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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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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긴장감
교회의 교회다움은 그 교회의 형식과 제도가 어떠하냐기보다는 그 교회가 늘 선포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사도들이 전하여준 그 복음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지를 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교회 는 잠시라도 이런 확인 작업을 소홀히 하게 되면 결국 다른 복음이 퍼져서 그 교회는 주님 의 교회가 아닌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서 세워지는 단체가 되고 말 것이다(갈 1:6).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교회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현 재의 교회 구조에서 생각할 때 그 교회의 목회자가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됨은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에게 일차 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씀을 가르친다는 말의 의미는 성경에 관한 지 식을 전달하는 것이나 믿는 가운데서 깨달은 것을 전수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복음은 이런 지식에 의해서 전수되거나 계승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교회의 긴장성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으로 교회가 계승되고 지속된다면 열심히 가르치면 될 텐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 도와 사도들을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 주고, 사도들과 그 후의 복음 전파자들을 하나의 믿음 으로 연결시켜 주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교회는 늘 긴장 속에서 유지 계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가 정말 사도들이 세운 복음의 기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도들 과 동일한 성령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가르치는 가르침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지 다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교회에 없다면 그 교 회가 이익단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유지 되려면 가르치는 자도 중요하지만 그 가르침이 과연 사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 가르침인지 를 식별할 수 있는 동일한 성령을 받은 자들이 아니고는 알 수 없기에 결국 교회는 가르치 는 자와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하나의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 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목회자 개인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유지되고 계승된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역사하셔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가르치는 자나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모두 동일하게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모임이 교회가 되려면 항상 그 교회에 소속된 자들이 모두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의 믿음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 일은 성령의 인도하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사도들이 세운 복음이 오늘이라는 날에 다시금 정리되어 선포 되어야 가능하다. 즉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롬 10:14).
이렇게 하여 주님을 드러내는 교회가 세워진다면 그 교회가 할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일일 것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니까 말이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교회는 여러 은사가 필요하 며 그 여러 은사가 합력하여야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교회의 할 일은 첫째 복음의 기초를 사수하기 위하여 그 복음을 정리하여 선 포하는 일(설교)과 둘째 그렇게 선포된 복음을 다시 정리하여 널리 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한 복음의 기초는 구약의 숫한 선지자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의해서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 그렇게 확증된 복음은 다시 성령에 사로잡힌 사도들의 희생에 의해서 계시로 확증되었으며 계시로 확증된 그 복 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보내주시는 성령에 이끌린 자들에 의해 오늘날에 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복음의 계시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증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희생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쉽다. 그것은 그 복음이 얼마나 귀 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은 있어도 좋고 없어 도 좋고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것이 아니다. 복음이 없으면 소망이 없고 있어도 그것이 복음인지를 모르면 있으나마나 하다.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복음을 알게 된 자라면 그 복음이야말로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 유익하다고 한 그 모든 것 을 다 해로 여길 만큼 복음만을 사수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복음만을 드러내고 증거하 기 위해서, 그 자신도 복음의 계시를 위해서 희생된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렇게 합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기에 그렇다.
정말 복음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복음보다 더 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거해야만이 복 음이 드러날 것이 아닌가? 이렇게 희생당하면서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 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심어준 뜻이 아닐까?
