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나눔] 한국교회 목회의 문제점
들꽃편지 제21호 2000.1.22
서 론
한국교회의 현상화는 어디에 와 있는가? 현대의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선교적,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상황을 올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개신교가 시작된 것은 100년이 넘은 것은 것으로 세계사에서 그 역사가 짧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수나 교인수는 짧은 역사에 비해 대단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많은 교단과 교파를 보고서 알 수 있으며, 또 많은 사이비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문제들을 파헤치려고 한다. 또한 많은 개신교에 대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통계적인 수치는 주관적인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현실성 있게 우리들이 처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라서 한국교회가 처한 문제들을 반성해보고 앞으로 2000년을 맞이하는 참 목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적고자 한다.
본 론
1.교회분열의 현상
한국교회의 분열의 책임이 우리 민족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도 있지만 세계역사를 다 찾아봐도 한국교회만큼이나 분열이 심한 교회는 역사상에 없다. 그 분열의 씨가 지금도 우리가 섬기는 교회 주변과 교회속에 있다. 분열되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입과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태도이다.
한국교회의 내부갈등
교회내의 집단갈등(진보 보수의 갈등 포함)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과 목화자와 평신도간의 갈등이 많은 점을 유의하여 상호간 상당한 노력과 이해가 요구된다. 특히 새신자가 등록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는 기존교회의 무관심(56.4%)이 제일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미국 내에 「신뢰받는 직업순위」에 대하여 갤럽 종교조사 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53%만이 성직자가 정직하다고 답면하여 86년의 67%보다 14%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내 성직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85년 이후 계속적인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년에는 60%, 90년에는 55%를 기록하므로 성직자의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이러한 미국의 문제가 한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한국교회에서도 목사와 평신도간의 불화로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서도 이미 볼 수 있다.
2.기복주의 신앙
우리가 복을 가르치고 복받기를 원하고 또 축복기도로서 복을 선포하고 하는 신학적 성서적으로 말하는 기독교의 축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사람들의 복받고 싶어하는 심성과 엉켜서 교회분열이 그랬듯이 이 기복신앙도 한국상황에서 더 가세가 되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기복적인 사고는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너무 진하게 왜곡된 기복적인 신앙과 교회풍속과 목회방식은 어디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교회 100년을 정리해 볼 때 기복주의 신앙이 어디까지성서적인가 하는 것을 비찬하고 지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장 그런 요소를 제거해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도해서 신앙적으로 성숙시켜서 정리하고 바른 축복의 신앙과 신학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일단 기복주의적인 신앙의 지나친 표출은 한국교회 100년 사의 하나의 적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의 뇌리에 젖어온 복은 심리적, 육체적 건강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복에 대한 핵심으로 말할 수 있다. 서정범 교수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올 때 기독교를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고, 성경을 복음서라고 하였으며, 전도하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한국의 서민들은 복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냥 기복적인 신앙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교회안에 잘못된 복에 대한 부분을 성서적인 것으로 옮길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복신학과 기복신앙의 차이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기복신앙은 종교학적으로 "소원성취(Wunscherfullung), 자기소원의 성취인 반면에 성경의 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복은 내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신학부재의 목회풍토
신학부재의 목회풍토이다. 가치관과 신학이 지배하는 목회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 더 지배적인 목회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세속주의, 물량주의라고 하는 것은 최근의 이야기이지만 목회전반의 풍토를 판단하는 가치관의 척도가 성서와 신학과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어야 하는데 그밖의 다른 요소들이 많이 지배하는 목회풍토가 한국의 목회풍토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신학부재의 목회풍토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4.개교회의 중심주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주일 하루를 철저히 교회에 바치도록 강요한다. 그 숨은 이유는 다른 교회로 갈까하는 우려라고 볼 수 있다. 교회쟁탈전이란 말이 붙을 정도이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교회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실지로 계산에 의하면 교회의 생활을 개인의 삶에 있어 아무리 많이 잡아보아야 1/4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가정이며, 다음이 일터이며, 그 다음이 교회이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는 가정과 일터에서 그것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교회의 테두리 안에 얽어매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5.교단간의 대화부족
