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좀 도와줘. 나중에 사장 시켜줄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생전에 7년간이나 비서생활을 한 이모라는 지인이 있다. 그는 정회장 생전에 현대그룹 내에서 신화같은 존재였다. 이유는 '청렴강직함' 때문이었다.
익히 알려졌듯 생전의 정회장은 '왕회장'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그룹의 절대황제였다. 내로라 하는 계열사 회장, 사장들도 그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의 쥐 꼴이었다. 정회장의 아들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회장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이들은 따라서 가능하면 정회장 기분이 좋을 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맞기를 원했다. 정회장 기분이 험할 때 잘못 들어갔다가는 서류가 공중으로 날라가고 차마 밖으로 전할 수 없을 정도의 험한 소리를 듣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열사 회장이나 사장들은 결제를 맞기에 앞서 이모 비서에게 "지금 기분이 어떠시냐"고 탐색하곤 했고, "별로 안 좋아보인다"고 하면 조용히 사라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회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이모 비서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숱한 시도가 당연히 있었다. 그를 통해 정회장의 일거수일투족과 생각 등을 감지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정회장 아들들과 그들 주변 가신들의 암투가 치열했던 현대그룹이었던 만큼 이모 비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유혹은 거셌다.
"좀 도와줘. 나중에 사장 시켜줄께"같은 노골적 유혹이 뒤따랐다. 당시 이모 비서가 과장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모 비서는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다. 자기는 정주영 회장을 모시는 '비서'였기 때문이다. 정회장이 자신을 믿고 일을 시키는데 그를 배신하는 행위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현대그룹 고위층들 사이에서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다.
'프레스토 신화'
이모 비서는 비서생활 7년간 내내 낡은 소형 승형차 프레스토를 몰고 다녔다. 십수년된, 말 그대로 고물차였다. 당연히 그에게 좋은 승용차를 주겠다는 유혹이 쉬지 않고 들어왔다.
"아, 이 사람아. 회장님 체면도 생각해야지. 프레스토가 뭐야. 내일 당장 신형 소나타를 보낼 테니 타고 다녀."
대충 이런 식의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모 비서는 매번 정중히 사절했다. "몰고 다니는데 아직 지장없고 내 분수엔 이게 맞는다"는 게 사절 이유였다.
이모 비서는 실제로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부양가족이 자신의 부인, 자녀외에도 부모, 동생들까지 열명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급 갖고 살기란 여간 벅차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차를 바꿀 여력이 없었다. 술도 돼지고기 삼겹살 구워서 소주를 즐겨 마셨다.
이모 비서는 정주영 회장이 타계하자 건설사 현장 책임자로 나가,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그를 아는 현대사람들은 그를 존경의 염으로 바라본다.
'포니 신화'보다 멋진 '프레스토 신화'다.
[프레시안]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생전에 7년간이나 비서생활을 한 이모라는 지인이 있다. 그는 정회장 생전에 현대그룹 내에서 신화같은 존재였다. 이유는 '청렴강직함' 때문이었다.
익히 알려졌듯 생전의 정회장은 '왕회장'이라 불릴 정도로 현대그룹의 절대황제였다. 내로라 하는 계열사 회장, 사장들도 그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의 쥐 꼴이었다. 정회장의 아들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정회장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이들은 따라서 가능하면 정회장 기분이 좋을 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맞기를 원했다. 정회장 기분이 험할 때 잘못 들어갔다가는 서류가 공중으로 날라가고 차마 밖으로 전할 수 없을 정도의 험한 소리를 듣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열사 회장이나 사장들은 결제를 맞기에 앞서 이모 비서에게 "지금 기분이 어떠시냐"고 탐색하곤 했고, "별로 안 좋아보인다"고 하면 조용히 사라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회장의 지근거리에 있는 이모 비서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숱한 시도가 당연히 있었다. 그를 통해 정회장의 일거수일투족과 생각 등을 감지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정회장 아들들과 그들 주변 가신들의 암투가 치열했던 현대그룹이었던 만큼 이모 비서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유혹은 거셌다.
"좀 도와줘. 나중에 사장 시켜줄께"같은 노골적 유혹이 뒤따랐다. 당시 이모 비서가 과장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모 비서는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다. 자기는 정주영 회장을 모시는 '비서'였기 때문이다. 정회장이 자신을 믿고 일을 시키는데 그를 배신하는 행위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현대그룹 고위층들 사이에서는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다.
'프레스토 신화'
이모 비서는 비서생활 7년간 내내 낡은 소형 승형차 프레스토를 몰고 다녔다. 십수년된, 말 그대로 고물차였다. 당연히 그에게 좋은 승용차를 주겠다는 유혹이 쉬지 않고 들어왔다.
"아, 이 사람아. 회장님 체면도 생각해야지. 프레스토가 뭐야. 내일 당장 신형 소나타를 보낼 테니 타고 다녀."
대충 이런 식의 유혹이었다.
하지만 이모 비서는 매번 정중히 사절했다. "몰고 다니는데 아직 지장없고 내 분수엔 이게 맞는다"는 게 사절 이유였다.
이모 비서는 실제로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부양가족이 자신의 부인, 자녀외에도 부모, 동생들까지 열명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월급 갖고 살기란 여간 벅차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차를 바꿀 여력이 없었다. 술도 돼지고기 삼겹살 구워서 소주를 즐겨 마셨다.
이모 비서는 정주영 회장이 타계하자 건설사 현장 책임자로 나가,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그를 아는 현대사람들은 그를 존경의 염으로 바라본다.
'포니 신화'보다 멋진 '프레스토 신화'다.
[프레시안]
|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