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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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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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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저자/ 최세창 교수
Ⅰ. 시작하는 말
지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 중 대표적인 것으로 노아 때의 물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린 불의 심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두 경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바로 성적 타락이라는 점이다(창 19:1 - 9, 마 24:38).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 이외에 나라가 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성 문란(性紊亂)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의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성 문란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향락 사업의 번창과 성을 상품화할 목적인 인신매매와 마약 남용 등은 다 성적 타락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로 성을 사고 팔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 남자가 여자의 몸을 사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가정주부, 대학생, 그리고 극소수이기는 하나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류의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 성적으로 병든 사회에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성적 타락으로 특정된 세계 속에서 복음을 들고 일했던 사도 바울에게서 그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먼저 바울 당시의 성 문란 상태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바울의 비판적 견해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고찰할 것이며, 끝으로 바울의 성 이해를 논할 것이다.
Ⅱ . 동시대의 성적 타락에 대한 바울의 비판
초대 교회 당시의 성적 타락에 대해 바클레이가 잘 설명하고 있다. "고대 세계는 성적 부도덕을 전혀 죄악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가 첩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고린도와 같은 곳에는 신전에 수백 명씩이나 되는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소위 거룩한 매춘부였으며, 그들의 수입은 신전의 유지비로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에 의하면, 아덴에 공창 제도를 제일 처음으로 도입하고, 창녀굴을 짓게 한 사람은 솔론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업의 소득으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위하여 새 신전을 짓게 하였다. 매춘 행위에서 얻어진 수입으로 신전을 짓는 것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헬라인들의 견해가, 바로 음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던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순결이란 기독교가 이 세계에 끌어들인 하나의 새로운 미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엡 5:3의 주석).
데모스테네스(Demostenes)는 "당시의 남자들의 성적 타락에 대해, 창기는 향락을 위하여 두고, 정부는 나날의 육체의 욕구를 위하여 두고, 아내는 자녀를 얻기 위해, 또 충실한 가정주부로서 두었다."라고 설명하였다.
네일은 "많은 이교도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개종자들 성과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태도를 수용한다는 것은 복음 윤리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대체로 이교도들은, 본능적인 수준에 근거한 성행위란 자연스럽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례적 음행과 남근 숭배는 많은 예배 의식들의 필수적 요소를 형성하였다. 로마서 1:24 이하의 바울의 기술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이교 도시의 환경에서, 엄격한 일부일처주의 또는 금욕의 환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독교인의 직무, 즉 자기 탐닉의 반대인 자기 통제 곧 결혼에 대한 신실성과 순결에 대해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최세창, 데살로니가전서, pp. 124 -125).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의 성 문란은 당시의 종교 및 도덕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성 문란은 남녀 사이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동성간에서도 행해졌다. 이점에 대해 바울은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롬 1:26)라고 하였다.
