답고 선하고 바른 말은 좋은 믿음과 좋은 인생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 약속어음을 남발하지 마십시오 >

 본문은 말과 약속을 함부로 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이 말씀은 경솔한 담보 및 보증행위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담보와 보증 요구는 구약 시대에 성행했습니다. 특히 정치와 경제의 황금기로 상행위가 활발했던 솔로몬 때는 더욱 심했는데 그때 경솔하고 성급한 보증 행위로 인해 사회적인 폐해가 컸습니다.

 보증은 요구하지도 말고 응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도 아무도 믿지 못합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사람은 보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검사장이 성적 일탈행위를 했다고 욕을 합니다만 그의 일탈행위를 쉽게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별로 없습니다. 사람은 다 연약한 죄 공장입니다. 다 이탈 심리가 있고 이탈 행위가 있습니다.

 일전의 한 통계에 의하면 고등학생 중 4%만이 음란물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본 것’과 ‘보여준 것’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김수창 전 지검장을 성 도착증 환자라고 쉽게 욕하지만 달리 보면 그가 비교적 덜 공격적인 사람이고 더 공적인 자신을 지키려고 했기에 그런 어둠의 일탈행위가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그가 돈과 권세를 남용하는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무엇이 증거입니까? 가족과 멀리 떨어져 제주도로 부임해 지내면서 쓸쓸한 밤을 달래려고 밤에 홀로 배회했다는 것 자체가 바로 증거입니다.

 남자들 중에는 그 정도의 권세가 있다면 그 권세를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당히 취하는 남자들이 많고 얼마든지 그 이상의 성적인 접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행위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아주 흔합니다. 괜한 과장이 아닙니다. 사방에 깔린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증거입니다. 돈과 권세 남용의 유혹은 잘 뿌리쳤기에 지검장으로서 더 심한 일이 벌어지는 룸살롱 등을 공개적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 순간적으로 찾아온 욕정을 못 참고 밤길을 배회하며 은밀하게 혼자 즐기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 전 지검장은 순간적으로 염치없는 행동은 했지만 양심은 비교적 잘 작동하는 사람 같습니다. 그에 비해 양심조차 문드러진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상 갑자기 찾아온 욕구 해소책으로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보다 ‘룸살롱을 출입하는 것’은 일탈의 강도나 죄질이 가족과 아내에게는 더 나쁜 것입니다. 깊은 곳까지 생각이 미치는 자녀나 아내라면 오히려 아빠나 남편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김 전 지검장을 옹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의 실상을 바로 인식하자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다 연약합니다.

 사람은 말로 약속한 것을 수시로 깨뜨립니다. 법으로 약속한 것조차 깨뜨릴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연약한 사람에게 생명이나 물질 전부를 걸게 하는 보증 제도는 사실상 강자편의적인 악습입니다. 책임적인 삶을 위해 자기 재산을 걸게 하는 담보제도는 필요해도 누군가를 책임지라고 자신의 재산을 다 걸게 하는 연대보증 제도는 잔인한 제도입니다.

 보증제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립니까?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입니다. 은행도 외국처럼 담보를 제공해서 돈을 빌렸을 때 돈을 못 갚으면 담보 제공한 것을 가져감으로 책임 묻는 것을 거기서 끝내야 합니다. 은행도 돈을 빌려줄 때는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며 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담보 제공한 것을 가져가고도 더 나아가 사람을 신용불량자로까지 만드는 것은 지나친 제도입니다.

 하나님은 보증 요구가 없는 사회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교회들조차 교회를 건축한다고 성도들의 보증을 요구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집 담보 제공과 빚보증을 통해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어쩔 수 없는 예외의 경우는 있겠지만 원칙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끔 전혀 분위기를 띄우지도 않고 강요도 안했는데 스스로 집 담보를 자처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목회자는 이렇게 말해야 정상입니다. “집사님! 마음은 받겠습니다. 그러나 집을 담보로 잡혀 헌금하지 마세요. 그럴 바에야 건축하지 맙시다!”

