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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 바울의 의인관

논문신학성경 돌쇠............... 조회 수 4142 추천 수 0 2001.12.26 01: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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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울의 의인관

1. 바울의 의인관

어떻게 의인이라고 인정 받는가? 어떻게 의롭다고 인정받는가? 어떻게 죄인이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 스크록스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무으로 간주 여기에대해 먼저 인간이 처한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죄와 죽음아레 있다라는 2가지 방법으로 설명, 이것으로 율법의 義와 복음의 義로 설명된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에게 씌운 멍에이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이 노력하면 할 수록 그들은 하나님에 의한 행위 은총을 거부하게 된다. 자기의 의가 강하면 강할수록 하나님의 의는 약화, 은혜와는 멀어지게 된다. 인간을 더 절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행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며, 하나님의 행위로 표현 인간에게 희망을 준다.

결과적의로 믿음에 의한 의를 그는 강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십자가의 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순종하는 믿음에서 생겨나며 우리의 최   상의 축복이다.

2. 바울의 인간이해

인간의 몸을 나눌때 육과 정신 혹은 육, 영, 혼이라는 개념으로 이야기를 자주하는데 육은 : 욕정, 타락으로 부정적 개념이다. 썩고 탐욕가운데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영: 하나님과 관련된 정신으로. 혼: 육과 관계된 정신으로. 보았다.

1) 몸이라는 현상을 야기하려고 할때, 현상적이다. 이해 가능하다. '실존'적으로 표현한다.
2) 타락한 절망속에 있는 인간은 구원의 대상으로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는데

* 케제만의 인간이해
존재론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되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 바울의 인간이해 - 실존적으로 설명, 이해하려고 했다.

1) 타락한 인간 - "Imags Dei"(Imags of God")로 표현 그러나 'Shape'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영성에 대한 소망은 끝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다. 하나님의 "Imags Dei"가 상실되고 불순종으로 인해 전적타락, 소망이 없어졌다. 죄지을 자유밖에 없다. 스스로 구원할 수도 없어졌다.

2) 갈등하는 인간 -
  예수그리스도가 이세상에 가져다준것은 갈등이다. 옛사람을 따를수 없으며 동시에 새사람을 따를 수 없는 갈등 속에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이며 여기서 인간은 고    뇌한다. 그렇기에 갈등하는 인간에게 믿음은 중시된다.

3) 예수안에 있는 인간
  말할 수 없는 기쁨가운데 있는 인간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문제를 예수가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이신득이' 인간은 예수안에서만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사상이다. 기독교에만 있는 사상이 바로 이신득이 사상이다. 예수가 인간대신 죽은 대속의 개념이며, 예수안에 인간을 의탁하는 개념, 그리고 인간이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홀로 존재하는 인간도 아니며, 오로지 루터가 말한, 예수와 함께 예수 앞에, 예수 안에 있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3. 바울의 율법이해

하나님과 인간
유대인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께 갈 수 있는가?에 대하여 율법이 인간을 구원하는 최고의 수단으로 중요시 여겼다.  바울은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을 강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수단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율법을 바라볼때 - 하나님은 엄격하고 징계하시고 능력있는 분으로 보이며, 인간은 죽음의 존재로 낮아진다. 즉 율법을 통해서 인간을 바라 볼 수 있게된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한편이다. 그러나 율법의 인간을 볼때 인간은 불안하고, 나약하며 죄에 빠진 절망의 존재이다.  이렇기에 유대인들과 바울은 결별하게 된다.  바울은 계속해서 율법을 '몽학선생'의 역할로 설명하였고, 인간의 구원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 했다.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복음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운명을 새롭게 열어 줄 수 없다.

* 율법의 참된 기능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의 시선을 전환시켜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인간을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하는 축복의 순단으로 인간을 복음에로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율법은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율법에 정통해지면 정통할 수록 인간을 탐욕을 일깨워준다. 이것이 율법의 기능이다.