개교회가 비대해져서 소속교단과의 협력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교파분열의 원인에 대해서는 교회지도자들간의 이해관계라고 응답한 비율이 51.3%나 되고 있어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난다. 신학적 노선 차이가 27.8%, 서로 다른 신앙유형이 13.3%이다. 그러니가 58%가 비종교적인 이유이다. 교파분열의 이유로서 목회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내의 다른 교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모든 교파는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가 목회자가 37.6%, 신학대학생들은 65.2%이다. 나의 교파가 가장 우월하다가 목회자 53%, 신학대학생 26.8%이다. 나의 교파만이 참진리이다가 목회자가 .5%, 신학생이 5.8%이다. 대체로 보아 목회자들은 타종교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타교파에 대해서도 다소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자기가 속해 있는 교파만을 절대시하는 태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사회참여의 문제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 어떤 교회는 소외 계층(장애인, 고아, 소년소녀 가장들, 재소자, 약물중독자. 장애자, 노년층, 극빈자 등)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나머지 그들의 영에 다한 구령의 열정도 상실되어 있다. 어쩌면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울 사랑과 능력이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이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실제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이 건강할수록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경적 지식적 정신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질 때 그들은 실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성전을 지을 때 교회당에 들어가는 입구(계단)부터 장애자들을 위한 배려를 하는 것이 좋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장애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 나라에 150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숨겨진 장애자를 포함하면 43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지체장애(마비,관절운동장애,기형,면형,통증,절단), 시각장애, 청각언어장애(청각,언어,중복), 정신박약 등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애는 선천성(19.2%)이 아니라, 후천성(80%)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노령화, 사건사고, 질병 등으로 인하여 후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교회 안에서도 외롭게 고난받는 장애인들에게 소외감을 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선교 전략을 수립하여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과감한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의 면화가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확장해야 하며, 아울러 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도 확충해야 한다. 장애인, 그들은 특별한 기대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도움을 바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상인처럼 평범하고도 공평하게 대우받으며 정상인과 같은 한 인격체로 사랑 받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가정과 일터, 특히 교회에서라도 소외받지 않도록 그들을 대해주는 사랑의 운동이 절실히 팔요하다.
7.목회자의 자질부족
1) 목회자의 관점 - 예장(고신)의 교단지인 기독교보가 서울지역 목회자 3백명과 지방교회 목회자 l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목회자가 지녀야 할 중요한 자질」에 대한 응답
l. 투철한 사명의식 62%
2, 사회부정비리 감시 20%
3. 풍부한 신학적 지식 7%
4. 신비적 능력 빛 은사 4%
5. 합리적 행정능력 4%
6. 기 타 - 3%
또한 표)1과 같이 한국교회의 문제점 가운데서도 목회자들이 시급히 여기는 부분이 목회자의 자질이 우선순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평신도가 바라본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가 본 바람직한 교역자상은 다음과 같다.
평신도가 바라보는 목회자의 자질에서는 역시 신앙과 생활의 일치였다. 말로만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목회자가 먼저 실천하는 일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8.양적성장주의
한국교회의 성장발자취
한국교회성장 통계자료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1960년대에는 평균 l년에 10만 명씩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1982년까지는 l년에 20만 명씩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가장 급속히 증가한 때는 1978년에서 1982년까지로 무려 이 기간에는 평균 l년에 l백만명씩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94년 6월 현재 기독교의 성장률은 한국교회 전체를 불 때 저조한 편에 속한다, 얼마전 한 소식에 의하면 기독교인 수가 4퍼센트 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는 경종이 되는 보고로 이전 수적인 증가보다 질적인 성장이 훨씬 더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치의 통계 중에 종교계의 수치는 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경우 이동하는 면이 많이 나타나 한 교인이 2개 이상의 교회에 등록한 채로 그 이름만 남아 있는 경유도 흔히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선교사를 점점 많이 파송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최초로 해외 토착민 선교사 3명을 중국 산동성에 파송한 이래 1979년까지 약 66년간 93명의 선교사밖에 파송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9년에 93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했던 것이 1992년에 와서는 2천5백76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교회부흥에 비하여 선교사 2천5백76명을 파송한다는 것은 l명의 선교사를 4천6백 명이 담당한다는 결론이므로 지금 자만의 때가 아니라, 아직도 미홉하며 주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선교사 파송과 지윈을 위하여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할 때이다.