 참된 목자라면 성도들의 집을 담보로 교회를 건축하자고 하면 안 됩니다. 집을 담보로 잡히게 하고 연대보증을 서게 해서 대출받아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무자비한 목회입니다. 교인들의 집 담보제공과 빚보증을 통한 교회건축은 결과적으로 사탄이 교회를 망치려는 최대 유혹 중의 하나로 귀결될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보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교회건축을 위한 보증은 괜찮다고 것은 말씀을 남용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에는 성도들의 집 담보제공과 빚보증을 통해 교회를 건축하면 교회가 금방 커지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커진 공룡교회가 탐식을 멈출까요? 계속 성도들을 쥐어짤 일을 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서 결국 교주 일가만 배불리다가 생긴 사건이 이번의 구원파 사건입니다. 요즘은 성도들의 집 담보제공과 빚보증을 통해 교회를 건축해도 교회가 커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많은 교인들이 거의 알거지처럼 됩니다. 그것은 약속어음을 남발해 부도를 내는 것처럼 헌신을 빙자한 착취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상대로 약속어음을 남발하면 안 됩니다. 성도도 돈 벌게 해준다고 하면서 교우나 불신자를 상대로 약속어음을 남발하면 안 됩니다. 일등 배우자감은 약속어음을 남발하지 않는 청년입니다. “내가 앞으로 행복하게 해줄게. 앞으로 돈 벌면 헌금할게요.”란 약속어음보다는 현재의 책임적이고 헌신적인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교회와 교인이 약속어음을 남발하면 반드시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성도들을 시험 들게 합니다.

 이단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약속어음을 남발합니다. 자기들에게 와야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144000명에 속한다는 것, 자기들이 축복과 기적과 능력과 은사와 치유를 누구보다 더 많이 준다는 것, 그리고 자기들이 종말심판 때에 일차로 들림 받는다는 것 등등의 약속어음을 남발해 영혼을 미혹합니다. 특별한 구원과 능력과 기적과 치유란 약속어음을 남발하고 집을 팔아 현찰을 바치게 하는 것이 이단의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어떤 명목으로라도 헌금약정의 강요는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스스로 감동해서 약정할 수는 있지만 교회는 원칙적으로 헌금약정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그런 교회에 재화를 바치면 또 하나의 크고 작은 유병언을 키우는 셈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들의 집 담보제공과 빚보증을 통해 건축에 나서는 교회에 대해서는 아예 희망과 미련을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 교회는 커져도 제 2의 유병언을 낳을 가능성이 많고 나중에 부당한 일을 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실상 보증 문제 하나만 봐도 이단성 교회를 어느 정도는 찾아낼 수 있습니다.

< 보증 요구에 응하지 마십시오 >

 왜 사람이 비성경적인 보증에 빠집니까? 쉽게 말하고 쉽게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쉽게 말하거나 쉽게 약속하지 않습니다. 특히 보증은 더욱 조심합니다. 쉽게 보증했다가 영혼이 얽히고 속박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잘못된 보증으로 재산을 빼앗기거나 종으로 팔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처럼 보증제도로 남의 인생과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는 악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보증을 요청하고 다단계를 권유하고 약속어음을 남발한 사람도 ‘큰 잘못’을 한 것이지만 반대로 보증에 응하고 다단계에 가입하고 남발된 약속어음을 받고 현찰을 내준 사람도 ‘작은 잘못’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은 ‘네 입의 말’이란 표현을 반복함으로 담보와 보증 행위를 쉽게 받아들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조금 야박해보여도 보증 요청에 응하지 마십시오. 물론 인생이 이론처럼 되지 않기에 때로는 보증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그때는 스스로 그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담보와 보증 문제로 일이 생겼다면 겸손하게 이웃에게 요청해서 보증의 올무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 보증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을 잠언 기자는 어떻게 묘사합니까?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보증은 마치 사냥꾼으로 손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 들어가는 것과 같기에 그 보증 문제에서 해결되어 나오려고 스스로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보증을 통해 생기는 문제의 후폭풍은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보증 문제에는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정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보증에 응하지 마십시오. 친구나 가족이나 교우나 목자가 가까운 관계를 내세워 보증을 요청하면 더 응하지 마십시오. 친구나 목자라면 보증요청을 안해야 정상인데 보증요청을 한다면 더 믿을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죽으면 죽었지 친구까지 죽이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다만 책임적으로 바르게 사는 친구가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다가 어려움에 빠졌는데도 전혀 도움 요청을 하지 않고 잠잠히 죽음의 길로 혼자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생기면서 어떻게든 돕고 싶습니다. 그때 친구를 위해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하고 자발적으로 보증도 서고 물질도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관계가 최고의 친구관계입니다. 반면에 친구가 요청하지 말아야 할 보증을 요청하면 야박한 평가를 받아도 그 보증에 응하지 않는 것이 결국 믿음도 지키고 최소한의 우정도 지키는 길입니다.

