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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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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주님을 경험할 수 있는 단순한 기도 법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썼다. 그것은 주님을 경험하고 영혼의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신앙의 아주 중요한 기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중에 주님의 기름 부으심에 대해서 좀더 쓴다면 사람들은 자기의 방에서 주님의 임재에 사로잡혀서 쓰러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아주 실제적이시며 가까이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주 놀랍고 달콤한 경험이다. 내가 지금까지 다루어왔던 것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또한 안타까운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있어서 많이 무지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인 관계의 문제라든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는 문제라든지, 직장의 문제라든지, 가정을 세우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거나 자녀를 잘 양육하거나 자녀의 특성과 달란트와 사명을 인식하고 발전시킨다거나, 또한 재정정인 면, 돈을 벌거나 관리하고 사용하는 문제라든지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서는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들 알게되었다. 어떻게 연애를 하고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지침이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도하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은 좋아하는 데, 그러한 영성을 실제적으로 적용해야하는 현실의 영성에는 아주 약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곤란한 것이다. 그가 아무리 주님을 깊이 경험하고 영적인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모른다면 그것은 정말 난처한 일인 것이다.
재정에 대한 부분만 해도 그렇다.
카페의 회원들이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모이는 기도 모임이 있다. 이곳은 함부로 회원을 받지 않으며 엄격하게 심사를 해서 통과된 사람들만이 올 수 있는 모임이다.
대체로 성품이 선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들이 올 수 있으며 자기의 믿음이 좋다고 여기는 이들은 올 수 없다.
아무튼 40-50명 정도의 회원들이 모여서 기도 모임을 하고 있는데 나는 참석하지 않고 홍도사가 기도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이 모임이 1년전 쯤에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다른 교회를 빌려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회에 내는 대여비 의미의 감사헌금을 내는 것도 힘들었고 인도자의 수고비는 물론 회원들의 식사비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의 재정관에 문제가 있는 것을 느끼고 카페에 재정에 대한 글을 썼었다.
그 후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재정이 회복되어서 인도자의 사례비도 줄 수 있게 되었고 헌금이 적립이 되기 시작했고 1년쯤 지나자 독립된 공간을 얻어서 기도모임 장소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리는 단순한 것이다. 바르게 알고 적용하면 영성도, 재정도 풍성해지게 된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적용되는 원리이다.
나는 몇몇 젊은이들이나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적인 집사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들의 물질관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 놀랬던 적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물질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이들은 평생 물질로 인하여 고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시중에 있는 재정에 대한 여러 책들을 보면서 그들의 그러한 부정적인 물질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잘못 배워왔기 때문에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재정에 대한 여러 종류의 책들을 훑어보면서 정말 화가 났다.
재정에 대한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가 있다.
부의 축적을 무조건 성공과 복이라고 보는 시각과 또한 이와 반대로 물질에 대한 소유의식을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히는 것도 노예지만 또한 지독한 궁핍으로 인하여 항상 물질에 대한 쪼들림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역시 노예생활이다.
거기에는 자유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균형잡힌 시각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권리 포기, 자아 포기와 같은 메시지가 많이 있다.
또한 물질에 대한 권리 포기와 같은 메시지가 많이 있다. 그것은 매우 성숙해 보이며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주님을 인정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나게 무지하고 순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권리를 포기하면 그 권리는 하나님께 속하게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재정의 소유권을 포기하면 그 소유권이 하나님께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성적으로 첫 단계, 애굽단계, 권능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권능을 받지 못하였으며 충분히 악한 세력들을 멸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자아 포기와 권리 포기를 할 때 그 권리는 귀신들에게,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포기한 권리와 힘은 마귀와 세상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어떤 외국의 사역자가 쓴 책에서 이러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작고 초라한 공간에 모여서 오직 주님 한분으로 만족한다고 찬양하고 있을 때 마귀에게 속한 이들은 수천평이 넘는 방송국을 사고 많은 돈을 들여서 마귀가 좋아하는 방송을 내보내어 세상의 영혼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이야기에 동의한다. 그리스도인들의 탈 세속적이고 도피적인 시각과 관점이 세상에서 마귀의 힘을 엄청나게 강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힘과 함께 물질적인 영역에서도 힘을 갖추어야 한다.
