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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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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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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문을 비틀고 나와 담장을 돌면 고샅이 가느다랗게 펼쳐지고 몇 발자국만 더 나가면, 아기자기 올망졸망 꾸불꾸불한 길들이 가려는 사람의 행방을 묻는 곳, 난 그런 시골의 아늑한 길을 아주 좋아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왜 자꾸 그런 고샅길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비행기 창문 밖 아래로 죽 벋은 길들은 전혀 그런 길들이 아니건만, 그래도 자꾸 고샅이 마음에 밟힌다. 비행기의 이륙으로 고샅길을 다 지우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그런 향수를 불러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비행기가 구름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작아지는 나무, 집, 길들을 봄이 허망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그게 어떤 길이든 우리는 누구나 길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마음속에 담은 길이 고샅길이라면, 어떤 이는 아스팔트의 곧은 8차선을 마음에 담은 이도 있을 것이다. 흙먼지 자욱이 날리고야 차의 통행을 허락하는 꽤 널찍한 한길일지도 모른다. 소달구지와 경운기의 통로로 논 곁에 난 시골길인지도 모른다. 느릅나무 그늘 속에서 매미 한 가락 하는 산골길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길은 여러 가지다.
지난 토요일, 목포에 아버지학교 강의가 있어 목포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부랴부랴 갔다. 이미 예매해 놓은 표를 받기 위해 안내대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결항이라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가는 것이라면 일찍 떠나 강의시간을 맞춘다지만,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갔는데 결항이라면 강의시간에 대어 가기는 틀린 일이다.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광주행 비행기 대기자 명단에 올릴까요?’ 하는 항공사 직원의 말이 내 귀를 때렸다. 얼떨결에 ‘그러시죠.’ 대답을 하곤 생각했다. 혹 자리가 없어 못 가면 어떡하나. 그 후 10분쯤 기다리는 시간은 10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결국 광주행 비행기에 올랐고, 돌아가긴 했지만, 목포 아버지학교에 무사히 도착하여 강의를 잘 하고 돌아왔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게 있다. 길은 여러 가지란 걸.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가 보다. 시간이 좀 지체하긴 했지만, 안 밟아도 될 광주 땅을 밟긴 했지만, 최종 목적지였던 목포에 이르고야 말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에 넉넉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진리가 모든 방면에 통하는 것이 아니란 걸 사람들은 모를 때가 있다. 세상의 땅이나 하늘에 그어진 길은 그 어느 길이든 가면 된다. 지름길인가 좀 돌아가는 길인가만 다를 뿐이지 모든 길이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는 길이다. 종교적 진리를 말할 때도 불교나 종교다원주의는 이런 주장을 한다. 길은 여러 가지나 결국 모두 천국(극락)에 이르는 길이라고.
정말 그럴까? 만약 광주에 가려고 하는데 부산행 고속버스 안에 타고 있다면 어떨까?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광주나 부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란 걸 아는 자가 길눈이 밝은 자다.
*들꽃피는 제50호 읽을꺼리*
비행기 창문 밖 아래로 죽 벋은 길들은 전혀 그런 길들이 아니건만, 그래도 자꾸 고샅이 마음에 밟힌다. 비행기의 이륙으로 고샅길을 다 지우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그런 향수를 불러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비행기가 구름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작아지는 나무, 집, 길들을 봄이 허망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그게 어떤 길이든 우리는 누구나 길을 가지고 있다. 내가 마음속에 담은 길이 고샅길이라면, 어떤 이는 아스팔트의 곧은 8차선을 마음에 담은 이도 있을 것이다. 흙먼지 자욱이 날리고야 차의 통행을 허락하는 꽤 널찍한 한길일지도 모른다. 소달구지와 경운기의 통로로 논 곁에 난 시골길인지도 모른다. 느릅나무 그늘 속에서 매미 한 가락 하는 산골길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길은 여러 가지다.
지난 토요일, 목포에 아버지학교 강의가 있어 목포행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부랴부랴 갔다. 이미 예매해 놓은 표를 받기 위해 안내대로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결항이라는 것이다. 차를 몰고 가는 것이라면 일찍 떠나 강의시간을 맞춘다지만, 비행기 시간이 다 되어 갔는데 결항이라면 강의시간에 대어 가기는 틀린 일이다.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 ‘광주행 비행기 대기자 명단에 올릴까요?’ 하는 항공사 직원의 말이 내 귀를 때렸다. 얼떨결에 ‘그러시죠.’ 대답을 하곤 생각했다. 혹 자리가 없어 못 가면 어떡하나. 그 후 10분쯤 기다리는 시간은 10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결국 광주행 비행기에 올랐고, 돌아가긴 했지만, 목포 아버지학교에 무사히 도착하여 강의를 잘 하고 돌아왔다.
이번 일로 깨달은 게 있다. 길은 여러 가지란 걸.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말하는가 보다. 시간이 좀 지체하긴 했지만, 안 밟아도 될 광주 땅을 밟긴 했지만, 최종 목적지였던 목포에 이르고야 말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에 넉넉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진리가 모든 방면에 통하는 것이 아니란 걸 사람들은 모를 때가 있다. 세상의 땅이나 하늘에 그어진 길은 그 어느 길이든 가면 된다. 지름길인가 좀 돌아가는 길인가만 다를 뿐이지 모든 길이 목적지에 데려다 줄 수 있는 길이다. 종교적 진리를 말할 때도 불교나 종교다원주의는 이런 주장을 한다. 길은 여러 가지나 결국 모두 천국(극락)에 이르는 길이라고.
정말 그럴까? 만약 광주에 가려고 하는데 부산행 고속버스 안에 타고 있다면 어떨까? 갈아타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은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광주나 부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란 걸 아는 자가 길눈이 밝은 자다.
*들꽃피는 제50호 읽을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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