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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현실과 동떨어진 공동체운동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3549 추천 수 0 2002.10.30 2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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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기독교신문/제1572.1573.1574호 ◎ 2000/11/17(금) 10:19

■ 현실과 동떨어진 공동체운동 1 (1572호.2000.7.30)  

공동체운동은 인간유대강화

197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되어왔던 우리나라의 공동체운동은 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그 정체성을 잃고, 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이다. 어떤 이유에서 공동체운동은 이러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인가.

현대사회에 있어 하나의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는 ‘공동체운동’은 특별히 산업화와 함께 개인의 이성에 의존한 사회가 도래함으로써 더욱 형성되어 존재해왔다. ‘공동체운동’이란 말은 우리에게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내려온 ‘계, 품앗이, 두레, 향약’ 등의 공동체운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한국사회에서 반공해운동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공동체운동은 80년대 협동조합이란 형태의 공동체운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공동체운동은 위기 속에 처하기 시작했다. 갖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활발히 진행되던 공동체운동이 점차 분열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에는 경험하지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90년대 이후 벌어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우리사회의 특징이라면, 사회전반과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다원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획일화되었던 우리 사회에 상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다원화현상은 집단적인 힘을 점차 분해하는 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공동체운동이 구심점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다른 이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분열은 곧바로 고통받고 있는 힘없는 이들에게 그 피해가 전가되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공동체’란 용어의 개념부터 살펴보면, 공동체란 용어는 그 사용빈도에 비해 명확한 개념화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동체란 용어는 특별히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되어 왔다. 그것은 기독교가 바로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코이노니아, 즉 만남이란 영역을 추구함으로써 성도간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포용과 나눔의 삶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대한 이론의 정립은 19세기 서구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는 중세봉건사회의 붕괴이후 산업화의 진행과 이성의 시대로 돌입하면서 점차 사회가 개인의 이성에 의존하게 되자 생긴 반발 때문이었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은 지역성과 긴밀한 사회적 관계, 동질적인 유대감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전통적인 공동체의 속성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성이란 속성은 크게 강조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공동체란 개념을 함께 생활한다는 의미보다는 구성원간의 활발한 관계망 형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공동체운동은 감정과 전통, 소속과 의지가 같은 구성원들이 동질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운동은 모든 이들이 인간적인 존재 자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포괄적인 운동이다. 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운동이기도 하다.

역사성 깊은 공동체운동

이러한 공동체운동의 특징이라면, 무엇보다도 공동체는 강력하고 밀접하게 구성되게 마련이므로 스스로가 창조한 존재양식을 추구하는 고립 지향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운동은 일부의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며, 소유와 생산, 소비에 대해 완전한 평등을 추구한다. 이러한 공동체운동은 종교적인 지향에 의해, 또는 정치적인 지향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공동체운동은 역사가 깊다. 공동체의 개념보다는 공동체운동의 개념으로 본다면, 현대적 의미로 그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특히 한국사회에서의 공동체운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산업사회가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를 살펴보는 것, 그리고, 현재적 관점에서 이를 반추해 나가는 것이 유용하다 하겠다.

산업사회적인 형태의 지역공동체운동은 70년대 이후 지방의 대규모 공단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일어난 반공해운동을 들 수 있으며, 좀더 현대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운동은 최근의 신도시 주민운동을 들 수 있다. 아파트 위주의 신도시라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지역사회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분리수거나 소각장반대운동 등의 환경이슈를 매개로 지역주민들의 지역공동체 운동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이기주의도 보이지만 지방자치 선거에서 지역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시민후보를 당선시키기도 했다.

두레공동체,반공해주민운동,신도시주민운동, 시민운동이 지역운동이라 할 수 있고, 이는 곧 공동체운동의 한 범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협동조합운동이다. 다분히 서구에서 출발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는 두레공동체나 향약 계 등의 우리 전통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협동조합운동을 지역성과 역사성에 기초하여 분류해 본다면 대체로 도시소비자협동조합,농촌생산자협동조합,산업노동자협동조합 등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은 여러 세대가 모여 주로 유기농산물의 직거래운동을 펼치는 것으로 대별될 수 있으며, 생산자협동조합은 농촌형의 공동체운동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협동조합과 생산자협동조합은 더불어 연결될 수밖에 없으며, 공생조직으로 서로 상호지원하는 관계에 있다. 한살림이나 여성민우회 생협 등 활력 있게 움직이는 대규모의 협동조합은 아직도 손꼽을 정도로 미미한 것도 현실이다.

