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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잡지 못하는 예배문화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4070 추천 수 0 2002.10.23 12: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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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기독교신문 1542호. 1999.12.5
■ 자리잡지 못하는 예배문화 1 (1542호. 1999.12.5)  

예배의 답답함 호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이는 주일 예배 시작때 선포되는 말씀이다. 두눈을 꼭 감고 듣는 이 말씀과 함께 주일날 예배는 시작된다. 그러나 축도로 끝난 예배 마지막에는 과연 내자신이 오늘 예배에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렸는지 의문을 품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형식화된 예배에 익숙해 졌기 때문이다. 몇십년이 흘러도 변화지 않는 한국교회 예배문화 틀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않다는 뜻이다.

‘경건과 거룩’ 그리고 ‘전통’이라는 명맥하에 한국교회 예배는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근 몇 년사이 ‘열린예배’라는 새로운 예배가 몇몇 교회에서 시도됐고, 이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끝이지 않고 있다. 분명 예배는 경건과 거룩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기본 정서로 담겨져야 한다.

또 전통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반면, 예배의 역동성 및 생명감을 회복해 예배드리는 자들이 예배를 통해 기쁨과 감격을 경험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현재 드리고 있는 예배문화의 딱딱함과 답답함을 느끼고 있으며, 새로운 초신자나 젊은이들은 두말 것도 없이 기존 예배문화의 변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현재 우리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무엇이 잘못됐기에 교인들이 이러한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는 한국교회 예배문화가 너무 한가지틀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이 한곳에만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즉 ‘예배의 갱신’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예배는 끊임없이 그 시대의 상황과 문화변화에 따라 갱신돼야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교파와 교회들이 자신들이 드리는 예배형식을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데서 예배갱신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교회에서 예배에 변화를 주려면 많은 반대에 부딪힌다고 한다. 변화를 싫어하기 보다는 두려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처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와 형식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며 예배 드리고 있다. 기존의 한국교회 전통예배와 다르다고 해서 변화와 형식을 적용하는 것을 꺼려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인가하는 점이다.  즉 예배에 대한 분명한 목회철학이 세워져 있는 성령이 살아있는 예배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기본틀안에 형식적인 변화를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가 과제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

그러면 예배를 이루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쉽게 예배의 요소들을 살펴볼수 있는 것은 각교회 주보를 보면 알수 있다. 교회마다 순서에는 차이가 있으나 고백, 찬양, 기도, 설교 , 성찬식, 축도 등의 순서를 갖는다. 또 이를 세분하면 기도에도 참회기도, 신앙고백, 중보기도등 수없이 많은 기도를 예배가운데 드린다.

찬양도 성가대 찬양과 따로이 찬양단이 조직되어 찬양을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다. 그러나 교회마다 아직까지 대예배시 찬송가만 불러야 되고, 복음성가등은 사용할수 없게 되어 있다. 다만 청년예배나 집회때는 복음성가를 허용하고 있다. 즉 찬양에도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설교에도 영상물을 사용한다든가 설교시간을 짧게 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들이 적용되고 있다. 농담삼아 ‘목회자의 설교는 짧을수록 좋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설교안에 생명력이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러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예배의 경우 설교 또 시간의 장단은 논란 거리가 안된다. 모교회의 경우 설교시간이 한시간이 넘지만 설교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 그 교회 교인들의 증언이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층등 변화된 세대에 맞게 월십을 넣은 찬양을 강화한다든지, 드라마나 연극등이 예배중에 공연되기도 한다. 또 각종 영상물등 멀티미디어를 사용해 예배의 효과를 더하는 경우도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이 20세기말 현재 한국교회 예배안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의 다양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인 효과 장치들을 갖추어도 부족한 것이 아직도 있는 것이 한국교회 예배의 현실이다. 예배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지금의 한국교회 예배가 전통예배스타일을 고수해 지루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세례나 성만찬 그리고 예배력에 맞는 설교나 예배분위기 조성등 전통예배 요소등은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즉 한국교회 예배는 완전히 전통적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들이 세례받았을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세례교육 또한 형식적이며, 교인만들기에 급급해 짧은 기간내에 이뤄진다. 그래서 어떤 교인은 교회를 오래다녔어도 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확실이 영접한때 세례를 받기위해 세례받는 것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예배의 가장 큰 요소를 이루는 성만찬도 개신교의 경우 형식화되어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등 특별한 절기에만 이뤄진다. 그러나 교인들중에는 이러한 성만찬이 자주 이뤄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더불어 예배력에 대해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많은 만큼 예배력애 대한 교육과 예배분위를 조화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전통절기와 교회절기와 비교 연구하는 문제는 중요한 부분이다.

