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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은혜

예레애가 빛의 사자............... 조회 수 1692 추천 수 0 2014.12.08 07: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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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애3:2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은혜

본문: 렘애3: 22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기 바로 전에 그의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과 의논을 하셨다고 합니다. 정의의 천사는 사람을 만들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만들면 그가 동료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사악을 자행할 것이고, 또 사람은 강퍅하고 잔인하고 부정직하여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진리의 천사가 반발하며 『사람을 만들지 마십시오. 그는 거짓되고, 그의 형제들을 속일 것이며 심지어 하나님 당신도 속일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도 『사람을 절대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는 당신의 면전에서 당신의 이름을 더럽힐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비의 천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저희의 하늘의 아버지, 사람을 만드시옵소서. 그가 죄를 짓고 정의와 진리와 거룩의 길에서 멀어질 때, 제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를 감싸고 사랑스런 음성으로 그에게 말하여 다시 당신께 데리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자비의 천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구제불능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허물을 덮어주시고, 실수를 용서해주십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죄악 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십시오. 스스로 멈출 수 없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고통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의 자비하심 가운데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다시 주님 안에 사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자비로운 자에게는 주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시18:25)

한 사람이 어린 딸과 함께 산지에 살면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딸은 잃은 양을 찾다가 그 양이 가시나무에 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바둥거리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그 양을 가시덤불에서 떼어내었으나 그 양은 이미 여러 곳에 긁히고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상처가 나고 여러 곳에 긁힌 자국을 보면서 어린 소녀는 양이 너무 불쌍하여 울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저 나무가 미워요. 저 나무를 잘라버려요.』

다음날 아버지와 딸은 도끼를 가지고 가시 나무를 잘라 버리려고 그 곳을 찾아갔습니다. 나무 가까이 갔을 때 그 소녀는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가시나무 위에 앉더니 작은 부리로 양이 가시에 긁히면서 남겨놓은 털들을 쪼아 모으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은 새는 부리 가득히 털을 물고는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자세히 살피던 어린 딸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하나님께서 왜 이곳에 가시나무를 자라게 하시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나무의 가시들은 작은 새가 집을 지을 수 있는 부드러운 털을 모으는 일을 하는가 봐요.』

사실 대자연은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한 대가로 얻은 것이 가라지라면 이 얼마나 화나는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라지나 가시나무들일지라도 뽑거나 베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세상의 끝 날에 심판하실 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가시나무도 가라지도, 좌절과 실패와 죄에 시달린 우리의 형제 자매들도 다 품에 안고 언젠가 우리 주님이 보상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일인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마5:7)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독일 위벡 교회의 낡은 돌판에는 『주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작자 미상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빛이라 부르면서 우러르지 않고, 길이라 부르면서 걷지 않고,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슬기라 부르면서도 배우지 않고, 깨끗하다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부자라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영원이라 부르면서도 찾지 않고, 어질다 하면서도 구하지 않고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굉장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나니, 그런즉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입술로 고백하는 내용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다름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세상에서 표리부동한 사람이 온전히 살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합니다.(시86:15, 시145:8) 말만 앞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시25:6)

여호와는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103: 8)

찬송가 531장 (통 32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사랑의 햇빛을 왜 버리고 점점 더 멀리가나