생활협동조합과 달리 좀더 산업사회의 상품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유형은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산업문명 속에서 새로운 기업구조와 기업문화를 모색하는 다분히 실험적인 성격의 협동조합운동이다. 일꾼 두레, 실과바늘, 협성생산공동체, 광동택시 등이 이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자본의 열악함과 판매망의 부족함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심지어는 생겨났다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와해되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 사실이다. 높은 실험성으로 인해 수명이 매우 짧은 것이 보편적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실험은 자본주의적 산업문명 속에서 좀더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기업방식을 모색하는 선구자적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분야가 소공동체운동이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소공동체운동은 중세의 수도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요즈음 종교적 소공동체운동이 갈수록 늘고있는 추세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은 종교적 공동체 중에는 옥석을 가려야 할 것도 많다는 사실이다. 즉, 이단사이비 색체를 띤 소공동체도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비종교적 소공동체운동도 다양하다. 경기도 화성의 야마가시공동체, 충남 홍성의 풀무마을, 그리고 한살림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농촌마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소공동체가 출발하게 된 배경은 자본주의적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식적인 소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인격적 친밀과 정서, 도덕적 헌신과 수양, 사회내부의 응집력 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인다. 그렇기에 역으로 유기농산물의 생산과 직거래운동에 기반한 농촌지향성과 폐쇄적 자립사회 형태를 띤다는 특징을 보인다.

용공단체로 오해받기도

일제하 한국교회의 공동체운동은 한마디로 사랑의 공동체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한국교회는 가난한 민중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 의료사업을 비롯한 학교사업, 불우이웃돕기, 독립운동 참여 등의 사업을 펼쳐, 가난한 민중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이를 발판으로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사랑의 공동체를 통하여 한국교회 발전의 계기로 삼은 교계는 해방이후 신앙공동체와 전도공동체에 중점, 교회성장에 모든 힘을 경주했다. 당시 한국교회는 ‘공동체’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못했으며, 이 용어에 대해서 위험 부담이 컸다. 한국교회에서 ‘공동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50, 60년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식자층에 의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공동체운동은 1980년대 후반 의식화운동을 통해 깬 국민들에 의해서 진행됐다. 당시 생산자 모임을 비롯한 소비자단체, 환경단체 등의 모임에서 ‘공동체’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 모임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공동체와 생산자공동체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 공동체운동은 성서에 바탕을 두고 일어났다는데 큰 관심을 끌었으며, 기독교인들의 의식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공동체운동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까지 영향을 끼쳐,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활동에 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운동은 이념적 부족과 실천적 부족 그리고 인간중심의 공동체운동으로 인해, 공동체운동에 대한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70,80년대 공동체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식자들은 ‘용공분자’로 매도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관계기관에 연행되어, 용공분자 또는 이적단체로 낙인찍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전 할울공동체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관계기관은 한울공동체에 참여했던 박재순목사를 비롯하여 이규호전도사, 김종생목사 등을 국가보안법을 적용, 구속했으며, 이 공동체에 참여했던 고등학교 학생들까지도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밖에도 많은 공동체가 용공, 이적단체로 법정에서 논란을 빚었으며,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의식서클은 ‘공동체’라는 용어 대신, ‘모임’이란 용어를 사용했으며, 전두환정권이 끝나고, 노태우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층민중들 사이에서 잃어버렸던 ‘공동체’ 용어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 농촌 생산자들이 만들어 낸 생산공동체와 생명공동체, 도시소비자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비자공동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이념적 부족과 실천적 부족, 인간중심의 공동체운동으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그 존재가 유아무아한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생산자공동체와 소비자공동체는 기독농민과 도시교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농민회와 가톨릭농민회에 소속된 회원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데 관심을 끌고 있으며, 이 두 농민단체는 전두환정권과 박정희정권 아래서 ‘용공단체’로 오해를 받아, 관계자들이 투옥되는 등 계속적인 탄압을 받았다.