여인들이 결혼하여 남편과 성생활을 영위하여 자녀를 낳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데, 그에 반하여 같은 여인과 더불어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남자들의 동성애에 대해, 바울은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7)고 하였고, 또 "남색하는 자"(딤전 1:10)라는 말을 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악덕은 천박한 부류의 인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심할 것 없이 모든 계급에 퍼져 있었다. 키케로(Cicero : Tuscul. Ques. iv. 34)는 '디케아르쿠스(Dicearchus)가 그 짓에 대해 플라톤(Plato : 427? - 347? B. C.)을 비난했는데, 아마도 정당한 것이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Tuscul. Q. iv. 33), 그 행위는 헬라인들 사이에 흔했으며, 그들의 시인들과 위인들 그리고 심지어 박식가들과 철학자들까지도 행하며 자랑하였다고 하였다....... 크세노폰(Xenophon : 434? - 355? B. C.)은 "소년들의 비자연적인 사랑이 매우 흔했으며, 그 일이 많은 지역에서 공법으로 제정되었다."라고 말하였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우스(Diogenes Laertius)는 "이 악덕은 스토아 학파의 시조인 제노(Zeno : 336? - 264? B. C.)에 의해 행해졌다."라고 말하였다....... 세네카(Seneca : 4 B. C. - 65 A. D.)는 자기 시대에 동성애가 로마에서 공공연하게 실행됐는데,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클레이는 초기 15대까지의 로마 황제 가운데 14명이 동성 연애자들이었다}(최세창, 로마서, p. 82). 한 마디로 말해, 고대 세계는 간음의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에 언급한 모든 형태의 성 문란을 가리켜, 바울은 바로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다(롬 1:24, 26). 그러한 성 문란은 바울 당시 뿐 아니라, 훨씬 더 오랜 시절에도 있었던 죄악으로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밥(O. J. Baab)은 "고대의 팔레스틴과 성서 시대의 그 부근 지역에 예배 의식의 관리였던 매춘부들은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종교는 자연의 과정들이 남신들과 여신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주관되고 있다는 신앙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들 자신의 성행위에 대한 이해를 투사함으로써, 이러한 우상 숭배자들은 모방적인 마법사용을 통해 신전의 광신적 숭배자들과 성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그러한 행위가 그 남신들과 여신들로 하여금 그와 같이 성 관계를 맺도록 부추기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직 신들 사이의 성행위에 의해서만, 인간 자신의 가족과 가축들 그리고 논밭의 증산을 위한 욕망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최세창, 로마서, p. 78).
크란필드는 "동성애란 헬라와 로마만의 독점품은 아니었다. 셈족 세계에서도 흔했으며,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추행이었다(창 19:1-28, 레 18:22, 20:13, 신 23:17, 왕상 14:24, 왕하 23:7, 사 1:9, 3:9)}라고 설명하고 있다(최세창, 로마서, p. 82).
아무튼, 이성 . 동성 사이의 성 문란은 영 . 정신 . 육체의 파멸을 초래하게 되며, 따라서 가정과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성적 타락은 하나님께서 친히 빚은 영적 존재인 인간을 단순히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이해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인간 경시 풍조를 만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실상, 당시의 사회에서는 인신매매와 경기장에서 합법적인 살인 그리고 맹수와 인간의 싸움등을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의 붕괴였다.
이 점에 대해 바클레이는 {로마 공화국의 최초의 500년간에는 한 건의 이혼도 없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이혼은 주전 234년에 있었던 스푸리우르 카빌리우스 루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로마의 가정 생활은 파괴되어 있었다. 세네카는 "여인들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해 이혼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롬은 "로마에는 스물 세 번째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 여자는 그 남편에 대해 스물 한 번째의 아내이었다."고 하였다}(엡 5:31-33의 주석).
이러한 성적 타락의 세계를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에게 준 바울의 교훈을 통해, 그러한 죄악에 대한 바울의 비판적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바울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니"(롬 1:23, 24)라고 하여, 음행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적 원인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롬 1:26-27).
둘째,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곧 음란은 버리고"(살전 4:3)라고 하여, 성적 타락을 인간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면 거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상 거룩함과 관련하여,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인 타락이었다.
셋째, 바울은 성령과 대립되는 육체, 즉 죄 된 인간성의 소행들을 열거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죄는 다 성적 죄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성적 죄를 포함하여 모든 육체의 일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갈 5:19, 21).
넷째,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고 하여, 죽여야 할 심각한 죄 된 욕구 속에 음란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또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3)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령을 좇음으로써만 몸 곧 죄 된 욕구를 지닌 자아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
다섯째,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아비의 여자를 취한 교인에 대해 통한히 여기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은 사실을 알고 몹시 질책하였다(고전 5:1-2).
