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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들꽃 세상엔 뽑냄이 없다

목회독서교육 김지형............... 조회 수 3256 추천 수 0 2002.12.26 19:5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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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들꽃 세상엔 뽐냄이 없다

              김 지 형 (출판국장/고려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

김태정, 집현전, 1997 ,『들꽃 세상엔 뽑냄이 없다』

얼마 전에 하루 짬을 내어 고향엘 다녀왔다. 문득 지금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한 그리운 이가 생각나서 그의 무덤이라도 보고 싶어서였다.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이라는 것이 비록 슬픔이 거의 전부였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서울을 떠나며 차창 밖으로 가을 들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고향 뒷산에 누워있는 그를 보고 내려오는 길, 어릴 적 내가 소를 몰고 오르내리던 길목 여기저기엔 갖은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무심코 그저 스쳐 지났을 법한 그 꽃들을 이번에는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고향이라는 장소도, 가을이라는 시간도, 혹은 그에 대한 기억도 아닌 지난 여름 환공연에서 갔었던 민물고기 생태기행 때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 때 시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기들을 잡아 올려서 자세히 보았을 때, 어린 시절 나에게 익숙했던 그 고기들이 갖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렇게 세련되면서도 상쾌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늘 익숙하다고 느끼며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민물고기들에게서 발견한 아름다움 덕택에 내가 쉽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 속에 엄청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는 기막힌 사실에 너무나 흐뭇한 흥분을 느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의 기억이 나로 하여금 길가에 늘어져 있는 들꽃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 근래 들꽃이란 것과 관련하여 또 들은 것이 있었으니, 모 환경운동 단체에서 김태정이라는 사람의 야생화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큰 소란을 피웠다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내친 김에 고향 길에서 내 눈에 편안한 가을빛으로 느껴지던 꽃의 이름도 알고싶어서 서점에 가서 김태정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검색을 해보니 적지않은 책들이 화면에 올라왔다. 그 중에 내가 뽑아 들은 것은 그의 사진만이 아니라 생각이 들어 있을법한 제목의 책 {들꽃 세상엔 뽐냄이 없다} 다. 이 책을 사서 나오는데, 계산대 옆에 섰던 아저씨가, "그럼, 들꽃들이야 다 제 생긴대로 그냥 필뿐이지"하고 한마디 거드는 말을 하니, 벌써 책을 손에 든 기쁨이 있었다.