자아포기와 권리포기는 노예된 삶을 끌어당기며 물질 포기는 가난과 궁핍의 영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므로 그러한 고백은 자신을 세상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재정에 대한 포기 선언은 궁핍의 영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난과 비참한 삶을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와 같은 가르침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관련성구를 적당하게 늘어놓고 그럴듯한 해설을 덧붙이면 그것이 성경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순진한 성도들은 얼마나 많은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툭하면 맘몬신에 대한 언급으로 물질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가르침들,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를 마치 이상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가르침들... 정말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일을 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서 하나님의 응답만을 기다리는 것을 영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거기에서 흔히 언급되는 비유가 공중의 나는 새, 들에 핀 꽃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비유이다. 그 말씀의 메시지는 물질관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며 삶의 중심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중의 나는 새가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참새가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데 등록금이 없어서 고민을 하겠는가? 들의 꽃들에게 집이 필요하겠는가? 들의 꽃이 전세값이 부족해서 이사를 갈 필요가 있는가?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사람에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공중의 나는 새가 하늘을 향하여 일을 하지 않고 놀면서 두 손을 들고 주님이 채우시도록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지만 그들은 열심히 아침 일찍 일어나 벌레를 잡는다. 참새가 하나님이 먹이실 것만 믿고 놀면서 개긴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영적인 재능을 주셨으며, 또한 물질적인 재능을 주셨다. 그것은 그들이 일을 하여 그 일을 통해서 수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았다면 주님은 사람에게 아무런 재능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신문에서 이런 간증을 읽었다. 그는 유학을 해서 명문대를 나왔지만 지금 복음을 위하여 돈을 벌지 않고 버스 비도 없어서 걸어다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답답하고 안타까왔다. 배울 것을 써먹을 필요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유학 보내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례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이나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기도로만 주님의 공급을 기다리는 그러한 사례들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인 법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일을 하지 않고 까마귀만 기다리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이 일을 하지 않고 까마귀만 기다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다.
사역자들은 가난해도 일을 하면 안 되는 것으로,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으로 아는 이들도 꽤 있다. 그렇다면 바울은 정말 믿음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일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공부를 한 후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하듯이 우리는 일을 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심은 후에 거둘 것을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심는다는 것은 남에게 무엇을 베풀고 나서 몇 배로 돌아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신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물질의 관리에 대해서는 정말 상식이 부족한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월세를 꼬박 꼬박 내고 있으면서도 은행에 융자를 신청하는 것은 빚을 지는 것이므로 나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정말 답답하다. 은행에 내는 이자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그냥 버리면서도 융자를 얻는 것은 빚이니까 나쁜 것이라고?
그것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자를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 융자를 신청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하다면 월세를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융자를 얻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것은 저축의 개념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저축하는 것 자체를 믿음이 없거나 좋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남는 돈은 헌금을 하거나 누구를 주거나 해서 없는 것이 좋으며 아무 예금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옳지 않다. 저축을 하지 않는 이들은 미래가 없으며 저축이 있어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의 시간에 자신이 저축한 것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저축한 돈을 계획을 세워서 적금을 들거나 좀 더 이자의 이율이 높은 상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도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말씀하셨다.
그것은 주식과 다른 것이다.
나는 주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는 도박적인 요소가 있으며 마음과 영혼을 빼앗길 요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하고 계획적인 재태크는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아껴서 알뜰하게 살아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저축을 하면서 미래를 위하여 대비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믿음이 없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상식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들을 비신자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데 주님을 신실하게 사모하고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전혀 모르는 경우들이 많았다. 그러니 답답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부자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본향은 이곳이 아니며 부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는 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사명을 발견하고 영적으로 어느 정도 열리고 풍성해지면 우리는 물질적으로도 어느 정도 풍성해 질 수 있다.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영적인 달란트를 주셨으며 또한 몸에도 달란트와 재능을 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풍성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가 영적으로 회복되고 자연적인 재능도 회복되면 물질적으로도 풀리게 된다. 그것은 자연적인 법칙이다.