4. 바울의 의인과(구원관)

* 유대적 기독자들은 율법과 신앙을 혼합하여 혼합주의 형태를 띄게 하였다. 율법은 유대적 성격을 소유하게 했으며 이것 속에서 바울과 대립과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 RCC는 율법과 신앙의 혼합주의 형태를 지닌다. 그예가 열매로(행위) 신앙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 교회들은 오직 믿음만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이야기해 혼합주의를 배격한다.

* 신정론의 문제
  왜 의인이 이세상에 고난을 당하는가?에 대해 철저한 유대주의 율법주의 바리새파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율법주의)   아브라함의 신앙과 유대교는 다르다. 유대교는 율법주의화, 화석화한 종교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번질이 유대교이다. 즉 분리주의이다.

; 바울은 신정론의 문제들로 부터 신앙과 신학을 해방시킨다.  신정론은 인간 현실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찾을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바울은 의견은 있다고 이야기한다.  ; 유대인은 철저히 율법지킴으로 신정론을 극복하려 했으나, 이것은 결국 실패하고, 해답을 주지는 못했다.

* 그러나 바울은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바울의 구원이해 이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으로 논리로 전개한다.  구원의 분명한 것은 개인의 구원일 것이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구원은 아니다. 기독교 구원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누룩 역활을 한다. 바로 사회 구원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바울의 구원관은 개인으로 부터 출발한다. : 신앙은 개개인의 결단이며 구원은 '의인론'이 선행한다.  바울의 세계역사를 구원사로 이혜하였으며, 구원역사는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보았다. 유대인의 구원관은 혈통적, 자연적, 연속성, 율법적, 선민사상이다.  기독교인의 구원관은 신앙적(하나님과의 은혜에 의한) 연속성이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이 가진 신앙관을 이해할 때 참된 연속성을 가지게 된다.

묵시문학자들 - 역사속에서 하나님은 소망은 없다. 역사가 끝날때 하나님의 새로운 지배(탈 세속적)세계를 기대한다. 초현실주의자다.

예언자들 - 현실주의자이다. 역사속에서 삶의 의미를 소망한다.  세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역사속에 소망을 부여한다.

5. 십자가의 신학
   그러나 고난의 신학은 아니다. "얼마나 아프실까?"  칼빈과 같은 장로교에서는 영광의 신학을 주장하는데 십자가의 신학과 대립되는 신학이다.  -간주하다.라는 헬라어가 중요 십자가는 막대기다. 불행한 나무가 십자가이다.

* 바울은 십자가를 고난으로 이해하지는 않았다.
  왜? 하나님이 고난 받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능력과 위상으로 볼때도 마찬가지다.)  영광을 전제로 하는 것을 잘못 된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가 가리워질수 있기 때문이다.  영광을 강조하면, 신비주의가 강화된다.

* 바울이 인식하는 십자가 사건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미화되어서도 않된다. 십자가는 실제적인 죽음이다. 절망인 것이다. 십자가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바울은 십자가와 부활을 붙어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역설적인 긴장관속게로 보았다. 위와 같이 해석되지 않을때 고난의 진정한 의미가 희석된다. 분리된것 없이, 연결된것 없이 긴장   관계는 지속된다. 십자가가 불활에 종속은 아니다. 서로 족속되는 것도 아니다.

* 십자가-부활
그 가치는 서로 동등하며, 항상동등하다.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져야 한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보고 있다.
1) 칭의 :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
2) 사랑 : 하나님과 우리관계
3) 노예해방
4) 화목제물
5) 양자결연
6) --으로 간주하다. 등의 해석은 의미가 약하게 만든다.