담임목사 목회철학중요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다기보다, 개교회별로 정확히는 담임목회자의 목회철학에 따라 형식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수적인 교단이라도 담임목회자에따라 찬양이 강화된 열린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단이라 불리는 교회라고 해도 담임목회자가 보수적이면 기존의 엄숙함 예배를 드리기도 하는등 차이가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담임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한국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담임목회자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한국교회안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더불어 예배갱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담임목회자가 어떠한 목회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교회 예배문화가 바뀐다. 작은 예로 어떤 교회는 성찬식이 1년에 4번밖에 없지만 어떤교회는 성찬식이 한달에 한 번 아니 매주 한 번씩 있기도 한다. 이는 담임목회자의 예배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부분이기도 한다.

또 이러한 목회철학은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상황에 따라 예배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변수로 작용한다. 즉 예배형식에 있어서는 정형화된 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열린예배를 드려 교인들이 많이 모이고 교인들이 감격과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그 교회의 예배가 곧바로 한국교회 전체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단, 좋은 예는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과 교인들의 상황에 맞게 드려진 예배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많은 지역과 청년이 많은 지역, 노인이 많은 농어촌 지역에 따라 교회의 예배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또 작은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큰교회는 큰 교회대로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역할이 있기 때문에 예배문화의 형식도 다를 수 있다. 또 같은 지역이라고 해도 큰교회에서 막대한 재정력을 가지고 드리는 화려한  예배와 교인이 얼마안되는 작은교회에서 적은 재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겉보기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름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이 있기 때문이다.

열린예배 아직도 논란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열린예배’가 미국에서는 구도자예배(seeker's worship), 즉 믿지 않은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거부감없이 예배에 적응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의미를 가진 열린예배가 한국에서는 불신자나 초신자들을 위한 예배이기 보다는 신앙생활 몇십년 한 교인들 즉 기존 교인들을 대상으로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틀린 것이다.

그래서 김병삼목사(만나교회)는 그의 저서 〈열린예배? 현대예배!〉에서 미국의 열린예배 즉 구도자를 위한 예배가 한국에서 기존예배의 변형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은 절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분히 실패의 위험을 안고있다며, ‘열린예배’를 ‘현대예배’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예배가 현대 예배의 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대예배는 세상사람들의 언어와 형식을 사용해 대화하기를 원하며 복음의 진리를 나누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간단한 이야기들, 매일매일의 생활속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이야기들을 사용하여 진리를 말씀하셨고, 오늘날의 예배가 현대적인 언어로 드려져야 함도 이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아직도 열린예배 내지 현대적인 예배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한국교회의 정서도 여전하다. 즉 경건과 거룩으로 대표되는 기존 예배에 대안으로 나온 열린예배는 예배모범에 대한 도전이며, 열린예배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쁨을 준다고 하지만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그 주체는 하나님이시지, 인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쁨 또한 축제같이 춤추고 노래하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것. 즉 열린예배를 반대하는 이들은 열린예배가 사람위주로 현대감각에 맞게 적용되어 세상의 문화를 교회안에 끌어들인다고 반박하고 있다.

삶의 변화로까지 인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회들이 기존 예배스타일에서 조금씩 변형을 주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저마다 찬양을 활성화시키고 젊은이들을 잡기위해 애쓰며, 예배중에 연극이나 영상물 등을 도입하고 있다. 열린예배를 드리는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예배스타일을 배우기 위해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탐방을 가기도 하며, 경동교회, 동안교회의 예배문화등도 한국교회안에서는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20세기 끝머리와 21세기 문전 앞에 와 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부흥회와 찬양집회등으로 교회 성장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문화 그중에서도 예배문화에 대한 갱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것도 그 지역과 그 교회 실정에 맞는 예배문화로 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그 방법적인 차원에서는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예배도 지금은 개혁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식화되어 교인들이 또 답답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예배갱신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부분은 예배를 통해 교인들의 삶도 변화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일 하루만의 감격과 기쁨을 주는 예배는 한편의 공연물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들의 삶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대화하며, 찬양하는 그러한 삶으로의 변화까지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21세기 예배갱신을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우은진기자
==============■ 자리잡지 못하는 예배문화 2 (1544호. 1999.2.19)  

근래들어 한국교회는 ‘열린예배’라는 새로운 예배형태로 많은 논란을 벌이고 있다.  열린예배를 둘러싼 한국교회의 논쟁은 ‘예배갱신’이라는 측면에서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 동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 목회자들의 생각인 것 같다.