그러기에 가만히 앉아서 복음이 중하다고 떠드 는 것은 단순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지금도 주님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이끌리는 긴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긴장 속에서 날로 날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사 는 삶이며 그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모두가 각자 자신의 가진 것보다 주님의 복음이 귀한 것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게 성령이 이끌고 있는 것 이다. 시간으로 몸으로 돈으로 머리로 각자 자신이 받은 바 은혜를 내놓아서 그것으로 복음 을 증거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교회가 될 때 자연스럽게 비로소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누가 돈을 많이 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몸과 마음 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 돈보다 더 중한 복음이 숫한 증거자들에 의 해서 세상에 선포되었으며 지금도 성령에 이끌려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선포되고 있는데 그 렇게 선포되는 복음에 대해서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친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마움을 확실하게 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 것이 더 중하기에 주님 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령은 오늘도 주님의 성령에 동참하 게 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 보내고 있으며 그렇게 선포되는 말씀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오늘도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 들의 교회는 과연 어떠한 교회인지를 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그 교회의 형식과 제도가 어떠하냐기보다는 그 교회가 늘 선포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사도들이 전하여준 그 복음과 일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지를 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교회 는 잠시라도 이런 확인 작업을 소홀히 하게 되면 결국 다른 복음이 퍼져서 그 교회는 주님 의 교회가 아닌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서 세워지는 단체가 되고 말 것이다(갈 1:6).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것은 교회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현 재의 교회 구조에서 생각할 때 그 교회의 목회자가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달려 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됨은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에게 일차 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씀을 가르친다는 말의 의미는 성경에 관한 지 식을 전달하는 것이나 믿는 가운데서 깨달은 것을 전수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복음은 이런 지식에 의해서 전수되거나 계승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교회의 긴장성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식으로 교회가 계승되고 지속된다면 열심히 가르치면 될 텐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 도와 사도들을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 주고, 사도들과 그 후의 복음 전파자들을 하나의 믿음 으로 연결시켜 주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교회는 늘 긴장 속에서 유지 계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가 정말 사도들이 세운 복음의 기초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도들 과 동일한 성령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가르치는 가르침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지 다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교회에 없다면 그 교 회가 이익단체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유지 되려면 가르치는 자도 중요하지만 그 가르침이 과연 사도들의 가르침과 동일한 가르침인지 를 식별할 수 있는 동일한 성령을 받은 자들이 아니고는 알 수 없기에 결국 교회는 가르치 는 자와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하나의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 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목회자 개인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소속된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유지되고 계승된다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교회는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역사하셔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가르치는 자나 그 가르침을 듣는 자가 모두 동일하게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모임이 교회가 되려면 항상 그 교회에 소속된 자들이 모두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의 믿음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 일은 성령의 인도하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사도들이 세운 복음이 오늘이라는 날에 다시금 정리되어 선포 되어야 가능하다. 즉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롬 10:14).
이렇게 하여 주님을 드러내는 교회가 세워진다면 그 교회가 할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하신 놀라운 소식을 전하는 일일 것이다.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바로 이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니까 말이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교회는 여러 은사가 필요하 며 그 여러 은사가 합력하여야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교회의 할 일은 첫째 복음의 기초를 사수하기 위하여 그 복음을 정리하여 선 포하는 일(설교)과 둘째 그렇게 선포된 복음을 다시 정리하여 널리 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한 복음의 기초는 구약의 숫한 선지자들의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의해서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 그렇게 확증된 복음은 다시 성령에 사로잡힌 사도들의 희생에 의해서 계시로 확증되었으며 계시로 확증된 그 복 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보내주시는 성령에 이끌린 자들에 의해 오늘날에 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이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복음의 계시는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증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희생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쉽다. 그것은 그 복음이 얼마나 귀 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은 있어도 좋고 없어 도 좋고 알아도 좋고 몰라도 좋은 것이 아니다. 복음이 없으면 소망이 없고 있어도 그것이 복음인지를 모르면 있으나마나 하다.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복음을 알게 된 자라면 그 복음이야말로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귀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 유익하다고 한 그 모든 것 을 다 해로 여길 만큼 복음만을 사수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복음만을 드러내고 증거하 기 위해서, 그 자신도 복음의 계시를 위해서 희생된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그렇게 합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기에 그렇다.
정말 복음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복음보다 더 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거해야만이 복 음이 드러날 것이 아닌가? 이렇게 희생당하면서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 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심어준 뜻이 아닐까?
그러기에 가만히 앉아서 복음이 중하다고 떠드 는 것은 단순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지금도 주님만을 드러내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이끌리는 긴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긴장 속에서 날로 날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사 는 삶이며 그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교회는 모두가 각자 자신의 가진 것보다 주님의 복음이 귀한 것을 증거하는 자리가 되게 성령이 이끌고 있는 것 이다. 시간으로 몸으로 돈으로 머리로 각자 자신이 받은 바 은혜를 내놓아서 그것으로 복음 을 증거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교회가 될 때 자연스럽게 비로소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누가 돈을 많이 벌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몸과 마음 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 그 돈보다 더 중한 복음이 숫한 증거자들에 의 해서 세상에 선포되었으며 지금도 성령에 이끌려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선포되고 있는데 그 렇게 선포되는 복음에 대해서 고마움을 모르고 지나친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마움을 확실하게 보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 것이 더 중하기에 주님 의 십자가에 동참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령은 오늘도 주님의 성령에 동참하 게 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 보내고 있으며 그렇게 선포되는 말씀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오늘도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 들의 교회는 과연 어떠한 교회인지를 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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