* 결론적으로 십자가의 신학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절정이다.  "심판임에도 불구한" 역설 즉 진노 절정인 이 십자가가 사실은 은총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현재와 미래를 열어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6. 하나님의 의

기독교 신앙의 척도이다.  하나님의 의는 도덕폐기론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복음과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옳바르게 파악할때 그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  존재론적 유물론이 아니며, 죄인을 의롭게 만드는 의, 하나님은 죄인을 만들 수 있는 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동해야만 한다. 하나님에게만 능동성을 부여한다.  불투만은 이를 법정적 개념으로 보며,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게 한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해석을 더 깊이 있게 하면 은혜는 받을 수 없는 인간이 값없이 받은 것이며 신앙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것을 자기포기로 받는 것이다. 자유는 하나님의 은헤안에서의 새   로운 삶으로 새로운 예속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해야할 의무이다.  예) 루터의 노예의지론도 위의 관점에서 예수안에 있는 자유로 철저히 예수에게 예속되는 삶이다.  결국 율법은 부정적인것 복음은 긍정적이다.라는 이분법적 설명은 잘못된 것이며, 둘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한 행위'로 만드는 기능을 한다. 율법이 하나님의 은혜의 일에서 행해질때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 주재자가 된다.  그 선행이 하나님의 부터 시작된다. 하나님 은혜 밖에 있는 선행은 공로로 정죄 당하며 의미가 없다. 즉 율법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행하여 질때 찾아지는 것이다.

7. 바울의 죽음이해

성서적 주관은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 영원한 삶은 죄와 관계없는 인간이다. 이를 '영생'이라한다.

1) 불가능한 가능성 기독교인은 예수에 의해 새로와진 사람이다. 예수가 나를 위해 죽었으므로. 죄와 죽음은 성령안에 있다. Aiready: 예수가 이미 정복했다.(구속적 사랑) - 예수안에 있는 인간에게는 이미 죽음과 죄를 정복되었다. 이는 예수가 했다는 것이다. n. Yet: 하나님의 심판때(아직은 다된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죽으은 이미 정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때까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바울: 최후까지 예수의 사건을 의지해야 한다. 기독인은 긴장관계에 살고 있다. 바울을 직설법(너희는 구원을 받았다.) - 명령법(너희는 예수를 굳게 붙들어라)는 긴장관계 속에서 이를 이해 하였다.

8. 바울의 신앙이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전인격적인 신뢰로 신념이다.  여기에는 수용설, 자기포기, 순종이 철저하며, 이것은 모두 하나님은 은혜이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전인전격적인 신뢰이다. 그렇기에 믿는것을 의비한것으로 표현한다.  흔히 신념, 신앙을 혼돈하는데신념은 인간의 생각과 가능성에 대한것 --에 대한것이다.  신앙은 기독교 신앙은 자기생을 내거는 위대한 모험이다. (보충할 것)

9. 그리스도안에서

밀의 종교, 특별한 종교적 체험으로, 예) 이영도 목사 - 황홀경, 주관적 편향성 입신등과 같은 신관의 신비스런 연합 예수안에서 일상의 잔잔한 기쁨으로 ]

* 3가지로 요약 가능
1) 기독교인의 존재 진술 자기 - 예수적, 예수다운 존재방법을 표현할때 사용 '예수안에 있는 존재'이다.

2) 예수를 통한,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3) 구원론적 표현 - 밀의 종교와 같은 특별한 체험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삶의 전체를 예수에게 맡기며, (결과론적이다.) 객관성을 강조한다.(주관적인것 중요 그러나 주관주의적 편항성은 위험)

* 모든 것의 기준은 성서이다.

10. 교회이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공동체로 예수의 지체이다. 이것이 일반적 개념이다.  성도: (saints)는 구별된 분리된의 의미이다.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다른것은 아니다.하나님이 특별한 사명을 주어 구별해 놓은 사람들 부름받은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것은 처음 :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다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란 말로 변화되었다.  교회는 성찬의 이해차이에 따라 카톨릭과 개혁교회로 나뉘어 진다. (화체설) 개혁교회도 루터과 쯔빙글리의 성만찬 논리로 (실재설, 공재설) 나뉘게 된다.  은혜는 말씀을 통해서 온다.  예배하는 교회는 그후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신앙의 대상을 확신'시킨다.  예수가 중심이 되는 교회가 올바른 교회이며, 핵심이 예수이다.  인간의 사상과 이념을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11. 바울의 말씀이해

* 바울: 말씀 - 선포된 말씀, 예수가 남긴 말씀이다.  보른캄은 구원사건의 현재로서의 말씀(구원사건의 현재화)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엄청난 사건이 지금여기에서 현재로서 선포되어 현실화 되었다고 했다. 즉 선포된말씀, 십자가의 말씀 - 내용: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다. 이것이 구원사건의 현재로서의 말씀이다.

