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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이제 단강을 떠납니다.

수필칼럼사설 뉴스엔죠이............... 조회 수 3226 추천 수 0 2002.10.23 12: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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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푸르름이 무르익은 가을 오후의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랬다. 왠지 어제보다 더 푸르른 것 같은 하늘에 눈가가 젖어든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간간이 부는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경기도와 충청북도, 강원도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찾아가는 단강으로 가는 길 양옆에는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저녁 노을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여울을 만날 수 있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빛을 맞이할 수 있는 곳. 햇살을 따라 비스듬히 누운 벼들의 평화로움과 함께 차창 밖으로 잊혀져 가는 소똥 냄새가 흩어진다.

열다섯 해 전에, 어스름한 저녁 한 낯선 젊은이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단강의 기슭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이는 자신의 신앙과 삶의 거처를 그 버려진 땅, 황무지 위에 틀었다. 젊은이의 손이 닿기 시작한 단강은 그렇게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단강에 오게 된 날은 3월25일, 봄날이라고 하지만 그 날은 진눈깨비가 강하게 내렸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단강을 원주에서 선배 목사님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마을이 하나 나타날 때마다 내가 가는 단강 마을이 이 정도면 좋겠다. 이 정도만 되어도 내가 외롭지 않게 목회하겠다. 그런 생각을 여러 차례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물론, 지금이야 이 정도지만 그 때는 비포장이었지요, 비포장 길을 터덜거리면서 먼지를 내고 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착한 곳이 단강이었습니다.”

두 평이나 되었을까? 사랑방에서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오신 분들이 다 들어갈 수 없어 방바닥에 둘러서서 예배드린 기억이 빛 바랜 흑백 사진처럼 그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이는 그 날 순서에도 없었던 담임자의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선 이 땅을 우리의 후손들은 거룩한 땅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운을 띠었다고 한다. “교만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지내다 보면 우리가 처음 예배드리는 그 곳. 그 조그만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어 찬바람을 맞아가며 둥그렇게 둘러서서 예배드리는 이 땅을 우리의 후손들은 거룩한 땅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걸어온 15년

그리고 지난 시간이 15년이 되었다. 단강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단강교회가 몇 달 못 가서, 길어야 몇 년 못 가서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예배를 드릴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부족했던 만큼 주님은 넉넉하셨고, 약했던 만큼 주님은 크고 강하신 분이었다.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바다 한 가운데 길을 내시고 마른 길을 걷게 하는 은총을 우리는 때마다 경험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려움들은 우리를 이내 삼켜버릴 듯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 한 가운데 길을 내시고 마른 땅을 걸어가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때로는 낙심하고 때로는 절망하고 그런 때가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바다 한 가운데 마른 길을 내시는 은혜를 그이들에게 거두어가지 않으셨다. 바다를 모래로 막으시고 가장 크고 강한 바다를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모래로 바꾸시고 그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단강마을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둡고 어려운 상황들, 그 거센 풍랑을 막아내시고 마른 길을 걸어가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때마다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늘 양식을 경험했습니다. 시련도 늘 알맞은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주셔서 하늘 양식이 모자라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었던 알맞은 은혜를 누려온 것이다.‘길이 없는 곳에도 길이 있다’고 믿는 그이. 그래서 그이는 누구든 가기를 꺼려하는 황무지 혹은 첩첩의 산줄기를 ‘부르심’에 온몸으로 살아왔다. 하여 ‘단강’과 ‘한희철 목사’는 하나로 통한다.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 지역의 상징적 이름이다.

그이가 단강에서 아로새긴 목회는 한마디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꾸밈이 없고 하나님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어우러진 작품이라고나 할까.

‘작고 후미진 마을, 작은 예배당을 섬기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다들 떠난 곳에 외롭게 남아 그래도 씨뿌리는 사람들, 가난하고 지치고 병들고 외로운 이웃들과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이 땅의 아픔을 감싸기엔 내 사랑과 믿음 턱없이 모자랍니다. 그게 힘들고 힘들다가 외롭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를 이곳에서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그 중 당신과 가까운 곳 여기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어느 날의 기도’ 중에서)

내 맘 아는 이보다 내가 알아야 할 맘 더 많은 곳에서 살게 하시니 고맙다는 마음. 때로는 허전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을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이곳에 세우신 주님께 대한 고마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텅 빈 예배당을 채우고 있는 건 조용한 어둠과 구석에서 배어 나오는 풀벌레 소리입니다. 어둠 속에 앉았습니다. 조용함 속에 앉았습니다. 허전한 곳에서 허전하지 않게 계신 주님. 쓸쓸한 곳에서 쓸쓸하지 않게 계신 주님. 텅 빈 예배당 안에서도 여전히 너그럽고 편안하신 주님을 봅니다. 쓸쓸한 곳에서 쓸쓸하지 않도록, 허전한 곳에서 허전하지 않도록, 허전한 곳일수록 쓸쓸한 곳일수록 너그럽게 하소서. 편안하게 하소서. 텅 빈 예배당 지키는 주님 닮게 하소서.’

