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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칼럼] 행복의 지름길

생명환경자연 윤구병............... 조회 수 4194 추천 수 0 2002.12.13 13: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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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잘 모르겠음.

행복의 지름길
윤구병

나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로 이태 째이다. 작년에는 대학 선생을 하면서 주말과 방학 때면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농사꾼도 좋은 교수도 되기 힘들었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했다. 대학 교수를 그만두기로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대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농사 일을 꺼려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되고 싶어하는 대학 교수를 그만 두고 되기 싫어하는 농사꾼이 되겠다 하니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족들도 말리고 주위에서도 말렸다. 농사 경험이라고는 아주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살면서 몸에 익힌 낫질 정도다. 그런데 이제 그 낫마저 손에서 놓아버린지가 마흔해가 훨씬 넘는다. 나이 쉰살이 넘어서 농사를 짓겠다하니 많은 사람들이 '저 사람 온전한 정신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음직하다.

농사일이 힘들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다. 물론 방학도 없다. 겨울철은 농한기여서 한가하리라고 여길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지난겨울에 시골에서 지내면서 거의 하루도 쉴 틈이 없었다. 땔 나무도 해야 하고 보리밭 고랑을 덮을 낙엽도 긁어모아야 하고 이런 저런 올해 농사 준비로 그야말로 눈코뜰 새가 없었다. 시골 생활을 모르는 도시내기 가운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좀 쉬지 그래요. 그리고 방학 때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기도 하고 손님도 맞고…. 그러면 조금 덜 고될텐데요."

그런 말을 들을 적마다 속으로는 참 한가한 생각을 하는구나 여기지만 그냥 이렇게 대답하고 만다.
"글쎄요. 풀도 토요일 일요일에는 자라지 않는다면 쉴 수 있겠지요. 그리고 해도 날을 정해서 비추고 비도 우리가 바라는 때 내려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살갗이 조금 검은 쪽이기는 하지만 대학 선생으로 지낼 때는 얼굴이며 손발이 까마귀 사촌으로 여겨질 만큼 까맣지는 않았다. 얼굴도 몸도 벙벙했다. 그런데 농사일에만 매달린지 일년이 가까워 오는 요즈음 내 모습을 보면 아주 많이 바뀌었다.

언젠가 한번 서울에 올라갔더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경찰관이 붙들어서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오랜만에 나들이한다고 제법 갖추어 입고 길을 떠났는데 몸과 옷이 따로 놀아서 대뜸 수상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옛날에는 따지고 삿대질을 했는데, 마음도 그새 바뀌었는지 황소처럼 눈만 껌벅이면서 고분고분 따라가 묻는 대로 대답하고 크게 기분이 언잖아 하는 기색도 없이 나왔다.
이쯤에서 누군가 "그래도 후회가 없어요?"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겠지. 일주일에 아홉 시간만 강의하는 대신에 하루에 열두 시간, 어떤 때는 열 여섯 시간을 일하고, 나이 쉰이 넘어서 팔에 알통이 생길만큼 힘드는 노동을 거의 날마다 하는데도 농사꾼이 된 게 더 좋다고 하면 의아하게 여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철학교수였다. '아하, 그러면 그렇지. 보통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했겠어? 괴짜니까 그런 생각을 했겠지' 하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괴짜여서 이런 선택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철학과 내가 선택한 직업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니다. 차리리 이렇게 물으면 어떨까?
"철학을 가르치는 일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더 행복해요?"
그렇다. 적어도 내게는 이 길이 행복에 이르는 더 가까운 길로 여겨진다.

여러분 눈앞에 높은 산이 있고, 그 산꼭대기에 행복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사실 이 말은 엉터리, 없는 말이다. 순간순간 그날그날 행복이 이어져야 하고 그것이 쌓여서 행복한 삶을 이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행복은 오르는 산자락 구비구비에서 자라는 나무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 속에 있지 않고 고생고생해가면서 험한 산길을 허덕이며 오른 뒤에야 꼭대기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치자.

행복이 저 산꼭대기에 있다고 하면 누구나 지름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름길로 산꼭대기에 올라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 속에 그려 있는 산에는 지름길이 있고, 그 지름길을 잣대로 그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현실의 산에는 그런 지름길이 없다. 먼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다 같은 신체조건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나이도 다르고 힘의 세기도 다르고 좋아하는 길도 다르다. 넓은 계곡물을 훌쩍 뛰어넘을 힘이 있는 젊은이에게는 그렇게 해서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것이 지름길이지만 다리가 불편하거나 힘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에게는 계곡물을 뛰어넘는 것이 지름길이 되지 못한다. 제 힘에 맞는 길을 찾아 조금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지름길로 여겨 숲에 들어섰다가 가시덤불을 만나 못 가는 수도 있고, 무리를 해서 가파른 바위벼랑을 오르다가 떨어져 다리를 다치는 수도 있다.