이 두 단체는 생명공동체와 생산공동체 그리고 소비자공동체가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농촌민주화를 이루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럼에도 이 두단체는 현재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으며, 이것은 두 단체가 실천적 의지와 인간중심의 공동체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당시 기독교농민회에 참여했던 관련자의 고백이다.

/유달상부장·홍순현·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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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동떨어진 공동체운동 2 (1573호. 2000.8.6)  

말로 끝난 생산자공동체운동

기독교농민회와 카톨릭농민회의 영향을 받아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운동은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는 농민의식화 교육이란 이유로 인해 관계기관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국민들 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운동이 반체제운동이라는 오해를 받아 대중들로부터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공동체운동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념과 실천부족, 인간중심의 공동체운동으로 단체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농민의 의식화운동을 벌이는 하나의 단체로 국민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실천적 부족은 말로 끝나는 운동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으며,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단체의 존재가치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생산자공동체운동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국민들과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동체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아무튼 농민들 사이에서 일어난 공동체운동은 의식 있는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는데 관심을 끌고 있으며, 농업농민을 의식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송악감리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유정란 생산공동체. 중신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한울공동체, 백운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명공동체, 음봉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무공해 쌀 생산공동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교회는 생산자공동체운동을 벌이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키기도 했다. 충북 B교회는 생산자공동체를 만들면서 관계기관의 탄압과 교인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생산자공동체를 주도한 목회자는 교회를 사임하고, 임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당시 농촌상황을 고려하면 이 교회 담임목사가 주도한 공동체운동은 교인들로부터 공감대를 얻기에는 실천적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의 생산자공동체 조직에 대한 방해가 계속되고, 교인들과 농업농민들을 회유했다는 것. 이로 인해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생산자공동체 조직을 반대하는 측과 찬성하는 측간에 분쟁이 일어나는 사태까지 몰고 갔다.

생산자공동체중 성공한 경우는 송악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유정란 생산자공동체를 들 수 있다. 이 공동체는 양돈업자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실천이념을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이 공동체는 기독교농민들의 생명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더불어 성장하는 교회공동체를 만들어 냈다는데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는 도시교회를 중심으로 조직된 소비자공동체와 연계, 협력체제가 잘 이루어졌으며, 한국교회 생산자공동체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이 교회의 생산자공동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중심의 공동체운동을 전개하고, 공동체운동의 이념과 실천적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공동체운동을 주도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동체는 기독교적 이념과 실천적 부족, 인간중심의 공동체운동으로 인해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운동의 이념이 성서적 바탕을 근거로 조직되지 못하고, 인간중심으로 조직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생산자공동체에 참여한 동역자들을 이적단체로 몰아붙였으며, 많은 생산자공동체에 참여한 목회자들이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는 건강한 먹거리생산과 생명운동 그리고 환경운동,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건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춤거리는 도시소비자공동체

공동체운동은 다양한 방식과 내용으로 시도돼 왔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으며, 소멸을 겪는 한편 실패의 쓰라린 아픔도 겪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도시공동체, 한정해 도시소비자공동체운동을 펼치는 관계자들에 따르면, 어려움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삶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데 생활은 비자본주의적 패턴을 추구하는데서 나오는 갈등’이라는 것. 자본주의는 개인의 이해와 영리를 극대화하는 것이며, 타인의 삶에 대한 배려는 거의 없기에 이를 극복하려는 ‘공동체적 삶 추구’에서 오는 갈등이 당연히 도출된다는 하소연이다.