2. 고달파 지친 자 쉬라시네 쉬라시네 쉬라시네

무거운 짐진 자 다 나오라 쉬게 해 주시리라

3. 주께서 지금도 기다리네 기다리네 기다리네

죄짐을 가지고 다 나오라 어서 주 앞에 오라

4. 주님의 소리를 들어 보라 들어 보라 들어 보라

그 이름 믿는 자 복 받으리 어서 곧 일어나라

[후렴]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우리는 때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범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올바로 깨끗하게 살려고 힘써도 부지중에 잘못하고 주님의 뜻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해 보기도 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쳐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돌보아 주십니다.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회개할 때 즉시 용서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 하나님은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을 깨끗하게 해 주시고 온전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에 파우스트가 자살하려다가 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젊을 때는 충실히 신앙 생활했던 파우스트가 그의 학문이 진보하자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사회에서는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중년에 이르러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칠 때 낙심하고 자살을 기도하게 됩니다. 독배를 들고 그 인생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찰나, 먼 곳에서 부활절의 교회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교회다닐 때의 일과 교회를 떠난 후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게 됩니다. 결국 그는 독배를 내던지고 통곡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깨닫고 회개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을 나간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고 잃었던 아들을 다시 얻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큰 잔치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아무리 타락한 사람도, 돌아오기만 하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온갖 은혜와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느헤미야 9:31)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여러분은 긍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함』이라고 합니다.이 말에는 『창자』 혹은 『내장』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라고 할 때 바로 그 원문의 본래 의미는 『내 창자가 끊어지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어 넘어지고 절망하고 낙담해 있을 때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창자 끊는 마음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라함이라는 단어에는 『자궁』이라는 뜻도 있습니다.자궁은 태아를 지키고 보호하고 생명이 있게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자 끊는 마음만 가지고 옆에서 바라보시며 서있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도와주시고, 감싸주시고, 세워주시고, 능력주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서정윤씨의 『홀로서기』라는 시가 있습니다.이 시가 담긴 시집은 7개월만에 몇 십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묶어낸/동아줄/그 아득한 끝으로 대롱이며/그래도 멀리/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아무도/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것/한 겨울의 눈발처럼/만났을 때/나는/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은 시구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나 봅니다.결국 사람들은 하나님 없이는 혼자입니다.나의 가슴속을 완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곁에 있을 뿐더러 다가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살다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고 낙담과 실망, 절망의 골짜기를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파도치며 풍랑이 일어나는 인생길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그런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창자를 끊는 마음으로 바라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편리한 호텔 보이(boy)로 생각합니다.즉 우리의 발걸음을 편하게 해주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또 어떤 사람은 스피드 측정계를 가지고 있는 교통순경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순경을 피해 갈 것인가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피하려고만 합니다.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무정한 과학자로 생각합니다.그래서 연구업적이나 실력은 있지만 정이 없고 유머도 없으며, 웃음도 없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깜짝쇼를 펼치는 마술사로, 허허 웃는 할아버지로 여깁니다.

그뿐 아니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자동차 바퀴가 펑크났을 때 땜질해주는 땜장이로 압니다.그래서 삶을 살아갈 때 문제가 터지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태복음 9:36)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마태복음에 나오는 『민망히 여기셨다』라는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민망히 여긴다는 것은 자녀가 아플 때 부모가 『저 아픔이 내 아픔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의 애끊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그냥 우리를 바라만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라 낮은 이곳에 오셔서 우리 문제 가운데 함께 하셔서 친히 개입하시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감정에 함께 느끼시고 위로하며 안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그분은 우리 고통의 현장, 낙담의 현장, 절망의 늪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고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민망히 여기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듬직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해 기도를 게을리 할 때가 많습니다. 또한 높은 곳에 계셔 만나기 힘든 분이라고 여겨 평소에 잘 찾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10절을 보십시오.『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 있는 한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절망이 없습니다.

오직 희망과 꿈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어렸을 때 어머니를 찾았듯이 지금 하나님께 긍휼이 여기심을 받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오직 아버지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세상의 권세나 부에 의지하는 것은 쉽게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의지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곧 영원한 안식과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51: 1- 2)

내가 지은 죄를 돌아보면 부끄럽고 괴로워 자나 깨나 마음에 평안이 없을 때 추한 죄인을 용납하사 품에 안아주시고 깨끗하게 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은혜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찬송가 305장 (통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찬양 하리라 아-멘

매년 1월 26일과 27일 이틀 간,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는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을 맞아 『죽음의 행진』을 재현함으로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던 고통스러운 과거를 되새깁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태인들은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유태 어린이들을 학살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소서. 이곳을 만든 자들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풀지 마시고, 이곳에서 학살을 자행한 자들을 용서치 마소서.』 그때 그 죽음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도를 올리면서, 수용소에서 겪었던 악몽을 되새기며 몸을 떨었다고 합니다. 600만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들로서는 그러한 기도를 올리고도 남음이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사람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죄에 대해서도, 그런 사람에 대해서도 용서를 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 스스로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느끼는 것까지도 다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무궁한 자비와 긍휼에 있는 것입니다.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영광과 찬송을 드립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죄인이 된다는 것이다.』