열린예배에 대한 논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는 지난 9월에 열린 제84회 총회에서 이른바 ‘열린예배’에 대해 개 교회에서 금하도록 결의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가 ‘열린예배’를 금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열린예배가 예배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중심의 예배가 되어 본래의 예배 목적을 잃어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예배의 초점이 ‘하나님 중심’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초신자나 구도자에 맞추다보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예배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인간을 즐겁게 하며, 인간중심의 예배가 되어 본래의 예배목적을 잃어버리기 쉽다” 대한예수교장회 합동측 총회 신학부가 총회에 보고한 보고서의 한 부분이다.  신학부는 계속해서 열린예배의 부정적인 면으로 “예배의 경건미가 사라지고, 성경과 전통을 무시한 세속문화의 한 부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합동측 신학부의 보고서는 일방적으로 열린예배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을 피하고 열린예배의 장점을 기존 교회에서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오늘날 소위 ‘열린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용처럼 예배가 생동감을 잃어버리고 형식화되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면서 작금의 소위 ‘열린 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무조건 정죄하거나 무시하기 보다 건전한 예배갱신을 위한 계기로 삼고 깊은 연구와 더불어 무비판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기도할 것은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합동측 총회 신학부는 비록 열린예배를 공식적인 예배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으나, 열린예배의 장점을 수용할 것을 조심스럽게 건의하고 있다.  “예배의 활성화와 생명력을 위해 성찬과 설교가 균형있게 진행되어야 하며, 목회자 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회중들도 더욱 더 적극적으로 예배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많은 프로그램의 개발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한국교회 예배가 갱신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교회 예배갱신을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예배에 임하는 한국교회 교인들의 수동적인 자세이다.  예배에 있어 예배자의 참여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설교를 제외한 모든 순서는 설교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는 것이 자칫 설교들으러 가는 것으로 와전되고 있다.  예배에 참석한 회중들은 마땅히 예배의 전순서를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 에 산제물로 드려야 하지만, 강단의 목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관중의 자세를 취하는 예도 없잖아 있고, 심한 경우에는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는 심판관이 되어 설교 하나만 가지고 예배가 좋았다.  나빴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김성진교수는 “한국교회 설교중심의 예배는 교인들에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지 못하는 대신, 목사에게는 지나친 참여를 허락하게 되어 오히려 목사가 예배자 중 하나라기 보다는 총진행자 혹은 응원단장 같은 모습을 갖도록 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수동적인 자세에서 탈피해야

예배에 모이는 회중은 더이상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교회 교인들은 구경꾼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회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예배모델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교수는 그 방법으로 성경봉독 순서를 담당하거나 중보기도의 한 주제를 맡아 기도하든지, 세례식 때 수세자에게 간증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성가대의 찬양은 노래로 드리는 기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음악을 감상하 듯이 성가대의 찬양을 감상하는가 하면 많은 교회에서 성가대는 하나의 장 식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구경꾼들의 눈요기를 위하여 있다는 사고에서 오는 것이다.  예배는 구경하러 오는것이 아니라 참여해야 하는데 회중들이 관람객이 되어 버리면 그 예배는 형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개신교회 회중들이 이 형식적인 예배, 내용도 없고 빈 껍질만 있는 예배, 구경꾼과 방청객들만 모여서 ‘보고’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하나님께 아무 의미가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예배갱신은 회중, 다시말해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한국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에서는 회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젊은 목회자들과 일부 신도시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열린예배는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봉사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인도자, 즉 목회자의 비중이 절대적인 전통적인 예배에서 일반 회중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지만 열린예배에서는 참석자들의 은사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들이 능동적으로 예배에 참여토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해서 열린예배가 한국교회 예배 갱신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많은 목회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열린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먼저 열린예배는 기존 믿는 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알려진대로 열린예배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열린예배를 기존신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예배를 한국교회 예배모델로 삼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열린예배를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윌로우크릭 커뮤니티교회는 1975년 10월 청소년 사역을 담당하던 빌 하이벨스목사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윌로우크릭이라는 극장을 빌려 첫예배를 드림으로써 시작됐다.  