이렇게 행복이 있는 산꼭대기에 이르는 지름길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까 농사짓는 일이 행복에 이르는 에움길이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지름길이라는 생각은 모두에게 통하는 진리는 아니다.
꽤 여러해 전에 중학교에 다니던 어떤 여학생이 이런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 일이 있다.
'난 일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난 친구를 좋아할 수 있고 헤어짐에 울 수도 있는 사람인데…. 나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항상 나에게 친구와 사귀지 말라는 슬픈 말만 하시는 분…. 공부만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해서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그것이 보람있고 행복한 거잖아?….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이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 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글로 미루어보면 이 학생은 학과 성적이 무척 좋았던 듯하다. 그러나 일등만이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일등을 놓치지 않으려면 친구도 버리고, 꿈도 버리고 기쁨도 슬픔도 한켠에 접어놓고 밤낮 없이 책상머리에 매달려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에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어른들의 우격다짐을 견디다 못해 그 고운 꿈 한 자락 꽃잎처럼 펼쳐보지도 못한 채 시들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몹시 부끄러웠다. 나도 어린 시절의 그 고운 꿈들을 짓밟는 어른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성적에 따라 학생들의 가치를 판단하고, 시험볼 때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안타까와 두리번거리는 학생에게 호통을 치고, 학과 점수가 좋아야 일류회사에 들어가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꼬여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끄럽지 않은 선생이 될 자격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곰곰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내 삶을 떳떳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부끄러운 선생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부끄럽지 않은 학생이 되기로 했다. 농사일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농사일이라는 게 심고 기르고 가꾸는 일이어서 다른 생명체를 살리면서 나도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농사일에는 거의 까막눈이다. 농사를 짓는 일에는 그야말로 유치원 학생이나 다름없다.
나는 대학 선생에서 유치원 학생으로 떨어져도(?) 되겠느냐고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내 안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농사꾼이 되었다.

여기서는 모두 새로 배워야 한다. 내 이웃에 살면서 농사짓는 어른들은 젊으나 늙으나 모두 내 선생님들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들은 내가 공부를 못한다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리고 일부러 어려운 시험문제를 내서 골탕을 먹이지도 않는다. 내가 몰라서 쩔쩔매면 자기 일 팽개치고 와서 도와준다. 나는 여기에 살면서 이제까지 한 문제에 정답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해온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몸으로 깨닫고 있다. 이를테면 지난봄에 콩을 심으려는데 언제 심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동네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
물으면서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몇 월 며칠에 심는다는 대답을 해주실 줄로 믿고 달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할머니 대답이 뜻밖이었다.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이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책을 보고 날짜를 따져서 씨앗을 뿌리겠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가! 지역마다 토양이 다르고 기후도 온도도 다르고 내리는 비도 바람길도 다른데, 그래서 지역에 따라 씨뿌리는 철도 거두어들이는 철도 다를 수밖에 없는데, 마치 몇 월 며칠이라고 못을 박아야 정답인 것 같고, 다른 풀이나 나무가 자라는 시기를 기준으로 대답하면 틀린 것으로 여겨온 내 교과서식 지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적어도 내가 사는 곳에서는 그 할머니 대답 이상으로 '과학적'인 해답이 없었다.

우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유난히 많다. 집 안에도 울 밖에도 온통 감나무 천지다. 늘 보는 감나무의 철맞이를 잣대삼아 콩심고 팥심는 때를 가늠하는 시골 어른들의 이 지혜는 오랜 세월을 두고 해온 세심한 관찰과 경험이 쌓여 생겨난 것이다. 씨뿌리는 시기를 몇월 며칠 식으로 못박으려면 온나라의 땅과 기후와 온도와 강우량과 바람길, 그리고 강과 들과 산을 모두 획일화해야 한다.

그리고 생명의 세계를 기계의 세계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하느님도 할 수 없다. 그뿐더러 그렇게 해 놓은 결과는 너무나 끔찍한 것이다.어느 한가지 조건만 달라지더라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않은가.

생명과학의 세계는 물질과학의 세계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농사를 지어보면서부터였다. 공장에서야 똑같은 재료와 틀을 써서 똑같은 물건을 산더미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 물건이 팔리느냐 팔리지 않느냐에 따라 덜 만들어낼 수도 있고 더 만들어낼 수도 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공장문을 닫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현재 우리 학교 제도도 공장과 비슷하다. 저마다 다른 학생들의 소질과 소망과 능력과 취향을 무시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학생들과 미래를 꽃피울 소중한 씨앗들이고, 한 콩깍지에서 나온 콩이라도 자라면서 달라지는데, 어쩌자고 꼭 같은 나사못으로 깎아내려고만 들까. 그리고 나도 무엇에 홀려 그런 일에 앞장서 왔을까.

농사일을 배우면서 적어도 나는 쓸모 없는 지식을 배우지 않는다. 벼락치기로 밤샘을 하여 달달 외웠다가 시험이 끝나면 온데간데없이 머리에서 사라지고 마는 그런 공부는 하지 않는다. 내가 배워 익히는 것은 모두 내 삶에 소중한 것들뿐이다.

논과 밭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들이 모두 잡초는 아니라는 것도 여기 와서 깨우쳤다. 농약과 제초제와 화학비료를 써서 한가지 농작물만 생산해내는 농사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도 직접 농사를 지어보면서 알아챘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른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
"한평생 한눈 팔지 않고 농사를 지어오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아직도 농사일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아. 해마다 농사일 새로 배우는 느낌이야."
농사일에는 박사이신 어른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뒤늦게 유치원 문에 들어선 나 같은 풋내기야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뒤늦게야 철학공부는 교과서를 보고, 책을 보고하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스승인 자연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생각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과 아픔의 문까지도 활짝 열고 겸손하게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지혜가 인도하는 행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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