초대교회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이 병행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너무 양적인 성장으로만 치우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대로 올라가다간 어느 시기에 높이 성장한 수적인기등이 순식간에 무너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히 수적인 성장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적인 성장도 지속적으로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여지가 없다.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질적인 성장이 뒷바침되지 않는 수적 성장의 위험성이다. 예수님은 일생, 3년 동안 12명을 제자로 훈련시키고 가셨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하시고 치유의 사역을 행하셨지만 가장 핵심적이며 최선의 힘을 기울인 대상은 12명 뿐이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12명(맛디아 포함)은 남아서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을 다했다. 주님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봉양하던 사도 요한 외에 모두가 순교를 하기까지 충성을 다 바쳤다. 그 결과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확실한 사람, 한 명을 키우는 일이 그렇게도 귀중한 일임을 께닫게 해준다.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제자를 양육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내가 복음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젠 얼마나 않은 교인들을 모으느냐에 대한 관심보다 얼마나 많은 질적인 제자를 양육하느냐에 더 큰 관심올 쏟아야 할 시기이다. 여기서 제자란 말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슴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순교자적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주님이 그 날에 물으시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맡겨진 양들을 얼마나 잘 양육하여 제자를 삼았느냐?" 사람의 눈에 인기있는 사역자나 교인보다 사람이 몰라줘도 은밀하신 주님의 눈에 흡족하도록 신앙생활을 하며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결 론
현대 한국교회는 심각한 정체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줄곧 성장만 해오던 교회가 지금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모습으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한다는 것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사회에서 더 큰 퇴보를 하는 것이다. 사회는 항상 변하고 있다.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 많다. 목회도 이러한 세계의 물결에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2000년을 맞이하여 사느냐 죽느냐의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목회에만 치중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많은 프로그램은 사회의 물결에 뒤떨어져 있으며, 구태의연한 목회방향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반감을 주고 있을 뿐이다. 또한 목회자들의 자질에 대한 문제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공동체의 형성이다. 새로운 사회물결에 따라 목회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복합적, 다변화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대처이다. 한국의 개신교는 목사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인 목회로 교회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다변화된 사회에서는 목사 한 사람이 개인주의적으로 수많은 교인들을 감당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아닌 전체교회를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 혼자의 목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목회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수많은 의견 속에 교회의 위치가 위험해 질 수 있다. 이럴 때 더욱 필요한 것이 목사의 지도력일 것이다. 즉 행정적으로 조직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목회에 대한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둘째로 서구적인 모양새를 답습하기 바빴던 한국교회에 한국의 문화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교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반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떠난 피난처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100여 년이 넘는 한국교회의 역사가운데 우
리는 자랑할 만큼 우리의 사회에 대해 크게 뛰어들지 못했다. 오히려 외면해 왔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기독교 안에 문화부재의 현상을 가져왔다.
이제는 사회에 대해 현실적으로 상황적으로 대처햐야 한다. 즉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지역사회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웃의 삶속에 파고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협력적인 목회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제는 같은 형제끼리 '아옹다옹'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후에도 줄곧 그러한 경쟁적인 관계를 지속한다면 한국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교파나 교단간의 케케묵은 교리시비나 신학적인 시비가 없어져야 한다. 개교회 위주로 한 선교 또한 많은 재정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능률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성장을 위한 목회중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한계에 욌다고 보여진다. 새로운 2000년대는 성숙을 위한 목회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 70년대, 80년대의 급속적인 개신교의 성장이 언제까지고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절반에 이르는 불교신자가 갑자기 개신교로 개종할 수 있겠는가? 무작정 '하고보자'라는 구닥다리의 목회는 지양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한 한국교회를 전문적, 기능적인 목회의 방향에서 성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표) 1 크리스챤리서치가 서울지역 목회자 2백명을 대상으로 목회자의 의식구조를 조사내용.
⊙ 각주, 참고자료
1.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저P.279
2.축복의 성서적 목회적이해,김중은(장신대교수,구약학)
3.한국교회를 분석한다, 김중기(연세대교수,기독교사회윤리학)
4.한국교회 목회자의 신앙양태와 의식구조, 이원규(감신대교수,종교사회학)
5.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저 P.323
6.93년 신앙생활협의회 <한국기독굥ㄴ의 신앙정신과 의식구조>의 설문조사
7.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P.174
본 글은 PC통신 하이텔 자료실에 올려진 글인데 본인의 요청에 의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싣습니다.-편집자
들꽃편지 제21호 2000.1.22
서 론
한국교회의 현상화는 어디에 와 있는가? 현대의 한국교회가 처해있는 선교적,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인 상황을 올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한국개신교가 시작된 것은 100년이 넘은 것은 것으로 세계사에서 그 역사가 짧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수나 교인수는 짧은 역사에 비해 대단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많은 신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많은 교단과 교파를 보고서 알 수 있으며, 또 많은 사이비종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목사님이나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자료들을 가지고 심층적으로 문제들을 파헤치려고 한다. 또한 많은 개신교에 대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면서 한국교회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통계적인 수치는 주관적인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현실성 있게 우리들이 처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라서 한국교회가 처한 문제들을 반성해보고 앞으로 2000년을 맞이하는 참 목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적고자 한다.