< 보증이 필요 없게 하십시오 >

 보증 문제와 관련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보증을 요청해야 할 상황과 형편에 아예 처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보증을 요청합니까? 대개 물질적인 곤경 때문입니다. 결국 보증 문제를 해결하려면 물질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대에 빈번히 일어났던 보증 문제로 인한 인생 파멸을 막기 위해 잠언 기자는 본문 6-11절까지 땀 흘려 물질적인 영역을 정복하라는 해결의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로부터 어떤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까?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지만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데 그 준비하는 삶을 배우라는 것입니다(7-8절). 간단히 말하면 부지런하게 준비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본문 9-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잠이 많은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잠에 취해 게으른 모습을 보이면 곤핍해지고 결국 보증이 필요한 인생이 됩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면 불행이 갑자기 닥치는 것을 상당히 방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해서 담보와 보증을 요청할 필요가 없는 인생이 되십시오. 사람은 땀을 흘린 만큼 미래가 보장됩니다. 예레미야 48장 10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면 잡념도 없어지고 시험도 적어집니다. 한가하고 일이 없을 때 시험과 문제가 더 생깁니다. 그러므로 돈 많이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증이 아예 필요 없는 인생이 되고 은밀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 부지런하게 사십시오.

 이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구원은 공짜로 얻는 줄 알지만 하나님이 독생자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서 열린 길이기에 실제로는 공짜가 아닙니다. 공짜의식을 버려야 영혼이 미혹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표를 얻으려고 공짜 공약을 내세우면 더 경계하십시오. 공짜는 사탄이 놓은 쥐덫입니다.

 사탄이 제시하는 공짜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돈과 쾌락과 권력의 유혹에 넘어가 사탄에게 절하면 사탄에게 종속되면서 영혼의 자유를 잃고 양심대로 행동하는 능력도 잃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도 없고 자기 인생도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대박을 추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요새는 광속시대지만 진짜 성공은 속도를 추구하는 속도전에 있지 않고 정도를 추구하는 정도전에 있습니다.

 요새 외형주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숫자와 규모가 진리인 줄 알고 자신도 모르게 숫자와 규모의 우상을 추구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기피하신 ‘대중 구원’의 신화에 속지 말고 한 영혼과 소수의 영혼을 중시하는 시각을 가르십시오. 사람은 한 번에 한 사람만 껴안을 수 있습니다. 초대형 선동가는 있을 수 있어도 초대형 목회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초대형’이란 개념과 ‘목회자’란 개념은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개념입니다.

 큰 것을 진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크게 되는 것은 점점 진리에서 멀어지는 표식이 될 때가 많습니다. 숫자와 규모의 우상에 절하지 마십시오. 힘이 들고 땀이 들어도 한 번에 한 사람을 껴안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작은 실천에 나설 때 마음과 영혼을 채우는 묘한 행복감이 찾아옵니다. 영성이란 힘을 포기한 후 포기한 영혼을 사랑으로 껴안는 것입니다. 인내와 사랑과 희망을 가지고 계속 선한 씨를 뿌리면 언젠가 반드시 열매 맺는 때가 올 것입니다.

 최고의 3대 거짓말은 노인이 빨리 죽고 싶다는 말, 노처녀가 시집가기 싫다는 말,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월새기(월간새벽기도)>는 정말로 팔수록 손해입니다. 월새기 사역을 보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완전히 거꾸로 사업하네요.” 그것이 바로 사업과 사역의 차이입니다. 사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지만 사역은 손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은 죽으려고 할 때 살게 하시고 지려고 할 때 이기게 하시고 손해를 추구할 때 이익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992년부터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해 섬기다가 분당으로 이사와 1998년에 다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교회 이름을 짓는데 한 성도가 교회 이름을 ‘거꾸로 가는 교회’라고 짓자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발한 이름을 생각했느냐고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세상의 원리와는 늘 거꾸로 살잖아요.” 너무 튀는 이름이라고 해서 교회 이름을 그렇게 짓지는 않았지만 그때 ‘거꾸로 사는 삶’을 새롭게 다짐했었습니다.

 왜 성공해야 합니까? 나누기 위해 성공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왜 교회가 성장해야 합니까? 분립하기 위해서 성장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나누기 위해 성공을 추구하는 성도들이 많아지고 분립하기 위해 교회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들이 많아지면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의 희망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살면서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 거룩한 땀을 앞세우며 사십시오. 욕심은 계산을 낳지만 땀은 희망을 낳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은 욕심을 극복하는 시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험을 이기고 가야 할 길을 제 코스로 가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이제 돈과 권력의 유혹을 극복하고 자기 사명의 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나감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멋지게 이뤄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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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4 빌립보서 크리스천의 올바른 가치관 빌3:7-8  한태완 목사  2014-11-16 978
11383 마태복음 중생자의 착한 행실 마5:13-16  강종수 목사  2014-11-16 837
11382 아모스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길 암8:1-14  이한규 목사  2014-11-16 1070
11381 요한계시 영혼의 상품화를 주의하십시오 계18:11-14  이한규 목사  2014-11-16 550
11380 요한계시 내면의 바벨론을 물리치십시오 계18:4-10  이한규 목사  2014-11-16 596
11379 요한계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계18:1-3  이한규 목사  2014-11-16 953
11378 욥기 친구에게 필요한 3대 마음 욥6:14-30  이한규 목사  2014-11-16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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