도시소비자공동체운동의 유형의 대표적인 것은 생활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생활협동조합운동은 환경운동과 결부,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돼 왔고 여러 루트를 통해 시도돼 왔다. 특히 개교회에서 이런 생협운동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교회의 몇 가정 또는 교회단위의 직거래, 공동구매, 공동판매 형식의 이러한 생협운동은 건강한 먹거리 문화와 농어촌 돕기, 환경운동과 결합돼 많은 교회에서 실시돼 왔고 그 성과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생협운동은 현실적으로 많은 벽에 부딪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시도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했지만 그 운동의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하소연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일반 소비자, 특히 생협운동에 가입했던 소비자들이 이 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 첫째로 꼽힌다.

생협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소비자들은 생협운동을 자신을 위한 운동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지 ‘남을 돕는다’는 의식으로 출발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운동을 담당하는 이들은 이것이 잘못된 관점이라고 단언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공동체운동, 특히 생협운동은 남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농어촌 직거래를 예로 들어보자. 많은 소비자들은 이 직거래운동에 대해 피폐해진 농어촌을 돕는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자나 소비자가 함께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건강한 먹거리문화를 조성하고, 그럼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사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곧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환경을 보존하고, 공존의 삶을 추구하는 방식인 것이다” 생산공동체의 한 담당자의 말이다.

그렇기에 생협운동을 시도한 교회와 단체는 많으나 그 운동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곳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이 운동이 확대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생협운동이라는 일정한 명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무공해 농산물에 대한 직거래운동도 주춤한 것이 사실이다. 심하게 표현한다면 생산자나 소비자 양측이 이해만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소외계층 위한 공동체운동 활발

또다른 축을 이루는 도시공동체운동의 유형은 ‘나눔운동’을 들 수 있다.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은 대도시에서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불러왔고, 이들의 주거지, 즉 슬럼가가 형성돼 왔다. 소위 ‘판자촌’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이 속에서의 ‘도시빈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돼 온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도시재개발과 맞물려 ‘철거민 생존권 투쟁’을 보여줬고, 그 속에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연대하는 의식이 싹텄다. 하지만 도시의 발달이 곧 모든 이들의 고른 삶의 질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소외계층이 대거 양산돼 온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공동체운동을 전개해 왔다. 70년대 이후의 도시산업선교운동도 하나의 공동체운동으로 분류할 수 있고, 80년대 이후의 나눔운동도 공동체운동의 범주라 할 수 있다.

대한성공회의 나눔의집이나, 장애인을 위한 공동체운동 등은 소외계층에 대한 공동체운동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았고,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외국인노동자의 대거 유입이라는 사태에 따라 외국인노동자의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공동체운동도 활발하다. 실직자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공동체운동도 공동체운동의 하나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소외계층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이러한 공동체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소신 있게 그 나름의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별히 기독교의 이웃사랑 정신과 맞물려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89년 청량리 뒷골목에서 가난한 이웃들과 병든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외면할 수 없어 한끼의 식사만이라도 함께 나누고 섬기면서 갱생의 삶을 도우려고 시작된 다일공동체는 성공적인 공동체운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다일공동체는 매일 행려자, 노숙자,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무료식사와 토요일의 무료 진료 등을 실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연대활동과 윤락여성을 위한 활동, 남북나눔운동 등 각종 소외계층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설립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맥을 잘 살려가고 있다.

소망조기교육원을 모태로 하는 나눔의 집은 장애인의 수용과 보호 기관으로서의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1997년 가톨릭의 빈첸시오의 도움으로 시작된 애덕의 집도 중증장애인들의 사회참여와 경제적 자립을 위해 힘쓰고 있는 공동체이다. 이러한 공동체들은 세상의 편견과 동정으로 인해 소외받는 장애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들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평등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소외당하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공동체운동들은 그러나 그 취지를 살려 가는데 있어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동체운동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공동체운동 자체의 와해를 경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공동체의 좋은 취지가 사회에 알려져 많은 후원금을 받게 되자 넘쳐나는 재정을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공동체도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운동에서 경계해야할 것은 경제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갑자기 불어난 재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생기는 재정의 불투명성 등으로 내부의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운동은 항상 ‘절제’란 단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공동체운동은 소수의 카리스마적 존재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공동체는 공동체의 힘을 하나로 집중할 수 있는 지도자의 힘이 약화될 경우 공동체 자체까지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한편, ‘우리집 주변에는 장애인이나 실업자들을 위한 시설 건립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역적 이기주의로 인해 공동체들이 겪는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사람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공동체운동이 지향하고 있는 목적과 과정에 있어 공동체들은 상당한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눔 운동을 통한 공동체들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사람들의 이기주의에 경종을 울리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유달상부장·홍순현·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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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동떨어진 공동체운동 3 (1577호. 2000.9.10)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