본 론
1.교회분열의 현상
한국교회의 분열의 책임이 우리 민족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도 있지만 세계역사를 다 찾아봐도 한국교회만큼이나 분열이 심한 교회는 역사상에 없다. 그 분열의 씨가 지금도 우리가 섬기는 교회 주변과 교회속에 있다. 분열되었기 때문에 성장했다고 하면서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의 입과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태도이다.
한국교회의 내부갈등
교회내의 집단갈등(진보 보수의 갈등 포함)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과 목화자와 평신도간의 갈등이 많은 점을 유의하여 상호간 상당한 노력과 이해가 요구된다. 특히 새신자가 등록한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는 기존교회의 무관심(56.4%)이 제일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미국 내에 「신뢰받는 직업순위」에 대하여 갤럽 종교조사 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53%만이 성직자가 정직하다고 답면하여 86년의 67%보다 14%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내 성직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85년 이후 계속적인 하향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년에는 60%, 90년에는 55%를 기록하므로 성직자의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이러한 미국의 문제가 한국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한국교회에서도 목사와 평신도간의 불화로 교회가 분열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서도 이미 볼 수 있다.
2.기복주의 신앙
우리가 복을 가르치고 복받기를 원하고 또 축복기도로서 복을 선포하고 하는 신학적 성서적으로 말하는 기독교의 축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사람들의 복받고 싶어하는 심성과 엉켜서 교회분열이 그랬듯이 이 기복신앙도 한국상황에서 더 가세가 되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기복적인 사고는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너무 진하게 왜곡된 기복적인 신앙과 교회풍속과 목회방식은 어디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교회 100년을 정리해 볼 때 기복주의 신앙이 어디까지성서적인가 하는 것을 비찬하고 지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장 그런 요소를 제거해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선도해서 신앙적으로 성숙시켜서 정리하고 바른 축복의 신앙과 신학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일단 기복주의적인 신앙의 지나친 표출은 한국교회 100년 사의 하나의 적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의 뇌리에 젖어온 복은 심리적, 육체적 건강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복에 대한 핵심으로 말할 수 있다. 서정범 교수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올 때 기독교를 믿으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고, 성경을 복음서라고 하였으며, 전도하는 것을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한국의 서민들은 복을 얻기 위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냥 기복적인 신앙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교회안에 잘못된 복에 대한 부분을 성서적인 것으로 옮길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복신학과 기복신앙의 차이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기복신앙은 종교학적으로 "소원성취(Wunscherfullung), 자기소원의 성취인 반면에 성경의 복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복은 내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신학부재의 목회풍토
신학부재의 목회풍토이다. 가치관과 신학이 지배하는 목회가 아니라 부차적인 것이 더 지배적인 목회풍토가 만연되어 있다. 세속주의, 물량주의라고 하는 것은 최근의 이야기이지만 목회전반의 풍토를 판단하는 가치관의 척도가 성서와 신학과 건전한 기독교 신앙이어야 하는데 그밖의 다른 요소들이 많이 지배하는 목회풍토가 한국의 목회풍토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신학부재의 목회풍토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해야 한다.