* 유대인: Sign가 없었기 때문에 어리석음 그리스인: 지성, 이성에 만족 그렇기에 기도교를 맞지 않는다고 미련하다하여 거부

* 바울은 왜 위와 같은 다수를 인용하지 않았을까? 바울의 관심사, 예수의 일상사 없다. 오직 예수의 죽음과 부활 여기에만 질문을 한다. 예수의 말씀에만 권위를 부여한다. : 여기에만 집중하여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용하되 자기의 상황에 맞게하였다.  예) 예수는 가이사의것은 가이사에게로  바울는 세속군주들에게 복종하라.  왜?) 기독교인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다. 초현실적으로도 살수가 없다. 이것은 기독교인의 "역설적 삶"이다. 이중적 성격을 나타낸다.  기독교인의 삶의 자리:(왕상18) - 죄악된 세상에서의 삶으로 현실적 세계를 역설한다.(?)

* 바울은 유급/무급의 자급목회를 하였다.(재정지원 문제)? 선택의 자유: 자기의 직분에 대한 성실성 충실성을 보여준다.  

* 결론 - 말씀을 이방인 세계에 일반화 하였다.   우상숭배제물 - 문화의 차이 : 양심에 따라.  일반적으로 확대해석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 그때 그리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2. 그리스도인의 윤리 문제

직설법: 의지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모든 인생에 한결같이 베풀어주는 사람이다. - 유대인 명령법: 은혜에 의한 삶이다. - 본질적으로 이미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예수를 옷입고 살아라, 합당한 삶을 살아라. 은혜에 응답하며 살아라. - 이방인 오해) 신인협동론 (주체: 인간) 은혜의 대상은 모든 인간이며 은혜에 응답하는 인간은 제한된 인간이다.

13.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리* 바울의 역설적 - 잘 해석해야 한다. 세상에 깊이 빠지지도 않고(중용), - 무관심(초연)하지도 않는다.  현실주의의 오해 받을 수 있다.   - 탈세계적인간의 오해 받을 수 있다.

* 기독교인
이 세상에 대한 분명한 주관을 가진다.  우리는 나그네 그러나 사명은 온전히 감당한다. 동양의 중용적 사상이다.  기독자의 삶의 자리 : 동양적 해석

* 바울은 구체적 삶의 자리를 강안한 해석 - 이상적 사상(총론적-진보적)과 현실적 사상(구체적- 보수적) - 점진적 개혁을 생각, 혁명적 방법 거부,  기독교인의 삶의 자리는 이세상이다. 현실부정도 안되며, 만족도 거부한다. 그렇다면 구별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새하늘과 새땅 새세계에서 예수안에서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이세상을 거부하지 않는다. 발을 놓되 디딘다. 그러고 천국을 향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14. 그리스도인의 사회 참여

베커: 바울의 사회참여는 그의 사도적 삶을 가지고 설명된다.  사랑의 계명, 적극적 사회참여, 세상에서의 가시적인 영광의 축복이 아닌 고난속에서의 승리 의미

본캄: 불의한 세상권력에 대한 태도로 논란, 세상권세에 복종 - 이것은 불의한 지도자들에게 복종 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지도자 : 하나님 경외 하지 않고 이기적 야심, 경향 있다.  바울은 순종하는 것이 기독인의 사회참여다라고 한다.

예) 2차대전 - 적극적 저항운동가
               무관심
               야합자
               어느것이 옳은지 말하기 어렵다.
사회참여에 대한 기독자의 양식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론보다 신앙의 양식이 성장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예) 가이사의 무대 - 제한되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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