무심하고 무감하여 모르는 듯 모르고 살아가지만 실은 늘 눈물이었다. 가슴의 반 이상은 거반 눈물이지 싶다. 떠날 사람 다 떠나고 떠나지 못할 사람 남은 땅. 이내 사라질 듯 지워질 듯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위태하고 막막한 삶을 붙들 힘이 없었다. 마음이 얼어붙고 손은 젖어온다. 어떤 때는 웃고 대개는 그냥 지나치지만 그이의 가슴은 때마다 눈물이다. 마른 비에 젖어 고작 지켜가는 게 눈물의 무력함이라니.

“목사님, 딴 데루 가문 안 돼, 나 죽으문 나 묻어줘야지.” 젊은 목사의 손을 힘주어 잡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한다. 거칠고 메말랐지만 따뜻했던 할머니의 손을... “손금과 지문은 어느새 다 지워지고 나무 등걸 같았던 할머니 손엔 한겨울 지나도록 흙물, 풀물 빠질 새가 없었지요.” 할머니 가고 할머니 보낸 할머니들 또 가고 뒷짐 진 듯 느릿느릿 그러나 제 걸음 다 걸어 이 땅 무심한 세월이 가고 또 가는데 마지막 절망을 묻기까지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두고 그이는 언젠가 말했다. “농촌의 마지막 희망은 더 이상 절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이는 고백한다.

  내 이 땅을 사랑한다 함은
  쓸쓸함과 허전함 어둑함을 사랑함이니
  산끝자락 음지말 밤나무 아래
  비집듯 지워질 듯 밤을 새는 들창
  흐린 불빛이나 마른 기침 혹은
  굽은 등에 걸친 백발보다 거칠고
  눈부신 생의 무게
  그보다 깊은 막연함이니
  내 이 땅을 사랑한다 함은

예배하러 모인 교우들이 가지고 온 삶의 무게들 막막함과 괴로움, 답답함과 대책없음 그 끝 모를 아픔을 모르지 않는다. 마주하는 마음도 함께 시리다. 곳곳의 빈자리 함정과 같은 빈자리가 갖는 무게 또한 어쩔 수 없다. 바쁜 농사일과 병약한 몸 그들 또한 안타까울 것이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아픔을 딛고 서려는 듯 목청껏 부르는 찬송.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이 뜨겁게 젖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이는 사람 사랑하며 이야기 사랑하며 길 사랑하며 바람과 들꽃과 비 사랑하며 눈물과 웃음 사랑하며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

  평생, 당신의 마당을 쓰는 비질이나 하게 하소서
  뭔가 이루려는 마음
  남보다 앞서려는 마음
  대단한 것 가지려는 마음
  비질로 버리며
  무심하게 당신의 마당을 쓸게 하소서
  뛰노는 아이들 웃음으로 바라보며
  성전뜰 밟는 사람들
  고운 차림이건 허술한 차림이건
  노인이건 아이건
  머리 숙여 인사하며
  다만 마당을 쓸게 하소서
  뜨는 아침해 보고 감사하게 하시고
  지는 저녁해 보고 감사하며
  더도 덜도 말고
  당신의 마당을 쓸며
  내 한 생이 그렇게 가게 하소서



단강에 사는 그이에게 단강은 하나의 창이었다. 단강을 통해 하늘과 세상을 보아온 것이다. 맑기를, 따뜻하기를. 이따금씩 먼지 낀 창을 닦는 것은 맑고 따뜻해 깊은 하늘을 맑게 보고, 넓은 세상을 따뜻하게 보기 위해 하늘을 닦고 세상을 닦는 것이었다. 닦아진 만큼 커 보이는 사랑의 크기를 그이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만큼
  버리는 거구나
  버리는 만큼
  사랑하는 거고
  너풀너풀
  춤으로 떨어지는
  가을 잎새들
  그래
  사랑하는 만큼
  버리는 거구나

  
상처 입은 주님의 교회 일으키러 독일행

송별모임. 15년, 정들만 하니까 멀리 떠나가는 사람. 갈 사람은 가는구나 당연히 여기며 욕이나 한마디 하면 될 것을 무엇 그리 아쉬움에 자리를 만들고 막상 같이 있을 때는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밤이 늦도록 나누었다.

그이와 동갑내기 병철씨는 자꾸 울먹울먹하고 그러다 노래를 자청했고 병철씨의 애창곡 ‘칠갑산’을 청했지만 병철씨는 굳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불렀다. 병철씨가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였다. 옆에 있던 준이 아버지가 생각나는 대로 따라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마음은 눈물에 젖었다. 그이는 자신이 눈물을 보이면 자리가 아니다 싶어 마음을 눌렀지만 같이 얼싸안고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 단강을 떠난다. 마음의 고향, 삶의 분신과 같고 지금의 그이를 있게 한 스승, 멀리서 뒷모습만 보아도 말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곳. 이젠 이곳을 떠난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낯선 곳으로 간다.