바울의 의도는, 비록 사랑의 주를 머리로 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러한 음행을 저지른 자는 형제로 여기지 말고 출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5:18-19)고 하여, 음행을 특별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음행이란 다른 죄들과는 달리, 성령의 전인 몸 자체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곱째,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5:3)고 하여, 음행을 성도들이 마땅히 말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바울의 견해는, 움행이란 아담과 이브 이래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및 창조 방편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상적 배경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고찰해 온 바울의 성 문란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그의 성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Ⅲ. 바울의 성 이해
바울에게 있어서 성이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의 산물이며,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시는 섭리의 방편이었다. 이 점은 바울이 익히 알고 있던 창세기 2-3장에 근거한 이해하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또 하나의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즉, 남성과 남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의 중대성은 에덴을 소유하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아담이 이브, 즉 여성을 만났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뻐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남녀의 관계는 상하나 종속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상호 동등의 관계인 것이다(갈 3:28, 엡 5:31).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은, 그가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한 남성과 여러 여성 또는 한 여성과 여러 남성 또는 여러 남성과 여러 여성으로 짝짓지 않으시고,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짝지어 주신 것을 미루어 보면, 성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을 통해 이뤄져야 할 즐거운 육체적 조화임을 알 수 있다(창 2:24, 엡 5:31, 딤 3:2, 12).
여기서 우리는 일부일처제의 성서적 근거를 볼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이란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질서요 방편이다. 우리는 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인간과 만물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된 선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성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유용하게 써야 할 복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남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이 아니라,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짝지어 주셨다고 한 말씀은 동성애를 부정하는 성서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동성애를 가리켜 역리로 쓰는 것이라고 정죄하고 있다(롬 1:26).
Ⅳ. 맺는 말
현대의 아주 심각한 병폐 중 하나는 분명히 성 문란과 그로 인한 영 . 정신 . 육체의 파멸 그리고 가정 및 사회의 붕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바울과 초대 교회가 견지했던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단순한 이론적 정립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성을 하나님께서 생명 창조의 방편과 남녀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신 복으로 받아들여 누림으로써 세상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저자/ 최세창 교수
Ⅰ. 시작하는 말
지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 중 대표적인 것으로 노아 때의 물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성에 내린 불의 심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두 경우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요인이 바로 성적 타락이라는 점이다(창 19:1 - 9, 마 24:38).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 이외에 나라가 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성 문란(性紊亂)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의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성 문란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향락 사업의 번창과 성을 상품화할 목적인 인신매매와 마약 남용 등은 다 성적 타락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로 성을 사고 팔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에 남자가 여자의 몸을 사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가정주부, 대학생, 그리고 극소수이기는 하나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어떤 부류의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 성적으로 병든 사회에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성적 타락으로 특정된 세계 속에서 복음을 들고 일했던 사도 바울에게서 그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먼저 바울 당시의 성 문란 상태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바울의 비판적 견해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고찰할 것이며, 끝으로 바울의 성 이해를 논할 것이다.
Ⅱ . 동시대의 성적 타락에 대한 바울의 비판
초대 교회 당시의 성적 타락에 대해 바클레이가 잘 설명하고 있다. "고대 세계는 성적 부도덕을 전혀 죄악시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가 첩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었다. 고린도와 같은 곳에는 신전에 수백 명씩이나 되는 여사제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소위 거룩한 매춘부였으며, 그들의 수입은 신전의 유지비로 사용되었다.
헬라인들에 의하면, 아덴에 공창 제도를 제일 처음으로 도입하고, 창녀굴을 짓게 한 사람은 솔론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사업의 소득으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위하여 새 신전을 짓게 하였다. 매춘 행위에서 얻어진 수입으로 신전을 짓는 것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헬라인들의 견해가, 바로 음행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어떠했던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순결이란 기독교가 이 세계에 끌어들인 하나의 새로운 미덕이었다고 할 수 있다"(엡 5:3의 주석).
데모스테네스(Demostenes)는 "당시의 남자들의 성적 타락에 대해, 창기는 향락을 위하여 두고, 정부는 나날의 육체의 욕구를 위하여 두고, 아내는 자녀를 얻기 위해, 또 충실한 가정주부로서 두었다."라고 설명하였다.
네일은 "많은 이교도들로 구성된 기독교 공동체에 있어서, 개종자들 성과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태도를 수용한다는 것은 복음 윤리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대체로 이교도들은, 본능적인 수준에 근거한 성행위란 자연스럽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례적 음행과 남근 숭배는 많은 예배 의식들의 필수적 요소를 형성하였다. 로마서 1:24 이하의 바울의 기술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이교 도시의 환경에서, 엄격한 일부일처주의 또는 금욕의 환경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기독교인의 직무, 즉 자기 탐닉의 반대인 자기 통제 곧 결혼에 대한 신실성과 순결에 대해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최세창, 데살로니가전서, pp. 124 -125).