4.개교회의 중심주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주일 하루를 철저히 교회에 바치도록 강요한다. 그 숨은 이유는 다른 교회로 갈까하는 우려라고 볼 수 있다. 교회쟁탈전이란 말이 붙을 정도이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을 교회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실지로 계산에 의하면 교회의 생활을 개인의 삶에 있어 아무리 많이 잡아보아야 1/4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가정이며, 다음이 일터이며, 그 다음이 교회이다. 교회에서 받은 은혜는 가정과 일터에서 그것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을 위해서 오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교회의 테두리 안에 얽어매 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5.교단간의 대화부족
개교회가 비대해져서 소속교단과의 협력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교파분열의 원인에 대해서는 교회지도자들간의 이해관계라고 응답한 비율이 51.3%나 되고 있어서 심각한 문제로 나타난다. 신학적 노선 차이가 27.8%, 서로 다른 신앙유형이 13.3%이다. 그러니가 58%가 비종교적인 이유이다. 교파분열의 이유로서 목회자들이 압도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인간관계 때문이라는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내의 다른 교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모든 교파는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가 목회자가 37.6%, 신학대학생들은 65.2%이다. 나의 교파가 가장 우월하다가 목회자 53%, 신학대학생 26.8%이다. 나의 교파만이 참진리이다가 목회자가 .5%, 신학생이 5.8%이다. 대체로 보아 목회자들은 타종교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타교파에 대해서도 다소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자기가 속해 있는 교파만을 절대시하는 태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사회참여의 문제
사회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 어떤 교회는 소외 계층(장애인, 고아, 소년소녀 가장들, 재소자, 약물중독자. 장애자, 노년층, 극빈자 등)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나머지 그들의 영에 다한 구령의 열정도 상실되어 있다. 어쩌면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울 사랑과 능력이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이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실제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체와 정신이 건강할수록 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환경적 지식적 정신적으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여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질 때 그들은 실체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성전을 지을 때 교회당에 들어가는 입구(계단)부터 장애자들을 위한 배려를 하는 것이 좋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배려가 있어야 한다, 장애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우리 나라에 150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숨겨진 장애자를 포함하면 43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장애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지체장애(마비,관절운동장애,기형,면형,통증,절단), 시각장애, 청각언어장애(청각,언어,중복), 정신박약 등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애는 선천성(19.2%)이 아니라, 후천성(80%)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의의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노령화, 사건사고, 질병 등으로 인하여 후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교회 안에서도 외롭게 고난받는 장애인들에게 소외감을 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선교 전략을 수립하여 그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손과 발이 될 수 있도록 과감한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의 면화가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도 확장해야 하며, 아울러 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도 확충해야 한다. 장애인, 그들은 특별한 기대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도움을 바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상인처럼 평범하고도 공평하게 대우받으며 정상인과 같은 한 인격체로 사랑 받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가정과 일터, 특히 교회에서라도 소외받지 않도록 그들을 대해주는 사랑의 운동이 절실히 팔요하다.
7.목회자의 자질부족
1) 목회자의 관점 - 예장(고신)의 교단지인 기독교보가 서울지역 목회자 3백명과 지방교회 목회자 l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목회자가 지녀야 할 중요한 자질」에 대한 응답
l. 투철한 사명의식 62%
2, 사회부정비리 감시 20%
3. 풍부한 신학적 지식 7%
4. 신비적 능력 빛 은사 4%
5. 합리적 행정능력 4%
6. 기 타 - 3%
또한 표)1과 같이 한국교회의 문제점 가운데서도 목회자들이 시급히 여기는 부분이 목회자의 자질이 우선순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평신도가 바라본 목회자
그리고 평신도가 본 바람직한 교역자상은 다음과 같다.
평신도가 바라보는 목회자의 자질에서는 역시 신앙과 생활의 일치였다. 말로만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목회자가 먼저 실천하는 일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8.양적성장주의
한국교회의 성장발자취
한국교회성장 통계자료를 자세히 검토해 보면 1960년대에는 평균 l년에 10만 명씩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 1982년까지는 l년에 20만 명씩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가장 급속히 증가한 때는 1978년에서 1982년까지로 무려 이 기간에는 평균 l년에 l백만명씩 증가한 셈이다. 그러나 94년 6월 현재 기독교의 성장률은 한국교회 전체를 불 때 저조한 편에 속한다, 얼마전 한 소식에 의하면 기독교인 수가 4퍼센트 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는 경종이 되는 보고로 이전 수적인 증가보다 질적인 성장이 훨씬 더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치의 통계 중에 종교계의 수치는 정하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경우 이동하는 면이 많이 나타나 한 교인이 2개 이상의 교회에 등록한 채로 그 이름만 남아 있는 경유도 흔히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것은 선교사를 점점 많이 파송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회는 최초로 해외 토착민 선교사 3명을 중국 산동성에 파송한 이래 1979년까지 약 66년간 93명의 선교사밖에 파송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9년에 93명의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했던 것이 1992년에 와서는 2천5백76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교회부흥에 비하여 선교사 2천5백76명을 파송한다는 것은 l명의 선교사를 4천6백 명이 담당한다는 결론이므로 지금 자만의 때가 아니라, 아직도 미홉하며 주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선교사 파송과 지윈을 위하여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할 때이다.