이 책을 쓴 김태정


꽃에 대한 이야기가 꽃보다 진실 될 수 없고, 책보다 책을 쓴 이가 더 재미있는 법이니 먼저 책을 쓴 이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나서 나이와 고향과 출신학교를 물어보면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한대나 어쩐대나? 김태정은 1942년 충남 부여 근방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그는 60도 안된 청년(?)이고 충청도 양반인 셈이다. 그리고 코흘리개를 면치 못했을 때 서울에 올라와 주경야독의 생활을 했으며 1985년 미국 LA UNION 대학에서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나와 있다. 그의 현재 직업은 서울대학교 수목원 연구원이고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의 외래교수라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야생화 연구소의 인터넷 홈페이지(www.wildflower.co.kr)에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아마도 그냥 한국야생화 연구소의 소장이라는 직명이 그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역시 한국야생화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그를 잠깐 살펴보면, "1970년도부터 우리 땅 곳곳의 산과 들 그리고 각 해안지방이나 섬지방까지 계속해서 탐사하고 계절에 따라 꽃이 피는 식물을 위주로 하여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꽃을 중심으로 식물의 개화기를 정확히 파악하여 학술적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식물의 정확한 분포지, 또한 식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집중적으로 분석, 실험하여 농가의 소득 작물이 될 수 있는 종(種)을 발굴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또한 김태정은 "자라는 어린 세대들에게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국민이 되도록 이끌고, 식물의 씨를 뿌려 자라서 꽃이 피고 가을에 풍요로운 열매가 열려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며, 이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가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주변의 식물과 가까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야생화를 연구하며 현재 야생화에 대한 41권의 책을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도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진술들을 하고 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우리 땅 가지 않은 곳 없이 25년 동안 우리 들꽃을 찾아 다녔다." "영악한 사람살이 틈에서 소외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25년 간 전국 산하를 뒤져온 덕분으로 내 머릿속엔 꽃지도가 들어 앉았다." "나는 오늘도 카메라며 필름을 챙겨 배낭을 메고 들꽃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한다. 들꽃만큼이나." "아마도 나는 전생에 어떤 들꽃이었을 것 같다." 나는 그의 이런 진술들을 읽으면서 진정 그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객체에 대해서 그렇게 일치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으리라. 그러니 전생의 인연을 운운할 정도로 일치감을 느끼는 이가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의 머리 속에 꽃지도가 들어있다는 말도 참으로 부럽다. 나름대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확고한 지식과 통찰, 그것이 지도가 아니겠는가? 나도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저렇게 "지도"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야생화에 대해서 품고 있는 애정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한 장면이 이 책에 있는데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다. 그의 작은 어머니의 상례 때문에 고향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발인을 끝내고 상여는 집 뒤 둑길을 한 바퀴 돌아갔다. 곡을 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땅 밑만 살폈다. 그렇게 눈으론 땅을 바라보고 입으로만 곡을 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예전에 백달개비를 발견했던 곳에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그 백달개비가 어여쁜 자태로 웃고 있지 않은가? 정말 머리가 띵해졌는데... 심장이 쿵탕쿵탕 어지럽게 뛰었는데 너무 흥분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나 감격했던지 손끝이 지릿지릿, 감전된 듯하였고 눈도 가물가물 너무 기뻐 미칠 것만 같았다. 카메라가 내 손에 없다는 것이 그 순간 저주스럽고 내 불찰에 발등을 찍고만 싶었다. 나는 작은어머니의 타계보다 카메라를 놓고 가 귀한 꽃 잃은 것이 정말 가슴 쓰렸고 아팠다. …만약 어느 곳에서건 백달개비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풀 앞에 엎드려 수천 번 절이라도 하겠다." 그가 사용한 형용사를 보라. "쿵탕쿵탕," "지릿지릿," "가물가물". 거의 사춘기의 소년소녀들이 뜻하지 않게 마주친 짝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날 저녁 일기를 쓰는 듯한 분위기이다. 부러운지고. 진정 부러운지고.

이 책에는 그가 겪었던 가난과 외로움을 보여주는 글들도 여기저기 조각되어 흩어져 있다. 카메라를 전당포에 맡긴 이야기며, 돈이 없어서 걸어 다닌 이야기, 빛독촉 이야기 등이다. 하기사 그가 돈안되는 야생화를 쫓아다닐 때, 그는 물론이고 그의 식구들이 겪은 어려움은 상상할만하다.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항상 남들이 관심도 안 기울이고, 생각도 없는 일을 하다보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까지 함께 고생하는 일이야 뻔한 일이다. 어쨌든, 지금쯤은 그의 식구들도 그처럼 그의 삶을 사랑하고 그의 삶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주제넘은 바램을 가져 본다.

어쨌든 그가 야생화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고 평생토록 인연을 맺게 된 내력은 이러하다. 17살 때 영양실조에다 간질환을 앓아 3년 동안 사경을 헤매다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 고향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준 나무열매를 먹고서 완쾌하게 된다. 그 이후로 모든 식물에 대해 위대함과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되었고, 군대에 갔다온 후, 그 신비의 열매를 찾고 싶은 마음에 지난 70년대(그의 30대)부터 그 신비의 열매를 찾고 싶은 마음에 산과 들로 나서게 되었고 그러다가 결국 그 일이 직업이 되고 말았단다. 결국 야생화와 그의 인연은 그의 목숨을 매개로 하여 맺어진 셈이 되는 것이다. 그가 쓴 이 책에는 야생화에 대한 설명과 정보, 야생화 탐사 과정에서 겪은 일화나 사건들이 주된 풍경을 이루며, 그 사이 사이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 사람살이에 대한 생각들 등이 끼워져 있다.


