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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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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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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어린이들을 야단쳐도 되나요?
교회생활에서 어린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이때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사들의 교육적인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없는 대처반응입니다.
또 야단칠 시기를 놓쳐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교육현장에서 야단치는 것 즉 훈계의 문제는 아주 민감하고 복잡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과 접촉이 많고 통제가 어려운 자기중심적인 유아, 유치부 시기 어린이들의
교육현장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미적거리거나 훈계를 게을리한다면 진정한 교육이 되기 어렵습니다.
훈계의 필요성은 성경에도 사랑의 다른 한면으로서 여러곳에서 강조하고있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주계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살전 12:6)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계 3:19).
문제는 훈계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어떻게 훈계할 것인가의 방법적인 문제
이니다.
특히 '신뢰와 사랑'의 기초시기인 유아, 유치부 시기의 어린이들에게 교사의 잘못된 훈계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부서의 일관성 있는 교육원칙과 지침을 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교사들마다 반응과 교육방법이 다르다면
그 어린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잡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유아, 유치부 어린이들을 단순한 피교육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자녀로 인식
하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야단치는 것을 자녀에게 대한 진정한 애정표현이라고 믿습니다.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꾸짖음까지도 흘려버리는 것은 사랑없는 무관심입니다.
부모와 교사는 서로 협력하는 영적부모임을 늘 상기하면서 당당하나 겸손하게 부모님들을
대하십시오.
셋째 때론 과감하게 꾸짓을 필요가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을 기를 못펼 정도로 야단을
치라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야단을 칠때도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다음은 야단칠때의 몇가지 원칙입니다.
1. 그자리에서 야단치는 목적을 확실히 전해주어야 합니다.
2. 아무리 꾸중하는 말이라도 표정이나 음성만은 밝고 온화해야 합니다.
3. 이야기를 할 때는 손을 잡는다든지 어깨에 손을 얹는다든지 하여 애정을 재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언어는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기대감을 가진 긍정적인 언어여야 합다.
예를 들어 "~~하면 안된다"의 부정적인 언어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의 긍정적이고 인
격적인 언어로의 전환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꾸짓을까 보다 어떻게 말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잘못을 지적당하기를 원치않는것처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자리에서 한 두마디 꾸짓는 것과 진지하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애정이 담긴 훈계의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십시오.
말투나 표정은 때에 따라서는 말보다 더욱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하신다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훈계의 방법적은 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태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가르침 가운데 "왼손으로 뿌리치고 오른손으로 끌어당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마음의 배려와 이해, 왼손은 제한과 질책의 표현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유아부는 생활적인 면에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서라는 점에
서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적절히 사용되어야 균형있는 신양교육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훌륭한 교육이란 변함이 없는 애정을 표현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임
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 이지영(영세교회)
-퍼온글-
들꽃피는 제55호 읽을꺼리
교회생활에서 어린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이때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사들의 교육적인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일관성없는 대처반응입니다.
또 야단칠 시기를 놓쳐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교육현장에서 야단치는 것 즉 훈계의 문제는 아주 민감하고 복잡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과 접촉이 많고 통제가 어려운 자기중심적인 유아, 유치부 시기 어린이들의
교육현장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미적거리거나 훈계를 게을리한다면 진정한 교육이 되기 어렵습니다.
훈계의 필요성은 성경에도 사랑의 다른 한면으로서 여러곳에서 강조하고있는 것을 볼 수 있
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
'주계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살전 12:6)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계 3:19).
문제는 훈계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어떻게 훈계할 것인가의 방법적인 문제
이니다.
특히 '신뢰와 사랑'의 기초시기인 유아, 유치부 시기의 어린이들에게 교사의 잘못된 훈계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부서의 일관성 있는 교육원칙과 지침을 세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교사들마다 반응과 교육방법이 다르다면
그 어린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잡기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유아, 유치부 어린이들을 단순한 피교육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자녀로 인식
하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야단치는 것을 자녀에게 대한 진정한 애정표현이라고 믿습니다.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꾸짖음까지도 흘려버리는 것은 사랑없는 무관심입니다.
부모와 교사는 서로 협력하는 영적부모임을 늘 상기하면서 당당하나 겸손하게 부모님들을
대하십시오.
셋째 때론 과감하게 꾸짓을 필요가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이들을 기를 못펼 정도로 야단을
치라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야단을 칠때도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다음은 야단칠때의 몇가지 원칙입니다.
1. 그자리에서 야단치는 목적을 확실히 전해주어야 합니다.
2. 아무리 꾸중하는 말이라도 표정이나 음성만은 밝고 온화해야 합니다.
3. 이야기를 할 때는 손을 잡는다든지 어깨에 손을 얹는다든지 하여 애정을 재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언어는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신뢰와 기대감을 가진 긍정적인 언어여야 합다.
예를 들어 "~~하면 안된다"의 부정적인 언어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의 긍정적이고 인
격적인 언어로의 전환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꾸짓을까 보다 어떻게 말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잘못을 지적당하기를 원치않는것처럼 어린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자리에서 한 두마디 꾸짓는 것과 진지하게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까 하는 문제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애정이 담긴 훈계의 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십시오.
말투나 표정은 때에 따라서는 말보다 더욱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하신다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훈계의 방법적은 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태인의 자녀교육에 대한 가르침 가운데 "왼손으로 뿌리치고 오른손으로 끌어당겨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른손은 마음의 배려와 이해, 왼손은 제한과 질책의 표현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유아부는 생활적인 면에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언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서라는 점에
서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적절히 사용되어야 균형있는 신양교육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훌륭한 교육이란 변함이 없는 애정을 표현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임
을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 이지영(영세교회)
-퍼온글-
들꽃피는 제55호 읽을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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