앞서 지적했듯이 농어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운동은 농업농민들의 의식변화와 농촌민주화, 그리고 농업농민들의 결속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생산자공동체운동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 존재의 의미가 상실되기 시작했으며, 공동체의 존재도 유명무실해졌다.

이것은 공동체운동이 성경에 바탕을둔 하나님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자공동체는 교인들에게 자연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교인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80년대 생산자공동체운동에 적극 참여한 한 목회자는 “80년대 전국적으로 일어난 가톨릭농민회운동과 기독교농민회운동은 교인들의 의식변화와 현장중심의 새로운 생명공동체를 창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다”면서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는 농업농민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 도시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도시소비자는 농촌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처음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는 도시소비자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가 더불어 살아가는 운동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래서 농촌의 생산자공동체는 생명운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운동은 전국 농촌교회 목회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 운동도 국민의 정부가 들어 선 이후 한계를 드러냈으며, 그 존재가치가 유명무실해졌다. 그래서 일부 뜻 있는 목회자들은 80년대 농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운동을 회복, 농촌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가 함께 살아가는 도농공동체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농공동체운동을 강조하는 한 농촌목회자는 “도농공동체운동은 농촌의 생산자가 도시 소비자의 생명을 책임지고, 도시의 소비자는 농촌생산자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더불어 살기 위한 생명운동이다”면서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하나님중심의 생산자공동체를 새롭게 조직, 농업농민들의 교회로 자리잡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목회자의 말과 같이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벼랑으로 내 몰리고 있는 농촌교회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중 하나인 생산자공동체운동을 전개, 농업농민들에게 필요한 교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뜻 있는 목회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생산자공동체는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 용공집단으로 매도 당기도 했으며, 보수적인 동료목회자들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부 뜻 있는 목회자들은 쓰러져 가는 교회공동체를 되살리기 위하여 농민운동을 전개, 농촌교회의 체면을 유지해 주었다.

이제 농어촌교회들은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생산자공동체운동은 농어촌교회가 농촌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생산자공동체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교회들은 90년대 초반까지 군사독재정권 아래에서도 농업농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교회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하지만 생산자공동체는 대중들로부터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자공동체는 한국교회 공동체운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교인들의 협동심과 농업농민들의 의식변화, 농업농민과 교회간의 상호이해, 도시교회와 농촌교회의 상호이해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은 생산자공동체가 농어촌교회의 공동체운동으로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농어촌교회 지도자들은 생산자공동체를 운영, 관리 할 수 있는 지도자 개발을 비롯하여 먹거리의 공동생산 및 판매, 생명운동에 대한 홍보 등 생산자공동체가 조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긴 호흡의 운동이 돼야

도시공동체운동은 크게 생활협동조합운동과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 운동의 형태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들 단체들은 자본주의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비자본주의적 공동체운동을 지향하는데서 오는 많은 갈등을 경험한다.

도시소비자공동체운동의 대표주자 격인 생활협동조합운동은 1977년 강원도 광산촌 소협을 지원하기 위해 소비자협동조합 광산지역협의회가 설립된 것이 시발점이다. 1980년대부터 산지직거래 형태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환경운동, 생태계보존운동과 생명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다.

생협은 산지직거래운동으로 농어촌과 도시가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생산, 소비함으로써 환경보존과 함께 건강한 먹거리문화를 조성하는 등의 긍정적인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1999년 12월 31일 현재 생활협동조합은 전국 148개 조직과 14만8천9백여 세대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많은 교회와 단체가 생협을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생협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생협운동의 취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에 있다.