처음 125명으로 시작한 이 교회는 불과 3년만에 교인이 2천명으로 늘어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교회는 매주 주말 열린예배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구도자예배를 드리고 있다.  구도자예배 혹은 열린예배는 불신자들을 위한 예배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일부교회에서 시험되고 있는 열린예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불신자를 위한 이 열린예배를 무비판적으로 기존 교인들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열린 예배 무리하게 적용

한국교회는 선교 2세기를 맞이하고 있으나 진정한 우리의 예배가 없다고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선교초기 선교사들이 전해 준 예배모범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한국교회 교인들은 그 어떤 나라의 교인들보다도 예배에 참석하는 열성만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그 정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한국교회 교인들이 예배에 참석하는 참여도는 매우 높다는 것이 보편적인 평가이다.  

그렇지만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신앙양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은 예배에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 예배가 설교 중심적 예배로 정착한데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선교초기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예배전통이 그대로 한국교회에 답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배를 드렸으며 또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회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예배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많은 목회자들은 한국교회 예배의 문제점으로 예배의 공동체적 참여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국교회 예배에는 “공동체 안에서 다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각자가 자신을 산제사로 드리겠다고 결단하는 그 예배에 공동체적 참여가 안된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17세기에서 19세기 초엽까지 지속된 경건주의 영향에 기인 한 것으로, 경건주의는 곧 개인주의로 확대됐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대 예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코이노니아, 즉 교인들간의 친교를 중요시 여기는 특성이 있다.  합동측 총회 신학부는 보고서에서 열린예배에서 수용할 점으로 예배의 축제성을 포함시키고 있다.  

합동측 총회 신학부는 “예배의 공동참여가확대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예배는 거룩하고 근엄하기도 하나 모든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예배가 곧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성도들과 함께 누리며 체험되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열린예배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선교회에서 특히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이들 교회에서는 멀티미디어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바야흐로 한국인의 정서가 포함된 예배, 현대 환경, 현대인들에게 걸맞는 현대적인 예배가 필요한 때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예배문화는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많은 이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회 예배는 갱신되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예배 갱신 모델을 제시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한국교회의 예배갱신의 필요성은 근래들어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국교회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교회는 90년대초까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정체내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배갱신이 시급하다고 목회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열린예배의 논란은 한국교회 예배갱신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불을 지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열린예배가 한국교회 예배갱신의 모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에서 직수입된 열린예배는 한국적 상황과 많은 부분에서 괴리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예배신학의 토대위에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농축된 한국적인 예배모범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교회 예배갱신을 위해서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는 예배를 철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예배는 시대마다 전통과 개혁의 변증법적 변형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예배의 형식도 변해왔던 것이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 예배는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너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에 맞는 예배모범을 개발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김창수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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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수도관상피정 마귀의 책략 [1] 영성의메아리 2002-10-27 3157
78 정치건강취미 [건강] 스님들의 장수 비결 김철중 2002-10-27 3741
77 한국교회허와실 ■ 짜증 유발하는 전도활동 기독교신문 2002-10-27 3724
76 선교화제현장 성서한국, 통일한국, 선교한국 김진홍 2002-10-27 3295
75 수필칼럼사설 우연은 없다 정원 목사 2002-10-27 3363
74 사회역사경제 미국 테러당할 때 일부 아랍인은 왜 환호했나? 이희수 2002-10-27 3125
73 사회역사경제 이슬람교는 어떤 종교인가? 퍼온글 2002-10-27 4467
72 수필칼럼사설 [읽을꺼리37]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 방선기 목사 2002-10-23 3218
71 수필칼럼사설 이제 단강을 떠납니다. 뉴스엔죠이 2002-10-23 3226
» 한국교회허와실 ■ 자리잡지 못하는 예배문화 기독교신문 2002-10-23 4070
69 한국교회허와실 ■ 왜곡된 경건생활 [1] 기독교신문 2002-10-23 3877
68 한국교회허와실 ■ 과대포장된 교회내 '직분' 기독교신문 2002-10-23 4058
67 한국교회허와실 ■ 기독교가정의 허와실 기독교신문 2002-10-23 3914
66 생명환경자연 작은 이야기 - 들꽃 사랑 작은이야기 2002-10-18 3562
65 사회역사경제 프리메이슨(Freemason) [3] 궁금자 2002-10-18 7648
64 생명환경자연 [나눔] 전 세계 재난 예고 국민일보 2002-10-18 3225
63 생명환경자연 [읽을꺼리52] 환경호르몬 비상 국민일보 2002-10-18 3028
62 사회역사경제 [읽을꺼리53] 도시 빈민은 구조의 문제이다. 박문수 신부 2002-10-18 3050
61 인기감동기타 우리에게 먹이를 달라 고광노 2002-10-18 2860
60 영성묵상훈련 복 받는 신앙 김진홍 2002-10-17 3945
59 선교화제현장 공동체 두레마을 김진홍 2002-10-17 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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