물질적으로 어느 정도 풍성해 지는 것은 자유를 위한 것이다. 물질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그러한 풍성함이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서, 물질에 대한 주님의 공급에 대해서 언급할 때 이야기하는 것이 허드슨 테일러나 죠지 뮬러이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나 죠지 물러의 믿음은 본받을 필요가 있지만 그들의 삶은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모델이라고 할 수 없다.
주님은 우리 모두 각자에게 3천명의 고아를 맡기신 것이 아니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의지해서 사는 것보다는 날마다 자연적이고 평범한 방식을 통해서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엘리야가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을 먹었다고 해서 당신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닌가. 까마귀가 주는 떡보다는 직접 집에서 만든 김치 찌개가 위생적으로나 맛으로나 좋을 테니까..
또한 엘리야가 까마귀가 주는 떡을 먹었던 것은 기근이 왔을 때의 상황이었고 그가 항상 그런 떡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훈련에 속한 것이다.
항상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그것은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그런 간증은 몇번 정도 해야지 수 천번을 같은 간증을 되풀이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질에 대한 훈련은 영적 발전 과정에서의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그 단계의 훈련에 순종하고 합격해서 얼른 통과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평생동안 궁핍함 속에서 날마다 아슬아슬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직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긴장으로 가득한 삶이며 풍성한 삶이 아니다.
그것은 광야의 훈련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나안의 풍성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향해서 출발한 것이지 광야에서 훈련만 받으며 살다가 죽으라고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물질에 대하여 포기하고 내려놓아서 궁핍함으로 사는 이들은 그들의 마음속에 부유한 자들에 대한 분노가 숨겨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것은 옳지 않다.
몇 가지의 간단한 원리만 알고, 적용한다면, 우리는 영육간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배가 약하기 때문에 영이 눌리고 삶이 눌리며 그 결과 가난한 영들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해지게 된다. 이러한 이들은 배와 물질의 풍부함이 연관이 있는 것을 배우고 부르짖는 것을 훈련하면 곧 그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면 결과는 곧 현실에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쓰다보니 속이 상해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재정에 대한 책도 쓰고 싶다. 아내는 내가 그 책을 썼으면 하면서도 또한 두려워한다.
기존의 가르침과 대립되는 부분이 많으므로 나의 책에 많은 공격이 있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기존의 가르침과 부딪힌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지 속에서 가난과 궁핍의 영들에게 눌려있는 것을 보면서 참고 있는 것도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만 조금 바꾸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물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몇몇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준 후에 바로 물질이 회복되고 풍성함을 경험하는 것을 보곤 했다. 이처럼 시각만 달라지면 풍성함의 삶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헌금만 많이 하면 물질적인 복이 온다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헌금은 투기가 아니며 의식과 영이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헌금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공부 잘 하는 학생이 하는 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흉내내어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 중심과 영이 바뀌지 않으면 외적 행위를 따라한다고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천국은 가난한 곳이 아니다.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우리의 삶에 임한다는 것은 풍성함이 임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에게는 영혼의 풍성함이 강하게 임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물질의 풍성함이 충만하게 임하며 다른 이들에게는 다른 풍성함이 온다.
각자의 풍성함을 따라 그것들을 서로 기뻐하며 나누는 것이 천국이다.
아무튼 언젠가는 재정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휴식을 취한지 1주일 정도가 되는데, 몸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계속 책을 쓰고 싶고, 써야할 메시지가 가슴에서 끊이지를 않으니 답답하다.
의욕은 넘치는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하지만 몸이 연약하고 질병이 있더라도 마귀는 패배자이다. 그들은 승리할 수 없다. 그들은 주의 일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 이 땅의 기독교에 풍성함이 많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교회는 더 앞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승리하셨고 그분의 영광과 풍성함과 역사하심은 더욱더 충만하게 될 것이다.
바른 지식이 세워질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와 풍성함은 넘쳐나게 될 것이다.
나는 주님과 천국의 완전한 승리를 믿는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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