“주님의 교회가 큰 상처를 입어 주저앉았다는 말을 듣고 대답했습니다. 다시 땅 끝으로 부르시는구나. 나를 광야로 내모시는구나,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이는 단강으로 처음 들어오던 날이 떠올랐다고 한다. 3월의 봄날, 진눈깨비가 사납게 날리던 날.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어딘지도 모르는 단강을 향할 때의 마음, 창립예배를 드리던 날 첫발을 내딛은 그 마음으로 독일로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사마리아 성을 찾아가 그 성을 기쁨의 성으로 만든 빌립이 생각났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또 다시 광야로 이끌자 다시 그 길을 떠나는 빌립을 생각하며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빌립이 걸어간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이번의 부르심이 내게는 그런 부름으로 여겨집니다.”

떠난다는 말을 처음으로 교우들에게 할 때는 무슨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한다. 눈물, 탄식, 한숨, 망연한 눈빛. 덩달아 뜨거운 눈물이 솟아 한동안 말을 못했다. 안 된다고 사정을 하기도 하고, 땅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고, 아무 말도 못한 채 손만 마주 잡고. 예배가 끝났는데도 떠날 줄 모르는 교우들... “떠남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리도 힘든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못하니, 하나님이 목사님 가는 길을 막아 달라는 교우들의 기도를 들을 때 다시 한번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그이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마을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대로 힘들어했다. 외출한 목사를 기다리며 밤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어르신 몇 분을 만났더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란다. 아예 교회 문을 걸어 닫고 떠나든지, 당신들이 교회를 나올 테니 남아달라고... 그이는 깊은 한숨과 함께 두 눈이 젖고 말았다. 당신들이 모두 교회에 나올 테니 떠나지 말라니, 내가 정말 떠나도 되는 건가, 내가 지금 어디로 떠나려고 하는가, 이미 정한 일이면서도 마음깊이 흔들렸다.

“욕을 먹더라도 ‘나 못 갑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마운 인사로 받기에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렸습니다. 이런 분들을 두고 떠나려 하는 자신이 안쓰럽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이는 꼭 돌아오겠다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금은 떠나지만 꼭 돌아오겠노라고, 한참을 같은 말을 했다. ‘고맙게도’ 목사의 말을 받아주신 그분들은 오히려 그이를 위로했고, 마을 사람들과 같이 식사할 자리를 마련해 석별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지나온, 쉽지만은 않았던 단강에서의 시간이 눈물로 녹아 아름다운 강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은물결과 은모래로 아름답게 빛나는 강. 그이에게는 지나온 모든 시간과 일들이 문득 하나의 아름다운 강으로 변하는 은총의 시간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피고’

지난 9월16일 드린 송별예배. 이 날은 단강교회가 문을 연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한 예배였다. 들꽃향기 가득한 감동적인 예배였다. 그 흔한 ‘송별예배’라는 글귀 하나 없었지만, 온 몸의 들썩거림과 마음의 울먹거림이 살아 있는 동안 어쩔 수 없게 갖게 되는 희망과 그리움, 아쉬움이 발끝 저리게 다가왔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푸른빛을 잃지 말라고 건네는 마을 어른들의 정성에는 ‘벼와 솔잎, 콩잎’이 묶여 있었고, 사모님께는 ‘감나무와 밤나무, 대추나무’ 열매들이 꽃다발이 되어 안겨졌다. 교우들이 단강마을의 들꽃을 모아 엮은 꽃송이들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걸 버릴 줄 알아 꽃은 다시 피고’ ‘가장 소중한 걸 미련 없이 버릴 줄 알아 나무는 다시 푸른 잎을 낸다’고 했던가.  

그이의 마지막 설교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신 34:1-8)이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 앞에서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어야 했던 모세의 모습을 '징검다리'에 비유하면서 우리의 삶과 신앙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내가 아니면 건너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건너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징검다리'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내가 바라고 원하고 그토록 기도하던 그 모든 것들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다 고르고 우리가 들어가고 우리가 확인하고 그러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징검다리 하나 놓는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참 행복했던 시간들, 같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징검다리 돌 하나 놓은 시간이었다 해도 저는 만족하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또 다른 돌을 놓으셔서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아니 함께 들어가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찬양할 수 있는 그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희철 목사, 그이는 단강을 떠나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는 그 곳, 독일로 갔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한편의 시를 남기고 떠났다. 주저함 떨치고 약한 마음 버리고 다시 떠났다. 다시 한 번 그이의 삶을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러...


나를 몰아가시는 당신

  당신은 나를 몰아가십니다
  휘몰아 가십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집을 떠나라 하십니다
  내일을 짐작할 수 있는
  둥지를 떠나라 하십니다

  눈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을 떠나라 하십니다
  멀리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람들을 떠나라 하십니다

  또 하나의 광야
  인적이 없는 길
  그 길을 걸으라 하십니다
  모래바람 속에 웃음으로 계신
  당신,
  행여 모래바람 헤치느라
  당신
  지나치는 일이 없게 하소서

  글  ⓒ한종호 (2001-10-09 오전 11:21:45)
사진 ⓒ 김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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