들꽃, 들꽃 기행 이야기


역시 일단은 꽃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이 이 책과 책을 쓴 이에 대한 도리이리라. 이 책의 첫머리에 "꽃 하나에 이름, 꽃 하나에 사랑"이라는 제목 아래 나와 있는 이야기는 꽃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는 다른 측면에서도 요즘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하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꽂의 교접," "꽃의 성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세기말의 요즘, 장안의 화두(話頭)는 성(性)이라고 하던가? 그는 "꽃은 식물의 성기(性器), 아름다운 생식기이다. 그 생식기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치장한 뒤 온 힘을 다해 성교를 한다. 꽃의 교접을 지켜보노라면 제 있는 힘을 다 뽑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때문에 그 모습은 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꽃의 성교는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하다"고 하면서 이어서 "언제나 흥미로운 꽃의 성교, 교접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현호색 을 접사렌즈로 들여다보면 오묘하게도 여자를 닮았다. 깊은 곳에 꿀주머니가 있는데 꽃술 아래 부화관이 자리한다. 개미 등이 꿀에 취해 들어가 건드리면 부화관이 오므려지므로 사로잡힌 개미가 발버둥을 치며 요동치는 사이 흩뿌려지는 화분으로 교배를 한다." "쌀쌀해진 저녁이나 아침 날씨에 제 집 가기 먼 나그네 벌을 재워 주는 꽃이 용담이다. 말하자면 한뎃잠 자야 하는 벌들의 야외 숙박소인 셈인데 꿀을 감춘 부화관에 벌이 들어가면 문을 닫는다. 좀체 열어 주지 않는데, 안에서 죽기 살기로 요동치는 벌의 움직임을 이용, 교접을 한다. 산에서는 용담이 제일 늦게까지 피는 꽃이다." "개불알꽃은 복주머니꽃, 요강꽃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는 제 생김새에서 비롯되었다. 이 꽃은 이름처럼 남자의 성기를 닮았다." "채송화, 해가 돋으면 꽃잎을 벌리는데 정오쯤 관찰해 보면 가관이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건만 꽃술들은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암술을 끌어다 비벼댄다." 이 정도면 서갑숙의 책 정도는 아니더라도 좀 팔릴것도 같은데....... 아닌가? 내가 이 번에 구해본 책도 1995년에 찍어낸 초판임은 어쩐 일?

그가 홀로 혹은 더불어 떠난 들꽃 탐사에서 발견하는 들꽃들에 대해서 그가 내뱉는 언어를 한 번 보자. "붉은 색을 띤 햇살이 눈부셨다. 좋은 일은 겹친다던가. 그 햇살 아래 금낭화(며느리주머니)가 피어 있지 않은가? 그것도 길다란 꽃대에 조랑조랑 꽃을 달고 아침 이슬을 함빡 뒤집어 쓴 채 말이다. 얼마나 탐스러운 모습이더냐?" "아무리 보아도 희한하다." "금강초롱이라도 오대산의 것과 설악의 것은 분명히 달랐다. 아니 다른 이의 눈에는 같아 보였을지 몰라도 내 눈에는 자태부터 빛깔까지 완전히 다른 놈이었다." 그가 자신의 전생이었다고까지 이야기하는 들꽃들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전하기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똑같이 느끼기는 더 어려운 일이리라. 그러나 우리도 늘상 다니고 있는 길거리에 피어 있을지도 모를 들꽃, 혹은 그냥 무심히 오랫동안 거기 있었을 지도 모르는 나무들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주는 연습을 자주 한다면, 어느날 "희안하다"라는 탄성과 함께 똑같은 꽃이라도 "분명히 다름"을 보고 느낄 줄 아는 심미안을 갖게 될 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풍경은 얼마나 새롭게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인가? 진정 아름다운 일이로고.

그의 들꽃 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돌아오는 계절에는 들꽃을 찾아 한 번쯤 나서보고픈 유혹도 느낀다. 환공연에서 생태기행을 기획해보시면 어떨지? 저자는 들꽃 기행 장소에 대해서 이렇게 조언한다. "갈 수만 있다면 꼭 평창을 둘러 보라.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자연의 풍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들짐승, 들사람, 그리고 들귀신 이야기

그가 들꽃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쏘다니면서 만난 것은 꽃만이 아니었다. 들에서 산에서 만난 짐승이야기며 들사람(도둑, 강도?) 이야기며 심지어 귀신 이야기는 좀 뒷길로 새는 듯한 이야기이지만 재미는 훨씬 더하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말이다.