위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의 성 문란은 당시의 종교 및 도덕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한 성 문란은 남녀 사이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동성간에서도 행해졌다. 이점에 대해 바울은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롬 1:26)라고 하였다.
여인들이 결혼하여 남편과 성생활을 영위하여 자녀를 낳는 것이 자연스런 일인데, 그에 반하여 같은 여인과 더불어 성적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남자들의 동성애에 대해, 바울은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7)고 하였고, 또 "남색하는 자"(딤전 1:10)라는 말을 쓰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악덕은 천박한 부류의 인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심할 것 없이 모든 계급에 퍼져 있었다. 키케로(Cicero : Tuscul. Ques. iv. 34)는 '디케아르쿠스(Dicearchus)가 그 짓에 대해 플라톤(Plato : 427? - 347? B. C.)을 비난했는데, 아마도 정당한 것이리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Tuscul. Q. iv. 33), 그 행위는 헬라인들 사이에 흔했으며, 그들의 시인들과 위인들 그리고 심지어 박식가들과 철학자들까지도 행하며 자랑하였다고 하였다....... 크세노폰(Xenophon : 434? - 355? B. C.)은 "소년들의 비자연적인 사랑이 매우 흔했으며, 그 일이 많은 지역에서 공법으로 제정되었다."라고 말하였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우스(Diogenes Laertius)는 "이 악덕은 스토아 학파의 시조인 제노(Zeno : 336? - 264? B. C.)에 의해 행해졌다."라고 말하였다....... 세네카(Seneca : 4 B. C. - 65 A. D.)는 자기 시대에 동성애가 로마에서 공공연하게 실행됐는데, 전혀 수치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클레이는 초기 15대까지의 로마 황제 가운데 14명이 동성 연애자들이었다}(최세창, 로마서, p. 82). 한 마디로 말해, 고대 세계는 간음의 분위기로 꽉 차 있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앞에 언급한 모든 형태의 성 문란을 가리켜, 바울은 바로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다(롬 1:24, 26). 그러한 성 문란은 바울 당시 뿐 아니라, 훨씬 더 오랜 시절에도 있었던 죄악으로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밥(O. J. Baab)은 "고대의 팔레스틴과 성서 시대의 그 부근 지역에 예배 의식의 관리였던 매춘부들은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이러한 종교는 자연의 과정들이 남신들과 여신들 사이의 관계에 의해 주관되고 있다는 신앙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들 자신의 성행위에 대한 이해를 투사함으로써, 이러한 우상 숭배자들은 모방적인 마법사용을 통해 신전의 광신적 숭배자들과 성 관계를 맺었는데, 이는 그러한 행위가 그 남신들과 여신들로 하여금 그와 같이 성 관계를 맺도록 부추기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직 신들 사이의 성행위에 의해서만, 인간 자신의 가족과 가축들 그리고 논밭의 증산을 위한 욕망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최세창, 로마서, p. 78).
크란필드는 "동성애란 헬라와 로마만의 독점품은 아니었다. 셈족 세계에서도 흔했으며,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추행이었다(창 19:1-28, 레 18:22, 20:13, 신 23:17, 왕상 14:24, 왕하 23:7, 사 1:9, 3:9)}라고 설명하고 있다(최세창, 로마서, p. 82).
아무튼, 이성 . 동성 사이의 성 문란은 영 . 정신 . 육체의 파멸을 초래하게 되며, 따라서 가정과 사회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성적 타락은 하나님께서 친히 빚은 영적 존재인 인간을 단순히 성적 쾌락의 도구로 이해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인간 경시 풍조를 만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실상, 당시의 사회에서는 인신매매와 경기장에서 합법적인 살인 그리고 맹수와 인간의 싸움등을 모두가 즐기고 있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사회의 기본 구조인 가정의 붕괴였다.