모 시인의 시 구절이 가슴에 와 꽂힙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나이 예순이 넘어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실수투성이입니다. 부끄러운 자취만 남기며 살아왔다는 회한으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른 채 결혼해 곱게 자란 한 여인을 본의 아니게 죽도록 고생시켰습니다. 아비가 될 준비도 없이 세 자녀의 아비가 되어 살면서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제대로 전수해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상처만 준 것 같습니다. 멋도 모르고 20년을 넘게 목회를 한 지난날을 더듬어보니 성도들에게 『주님의 이름』이라는 명목으로 위로와 격려보다는 부담감과 죄책감을 더 많이 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틈틈이 다윗의 참회가 담긴 시편 51편을 폅니다. 한 절 한 절 묵상할 때마다 십자가의 못이 되어 가슴에 박힙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淨)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 51:10∼11)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 앞에서 울부짖는 것뿐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태15:22)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 뉴욕을 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케네디 공항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뉴욕에는 케네디 공항 외에 또 하나의 공항이 있습니다. 그 공항은 라구아디아 공항입니다. 본래 이 라구아디아라는 이름은 뉴욕 시민이 아주 사랑했던 유명한 한 시장의 이름입니다. 라구아디아는 시장이 되기 전에 아주 유명한 명 판사였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한번은 라구아디아 판사가 재판석상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은 추운 겨울에 가족들 없이 외롭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돈도 없고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다른 사람의 지갑에서 20불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판결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판사가 그 노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이 노인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판사님, 저에게 한 번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잠시 동안 그 노인장을 조용히 굽어보던 판사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맞습니다. 노인장에게는 정말 긍휼이 필요하시군요. 그러나 노인이 잘못한 그 20불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마침 제게 10불이 있군요. 제가 이 10불을 노인장을 대신해서 변상하겠습니다. 노인장을 춥고 배고프도록 버려 둔 데에는 저의 책임도 상당히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0불이 더 필요한데 여기 계신, 이 법정에 계신, 방청하시는 여러분, 우리 사회와 여러분도 이 노인이 춥고 배고파 방황하도록 그리고 도둑질하도록 버려 둔데, 여러분도 공동 책임이 있습니다. 이 노인을 위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기부를 좀 하시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재판관의 명 판결을 보고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헌금을 하여 그 노인을 구했습니다. 그 후 뉴욕 시민들은 라구아디아 판사를 긍휼이 많은 판사라고 인정하였고 그는 후일에 존경받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우리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본받아 가난과 질병과 굶주림과 압제로 고통받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빛을 비추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하여 죽으셨음과 그의 보배로운 피가 저의 모든 죄를 씻으셨음을 믿습니다. 저는 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를 신뢰하기에 지금 말씀을 믿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 마음에 주님이시요 나의 구원자로 모셔 드립니다. 날마다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와주세요. 참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 중에 거하며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곧 우리의 삶과 일치하도록 인도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진 믿음으로 삶을 살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시며 주님 주신 자비를 실천하는 삶이 되도록 하옵소서. 아버지의 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소서.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며, 격려하게 하시옵소서.어둠이나 눈물이 있을 때에 주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화목하게 하시고 빛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소서.저희를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주시며 자유와 기쁨과 평강이 함께 있게 하소서.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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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6 요한계시 심은 대로 거둡니다 계18:21-24  이한규 목사  2014-12-08 732
11405 요한계시 바벨론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계18:15-20  이한규 목사  2014-12-08 521
11404 마태복음 분노와 미움의 감정을 다스리라 마5:21-24  한태완 목사  2014-12-05 1281
11403 요나 다시스로 가는 배에 납치되어 가는 요나. 욘1:4-10  김경형 목사  2014-12-05 841
11402 요나 하나님의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욘1:1-3  김경형 목사  2014-12-05 711
11401 마태복음 소명의식과 은사 마25:14-30  한태완 목사  2014-12-05 1026
11400 에배소서 그리스도의 피로 엡2:13-19  강승호 목사  2014-12-04 671
11399 디모데후 겨울이 오기전에 딤후4:9-22  강승호 목사  2014-12-04 1148
11398 하박국 금메달 감사 합3:17-19  강승호 목사  2014-12-04 713
11397 다니엘 절대 주권의 하나님 단3:8-12  강승호 목사  2014-12-04 757
11396 마태복음 작은 예수 마25:31-46  강승호 목사  2014-12-04 754
11395 사도행전 버림 받은 사울 행13:21-22  강승호 목사  2014-12-04 606
11394 로마서 희생적인 참사랑 롬5:8  한태완 목사  2014-12-04 825
11393 요한복음 예수님과 함께라면 요8:29  한태완 목사  2014-12-04 1673
11392 마태복음 반석위에 세운 집 마7:24- 27  한태완 목사  2014-12-04 2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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