그가 소백산에서 만난 늑대 이야기와 동구릉에서 만난 담비 이야기는 남자들이 흔히 꺼내는 군대 이야기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파란 빛을 내는 두 개의 눈동자만 번쩍이고 있었다. 꼭 조그만 플래시 같은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죽음은 어차피 각오한 것이 아니더냐. 두 눈의 광채가 몹시 기분 나빴다. '옳거니! 이놈이 바로 늑대로구나!' 온 몸이 오싹하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다리는 더욱 떨리고 배고프고 목마른 것은 어느새 다 없어졌다. 이게 아니더라도 죽을 지경인데 하필 이런 곳에서 늑대를 만나다니...."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나무껍질로 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거푸 내리쳤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얼굴을 돌려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무서운 나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담비' 그것이 바로 나를 후려쳤던 놈의 본명이었다. 이 담비는 호랑이를 잡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겁도 없이 그 사나운 짐승을 쫓아다녔으니 정말 재수가 좋았기에 무사했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살아가노라면 무식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정도는 무용담 수준이고 더운 여름날에 납량특집용으로 읽을만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가평 근처에서 겪은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기로 하자. "사실 두 마리의 뱀을 죽인 뒤라서 죽이고 싶진 않았으나 어쩌랴,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을. '휙!' 그러나 긴장한 탓인지 맞질 않았다. 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빨리 나무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나에게 덤빌 기세였다. … 그러나 이내 나는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사람이었다. 깊은 산 속 저쪽에서 웬 사람이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일까?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몽둥이를 집어들고 썩은 밀짚모자에 거의 헤진 도포 비슷한 차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상한 예감에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이 시키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앞길은 수십 길 낭떠러지였다. … 뒤뜰을 돌아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 나는 다시 기겁을 했다. 수백 마리의 뱀이 우글거리는 뱀통이 방문 앞에 있었고 전깃불에 비친 뱀통은 더욱 괴기스럽고 오싹했다. …"그가 오대산에서 처녀귀신을 만난 이야기는 더 분위기가 있다. "북쪽 능선쪽에서 눈, 비에 온통 젖은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이곳으로 오는 게 보였다. 며칠 동안 등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 눈을 의심했으나 아무리 보아도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긴 머리가 비에 젖어서인지 이상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오는 저녁 무렵, 사람이 전혀 올 리 없는 깊은 산속에, 그것도 으슥한 성황당 모퉁이 앞에서 두 여자를 본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눈은 이제 비처럼 되어 계속 퍼부었다. 혹시 처녀귀신이 아닐까?

그런데 결국 그는 가평에서는 그가 찾고 있던 방울새난초를 발견하고 여유있는 마음으로 마타리꽃, 수리취, 구절초, 개미취, 잔대, 타래난, 뚜깔, 패랭이꽃을 찍었으며 오대산에서는 그 처녀귀신 덕택에 귀한 금강초롱을 발견했대나, 어쩐대나? 그것 참. 들꽃을 찾아 나선 길에서 만나는 것도 많구만. 예기치 않은 만남이 더 재미있고 계획되지 않았거나, 원하지 않는 만남이 때론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사람살이에 대한 생각


사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또 무엇을 보고 겪든, 결국 사람이 도달하는 것은 사람살이에 대한 생각들이다. 아름다운 꽃 앞에서도 결국 떠올리게 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름다웠던 사람이나 그에 대한 기억이 아니던가? 그의 꽃에 대한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담겨져 있는 사람살이에 대한 생각을 읽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그는 들꽃기행에서 들꽃이 아니라 정력제를 찾는 사람들에게 "인체의 건강은 바로 아름다운 마음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가 달개비를 이야기하면서 끼워넣은 다음과 같은 구절은 나를 한 20년 전의 수업시간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다. "달개비는 그 중 심해서 갈아엎어도 또 나오고, 뽑아도 또 나오는 영악하면서도 질긴 풀이다. 악착같은 피어남에서 나는 매번 배운다. 새겨 보면 우리 인간사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생존 방식이기에 식물도, 사람도 생명 가진 것들에 대한 귀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언제나 제자리 지키는 나무보다 한해살이로 생명의 오묘한 삶이 계절마다 내게 신선감을 주기 때문이다." 언제나 제자리 지키는 나무와 한해살이 꽃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나의 대학교 2학년 봄에 문학개론수업 시간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소나무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이야기해보라는 질문을 하신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온 대답이란 것은 소위 "정답"이라는 것들이었다. "군자스러움, 변함없음, 지조, 절개, …" 등등이었다. 그 때 선생님께선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흔히 상록수의 꿋꿋함과 변함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철따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어여쁘게 피어나기도 하고, 싱싱하게 푸르기도 하고, 또 붉게 단풍들기도 하며, 겨울엔 맨몸으로 세상을 맞는 활엽수란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오히려 더 중요한 지 모른다." 그 때 그 말씀은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내가 단풍의 아름다움을, 또 신록의 신선함을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머리 속에 들어와 있던 상록수의 이미지는 그것만이 진짜이고 본받을만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나에게 불어넣고 있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책을 읽노라면 가끔씩은 책에 나와 있는 한 단어, 구절들이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기억, 혹은 상상력과 어울려 날아오르는 것을 경험할 때가 누구나 있지 않는가?