생활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한 공동체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운동이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운동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생활협동조합을 포함한 도시소비자공동체운동은 공동체운동의 정체성확립과 공동체운동이 추구하는 바를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생협운동이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생협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에게 보이는 조급한 생각이다. 이러한 조급한 생각은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부딪히려고만 하는 융통성 없는 운동으로 보일 뿐이다. 공동체운동은 일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닌 긴 호흡의 운동이다.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대립하기보다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틈을 벌려 생협운동을 사회전체로 확산시키는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도시공동체운동의 또 다른 유형인 ‘나눔운동’은 1970년대 이후 산업화에 따른 대도시에서의 급격한 빈부격차로 인해 늘어나는 소외계층이 구제를 위해 전개되기 시작했다. ‘나눔운동’은 특히 기독교에서 적극적인 참여로 활발한 운동이 진행되었다.

다른 어떤 공동체운동보다도 활발하게 진행되어온 소외계층을 위한 공동체운동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원인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공동체운동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운동 자체를 중단해야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인 단체들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편, 소외 계층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공동체운동단체들은 사회의 편견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우리집 주변에 장애인 시설을 짓는 것은 절대반대’라고 외치는 이기주의는 이들 공동체운동의 최대 위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까지 나눔운동은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공동체운동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삶의 질’ 향상에 노력해야

기독교계 등 각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지만, 그 의미와 지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고무적이며, 격려를 해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자본주의사회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관심보다는 경쟁을 앞세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을 잉태하는 것이라면 ‘더불어 사는 공동체’는 그 시도로써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공동체운동이 시도만으로는 안 된다는 인식에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보다 치밀한 계획과 현실성, 그리고 정당성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활동을 벌여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기독교계에서 시도되고 전개되어온 공동체운동이 일정한 난관에 부딪친 것도,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다시 표현하면 공동체운동이 이제는 ‘의미성’, ‘정당성’으로만 시도되고, 활동을 그것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에 ‘현실성’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이다. 활동에 대한 운영능력, 공동체 성원에 대한 의식화, 조직화 그리고 지속적인 재정 확보 시스템 등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국사회의 변화에 대한 보다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80년대까지 민주화 실현이 한국사회의 주된 관심이요, 주 활동 타깃이었다면, 90년대를 경유하면서 한국사회는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는 개인성이 더욱 확대되고, 한국사회의 지향점이 보다 구체화되고, 확장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관심이 사회적 주이슈로 대두됐던 1980년대까지의 특징이 사회의 변화로 말미암아 개인적 인권의 문제, 통일과 국권수호의 문제, 개인적 삶의 질 향상 문제 등으로 확대됐다. 이제는 공동체운동이 다양한 이슈와 내용으로 시도되고, 활동을 전개해야 함을 역설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로 말미암아 공동체운동을 전개했던 일부 주도적인 인물들이 일시 혼란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화운동을 외치며, 사회의 변혁에 주안점을 두었던 사람들은 80년대 후반기부터 일기 시작한 국내외 정세의 변화로 말미암아 한 측면에서는 혼란과 좌절을 겪은 것이다. 일부이긴 하지만 이는 이 주동적인 사람들의 ‘무기력’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또 한 측면에서는 이 시기를 새로운 모색을 하는 시기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70년대 이후 장애인, 생산공동체, 소비공동체 등을 전개해온 공동체들은 그 범위와 내용을 확대하고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21세기는 분명, 개인의 이해와 요구를 확대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민족, 지역, 각계각층의 이해확대에 관심을 가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공동체운동의 의미성은 여전히 중요하며, 그 시도도 활발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현실적 분석 위에 공동체운동의 방향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각 성격의 공동체운동에 대한 분석과 평가, 그리고 대안을 각각 정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공동체운동’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각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발전을 추동하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운동은 더욱 확대되고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그 내용도 풍부해지고 다양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은 당위적인 사회적 요구와 의욕만으로 이 운동을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공동체운영능력, 개개인의 의식, 미래에 대한 전망 등이 고려돼야 한다.

이럴 때만이 과거 다양하고 의욕적으로 시도되고 실패했던 다양한 경험들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회의 진보를 가능하게 하고,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주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달상부장·홍순현·성민혜기자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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