이 점에 대해 바클레이는 {로마 공화국의 최초의 500년간에는 한 건의 이혼도 없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이혼은 주전 234년에 있었던 스푸리우르 카빌리우스 루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바울 당시의 로마의 가정 생활은 파괴되어 있었다. 세네카는 "여인들은 이혼하기 위해 결혼하고, 결혼하기 위해 이혼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롬은 "로마에는 스물 세 번째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 여자는 그 남편에 대해 스물 한 번째의 아내이었다."고 하였다}(엡 5:31-33의 주석).
이러한 성적 타락의 세계를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에게 준 바울의 교훈을 통해, 그러한 죄악에 대한 바울의 비판적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바울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니"(롬 1:23, 24)라고 하여, 음행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정적 원인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동성애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해하고 있다(롬 1:26-27).
둘째,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곧 음란은 버리고"(살전 4:3)라고 하여, 성적 타락을 인간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면 거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실상 거룩함과 관련하여, 당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인 타락이었다.
셋째, 바울은 성령과 대립되는 육체, 즉 죄 된 인간성의 소행들을 열거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죄는 다 성적 죄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성적 죄를 포함하여 모든 육체의 일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였다(갈 5:19, 21).
넷째,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고 하여, 죽여야 할 심각한 죄 된 욕구 속에 음란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또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3)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령을 좇음으로써만 몸 곧 죄 된 욕구를 지닌 자아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
다섯째,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아비의 여자를 취한 교인에 대해 통한히 여기지도 않고, 물리치지도 않은 사실을 알고 몹시 질책하였다(고전 5:1-2).
바울의 의도는, 비록 사랑의 주를 머리로 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그러한 음행을 저지른 자는 형제로 여기지 말고 출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서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5:18-19)고 하여, 음행을 특별한 죄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음행이란 다른 죄들과는 달리, 성령의 전인 몸 자체에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곱째,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5:3)고 하여, 음행을 성도들이 마땅히 말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바울의 견해는, 움행이란 아담과 이브 이래 인간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 및 창조 방편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상적 배경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고찰해 온 바울의 성 문란에 대한 비판적 견해는 그의 성 이해에 근거한 것이다.
Ⅲ. 바울의 성 이해
바울에게 있어서 성이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오묘하신 솜씨의 산물이며,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시는 섭리의 방편이었다. 이 점은 바울이 익히 알고 있던 창세기 2-3장에 근거한 이해하였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또 하나의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즉, 남성과 남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며 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의 중대성은 에덴을 소유하고도 만족하지 못했던 아담이 이브, 즉 여성을 만났을 때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뻐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이 남녀의 관계는 상하나 종속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으로써 조화를 이루는 상호 동등의 관계인 것이다(갈 3:28, 엡 5:31).
문제가 될 수 있는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은, 그가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 한 남성과 여러 여성 또는 한 여성과 여러 남성 또는 여러 남성과 여러 여성으로 짝짓지 않으시고,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짝지어 주신 것을 미루어 보면, 성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을 통해 이뤄져야 할 즐거운 육체적 조화임을 알 수 있다(창 2:24, 엡 5:31, 딤 3:2, 12).
여기서 우리는 일부일처제의 성서적 근거를 볼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이란 하나님의 생명 창조의 질서요 방편이다. 우리는 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인간과 만물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된 선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성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유용하게 써야 할 복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남성과 남성 또는 여성과 여성이 아니라, 한 남성과 한 여성을 짝지어 주셨다고 한 말씀은 동성애를 부정하는 성서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동성애를 가리켜 역리로 쓰는 것이라고 정죄하고 있다(롬 1:26).
Ⅳ. 맺는 말
현대의 아주 심각한 병폐 중 하나는 분명히 성 문란과 그로 인한 영 . 정신 . 육체의 파멸 그리고 가정 및 사회의 붕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바울과 초대 교회가 견지했던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정립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단순한 이론적 정립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성을 하나님께서 생명 창조의 방편과 남녀의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신 복으로 받아들여 누림으로써 세상의 모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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