남들이 가는 소백산행 관광 버스에 공짜라고 해서 같이 갔다가 홀로 쳐저 고생하다가 어둠 속에서 희방사의 하수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던 이야기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같이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가 원효가 발길을 돌린 이야기를 연상케도 한다.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같이 유학길에 올랐는데 하룻저녁에 갈증과 어둠 속에서 원효가 물을 마셨는데 그것이 아침에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이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유학을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하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은 당시의 당항성 근처, 지금의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근처일 것이라고 하는데, 김태정은 반도의 반대편 소백산 아래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는 희방사에서 겪은 일에 깨달음의 이야기를 덧붙이지는 않는다. 깨달음은 읽는 이의 몫이든가?


뱀다리?


아마도 세상에서 들꽃에 대한 관심이 적잖이 높은 모양이다. 그 스스로도 "내가 야생화를 연재, 또는 지면에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이고 그 이후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더니 88년도부터 지금까지 야생화에 대한 일반인, 어린이들의 문의전화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요 며칠 전의 일간지에서도 야생화모임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으며 나조차도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야생화란 것에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가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참으로 누구의 말대로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 아니겠는가?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들이 늘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들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들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 눈이 우리 주변에 그냥 흩어져 있는 사람들 속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존귀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 될 것인가? {들꽃 세상엔 뽐냄이 없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서 서점에서 한 마디 거들던 그 사람도 아마도 별로 뽐낼 것이 없었던 사람이었으리라. 그러나 뽐낼 것이 없든, 뽐낼 마음이 없든, 어쨌든 꽃은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리라. 그리고 세상 아래 들꽃 아니었던 꽃이 어디 있으며 지금도 들꽃 아닌 꽃이 어디 있으랴?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내가 고향 길에서 본 꽃은 "마타리"라는 꽃이었고 나는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아이들을 짜증나게 하고 아내를 한 번 웃길 수 있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겠니, 찾겠니, 찾겠니? 장미, 튜립, 백합, … 알며느리밥풀꽃,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게.... 그런 꽃이 어디 있어? 왜 없어? 보여 줄까? …" 아이들은 짜증을 내고 아내는 옆에서 웃고 있었다.

요즘 뱀다리는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길기도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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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생명환경자연 [읽을꺼리7]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은 한 세대뿐” 프레시안 2003-01-11 2920
146 인기감동기타 남성에 대한 배려 64가지 돌쇠 2003-01-06 3359
145 인기감동기타 여성에 대한 배려 62가지 돌쇠 2003-01-06 3271
144 목회독서교육 [읽을꺼리39] 교회에서 어린이를 야단쳐도 되나요? 끄덕이 2003-01-06 3097
143 인기감동기타 "목구멍, 때 벗기다" 김영옥 2003-01-06 3226
142 인기감동기타 "히딩크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8가지 이유" 천주욱 2003-01-06 3641
141 수필칼럼사설 [읽을꺼리6]수필-나에게 특별한 사람 헬리스브리지스 2003-01-06 3080
140 北山편지채희동 [읽을꺼리18] 교회가 주는 물은 맑습니까? 채희동목사 2003-01-03 2984
139 수필칼럼사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면서 헌금문제만은 구약시대로 회귀 심재원 2003-01-03 3565
138 목회독서교육 독서와 인생 정기원 목사 2002-12-26 3042
» 목회독서교육 들꽃 세상엔 뽑냄이 없다 김지형 2002-12-26 3256
136 목회독서교육 독서의 대가에게서 배운다 송광택 목사 2002-12-26 3369
135 영성묵상훈련 안락사를 어떻게 볼것인가. 이상원 박사 2002-12-26 3103
134 수필칼럼사설 교회의 긴장감 박기삼 2002-12-26 2890
133 수필칼럼사설 텅빈충만 법정 2002-12-26 3231
132 사회역사경제 경제윤리 이상원 2002-12-26 3165
131 인기감동기타 나이 기록부... 내 나이는 어디에?? 최용우 2002-12-24 2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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