초대교회는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인 성장이 병행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너무 양적인 성장으로만 치우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대로 올라가다간 어느 시기에 높이 성장한 수적인기등이 순식간에 무너지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히 수적인 성장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수적인 성장도 지속적으로 계속 되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여지가 없다. 여기서 지적되는 것은 질적인 성장이 뒷바침되지 않는 수적 성장의 위험성이다. 예수님은 일생, 3년 동안 12명을 제자로 훈련시키고 가셨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씀을 전하시고 치유의 사역을 행하셨지만 가장 핵심적이며 최선의 힘을 기울인 대상은 12명 뿐이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12명(맛디아 포함)은 남아서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을 다했다. 주님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봉양하던 사도 요한 외에 모두가 순교를 하기까지 충성을 다 바쳤다. 그 결과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확실한 사람, 한 명을 키우는 일이 그렇게도 귀중한 일임을 께닫게 해준다.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제자를 양육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내가 복음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젠 얼마나 않은 교인들을 모으느냐에 대한 관심보다 얼마나 많은 질적인 제자를 양육하느냐에 더 큰 관심올 쏟아야 할 시기이다. 여기서 제자란 말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슴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순교자적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주님이 그 날에 물으시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맡겨진 양들을 얼마나 잘 양육하여 제자를 삼았느냐?" 사람의 눈에 인기있는 사역자나 교인보다 사람이 몰라줘도 은밀하신 주님의 눈에 흡족하도록 신앙생활을 하며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결 론
현대 한국교회는 심각한 정체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줄곧 성장만 해오던 교회가 지금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모습으로 새로운 미래를 맞이한다는 것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사회에서 더 큰 퇴보를 하는 것이다. 사회는 항상 변하고 있다.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이 많다. 목회도 이러한 세계의 물결에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2000년을 맞이하여 사느냐 죽느냐의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목회에만 치중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많은 프로그램은 사회의 물결에 뒤떨어져 있으며, 구태의연한 목회방향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반감을 주고 있을 뿐이다. 또한 목회자들의 자질에 대한 문제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공동체의 형성이다. 새로운 사회물결에 따라 목회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복합적, 다변화 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대처이다. 한국의 개신교는 목사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인 목회로 교회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다변화된 사회에서는 목사 한 사람이 개인주의적으로 수많은 교인들을 감당할 수 없다. 한 사람이 아닌 전체교회를 보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 혼자의 목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목회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수많은 의견 속에 교회의 위치가 위험해 질 수 있다. 이럴 때 더욱 필요한 것이 목사의 지도력일 것이다. 즉 행정적으로 조직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목회에 대한 방향이 달라질 것이다.
둘째로 서구적인 모양새를 답습하기 바빴던 한국교회에 한국의 문화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교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반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세상을 떠난 피난처가 아니다.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100여 년이 넘는 한국교회의 역사가운데 우
리는 자랑할 만큼 우리의 사회에 대해 크게 뛰어들지 못했다. 오히려 외면해 왔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국기독교 안에 문화부재의 현상을 가져왔다.
이제는 사회에 대해 현실적으로 상황적으로 대처햐야 한다. 즉 지역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지역사회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웃의 삶속에 파고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협력적인 목회의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제는 같은 형제끼리 '아옹다옹'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후에도 줄곧 그러한 경쟁적인 관계를 지속한다면 한국교회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교파나 교단간의 케케묵은 교리시비나 신학적인 시비가 없어져야 한다. 개교회 위주로 한 선교 또한 많은 재정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능률적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성장을 위한 목회중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한계에 욌다고 보여진다. 새로운 2000년대는 성숙을 위한 목회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 70년대, 80년대의 급속적인 개신교의 성장이 언제까지고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의 절반에 이르는 불교신자가 갑자기 개신교로 개종할 수 있겠는가? 무작정 '하고보자'라는 구닥다리의 목회는 지양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한 한국교회를 전문적, 기능적인 목회의 방향에서 성숙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표) 1 크리스챤리서치가 서울지역 목회자 2백명을 대상으로 목회자의 의식구조를 조사내용.
⊙ 각주, 참고자료
1.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저P.279
2.축복의 성서적 목회적이해,김중은(장신대교수,구약학)
3.한국교회를 분석한다, 김중기(연세대교수,기독교사회윤리학)
4.한국교회 목회자의 신앙양태와 의식구조, 이원규(감신대교수,종교사회학)
5.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저 P.323
6.93년 신앙생활협의회 <한국기독굥ㄴ의 신앙정신과 의식구조>의 설문조사
7.세계기독교정보 홍일권 P.174
본 글은 PC통신 하이텔 자료실에 올려진 글인데 본인의 요청에 의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고 싣습니다.-편집자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